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두바이 통신원][여행] 두바이에서 맞이하는 내 인생의 태평성대

내 맘대로 두바이 통신원 #3


 

두바이의 겨울

두바이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겨울이라고들 한다. 12월이 되면 드디어 낮 최고 기온이 20도대, 최저 기온은 10도 중후반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온화한 날씨는 3월까지는 유지되기 때문에 그야말로 여행하기 가장 적합한 시기라 할 수밖에.


고난의 계절을 이겨낸 이들은 겨울이 되면 밖으로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러고는 외부에 펼쳐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를 즐기고 바깥세상을 구경한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두바이에 살 때나 먹어보지 언제 다시 먹어볼까 싶은 아라비안 스타일 요리를 한 상 가득 주문하고 챙겨간 책을 뒤적이다가 눈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비타민이 듬뿍 채워지는 기분. 두바이의 겨울은 우리에게 그런 기쁨을 선사했다.


바깥에서 볼 때는 단순히 사막의 도시지만 실제로 두바이에는 다양한 환경이 공존한다. 두바이 도심에 있는 플라밍고 군락지



두바이의 여행자

이 도시의 겨울은 종종 한국의 초가을 날씨를 떠올리게 한다. 그 아름다운 계절, 나는 종종 혼자서라도 나들이를 다녀오곤 했다. 두바이는 겨울이 관광 성수기인 만큼 집을 나서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그날의 목적지가 관광객들로 붐비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나는 출근하는 남편과 등교하는 아이의 발걸음에 맞춰 부지런히 외출 준비를 했다. 영원하지 않을 게 분명한 이 아름다운 시기를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배우자이자 누군가의 엄마로서만 돌아가는 요즘의 내 삶이 공허하다는 생각에 틈을 주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두바이는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금융 허브이기도 하다. 그 상징과도 같은 DIFC의 풍경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사를 오기 전 나는, 두바이에 살고 계신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 도시의 무시무시한 여름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는데, 일 년 중 가장 더운 그 시기엔 건물 밖으로 나가는 순간 마치 누군가가 헤어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내 발바닥에 대고 튼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뜨거움이 우릴 덮친다는 것이 요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공섬인 팜주메이라의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모노레일에서 바라본 팜주메이라의 아파트 단지 풍경


고온다습한 기후를 경험해 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니 두바이의 여름쯤이야. 마음 단단히 먹으면 견뎌내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후아, 이곳의 더위라는 것은 인간이 마음을 먹는다고 간단히 이겨낼 수는 없는, 말하자면 내 고국의 폭염을 상쾌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힘을 지닌 것이었다. 두바이의 첫여름은 이토록 힘겨웠다. 힘겨웠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데, 가만 보자. 내가 이렇게 모호하게 말을 끝맺는 데는 이유가 있다. 두바이에서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아마도 내가 여름 사막의 불볕더위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리라.


두바이는 연중 물놀이가 가능한 기후를 지니고 있다. 낮 동안은 너무 뜨거운 여름보다는 봄, 가을이 물놀이에 가장 적합하다.



그리고, 두바이의 여름

겨울의 하루하루가 모여 왔다 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짧은 봄이 되었고 곧이어 여름이 찾아왔다. 앞서 말했듯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나도 사람인지라 올여름이 한 해 전 여름만큼 버겁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겨울에 하던 바깥나들이를 여름이 되어서까지 이어서 하고 있다. 이런 날씨의 두바이에서 누가 바깥을 돌아다니나 싶었는데 그게 바로 내가 될 줄이야. 


스타벅스조차도 두바이 스타일!



내 인생의 태평성대

몇 년 전 서울 이촌동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태평성대를 그린 우리네 옛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제목과 설명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태평성대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게 하는 그림이었다. 뒤돌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까닭을 알 것만 같다. 전시장 한 면을 꽉 채울 정도로 커다란 화폭 안에는 한 마을의 풍경이 펼쳐져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들 무언가를, 그러니까 그것이 일이든 놀이이든 각자만의 할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그 세상은 활기가 넘쳤고 기쁨이 엿보였다.


두바이 팜주메이라의 서쪽 해변. 바다 건너 JBR 지역이 보인다.


두바이로 이사를 온 후 종종 생각한다. 갑작스레 경력이 단절되어 버린 지금의 내 모습에 마음이 허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이 앞으로의 내 삶에 분명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낯선 곳을 방문하고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맛보고 인종과 국적과 종교가 다른 이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날지도 모른다고. 이런 마음으로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의 종용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유튜브 아이디도 없던 내가 채널을 만들고 지난 우리의 여행을 기록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려 노력하면서 나는 자주, 그때 그 태평성대를 그린 그림을 떠올린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요인들도 있겠지만 내 인생이라는 나라의 왕은 나이므로 내 인생의 태평성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도 바로 나 자신일 터.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한 번 끙차!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앞으로의 내 인생, 아니, 지금 당장부터의 내 인생의 태평성대를 위하여.


두바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버즈 알 아랍(Burj Al Arab) 호텔이 아닐까?
세계 최고의 7성급 호텔이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곳인데 실제로 7성급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단다. 최고급인 5성급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훌륭한 곳이라는 의미라고.




글/사진 이유미(여행하는가족)

“엄마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마흔 넘어 받은 질문이 고마워 눈물이 다 났습니다. 아이에게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오래 간직해온 저의 꿈을 한 자 한 자 펼쳐보려고 합니다. ‘여행하는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travellingfamil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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