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의 설렁설렁 일본 여행 #3
교토타워를 밝히는 조명은 교토의 밤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때마다 각양각색의 조명으로 옷을 갈아입고 까만 하늘을 물들이는 교토타워만 보면 교토의 밤도 다른 대도시처럼 아주 화려할 것만 같다.
각양각색으로 물든 교토 타워
그러나 신사와 절 같은 교토의 주요 관광지들은 대부분 해가 조금만 기울어도 마감 준비에 들어간다. 그에 맞춰 관광지 주변 상점들도 하루 영업을 끝낼 채비를 시작한다. 해가 진 다음에도 영업을 한다면 십중팔구 음식점이나 술집이다. 교토역 주변이나 가와라마치역 부근의 번화가가 아닌 다음에야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면 거리 전체가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그 많던 관광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싶을 만큼 순식간에 비워지는 관광지 주변 거리들. 수많은 상점이 셔터를 내려 내부의 불빛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차단한다.
밤의 시모가와 강변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만이 거리를 밝히는, 낮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
고즈넉한 교토의 밤은 신비로운 한적함으로 무장한 채 또 다른 매력으로 관광객을 매료시킨다.
중심지와 달리 조용하게 가라앉은 관광지 주변 골목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마저 드는 겐닌지(建仁寺) 입구
아무도 없는 밤의 기온 거리. 총총걸음으로 뛰어가는 마이코가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된다.
땅거미가 살그머니 내려앉은 교토의 이른 밤. 큰길에서 산넨자카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야사카 탑이 눈에 들어온다. 언덕 위에서 웅장하게 존재감을 뽐내는 커다란 탑은 산넨자카의 터줏대감이다. 그런 야사카 탑이 밤에는 화려한 조명을 받아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어두운 골목 저편에서 홀로 밝게 빛나는 탑은 마치 길잡이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야사카 탑이 저렇게 눈이 부셨던가. 과거로 가는 문이 바로 여기라는 듯 나를 부른다. 셔터를 내린 많은 가게들 너머로 홀로 빛나는 야사카 탑을 향해 홀린 듯 산넨자카를 오른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고개가 꺾어지는 거대한 탑은 낮에 봤을 때와는 다른 건조물인가 싶을 만큼 느낌이 다르다. 탑이 발산하는 빛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산넨자카 초입에서 바라본 야사카 탑

불 꺼진 산넨자카
불 꺼진 전통 건물들을 내려다보는 야사카 탑을 지나쳐 조금 더 올라가면 야사카 탑의 뒷모습이 보인다. 하얗게 빛나던 앞부분과는 달리 산넨자카의 노란 가로등 불빛을 받은 야사카 탑 뒷모습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산넨자카 위에서 바라본 야사카 탑의 뒷모습
내가 탑을 내려다보게 될 정도로 언덕을 올라가면 왼쪽으로 또 하나의 내려가는 계단 길이 나타난다. 이곳이 니넨자카의 시작점이다. 오늘 저녁 식사는 이 산넨자카와 니넨자카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이츠키차야(五木茶屋)’에서 먹기로 한다.
기요미즈데라 부근에서 저녁밥을 먹으려면 조금 서두르는 것이 좋다. 몇몇 호텔 레스토랑이나 가이세키 요릿집 같은 곳들을 제외하면 6시 이전에 영업을 마치는 곳이 많고, 저녁 영업을 하더라도 7시쯤엔 이미 라스트오더가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츠키차야 전경. 오른쪽에 니넨자카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다섯 종류의 덮밥과 스키야키를 맛볼 수 있는 이츠키차야에서 창가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아무리 어두워졌다 해도 7시가 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2층 창문으로 내다본 니넨자카 거리는 놀랄 만큼 차분하고 조용했다. 이곳이 낮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만큼 북적이는 골목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내가 있는 곳과 다른 시간 축에 존재하는 것만 같은 밤의 니넨자카가 거기 있었다.
다섯 가지 종류의 덮밥과 스키야키를 맛볼 수 있다.
맛있는 밥을 배불리 먹고 나와 바로 옆 니넨자카로 내려간다. 낮엔 관광객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너도나도 사진을 찍는 계단은 텅 비어 있다. 나처럼 밤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관광객이 몇몇 산재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낮과는 인구밀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니넨자카가 이렇게 분위기 있는 길이었나 싶을 만큼 한산하고도 호젓한 돌길과 전통 가옥들이 과거로 타임 슬립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니넨자카 초입
알록달록한 도심과는 다른, 색이 하나만 존재하는 듯 온통 노란 가로등 불빛으로만 물든 좁은 골목길 초입엔 지금이 21세기라는 것을 절감하게 하는 스타벅스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다. 대부분의 카페나 찻집이 6시면 문을 닫는 니넨자카에서 그나마 8시까지 커피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 스타벅스의 간판은 자칫하면 못 알아보고 지나칠 만큼 주변 분위기에 이질감 없이 녹아들어 있다. 스타벅스까지 함께 과거의 니넨자카로 날아간 것 같다. 글로벌 커피 전문점마저 과거로 보내는 교토의 매직.
밤의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온다. 간간이 창문 밖으로 내부의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가게가 있지만, 그런 가게들도 대부분 정리 작업 중이다. 영업이 끝난 후 가게 앞에 내놓은 쓰레기봉투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밤의 니넨자카가 워낙 고요하고 환상적이라 그런 사람 냄새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밤의 니넨자카 거리
타임머신이 없어도 과거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교토이지만, 밤의 교토는 과거로의 회귀가 더욱 쉽게 일어난다. 발걸음은 저절로 느려지고, 마시고 있는 커피가 나의 시간 축을 뒤틀리지 않게 꽉 잡아준다.
한참을 분위기에 젖어 걷다 보면 눈앞에 웅장한 석조 도리이가 나타난다. 야사카 신사의 남쪽 입구에 서 있는 이시도리이(石鳥居)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기온 거리 쪽의 서루문(西樓門)이 아니라 사실은 이 도리이 뒤편의 남루문(南樓門)이 야사카 신사의 정문이다. 여름의 기온 마쓰리 때에도 이쪽 문으로 가마가 출발한다.
야사카 신사 이시도오리(石鳥居). 뒤로 남루문(南樓門)과 무전(舞殿)의 등불이 보인다.
24시간 출입을 허용하는 야사카 신사는 밤이 무색할 만큼 밝은 빛으로 빛나고 있다. 밝은 빛의 주된 발원지는 신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무전(舞殿)이다. 이름 그대로 춤을 추는 무대로, 기온 마쓰리나 결혼식 등 각종 행사와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처마 아래로 매달려 있는 수백 개의 등불이 밤새도록 주변을 밝힌다.
야사카 신사의 무전(舞殿)
차분하게 가라앉았던 산넨자카와 니넨자카와는 너무나 다른 교토의 밝은 밤. 낮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무전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불 꺼진 본전과는 대조적인 무전의 밝은 빛은 현실 세계로 나가는 이정표인 양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현실감이 점점 강해진다. 과거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다.
야사카 신사의 무전(舞殿)
무전을 지나 몇 개의 말사(末社)가 모여 있는 길을 따라가면 야사카 신사의 서루문이 나온다. 이곳에서 내다보이는 기온 거리의 밝은 가로등과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현대의 교토를 제시한다.
채 4시간이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밤의 산넨자카와 니넨자카에서 교토의 과거를 보았다. 그리고 신의 손에 이끌려 현재로 돌아왔다.
짧은 타임 슬립은 너무나도 큰 여운을 남기고 홀연히 끝나버렸다.

야사카 신사의 서루문(西樓門) 너머로 밝은 기온의 밤거리가 보인다.
글·사진 박소현

15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 17년차 일본 여행 초보자. 27년차 기혼자. 일본어를 읽는 데 지치면 일본어를 말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게 삶의 낙인 고양이 집사. 그저 설렁설렁 일본을 산책하는 게 좋다.
『걸스 인 도쿄』 『도서 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공동 저자.
15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의 설렁설렁 일본 여행 #3
교토타워를 밝히는 조명은 교토의 밤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때마다 각양각색의 조명으로 옷을 갈아입고 까만 하늘을 물들이는 교토타워만 보면 교토의 밤도 다른 대도시처럼 아주 화려할 것만 같다.
그러나 신사와 절 같은 교토의 주요 관광지들은 대부분 해가 조금만 기울어도 마감 준비에 들어간다. 그에 맞춰 관광지 주변 상점들도 하루 영업을 끝낼 채비를 시작한다. 해가 진 다음에도 영업을 한다면 십중팔구 음식점이나 술집이다. 교토역 주변이나 가와라마치역 부근의 번화가가 아닌 다음에야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면 거리 전체가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그 많던 관광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싶을 만큼 순식간에 비워지는 관광지 주변 거리들. 수많은 상점이 셔터를 내려 내부의 불빛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차단한다.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만이 거리를 밝히는, 낮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
고즈넉한 교토의 밤은 신비로운 한적함으로 무장한 채 또 다른 매력으로 관광객을 매료시킨다.
땅거미가 살그머니 내려앉은 교토의 이른 밤. 큰길에서 산넨자카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야사카 탑이 눈에 들어온다. 언덕 위에서 웅장하게 존재감을 뽐내는 커다란 탑은 산넨자카의 터줏대감이다. 그런 야사카 탑이 밤에는 화려한 조명을 받아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어두운 골목 저편에서 홀로 밝게 빛나는 탑은 마치 길잡이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야사카 탑이 저렇게 눈이 부셨던가. 과거로 가는 문이 바로 여기라는 듯 나를 부른다. 셔터를 내린 많은 가게들 너머로 홀로 빛나는 야사카 탑을 향해 홀린 듯 산넨자카를 오른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고개가 꺾어지는 거대한 탑은 낮에 봤을 때와는 다른 건조물인가 싶을 만큼 느낌이 다르다. 탑이 발산하는 빛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불 꺼진 산넨자카
불 꺼진 전통 건물들을 내려다보는 야사카 탑을 지나쳐 조금 더 올라가면 야사카 탑의 뒷모습이 보인다. 하얗게 빛나던 앞부분과는 달리 산넨자카의 노란 가로등 불빛을 받은 야사카 탑 뒷모습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내가 탑을 내려다보게 될 정도로 언덕을 올라가면 왼쪽으로 또 하나의 내려가는 계단 길이 나타난다. 이곳이 니넨자카의 시작점이다. 오늘 저녁 식사는 이 산넨자카와 니넨자카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이츠키차야(五木茶屋)’에서 먹기로 한다.
기요미즈데라 부근에서 저녁밥을 먹으려면 조금 서두르는 것이 좋다. 몇몇 호텔 레스토랑이나 가이세키 요릿집 같은 곳들을 제외하면 6시 이전에 영업을 마치는 곳이 많고, 저녁 영업을 하더라도 7시쯤엔 이미 라스트오더가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다섯 종류의 덮밥과 스키야키를 맛볼 수 있는 이츠키차야에서 창가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아무리 어두워졌다 해도 7시가 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2층 창문으로 내다본 니넨자카 거리는 놀랄 만큼 차분하고 조용했다. 이곳이 낮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만큼 북적이는 골목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내가 있는 곳과 다른 시간 축에 존재하는 것만 같은 밤의 니넨자카가 거기 있었다.
맛있는 밥을 배불리 먹고 나와 바로 옆 니넨자카로 내려간다. 낮엔 관광객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너도나도 사진을 찍는 계단은 텅 비어 있다. 나처럼 밤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관광객이 몇몇 산재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낮과는 인구밀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니넨자카가 이렇게 분위기 있는 길이었나 싶을 만큼 한산하고도 호젓한 돌길과 전통 가옥들이 과거로 타임 슬립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알록달록한 도심과는 다른, 색이 하나만 존재하는 듯 온통 노란 가로등 불빛으로만 물든 좁은 골목길 초입엔 지금이 21세기라는 것을 절감하게 하는 스타벅스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다. 대부분의 카페나 찻집이 6시면 문을 닫는 니넨자카에서 그나마 8시까지 커피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 스타벅스의 간판은 자칫하면 못 알아보고 지나칠 만큼 주변 분위기에 이질감 없이 녹아들어 있다. 스타벅스까지 함께 과거의 니넨자카로 날아간 것 같다. 글로벌 커피 전문점마저 과거로 보내는 교토의 매직.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온다. 간간이 창문 밖으로 내부의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가게가 있지만, 그런 가게들도 대부분 정리 작업 중이다. 영업이 끝난 후 가게 앞에 내놓은 쓰레기봉투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밤의 니넨자카가 워낙 고요하고 환상적이라 그런 사람 냄새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타임머신이 없어도 과거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교토이지만, 밤의 교토는 과거로의 회귀가 더욱 쉽게 일어난다. 발걸음은 저절로 느려지고, 마시고 있는 커피가 나의 시간 축을 뒤틀리지 않게 꽉 잡아준다.
한참을 분위기에 젖어 걷다 보면 눈앞에 웅장한 석조 도리이가 나타난다. 야사카 신사의 남쪽 입구에 서 있는 이시도리이(石鳥居)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기온 거리 쪽의 서루문(西樓門)이 아니라 사실은 이 도리이 뒤편의 남루문(南樓門)이 야사카 신사의 정문이다. 여름의 기온 마쓰리 때에도 이쪽 문으로 가마가 출발한다.
24시간 출입을 허용하는 야사카 신사는 밤이 무색할 만큼 밝은 빛으로 빛나고 있다. 밝은 빛의 주된 발원지는 신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무전(舞殿)이다. 이름 그대로 춤을 추는 무대로, 기온 마쓰리나 결혼식 등 각종 행사와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처마 아래로 매달려 있는 수백 개의 등불이 밤새도록 주변을 밝힌다.
차분하게 가라앉았던 산넨자카와 니넨자카와는 너무나 다른 교토의 밝은 밤. 낮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무전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불 꺼진 본전과는 대조적인 무전의 밝은 빛은 현실 세계로 나가는 이정표인 양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현실감이 점점 강해진다. 과거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다.
무전을 지나 몇 개의 말사(末社)가 모여 있는 길을 따라가면 야사카 신사의 서루문이 나온다. 이곳에서 내다보이는 기온 거리의 밝은 가로등과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현대의 교토를 제시한다.
채 4시간이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밤의 산넨자카와 니넨자카에서 교토의 과거를 보았다. 그리고 신의 손에 이끌려 현재로 돌아왔다.
짧은 타임 슬립은 너무나도 큰 여운을 남기고 홀연히 끝나버렸다.
야사카 신사의 서루문(西樓門) 너머로 밝은 기온의 밤거리가 보인다.
글·사진 박소현
15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 17년차 일본 여행 초보자. 27년차 기혼자. 일본어를 읽는 데 지치면 일본어를 말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게 삶의 낙인 고양이 집사. 그저 설렁설렁 일본을 산책하는 게 좋다.
『걸스 인 도쿄』 『도서 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공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