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지구를 돌아보는 여행][여행] 취향으로 채우는 여행, 교토 아라시야마

2023-02-03

나와 지구를 되돌아보는 여행, 교토 #1



3년간 미루어둔 설렘

간사이공항에 내리자 일본 열도의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여행객들의 표정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 도착한 낯섦, 완전히 이방인이 된 기분. 3년간 그리워했던 감정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을 안은 채, 기차를 타고 교토로 향했다.

 

dd2d71483e1a1.jpg교토로 가는 기차역에서


저녁 비행이라 저녁 식사는 늦어지고 숙소까지 가는 길도 헤맸지만, 그것마저 즐거웠다. 교토타워를 지나 저녁 9시 무렵 숙소에 도착해 짐을 던져두고 근처를 배회했다. 동네에 있는 한 작은 이자카야가 눈에 들어왔다. 외국인 손님이 낯선지 당황하면서도 가게 주인이며 손님들까지 한껏 반겨주는, 〈심야식당〉 같은 분위기였다. 간단한 안주에 생맥주를 마시고, 소박한 동네 이자카야 분위기를 즐기며 3년간 미루어뒀던 설렘을 만끽했다.

 

5ed4943c6fc24.jpg한밤의 교토타워



취향을 찾아, 아라시야마

다음 날, 귀족들의 별장이 있었다는 교토의 서쪽 ‘아라시야마’를 찾았다. 역에 내리자 교토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말이라 그런지 여행객과 현지인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인파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삼각김밥으로 늦은 아침을 해결했다. 아라시야마는 대나무숲, 원숭이 공원 등이 유명하다. 하지만 내가 아라시야마를 찾은 건 중고 책방과 후쿠다 미술관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마주할지 궁금했다.

 

74b69cea26e0e.jpg교토의 헌책방 London Books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London books'라고 적힌 책방이 보였다. 히라가나를 겨우 읽는 정도의 일본어 실력이지만, 여행지에서 책방을 찾지 않을 수는 없다. 바깥 좌판에는 잡지가 놓여 있고, 안으로 들어서자 책들이 분야별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중고 책이 가득해서인지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느꼈던 중고 책방의 분위기와 냄새가 느껴졌다.

 

책의 상태도 중고 책이라 몰라볼 만큼 깨끗했고,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규격의 책들도 눈에 띄었다. 한 손에 쥐어질 크기의 책, 가로나 세로가 긴 책 등 저마다 개성이 있었다. 책 종류도 다양해 만화책이나 동화책을 보기 위해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책방에 오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책방 곳곳을 둘러본 후, 책방을 기억하고자 작은 그림과 엽서를 500엔에 구입하고 책방을 나섰다.

 

dd4c8c0712dd8.jpg5de5997ccdc95.jpgd277d9a742a5c.jpg



후쿠다 미술관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파를 피해 뒷골목에 핀 꽃과 산의 풍경을 즐기며 후쿠다 미술관을 향해 걸었다. 이곳은 2019년 10월에 개관한 곳으로 교토 아라시야마의 명물인 도케츠 다리와도 멀지 않다. 100년 동안 지속되는 미술관이 목표라고 할 만큼 포부가 남다른 곳이다. 요시다 코이치라는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미술관 자체도 볼거리였다.

 

666c69ff8428c.jpg후쿠다 미술관


미술관에는 에도 시대 화가 세 사람이 주고받은 그림과 글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림이 많지는 않았지만 세 사람의 각기 다른 화풍을 즐길 수 있었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재료는 무엇이었을까. 상상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미술관 벽을 둘러싼 격자무늬 사이로 펼쳐진 아라시야마 산과 12월의 단풍을 보는 것도 미술관을 찾은 즐거움을 더했다.

 

dbbe027957c27.jpg


미술관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특히 전시를 함께 보며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는 어느 아빠와 딸이 눈에 띄었다. 아빠와 미술관에 가는 것을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나에겐 생소한 풍경이었다.

 

88a8df74abf1c.jpg



텐류지

점심을 먹고 산책하다 보니 계획에 없던 텐류지가 보였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곳으로 1339년에 세워졌다. 본당은 여덟 차례의 화재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해 왔지만, 700년 동안 가꾼 소겐치 정원은 그대로라고 한다. 내게는 고찰의 모습도 웅장했지만 이 정원이 더 인상 깊었다. 억겁의 계절을 거친 식물들이 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41b880060845e.jpg텐류지의 정원에서


정원 한가운데 앉아 있기도 하고, 익숙한 단풍과 고사리, 막 피기 시작하는 목련을 보며 한동안 푹 빠져있기도 했다. 걷다 보니 인적이 드문 곳에 정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그들의 수고 덕분에 지금 이렇게 유서 깊은 정원을 볼 수 있는 거겠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ba697f99bc74f.jpg2bedd7598e823.jpg

 

이후에도 아기자기한 아라시야마의 골목을 산책한 후 교토 시내로 돌아왔다.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곳을 다니는 기쁨을 만끽하니 까맣게 잊고 있던 여행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 익숙해진 일상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던 감정을 불쑥불쑥 꺼내볼 수 있던 하루였다.


이처럼 나에게 여행이란, 타지에서 다른 이의 삶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내가 떠나는 여행지는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인 동시에 내 삶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곳, 무엇보다 현지인들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소비할 때는 SNS에서 반짝이는 것이 아닌 내게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려는 것. 나답게 나의 취향으로 가득 채우는, 이번 여행도 그렇게 이어지기를.




글/사진 황주(chantrea)

8e4f03518f450.png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집을 이고 다니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제주에 삽니다.
http://blog.naver.com/rashimi87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