[설렁설렁 일본 여행][여행] 나를 홀린 홋카이도의 여름 색, 샤코탄 블루

2024-10-22

15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의 설렁설렁 일본 여행 #2



홋카이도 하면 하얀색이 떠오른다. 흰 눈으로 대표되는 북국의 흰색은 그 자체가 낭만이다. 화이트아웃을 일으킬 만큼 새하얗고 너른 들판은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한편 홋카이도의 여름은 보라색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홋카이도의 여름을 대표하게 된 라벤더밭의 보라색.


하지만 나에게 여름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색은 ‘샤코탄 블루’다. 


샤코탄 블루


*    *    *


홋카이도의 바다를 생각하면 ‘심연’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깊이를 알 수 없는, 차가운 한기(寒氣)로 가득한 짙푸른 프러시안블루가 떠오른다. 그런 홋카이도의 바다에 특별한 이름이 붙은 색이 존재하니, 그것이 바로 샤코탄 블루다.


도대체 어떤 ‘블루’이길래 지역명과 함께 등장하는 걸까? 바다와 면한 지역이라고 해서 그 모든 이름에 ‘블루’가 따라붙지는 않는다. 샤코탄의 블루는 과연 어떤 색일까? 홋카이도의 다른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진한 푸른빛과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직접 가서 보는 수밖에 없다. 작열하는 태양이 머리 위를 뜨겁게 달구던 어느 날, 삿포로에서 렌터카를 빌려 샤코탄 블루를 보러 떠났다. 


샤코탄반도로 가는 길


삿포로 서쪽으로 바다를 향해 쭉 뻗어 있는 반도가 바로 샤코탄반도다. 삿포로에서 출발해 오타루를 거쳐 닛카 위스키 주조소로 유명한 요이치를 지나 샤코탄반도로 진입한다.


샤코탄반도는 홋카이도 내에서 유일하게 해역공원으로 지정된 ‘니세코샤코탄오타루 해안국정공원’에 속해 있다. 샤코탄반도의 거의 모든 해안선이 국정공원으로 지정된 것이다. 북쪽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229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기암괴석과 해안 절벽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해안선을 만날 수 있다. 부러질 것 같은 사슴 발목을 가진 에비스 바위(えびす岩)와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부부 바위’라고도 불리는 다이코쿠 바위(大黒岩)를 비롯해 촛대 바위, 세타카무이 바위, 그 외에 이름 없는 수많은 바위가 해안선을 장식하고 있다. 자동차를 타고 이 해안 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눈 호강에 마음이 들뜬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해안선의 바위들


에비스 바위와 다이코쿠 바위. 샤코탄 반도의 해안선엔 이런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마침 날씨가 너무 화창했다. 전날 내린 비가 무색하게 간간이 구름이 떠다니는 아름다운 푸른 하늘은 마치 샤코탄으로 부르는 초대장인 것만 같았다. 해안 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파란 바다. 샤코탄 블루는 먼저 차창 너머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큰 감흥을 받지 못했다. 분명히 북쪽 찬 바다의 짙푸른 블루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슴을 울릴 만큼 신비로운 느낌도 아니었다. 그저 맑은 날, 눈부신 바다였다. 


샤코탄 블루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한 목적지는 카무이 곶(神威岬)이었다. 샤코탄반도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바다를 향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는 좁은 절벽 위에서 양쪽으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카무이 곶의 산책로


입구에서 카무이 곶의 끝까지 전부 다녀오려면 넉넉하게 1시간쯤은 잡아야 한다. 제법 언덕이라 오르락내리락 거친 숨을 몰아쉬게 한다. 해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전무한 탓에 햇살이 뜨거운 날엔 양산이나 생수를 꼭 준비해야 한다.


카무이 곶 자연공원(神威岬自然公園)으로 들어서서 주차를 하면, 카무이 곶으로 향하는 언덕길 초입에 안내도가 그려진 비석이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바람에 날리는 샤코탄 블루(風に吹かれてしゃこたんブルー)’라는 표제어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카무이 곶 자연공원의 안내 비석


비석을 지나 언덕을 조금 올라가다 보면 금세 비경과 마주친다. 높은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그리고 드디어 내 눈에 들어온 진정한 샤코탄 블루. 날숨을 도로 삼킬 수밖에 없는 신비로운 색이 두 팔 벌려 나를 맞이했다.


카무이 곶 초입에서 만난 샤코탄 블루


이 색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강원도의 바다만 해도 짙고 푸르고 거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여긴 강원도보다 위도가 한참 높은 곳이지 않은가. 그런데 저 색은 뭐지? 여기가 홋카이도가 아니라 오키나와인가? 제주도에서나 볼 법한 남국의 바다색. 옥빛으로 빛나는 투명한 샤코탄 블루가 거기 있었다. 감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온몸을 때리는 듯한 울림에 부르르 전율이 흐른다. 


“이게 뭐야?”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던 내가 처음 입 밖으로 낸 말이었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색이 펼쳐져 있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멍해지는, 한숨이 푹푹 나오면서도 입은 다물어지지 않는 그런 색, 이게 바로 샤코탄 블루구나. 여기까지 오면서 지나쳤던 바다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환상의 색이구나. 이런 블루라면 지명에 별명처럼 붙는 게 당연했다. 이 감동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비루한 나의 어휘력으로는 ‘환상적’이라는 상투적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옥빛으로 빛나는 투명한 샤코탄 블루


수평선에 얇게 떠 있는 구름이 아니면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았다. 옥빛 섞인 코발트블루가 끝없이 펼쳐졌다. 카무이 곶의 산책로가 자아내는 멋진 풍경도 뒷전이고, 내 눈은 오로지 바다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여자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여인 금제의 문(女人禁制の門)’이 있다. 과거에 카무이 곶이 여성 출입 금지 구역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인데, 물론 지금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 이 문을 지나면 바다를 향해 뻗은 카무이 곶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등성이 위로 난 산책로는 그 자체로도 멋진 경치를 뽐내고, 저 멀리 카무이 곶 끝자락에 하얀 등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오른쪽 뒤로는 염불 터널(念仏トンネル), 왼쪽 뒤로는 타코 바위(立岩)가 보인다.


여자 출입 금지의 문


카무이 곶 오른쪽 뒤로 보이는 타코 바위


카무이 곶 왼쪽 뒤로 보이는 염불 터널. 잘 보면 조그마한 동굴 같은 것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절경을 보면서도 내 눈은 색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샤코탄 블루가 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몸은 바다에서 몇십 미터 떨어진 높은 곳에 있었지만 마음은 바다에 빠져 있었다. 


*    *    *


결국 카무이 곶의 산책로는 끝까지 걸어가 보지 못했다. 가는 도중 햇살이 너무 뜨거워 일사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샤코탄 블루에 취해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던 탓이었는지 모르겠다. 샤코탄 블루에 너무 흥분해서 에너지를 한 번에 방출해 버린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비석에 나와 있던 여섯 군데 지점 중 4번 지점에 해당하는 곳쯤에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끝까지 가서 등대도 보고, 카무이 바위도 보고, 망망대해에 끝없이 펼쳐진 샤코탄 블루를 더 넓게 탐닉했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했다.


카무이 곶 산책로 전경. 저 멀리 등대가 보인다.


사실 카무이 곶에서 이렇게 맑은 하늘에, 바람도 잔잔해서 끝까지 걸어가 볼 수 있는 날씨를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기상 상태에 따라서 출입이 금지되는 경우도 많다, 날이 맑아도 바람이 강해 산책로가 폐쇄되기도 하고, 비가 많이 오거나 안개가 많이 껴도 폐쇄된다고 한다. 그냥 흐린 정도엔 개방하지만, 그러면 샤코탄 블루를 지금처럼 선명하게 즐기기 힘들다.


완벽한 날의 완벽한 색


이런 천혜의 날씨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하다니. 마음이 너무 무거워 몸이 잘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더 갔다간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완벽한 체력 안배 실패다! 쓰러져서 사람들에게 민폐라도 끼치면 큰일이니까 아쉬워도 여기선 되돌아가는 게 맞았다. 아쉬움이 있어야 두 번째가 있는 법. 다음을 기약하며 샤코탄 블루를 뒤로했다.


산책로에서 내려와 자연공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각종 기념품과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소프트아이스크림도 블루, 사이다도 블루, 사탕도 블루, 과자도 블루다. 홀린 듯 구입하게 되는 블루 매직!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뜨거워진 몸을 식히며 샤코탄 블루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하나 먹는다. 


샤코탄 블루 소프트아이스크림


자동차를 돌려 나와 해안 도로를 따라 조금 달리다 보니 기암괴석들과 함께 저 멀리 카무이 바위가 보인다. 이렇게라도 봤으니 다행이다. 다음번엔 꼭 끝까지 가서 등대와 바위와 함께 샤코탄 블루를 다시 만나봐야지.


해안의 사람 얼굴 모양 바위


나를 홀린 샤코탄 블루. 다음을 기약하며 안녕!





글·사진 박소현

15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 17년차 일본 여행 초보자. 27년차 기혼자. 일본어를 읽는 데 지치면 일본어를 말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게 삶의 낙인 고양이 집사. 그저 설렁설렁 일본을 산책하는 게 좋다.
『걸스 인 도쿄』 『도서 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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