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한 번 더 싱가포르로
아무 감흥 없는 노잼 도시, 싱가포르는 내게 그런 나라였다. 자발적으로 절대 갈 리 없을 거라 생각한 싱가포르에 가게 된 건 크루즈 때문이었다. 당시에 난 아시아부터 유럽까지 크루즈 세계 일주를 하고 있었고, 아시아 크루즈의 허브 도시인 싱가포르를 거쳐야만 했다. 다음 여정까지의 시간이 붕 떠서 울며 겨자 먹기로 2주간 머문 싱가포르. 따분할 거라 생각한 그 시간은 생각 외로 굉장히 좋아서 싱가포르는 언제라도 다시금 떠나고 싶은 곳이 되었다.
엄마와의 크루즈 여행을 계획하면서 어디로 갈까,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엄마의 스케줄을 고려해 크루즈 일정이 너무 길지 않을 것, 크루즈 출도착지가 너무 멀지 않을 것, 생활비가 비싸지 않을 것, 도시 자체도 흥미로울 것, 이 모든 것을 따져보니 싱가포르 크루즈만 한 게 없었다. 그래서 떠났다. 싱가포르로.

싱가포르의 상징과도 같은 마리나베이샌즈
서울에서 6시간 반 거리의 싱가포르는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매력적인 곳이다. 크지 않은 도시 안에 차이나타운, 리틀 인디아, 아랍 스트리트가 오밀조밀 모여 있고 각 문화권이 모시는 신을 위한 각기 다른 양식의 화려한 신전이 도시 곳곳을 장식한다. 길을 걷다 보면 다른 얼굴의 사람들의 입에서 다양한 언어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싱가포르에서 다양한 문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호커 센터’이다. 행상이라는 뜻의 ‘호커’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판매하던 좌판을 칭한다. 하지만 위생 문제가 불거져 정부 차원의 관리가 이뤄졌고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판매하는 노점이 모인 복합시설인 ‘호커 센터’로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방문한 호커 센터는 차이나타운에 있는 맥스웰 호커 센터였다. 빼곡하게 들어선 작은 가판에는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아랍, 서구, 한국, 태국 등 전 세계 음식이 즐비했다.
무엇을 골라야 할지 오랜 고민 끝에 가장 줄이 긴 하이난식 치킨라이스와 사천식 소스의 만두, 말레이시아식 볶음국수를 하나씩 시켰다. 호커 센터는 현지인도 애용하기에 줄이 적당히 긴 곳을 찾아 음식을 사 먹으면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뉴튼 호커 센터에서는 싱가포르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인 칠리크랩을 먹었는데 식당에서 먹는 것의 반값이다. 싱가포르 도시 전역에 있는 호커 센터를 찾아다니는 건 싱가포르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싱가포르 호커 센터에서
무수히 많은 여행지를 다니며 작정하고 야경을 본 적이 별로 없는데 싱가포르에서는 유독 야경을 찾게 된다. 크루즈 일정으로 싱가포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기에 딱 한 곳의 야경 명소만 갈 수 있었다. 싱가포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식물원의 슈퍼트리 쇼는 어떨까. 영화 〈아바타〉 속의 나무를 실제 세계에 구현한 듯한 슈퍼트리는 그냥 보아도 아름답지만, 화려한 불빛과 경쾌한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슈퍼트리 쇼를 고른 건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혼자 여행할 때 레스토랑 겸 바인 레벨33에서 야경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머라이언 동상과 마리나베이 센터를 알록달록한 불빛으로 수놓는 스펙트럼 쇼도 봤지만 이만큼 전율이 일지는 않았다. 엄마는 슈퍼트리 쇼를 싱가포르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으로 손꼽았다.

슈퍼트리
본격적인 싱가포르 크루즈 여행
싱가포르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는 보통 페낭과 푸켓을 도는 3박 4일 혹은 4박 5일 코스가 일반적이다. 일정 자체가 짧고 기항지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탓에 배 위에서 여유를 만끽할 수는 없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처음 크루즈를 타는 사람에게는 괜찮은 일정이다. 우리가 탄 로얄 캐리비안 스펙트럼호은 2019년 4월에 첫 운항을 시작한 최신 배로 규모가 크고 액티비티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투명한 다리를 통해 배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신세계이다.
우리가 탑승한 로얄 캐리비안 스펙트럼호
싱가포르에서 출발하는 크루즈 안에는 보통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시설이 가득하다. 바다를 보며 암벽등반을 할 수 있는 클라이밍 시설, 동그란 원통에서 무중력을 경험할 수 있는 스카이다이빙, 서핑보드에 누워 물살을 가로지르는 인공 파도타기, 상공 91.5m까지 올라가 바다를 한눈에 조망하고 일몰을 볼 수 있는 관람차 북극성, 동심의 세계로 소환시켜 주는 범퍼카까지.

놀 거리가 많은 크루즈 시설
어디 그뿐일까? 실내외 수영장과 월풀 욕조, 화려하게 펼쳐지는 각종 공연에 코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저녁 식사 등 세끼 식사가 기본 제공된다. 엄마와 나는 크루즈에 올라타 눈이 휘둥그레지는 각종 시설을 둘러본 뒤 월풀 욕조에서 몸을 데우며 해가 아스라이 사라지는 걸 함께 바라보고 코스 요리를 즐겼다.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눈을 뜨면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주로 배낭여행을 해온 내게 장시간의 버스 이동은 여행의 당연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크루즈 여행에서는 버스나 기차에 몸을 구겨 넣고 다음 여행지를 위한 인내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배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난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공연을 보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나면 새로운 곳에 도착한다. 이동의 피곤함은 덜고 짧은 시간 최대한 많은 곳을 여행하기에 크루즈 여행만 한 건 없다. 이번에 우리가 기항하는 도시는 말레이시아의 페낭과 태국의 푸켓이었다. 말레이시아 페낭에서는 조지 타운에서 벽화를 찾아보고 중국 이주민들이 살았던 수상가옥 집성촌 중 하나인 츄제티를 방문하고 야시장까지 둘러보았다.
푸켓에서는 따로 관광 프로그램 상품을 예약해 라차섬을 다녀왔다. 바다는 에메랄드 보석처럼 투명하고 반짝였으며 파란 하늘이 바다의 색을 더 투명하고 쨍하게 만들었다. 섬 근처에서는 수영을 하고 요트 근처에서는 스노쿨링을 즐겼다. 내가 원하는 곳만 골라 갈 수 없다는 게 크루즈의 단점이겠지만, 나의 의지로는 갈 리 없는 새로운 지역을 선물처럼 여행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가만히 일광욕 하기’, ‘선 베드에 누워 책 읽기’, ‘매일 다른 바다의 색을 관찰하기’, ‘뜨는 해와 지는 석양을 넋 놓고 바라보기’ 내가 크루즈 여행을 하는 중 가장 좋아했던 순간들이다. 크루즈 마지막 날에는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엄마와 함께 꼭 경험하고 싶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발코니룸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선 베드에 누워 함께 책을 읽었다. 요 몇 년간 책을 읽은 적이 없다고 말한 엄마는 몇 시간이나 집중하며 책을 읽었다. 드레스로 차려입고 정찬 식사를 하고 칵테일도 한 잔 했다. “어때? 좋아?” 자꾸만 묻는 딸에게 엄마는 귀찮다는 듯 “어어 당연히 좋지” 은근슬쩍 넘겼지만 행복한 얼굴은 숨길 수 없었다. 크루즈의 여유와 낭만을 즐기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와의 첫 크루즈 여행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글/사진 젠젠
『어쩌다, 크루즈』『카페, 라다크』를 썼습니다.
엄마와 함께 한 번 더 싱가포르로
아무 감흥 없는 노잼 도시, 싱가포르는 내게 그런 나라였다. 자발적으로 절대 갈 리 없을 거라 생각한 싱가포르에 가게 된 건 크루즈 때문이었다. 당시에 난 아시아부터 유럽까지 크루즈 세계 일주를 하고 있었고, 아시아 크루즈의 허브 도시인 싱가포르를 거쳐야만 했다. 다음 여정까지의 시간이 붕 떠서 울며 겨자 먹기로 2주간 머문 싱가포르. 따분할 거라 생각한 그 시간은 생각 외로 굉장히 좋아서 싱가포르는 언제라도 다시금 떠나고 싶은 곳이 되었다.
엄마와의 크루즈 여행을 계획하면서 어디로 갈까,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엄마의 스케줄을 고려해 크루즈 일정이 너무 길지 않을 것, 크루즈 출도착지가 너무 멀지 않을 것, 생활비가 비싸지 않을 것, 도시 자체도 흥미로울 것, 이 모든 것을 따져보니 싱가포르 크루즈만 한 게 없었다. 그래서 떠났다. 싱가포르로.
싱가포르의 상징과도 같은 마리나베이샌즈
서울에서 6시간 반 거리의 싱가포르는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매력적인 곳이다. 크지 않은 도시 안에 차이나타운, 리틀 인디아, 아랍 스트리트가 오밀조밀 모여 있고 각 문화권이 모시는 신을 위한 각기 다른 양식의 화려한 신전이 도시 곳곳을 장식한다. 길을 걷다 보면 다른 얼굴의 사람들의 입에서 다양한 언어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싱가포르에서 다양한 문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호커 센터’이다. 행상이라는 뜻의 ‘호커’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판매하던 좌판을 칭한다. 하지만 위생 문제가 불거져 정부 차원의 관리가 이뤄졌고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판매하는 노점이 모인 복합시설인 ‘호커 센터’로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방문한 호커 센터는 차이나타운에 있는 맥스웰 호커 센터였다. 빼곡하게 들어선 작은 가판에는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아랍, 서구, 한국, 태국 등 전 세계 음식이 즐비했다.
무엇을 골라야 할지 오랜 고민 끝에 가장 줄이 긴 하이난식 치킨라이스와 사천식 소스의 만두, 말레이시아식 볶음국수를 하나씩 시켰다. 호커 센터는 현지인도 애용하기에 줄이 적당히 긴 곳을 찾아 음식을 사 먹으면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뉴튼 호커 센터에서는 싱가포르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인 칠리크랩을 먹었는데 식당에서 먹는 것의 반값이다. 싱가포르 도시 전역에 있는 호커 센터를 찾아다니는 건 싱가포르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싱가포르 호커 센터에서
무수히 많은 여행지를 다니며 작정하고 야경을 본 적이 별로 없는데 싱가포르에서는 유독 야경을 찾게 된다. 크루즈 일정으로 싱가포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기에 딱 한 곳의 야경 명소만 갈 수 있었다. 싱가포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식물원의 슈퍼트리 쇼는 어떨까. 영화 〈아바타〉 속의 나무를 실제 세계에 구현한 듯한 슈퍼트리는 그냥 보아도 아름답지만, 화려한 불빛과 경쾌한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슈퍼트리 쇼를 고른 건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혼자 여행할 때 레스토랑 겸 바인 레벨33에서 야경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머라이언 동상과 마리나베이 센터를 알록달록한 불빛으로 수놓는 스펙트럼 쇼도 봤지만 이만큼 전율이 일지는 않았다. 엄마는 슈퍼트리 쇼를 싱가포르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으로 손꼽았다.
슈퍼트리
본격적인 싱가포르 크루즈 여행
싱가포르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는 보통 페낭과 푸켓을 도는 3박 4일 혹은 4박 5일 코스가 일반적이다. 일정 자체가 짧고 기항지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탓에 배 위에서 여유를 만끽할 수는 없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처음 크루즈를 타는 사람에게는 괜찮은 일정이다. 우리가 탄 로얄 캐리비안 스펙트럼호은 2019년 4월에 첫 운항을 시작한 최신 배로 규모가 크고 액티비티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투명한 다리를 통해 배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신세계이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하는 크루즈 안에는 보통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시설이 가득하다. 바다를 보며 암벽등반을 할 수 있는 클라이밍 시설, 동그란 원통에서 무중력을 경험할 수 있는 스카이다이빙, 서핑보드에 누워 물살을 가로지르는 인공 파도타기, 상공 91.5m까지 올라가 바다를 한눈에 조망하고 일몰을 볼 수 있는 관람차 북극성, 동심의 세계로 소환시켜 주는 범퍼카까지.
어디 그뿐일까? 실내외 수영장과 월풀 욕조, 화려하게 펼쳐지는 각종 공연에 코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저녁 식사 등 세끼 식사가 기본 제공된다. 엄마와 나는 크루즈에 올라타 눈이 휘둥그레지는 각종 시설을 둘러본 뒤 월풀 욕조에서 몸을 데우며 해가 아스라이 사라지는 걸 함께 바라보고 코스 요리를 즐겼다.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눈을 뜨면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주로 배낭여행을 해온 내게 장시간의 버스 이동은 여행의 당연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크루즈 여행에서는 버스나 기차에 몸을 구겨 넣고 다음 여행지를 위한 인내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배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난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공연을 보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나면 새로운 곳에 도착한다. 이동의 피곤함은 덜고 짧은 시간 최대한 많은 곳을 여행하기에 크루즈 여행만 한 건 없다. 이번에 우리가 기항하는 도시는 말레이시아의 페낭과 태국의 푸켓이었다. 말레이시아 페낭에서는 조지 타운에서 벽화를 찾아보고 중국 이주민들이 살았던 수상가옥 집성촌 중 하나인 츄제티를 방문하고 야시장까지 둘러보았다.
푸켓에서는 따로 관광 프로그램 상품을 예약해 라차섬을 다녀왔다. 바다는 에메랄드 보석처럼 투명하고 반짝였으며 파란 하늘이 바다의 색을 더 투명하고 쨍하게 만들었다. 섬 근처에서는 수영을 하고 요트 근처에서는 스노쿨링을 즐겼다. 내가 원하는 곳만 골라 갈 수 없다는 게 크루즈의 단점이겠지만, 나의 의지로는 갈 리 없는 새로운 지역을 선물처럼 여행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가만히 일광욕 하기’, ‘선 베드에 누워 책 읽기’, ‘매일 다른 바다의 색을 관찰하기’, ‘뜨는 해와 지는 석양을 넋 놓고 바라보기’ 내가 크루즈 여행을 하는 중 가장 좋아했던 순간들이다. 크루즈 마지막 날에는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엄마와 함께 꼭 경험하고 싶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발코니룸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선 베드에 누워 함께 책을 읽었다. 요 몇 년간 책을 읽은 적이 없다고 말한 엄마는 몇 시간이나 집중하며 책을 읽었다. 드레스로 차려입고 정찬 식사를 하고 칵테일도 한 잔 했다. “어때? 좋아?” 자꾸만 묻는 딸에게 엄마는 귀찮다는 듯 “어어 당연히 좋지” 은근슬쩍 넘겼지만 행복한 얼굴은 숨길 수 없었다. 크루즈의 여유와 낭만을 즐기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와의 첫 크루즈 여행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글/사진 젠젠
『어쩌다, 크루즈』『카페, 라다크』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