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지구를 되돌아보는 여행, 교토 #3
교토의 시모고료 신사
교토의 넷째 날 아침이 밝았다. 텀블러를 챙겨왔지만 생수를 받을 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여행 첫날은 페트병에 든 생수를 마시고, 다음 날부터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생기는 것이 불편해 수돗물을 끓여 마셨다. 마침 친구가 약수를 받을 수 있는 신사를 알려주어 찾아가 보기로 했다.
시모고료 신사 약수
신사는 골목 어귀에 있었다. 일반 가정집인 줄 알고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가 보니 시내 한복판에 있는 작은 ‘시모고료 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담한 정원을 따라 들어가자 이미 동네 사람들이 약수를 받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여행객은 나 혼자였다. 어색해하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한 할머니가 먼저 약수를 받으라며 선의를 베풀었다. 고마움에 가볍게 묵례를 건네고 텀블러 한가득 약수를 받아 길을 나섰다.
시모고료 신사와 그 정원
오백 년 된 소바집 ‘혼케 오와리야’
이른 점심을 위해 오백 년 전통의 소바집 ‘혼케 오와리야’를 찾았다. 층층이 쌓은 호라이 소바가 대표 메뉴라는데, 오백 년이라는 전통을 이어온 소바의 맛이 궁금했다. 면은 우리나라에서 먹던 것보다 찰기가 덜했고, 츠유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춰져 있어서인지 짜게 느껴졌다. 마지막에 입가심을 하라고 소바 삶은 물을 내어주었는데, 숭늉같이 구수해 한겨울에 언 몸을 녹일 수 있었다.

혼케 오와리야
점심을 먹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가까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몇 정거장이 지났을까. 은행나무 길이 보여 지체 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은행나무가 늘어선 대로변에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회사원들이 보였다. 분주한 대로변을 뒤로하고 발길 닿는 대로 골목길을 걸었다. 방금 만났던 회사원들의 안식처가 되어줄 집, 소박한 정원,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 유유히 흐르는 개천. 한동안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을 걸으며 여행의 자유로움을 누렸다.

교토 골목 산책
교토 전통식 책 제본 워크숍
오후에는 교토 전통식 책 제본 워크숍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손으로 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 망설였다. 하지만 여행을 계속할수록 어디서도 해볼 수 없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날 예약하고 참여하게 되었다.
3층 건물 문을 열고 들어서자 워크숍을 진행하는 장인 츠토무 씨와 딸인 요코 씨가 환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인사를 나누고, 워크숍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종이를 자르는 기계와 천, 수백 개의 목활자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평소에는 보지 못할 오래된 물건 사이에 있으니 마치 다른 시대로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었다.
공간을 느끼는 와중에, 요코 씨가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워크숍을 소개했다. 츠토무 씨는 60년 동안 교토 전통식으로 책 제본을 해오고 있고, 현재 이 일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은 츠토무 씨가 유일하다고 했다. 사라져가는 전통을 알리기 위해 워크숍을 열고 강단에 서고 있었다. 또, 이 지역에는 게이샤들이 공연하는 곳이 아직 남아 있는데, 게이샤들이 더 이상 입지 않는 오래된 기모노 천을 책 표지로 만들고 있다고도 했다. 워크숍을 여는 이유와 과정을 자세히 듣는 것도 즐거웠다.
기모노 원단
설명이 끝나고 바로 기모노 천을 표지로 삼은 노트 한 권을 만들었다. 마음에 드는 기모노 천과 실을 고르고 종이에 실이 들어갈 구멍을 뚫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츠토무 씨가 먼저 시범을 보이며 내가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 주었다. 모든 것에 호기심이 가득한 나는 잔뜩 들뜬 마음을 누르면서 차분히 작업을 따라갔다. 총 두 시간이 걸리는 워크숍은 노트를 실로 엮는 작업, 풀을 바르는 작업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이라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책의 형태가 틀어질 수 있었다. 긴장한 탓에 나도 모르게 알지도 못하는 츠토무 씨의 일본어를 따라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미소로 대해주는 츠토무 씨와 요코 씨 덕에 무사히 노트 한 권을 완성했다.
장인 츠토무 씨와 함께한 책 제본
워크숍을 하는 동안 제주에서 손으로 책을 제본한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3개월 동안 글을 쓰고, 그 글을 모아 오직 손으로만 책을 제본했다. 종이를 반듯하게 자르고 풀을 붙여 완성한 책은 엉성했지만, 늘 내 책장에 꽂혀 있을 정도로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노트를 만들고, 다과와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일본과 한국의 책 형태, 책을 만드는 과정의 변화, 내가 출판한 책 이야기 등.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서로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니 시간 지나는 줄도 몰랐다. 감사 인사를 건네고 요코 씨의 배웅을 받으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완성본
어느새 날이 저물어 있었다.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아 사케 바에 들렀다. 잠시 다른 세계에 있다가 현실로 돌아온 듯했다. 많은 이가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날 때 전통을 지키기 위해 애써온 츠토무 씨가 존경스러웠다. 만약 이를 이어오는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 같은 워크숍을 경험하지도 못했겠지. 한동안 오늘 나눈 대화를 곱씹었다. 오래된 유산을 지켜오는 이의 마음, 유산을 마음껏 즐긴 나. 시간이 지나도 츠토무 씨와 내 손때가 묻어 있는 노트를 보며 오늘이 떠오르지 않을까. 한껏 벅찬 마음으로 사케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글/사진 황주(chantrea)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집을 이고 다니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제주에 삽니다.
http://blog.naver.com/rashimi87
나와 지구를 되돌아보는 여행, 교토 #3
교토의 시모고료 신사
교토의 넷째 날 아침이 밝았다. 텀블러를 챙겨왔지만 생수를 받을 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여행 첫날은 페트병에 든 생수를 마시고, 다음 날부터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생기는 것이 불편해 수돗물을 끓여 마셨다. 마침 친구가 약수를 받을 수 있는 신사를 알려주어 찾아가 보기로 했다.
신사는 골목 어귀에 있었다. 일반 가정집인 줄 알고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가 보니 시내 한복판에 있는 작은 ‘시모고료 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담한 정원을 따라 들어가자 이미 동네 사람들이 약수를 받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여행객은 나 혼자였다. 어색해하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한 할머니가 먼저 약수를 받으라며 선의를 베풀었다. 고마움에 가볍게 묵례를 건네고 텀블러 한가득 약수를 받아 길을 나섰다.
오백 년 된 소바집 ‘혼케 오와리야’
이른 점심을 위해 오백 년 전통의 소바집 ‘혼케 오와리야’를 찾았다. 층층이 쌓은 호라이 소바가 대표 메뉴라는데, 오백 년이라는 전통을 이어온 소바의 맛이 궁금했다. 면은 우리나라에서 먹던 것보다 찰기가 덜했고, 츠유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춰져 있어서인지 짜게 느껴졌다. 마지막에 입가심을 하라고 소바 삶은 물을 내어주었는데, 숭늉같이 구수해 한겨울에 언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가까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몇 정거장이 지났을까. 은행나무 길이 보여 지체 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은행나무가 늘어선 대로변에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회사원들이 보였다. 분주한 대로변을 뒤로하고 발길 닿는 대로 골목길을 걸었다. 방금 만났던 회사원들의 안식처가 되어줄 집, 소박한 정원,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 유유히 흐르는 개천. 한동안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을 걸으며 여행의 자유로움을 누렸다.
교토 전통식 책 제본 워크숍
오후에는 교토 전통식 책 제본 워크숍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손으로 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 망설였다. 하지만 여행을 계속할수록 어디서도 해볼 수 없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날 예약하고 참여하게 되었다.
3층 건물 문을 열고 들어서자 워크숍을 진행하는 장인 츠토무 씨와 딸인 요코 씨가 환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인사를 나누고, 워크숍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종이를 자르는 기계와 천, 수백 개의 목활자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평소에는 보지 못할 오래된 물건 사이에 있으니 마치 다른 시대로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었다.
공간을 느끼는 와중에, 요코 씨가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워크숍을 소개했다. 츠토무 씨는 60년 동안 교토 전통식으로 책 제본을 해오고 있고, 현재 이 일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은 츠토무 씨가 유일하다고 했다. 사라져가는 전통을 알리기 위해 워크숍을 열고 강단에 서고 있었다. 또, 이 지역에는 게이샤들이 공연하는 곳이 아직 남아 있는데, 게이샤들이 더 이상 입지 않는 오래된 기모노 천을 책 표지로 만들고 있다고도 했다. 워크숍을 여는 이유와 과정을 자세히 듣는 것도 즐거웠다.
설명이 끝나고 바로 기모노 천을 표지로 삼은 노트 한 권을 만들었다. 마음에 드는 기모노 천과 실을 고르고 종이에 실이 들어갈 구멍을 뚫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츠토무 씨가 먼저 시범을 보이며 내가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 주었다. 모든 것에 호기심이 가득한 나는 잔뜩 들뜬 마음을 누르면서 차분히 작업을 따라갔다. 총 두 시간이 걸리는 워크숍은 노트를 실로 엮는 작업, 풀을 바르는 작업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이라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책의 형태가 틀어질 수 있었다. 긴장한 탓에 나도 모르게 알지도 못하는 츠토무 씨의 일본어를 따라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미소로 대해주는 츠토무 씨와 요코 씨 덕에 무사히 노트 한 권을 완성했다.
워크숍을 하는 동안 제주에서 손으로 책을 제본한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3개월 동안 글을 쓰고, 그 글을 모아 오직 손으로만 책을 제본했다. 종이를 반듯하게 자르고 풀을 붙여 완성한 책은 엉성했지만, 늘 내 책장에 꽂혀 있을 정도로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노트를 만들고, 다과와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일본과 한국의 책 형태, 책을 만드는 과정의 변화, 내가 출판한 책 이야기 등.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서로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니 시간 지나는 줄도 몰랐다. 감사 인사를 건네고 요코 씨의 배웅을 받으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완성본
어느새 날이 저물어 있었다.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아 사케 바에 들렀다. 잠시 다른 세계에 있다가 현실로 돌아온 듯했다. 많은 이가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날 때 전통을 지키기 위해 애써온 츠토무 씨가 존경스러웠다. 만약 이를 이어오는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 같은 워크숍을 경험하지도 못했겠지. 한동안 오늘 나눈 대화를 곱씹었다. 오래된 유산을 지켜오는 이의 마음, 유산을 마음껏 즐긴 나. 시간이 지나도 츠토무 씨와 내 손때가 묻어 있는 노트를 보며 오늘이 떠오르지 않을까. 한껏 벅찬 마음으로 사케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글/사진 황주(chantrea)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집을 이고 다니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제주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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