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학생의 도쿄대 여행][여행] 도쿄대 학생이 되다, 도쿄대 혼고 캠퍼스

도쿄대 유학하며 도쿄대 여행하기 #1



2024년의 이른 봄, 나는 미국 서부 한 달 살기를 앞두고 도쿄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학부는 졸업한 지 몇 년 되었기에, 내가 준비하던 것은 정확히 석사 연구생 과정이었다.


대학 시절, 도쿄와 후쿠오카에서 보냈던 1년간의 교환 유학생 시절이 너무나도 행복했기에 언젠가 일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유학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고, 되도록 일본의 최고 대학인 도쿄대학교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쿄대에는 예체능 학과가 없었다. 대신 학부생 때 조각과 일본학을 전공했고, 소설을 쓰고 책 편집 디자인을 하며, 인형과 장난감, 영화를 좋아하는 나의 관심사를 모두 아우르는 학과가 도쿄대에 있었다. 바로 미학예술학과였다. 


미학과는 국내에서는 현재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석·박사)에만 설치되어 있는 만큼 희귀한(?) 학과인 듯하다. 사실 나도 미학이 대체 어떤 학문인지 지금도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다. 자칫 미술학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미학은 철학 분야에 속하는 학문이며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무용 등 다양한 예술을 망라한다. 


미학을 공부하려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이론부터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지만 철학의 ‘철’ 자가 뭔지도 모르던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


도쿄대에서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당장 준비해 봐. 너라면 충분히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될 이유가 없어.” 


일본 최고의 예술대학인 도쿄예술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절친의 이 한마디가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제출 기한 한 달 반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원서 작성을 시작했다. 자기소개서, 연구 계획서, 연구 경과서 등의 수많은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 왜 진작 시작하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그래도 일정이 빠듯한 만큼 밤잠을 설쳐가며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연구하며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던 이 시기가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공부가 이렇게 짜릿하고 재미있다는 걸 태어나서 처음 느낀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원서를 전부 ‘손 글씨’로 써야 하는 건 꽤나 고역이었다.


도쿄대에서


접수 마감일을 며칠 앞두고, 가장 빠른 국제우편으로 원서를 제출했다. 제출 직전에 서류들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는데, 왜 꼭 보내고 나서야 오타와 실수들이 보이는지…! 이젠 난 모르겠다, 안 돼도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으로 미국으로 넘어갔고, 그렇게 미국에서의 즐겁고 고된 여행을 실컷 즐겼다. 


한창 여행 도중 학교로부터 1차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는 발표 메일이 날아왔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대체 왜?!’였다. 당장 다음 주가 면접과 구술시험. 여행 기간이 남아 있었는데, 다행히 대면이 아닌 ZOOM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면접 날까지 여행도 아니고 면접 준비도 아닌 애매한 시간을 보냈다.


면접 당일, 네 분의 교수님과 4:1로 카메라 앞에 섰다. 이어지는 질문에 줄곧 초긴장 상태로 버벅대며 답변을 이어갔는데, 말도 안 되는, 대답 같지도 않은 대답을 늘어놓고 있는 나 자신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결국 교수님 한 분으로부터 “당신이 대체 어떤 걸 말하고 싶은 건지 마지막까지도 잘 모르겠네요.”라는 말을 듣고 말았다. 게다가 면접 시간은 15분이 주어지는데, 10분도 안 돼서 벌써 끝날 기미였다.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만약 대면이었다면 교수님들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았을 것처럼 처절하게 마지막 발언을 했다.


“저는 오직 도쿄대만 지원했고, 혹시 불합격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계획입니다. 꼭 공부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책상에 이마가 닿도록 머리를 숙였다….


몇 초 후, 침묵 속에서 고개를 다시 들자 교수님들은 얘가 지금 뭘 하나 싶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면접이 끝나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와 인적 드문 LA 거리를 마구 달렸다. 할 말도 제대로 못 한 주제에 교수님들을 당황스럽게 한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고 바보처럼 느껴졌다. 도쿄대는 물 건너갔구나, 기대도 접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떴다.


“합격 여부는 메일로 알려드릴 수 없지만 기숙사 신청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신속히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뭐지, 합격 여부를 알려줄 수 없는데 기숙사 신청은 왜 하라는 거지?’

‘…아, 합격했다는 거구나. 이럴 수가, 대체 내가 어떻게…?’’


도쿄대 합격통지서


며칠 후, 집으로 날아온 합격 통지서를 받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나는 이번엔 기쁘고 신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망원한강공원을 마구 달렸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가 어떻게 뽑혔는지 도통 모르겠다. 차마 교수님들께 여쭤보지도 못하고. 면접 때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한 교수님은 훤칠한 미남이셨는데, 면접관일 때와 달리 매우 젠틀하고 상냥한 분이었다.

   

도쿄로 떠나며 잠시 들른 오사카에서 일본인 절친과


*     *     *


국내에서 2000년대까지 ‘동경대’로 칭했지만, 요즘은 ‘도쿄대’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도쿄대학교(도쿄다이가쿠)를 줄여서 주로 ‘토다이’라고 칭한다. 일본 국립대학을 대표하는 명문대학 중 교토대도 줄여서 ‘교다이’라고 하며, 오사카대는 ‘한다이’, 규슈대는 ‘규다이’라고 부른다. 


도쿄대는 세 군데의 캠퍼스가 있는데, 메인 캠퍼스라고 할 수 있는 혼고 캠퍼스는 분쿄구에 위치하며 우에노, 아키하바라, 도쿄돔과 인접한다. 도쿄 중심지에 있지만 캠퍼스 부지가 꽤 넓은 편이다. 1, 2학년 학부생들이 교양 수업을 듣는 고마바 캠퍼스는 시부야와 접하며, 혼고 캠퍼스보다는 부지가 좁아도 결코 작은 캠퍼스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지바현에 위치한 가시와 캠퍼스는 이공계 위주의 학과가 설치된 캠퍼스라고 한다. 내가 주로 다니는 캠퍼스는 혼고 캠퍼스로, 도쿄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관광 코스이기도 하다. 


일본은 한국보다 개강과 종강이 한 달씩 느리기에 2학기 개강일은 10월 1일이었다. 10월 1일은 기숙사 입주 날이었기에 입주 수속하고, 짐 정리하고, 생필품 쇼핑도 하고, 못 잔 잠도 푹 잤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고서 설레는 마음으로 첫 등교를 했다. 


정문까지 안 가도 가까운 후문이 두 군데는 있었지만, 첫 등교일인 만큼 정문으로 들어가 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빠의 출장 겸 가족여행으로 일본에 처음 왔었다. 그때 도쿄 시티 투어 버스를 타며 도쿄의 명소 여기저기를 다녔는데, 도쿄대에도 들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당시에도 ‘학교 분위기가 운치 있네, 그런데 건물들이 되게 오래됐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캠퍼스는 운치 있고 메인 건물 군데군데에서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도쿄대는 2027년에 개교 150주년을 맞이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도쿄대의 상징 '아카몬'과 정문


:: 아카몬

도쿄대학교와 인접한 역은 오오에도선 ‘혼고산초메’역과 난보쿠선 ‘도다이마에’역이다. 나는 미타카시에 있는 기숙사에서 JR 선으로 통학하고 있는데, 일본은 환승제도가 없으니 교통비도 아끼고 운동도 할 겸 ‘오차노미즈역’에서 내려 1.4km 정도를 걸어서 학교에 도착한다. 


역에서 더 가까운 후문 두 군데를 지나면 도쿄대의 상징인 ‘아카몬(붉은 문)’이 보인다. 정문보다 더 유명한 문이 바로 이곳인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으로 학생들이 드나들었지만 현재는 지반 검사 겸 보존을 위해 폐쇄한 상태라고 한다. 초록빛이 무성한 도쿄대 캠퍼스에서 이 문이 유일하게 쨍한 붉은 색을 띠고 있는 만큼, 아카몬은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에도시대 때 지어진 아카몬은 당시 무사의 가문으로 들어가는 문이었고, 현재는 일본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 지금까지도 그 모습을 지키는, 유서 깊은 문화재라고도 할 수 있다. TV나 유튜브 방송에서 도쿄대 학생들을 인터뷰할 때 주로 이 아카몬을 배경으로 진행하는 장면을 곧잘 볼 수 있다. 


폐쇄된 아카몬 앞에는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카몬은 언제 다시 개방될까. 재개방 예정이 있기는 할까. 학교 다니는 동안 이 문을 지날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도쿄대의 상징 ‘아카몬’


:: 정문

도쿄대의 정문은 아카몬과는 다르게 철창과 (아마도)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아카몬에 비해서는 두드러지는 느낌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위엄 있으면서도 클래식한 디자인이다. 나는 주로 후문으로 다니기 때문에 정문으로 등교하는 일은 잘 없지만, 아무래도 정문으로 들어갈 때는 도쿄대에 입성(?)한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도쿄대 정문


은행나무길과 야스다 강당


:: 은행나무길

정문으로 들어서면 잎이 무성한 은행나무들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길이 쭉 뻗어 있다. 도쿄대의 마크가 노란색과 파란색의 은행나무잎이 겹쳐 있는 형상인 만큼 이 은행나무는 도쿄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에는 이 나무들이 아름다운 초록의 향연을 보여주다가 가을을 맞이해 리즈 시절을 맞는다. 샛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캠퍼스에 운치를 더해주고, 학생들보다는 오히려 관광객들이 더 많이 모여들어 이 풍경을 만끽한다. 


도쿄대 마크


이렇게 가을이 되면 은행이 풍기는 악취도 리즈 시절(?)을 맞는다. 도쿄대의 어느 학생은 ‘내가 만약 언젠가 높은 사람이 된다면 도쿄대의 이 은행나무부터 어떻게 좀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게, 나무는 참 예쁜데 그 냄새는 참…. 언젠가 나도 도쿄대를 떠나 학교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은행의 그 강한 향기도 함께 기억할 것 같다. 


도쿄대 혼고 캠퍼스의 은행나무길


:: 야스다 강당

은행나무 사이로 뻗은 길을 따라 걸어가면 도쿄대의 또 다른 상징인 ‘야스다 강당’이 캠퍼스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채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 강당은 항상 경비원이 입구를 지키고 있으며, 특별한 입장 허가가 있지 않는 한 평상시에는 학생도 들어갈 수 없다. 학생들이 야스다 강당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은 아마 입학식과 졸업식 날 정도가 아닐까 싶다. 


외벽 대부분이 붉은 벽돌로 축조된 강당 건물에 비해 입구 부분은 까맣게 때가 탄 듯 유독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이것은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학생운동 당시 일어난 화재의 흔적이며, 당시의 사건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그대로 보존해 두었다고 한다.¹ 


야스다 강당


도쿄대는 2024년 올해 학비 인상을 발표했다. 20년 만에, 20%를 인상하겠다고 했다. 학교 측에서는 물가와 인건비 급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인상은 학부생 대상으로, 석·박사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일부 학생들이 반발의 의미로 야스다 강당 앞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10월까지 캠퍼스 곳곳에는 학생들이 제작한 피켓이 세워져 있었고, 그 위로는 일정 날짜까지 해당 기물을 철거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임의로 철거하겠다는 붉은 글자의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이러한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학비 인상에 대한 입장을 고수했다. 대안으로 학비 감면 대상 범위를 확대하겠다고는 하지만, 대다수 학생은 대폭 인상된 학비를 부담해야 한다. 


무언가가 크게 변동되는 과정에는 갈등이 불가피하다지만, 반세기 이전에 있었던 분쟁의 흔적 바로 앞에 자리한 텐트를 보고 있으니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도쿄대는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고마운 학교다. 도쿄대에 들어와 보니,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도쿄대 사람이라는 게 새삼 신기할 때가 많다. 물론, 나를 제외한 모두가 명석하고, 두뇌 회전이 빠르고, 당연하다는 듯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이런 똑똑한 사람들 속에서 매번 자괴감을 느끼지만, 이 자괴감이 나에게는 아주 좋은 자극제가 될 게 분명하다. 




1. 야스다 강당 사건 : https://ko.wikipedia.org/wiki/%EC%95%BC%EC%8A%A4%EB%8B%A4_%EA%B0%95%EB%8B%B9_%EC%82%AC%EA%B1%B4




글·사진 | 이스안

키덜트 매거진 《토이크라우드》  편집장. 대학에서 조각과 일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일본에서 미학을 공부중이다. 여행, 호러 장르, 키덜트 문화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호러소설집 <기요틴> <카데바> <신체 조각 미술관>, 여행서 <도쿄 모노로그> <한국 인형박물관 답사기> 등이 있다.
https://www.instagram.com/sumomo.s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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