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벚꽃 피는 계절에 도쿄 #2

2023-04-17

제이 in there #8


벚꽃 피는 계절에 도쿄 #1 읽기


죽음이 이런 곳에 묻히는 거라면

센다가야 근처에서 저녁을 챙겨 먹고 호텔까지 걸었다. 아오야마 영원을 가로지르는 길이었다다. 지도에 초록색으로 칠해진 곳이라 그저 공원이겠거니 했는데 초입부터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싶더니 길 양 옆으로 비석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아오야마 영원’이란 이름을 그제야 눌러 보니 도립 공원묘지라는 설명이 보인다.


3e86a4faac5e6.jpg아오야마 영원에서


그런데 이 길, 자세히 들여다봐야 비석이 있다는 걸 알 정도로 길가에 벚꽃이 만발해 있고 조명도 아주 밝다. 이따금씩 택시나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지나고, 운동복 차림으로 러닝 하는 사람들도 있다. 택시나 자전거가 속도감 있게 지나면 바람에 벚꽃 잎이 우수수 흩날렸다. 도립 공원묘지란 설명 옆에 벚꽃길이 유명하다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게 이제야 보인다. 설명을 미리 읽었다면 굳이 택하지 않았을 길.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지는 벚꽃 잎들을 눈에, 동영상에 담았다. 저 멀리 불 켜진 도쿄타워 첨탑이 비쭉 보였다. 삶과 죽음은 멀지 않다. 적어도 죽음이 이런 거리감이면 그리 두려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죽음이 묻힌 곳이 벚꽃이 화려하게 핀 봄의 아오야마 영원 같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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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영원에서


작은 해프닝

기요스미 시라카와는 도쿄 블루보틀 1호점이 생긴 이래 일명 '카페 투어' 즐기기에 좋은 동네로 변모했다. 도쿄 공식 관광 안내 사이트에선 이곳을 '커피 붐의 진원지'라고 소개하고 있을 정도. 전통적인 일본정원인 기요스미 정원과 도쿄도 현대미술관이 공존하는 동네.


넓게 퍼진 길에 가봄직한 카페들이 듬성듬성 분포해 있어 고민이 되었다. 어딜 갈까. 그나마 관광객들보단 현지인들이 좀 더 많은 IKI 에스프레소에 들러 입장 대기를 했는데,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주문을 마치니 현금 결제만 가능하단다. 동전을 만들기 싫어 현금을 이미 다 소진해 버렸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카페 대기 줄을 보고 "오늘도 무리일까?" 하던 주민 두 명이 1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운이 좋다"며 함박웃음을 짓고 주차를 하러 갔다. 그 반응에 아쉬움이 더 커졌다. 블루보틀 1호점은 일전에 가 본 적이 있어 런던에서 자주 찾았던 allpress로 옮겨 뜨거운 태양을 등지고 앉아 아이스 라테 한 잔을 마셨다. 이번엔 카드 계산이 되는지 주문 전에 미리 확인했다.


저녁 일정이 대부분 도쿄역 근처라 기요스미 시라카와에서 긴자까지 걸었다. 오는 동안 스카이 트리도 보았고, 정장 차림의 중년 신사가 벚꽃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았다. 골목을 막고 공사를 하는 인부는 지나가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바랐고, 브레이크 타임인 식당 안에서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잠을 청하는 사람의 등을 보았다.


65067731618e8.jpg저 멀리 스카이트리



나는 도쿄를 걸었다

마지막 날 아침. 비가 내린 흔적이 남은 축축한 거리를 지나 도착한 Bricolage bread & Co. 도쿄에 도착한 첫날, 츠타야 롯폰기 점을 찾아갈 때 이 앞을 지났던 적이 있었다. 끝이 굽은 도로까지 뻗은 벚꽃이 만발한 것이 예뻐 사진을 찍느라 한참을 서 있던 곳이다. 주말답게 안팎으로 사람이 가득해 그대로 지나쳤었는데, 이 시간에 나와야 그나마 한갓지다 싶다. 벚꽃을 향해 난 야외 좌석이 꽤 비어 있다. 적정한 때 왔다. 앤티크 한 접시에 담긴 에그 베네딕트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이따금씩 벚꽃 비가 떨어지고, 새가 울고, 산책하는 강아지가 짖고, 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들리는 길을 마주하며 먹는 아침. 여기서 일정을 마무리하려고 롯폰기에 묵었나 싶었을 정도다.


작가이자 비평가인 로런 엘킨은 자신의 저서 『도시를 걷는 여자들』에서 “도쿄는 걸을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너무 크다”라고 단언했다. 


동네에서만 돌아다니려고 해도 모든 게 너무 크다. 우리는 주도로 두 개가 Y자 모양으로 교차하는 지역에 살았는데(Y는 엔화, 돈, 부를 상징한다.) 도로 하나는 시부야로 이어지고 다른 하나는 황궁으로 가는 도로다. 내가 탐험해보고 싶은 곳들, 그러니까 신주쿠, 하라주쿠, 나카메구로, 오모테산도, 아사쿠사 등은 우리가 사는 곳에서 저 멀리에 있는 데다가 이곳들도 서로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걸어갈 수 없는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 『도시를 걷는 여자들』 중에서


은행 주재원인 남자친구를 따라 도쿄에 온 로런 앨킨이 살던 곳은 바로 롯폰기다. 롯폰기에서 오모테산도나 긴자까지, 시부야에서 나카메구로까지 모두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다. 내가 직접 걸어 다녀봤으니까 안다. 본인이 선택해서 오지 않은 도쿄란 도시에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 그녀는 걸어보지 않고 막연히 걸을 수 없을 거라 생각만 했을 것이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에서 묘사한 파리, 런던 등에 비해 유독 도쿄를 차갑게 서술한 건 역시 이 도시를 그녀가 걷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결코 걸을 수 없다고 단언했던 거리를 나는 걸었다. 요요기공원에서 하라주쿠, 오모테산도를. 나카메구로, 다이칸야마, 시부야를. 키타산도, 아오야마, 롯폰기를. 기요스미에서 니혼바시, 긴자를. 


f21a15c9e39dc.jpg내가 걸은 도쿄



파랑새처럼 시작에서 찾은 봄

도쿄에서 홍콩으로 넘어가 며칠의 여행을 더 했다. 약 열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새벽 비행기를 타 이른 오후에 집에 도착했다. 오후의 노란빛이 거실을 가로질러 떨어져 있는 시간. 캐리어를 놓아두고 일단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창밖의 나무 한 그루에 하얀 벚꽃이 피어 있었다. 저게 벚나무였었나.


한참을 찾고, 돌아다니고, 넘어지고, 부딪히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나서야 눈앞의 파랑새를 발견할 수 있었던 치르치르와 미츠르의 심정처럼. 미드타운과 요요기 공원, 이노카시라 공원과 우에노 공원을 헤매고 돌아와 눈앞의 벚꽃을 발견한다. 헤매고 돌아왔기 때문에 발견했다.


봄. 역시 나는 이 한 음절만으로 당장에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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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백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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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며 덕질하는 게 유일한 취미인 3n살 덕후. 종종 여행하고, 가끔 글을 씁니다. 『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을 쓰고,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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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는 이곳, https://brunch.co.kr/@cantabil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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