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여행] 왜 발리인가!

섬들의 천국, 신들의 천국, 인도네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휴양지, 발리. 전 세계에서 모여든 서퍼들, 수많은 스쿠터와 바이크, 천차만별 수준의 리조트와 풀빌라, 아름다운 바다와 열대 우림. 각양각색 스타일로 저마다 고유한 일정을 짠 배낭족들이 넘쳐나는 여행 천국.



다른 동남아시아에 비해 비행시간도 길고 항공편도 비싼 편이라 짧은 일정으로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곳이다. 며칠 동안 고급 리조트에서 머물다 가는 일정이라면 굳이 발리여야 할 필요가 없다. 더 가깝고 저렴한 럭셔리 리조트들이 동남아 이곳저곳에 즐비하고, 물가도 썩 아름답지가 않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신혼여행지로서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것 같다.


하지만 한 달 살기, 서핑, 골프, 바이크 투어, 워케이션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발리가 로망이다. 갑자기 삶에 긴 공백이 생겼다면 구대륙 견학으로 견문을 쌓는 것도 좋겠지만, 그런 배낭여행까지 거쳐 온 사람이라면 발리 배낭여행의 한 부류가 되어 갈팡질팡 공백의 의미를 되새겨 볼 만하다. 발리는 코로나로 굶주린 여행 갈증을 채우고, 무엇보다 갑자기 생겨난 직업의 공백에서 허우적대던 나를 일으켜 세우기 충분한 후보지였다.



여행 정보가 넘쳐나다 보니 인터넷의 미로에서 내가 원하는 포인트만 골라서 취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는데, 생각보다 휴양만이 아닌 제각각의 목적으로 발리로 떠나는 여행객이 많았다. 게다가 인도네시아에는 발리 말고도 가 볼 곳이 넘쳐났다.


한 달 일정이 짧은 건 아니니 발리에서 떠나는 작은 섬들로 일정을 잡는다. 지역마다 종교, 음식, 문화가 다르다. 즐길 거리 또한 다르니 공부할 게 많다. 여행 일정을 엑셀로 정리한다. 어지간한 타임 스케줄로는 만족하지 못하기에, 며칠 오가다 자연을 보며 멍을 때리는 시간 따위는 절대 누리지 못할 알차고 유익한 투어 일정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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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장기건 머물기로 한 사람들은 주로 남서쪽 해변 라인의 스미냑, 꾸따, 짱구나 좀 더 내륙으로 들어간 우붓을 거점으로 삼는다. 스미냑, 꾸따, 짱구 같은 곳은 공항에서 가깝고 상권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특히 서핑과 비치 클럽이 핵심이다. 낮에는 파도타기, 해수욕, 리조트 칠링, 저녁에는 화려한 비치 클럽에서 석양을 보거나 여러 콘셉트의 카페, 펍, 레스토랑에서 밤문화를 즐긴다.



발리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호주 여행자들이 많은데, 그들을 비롯한 전 세계 웨스턴들이 옮겨 다니며 선점하는 지역이 일종의 ‘뜨는 지역’이 된다. 내가 머문 짱구(canggu) 지역이 최근 가장 트렌디한 동네로 꼽히고 있었다. (분위기가 핫한 만큼 물가가 핫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타투숍이 커피숍보다 많은 짱구는 온몸에 각양각색 타투를 하고 서핑보드를 싣고 반라와 비키니차림으로 바이크를 타고 동네를 누비는 젊은 웨스턴들의 자유로움이 가득한 동네다.



서쪽 해변의 젊음과 휴양지다운 자유로움이 좀 지칠 때쯤 우붓으로 이동한다. 우붓의 자유로움은 사뭇 다른 색깔이다. 더 시골 같고 소박하며 발리하면 떠오르는 그 이미지의 색이 가장 짙다.

 


발리 섬 살짝 안쪽에 위치한 우붓은 가장 기대했던 곳이고 그만큼 만족도 컸다. 발리의 환상을 채워주는 로컬의 매력, 가공되지 않은 열대우림의 자연. 혼자 다녀도 위험하거나 불편하지 않고 근처 어디에서건 초록 자연, 힐링 모먼트에 최적화된 숨은 산책코스가 나타난다. 그래서 수많은 배낭여행객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서는 여행하는 기분보다 생활하는 기분으로 머물러 보고 싶었는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적응하는 데는 적당했지만, 생활 기분을 내기에는 모자랐다. 



우붓에서 요가와 트래킹, 쿠킹 클래스를 해 보았는데 역시 만족스러웠다. 골목에서부터 치유 아우라를 뿜어대니 전 세계에서 우붓으로 요가 수련을 오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그들 모두를 넉넉하게 수용하는 대형 요가 센터들이 천연 플랜테리어 환경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맨바닥에 앉는 것도 힘들어하는 서양인들이 요가에 빠져드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붓이 그들에게 요가가 가진 메시지를 전달하는 최적의 장소인 건 분명하다.




우붓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바투르 화산 일출 트레킹에도 도전했다. 날씨까지 허락되어 칼데라 호수를 끼고 화산의 일출을 바라 볼 수 있었다. 도전 코스가 힘에 부칠수록 기억 값어치가 높아진다. 열대우림 속에 펼쳐지는 거대한 다랭이논, 평원의 논밭 뷰, 깊은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트레킹을 하고, 자연 깊숙이 자리한 수백 년 전통의 힌두사원, 원시 밀림 폭포에서 인생샷을 무수히 남겼다. 인생이 풍족해졌다.



발리는 위치 기반 서비스 앱이 잘 발달되어 있어 기사와 차를 필요한 시간만큼 불러 이용하기 좋고, 가까운 거리는 바이크 서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사실 가장 효율적인 이동 수단은 종일 스쿠터를 빌려 타는 것인데, 직접 운전하기 부담스럽다면 천 원, 이천 원 정도면 뒷좌석에 앉아 더운 바람을 견디며 에어컨이 있는 장소 어디로든 데려다 달라 할 수 있다.


관광지다 보니 우붓은 낮이고 밤이고 수많은 생활인들, 관광객들로 분주하다. 그런 분주함에 다시 지친다 싶어질 땐 외로운 섬으로 떠나 본다. 더 느리고, 더 한적한 곳. 한국에서는 〈윤식당〉에 나온 곳으로 잘 알려진 길리 섬이다. 



발리 동쪽 항구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반. 차도 다니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고립된 휴양을 즐기기 위한 여행자들이 불편을 무릅쓰고 찾아든다. 가장 큰 섬 길리트라왕안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 굳이 이동할 일도 없다. 모두가 바다를 마주보고 단조로운 일상을 보낸다. 작은 배를 타고 나가 바다거북이나 열대어를 보거나 스킨스쿠버를 하거나 해변을 따라 한 집 건너 열리는 라이브 공연을 보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 


물자 공급이 쉽지 않지만 호텔과 리조트도 레스토랑, 카페, 바, 심지어 클럽도 있다. 그래서 노부부나 가족 단위 휴양객들은 더 작고 조용한 길리아이르나 길리메노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힌두이지만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발리만의 독특한 종교 문화는 산에도 집에도 나무에도 샘에도 모두 고유의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자연에 내재하는 신에게 받은 것에 감사해 한다. 그들은 신이 자연에게, 자연이 사람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준 것을 다시 사람이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다 발견하지 못한 발리의 재미를 찾아 남은 시간도 열정적으로 수고할 예정이다.






글/사진 김은영

빈티지 카페 '섬'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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