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설렁 일본 여행][여행] 교토의 봄은 매화와 함께 시작된다 - 기타노텐만구의 꽃의 정원

15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의 설렁설렁 일본 여행 #4



일본의 봄이라고 하면 누구나 흐드러진 벚꽃을 떠올릴 것이다. 화려하면서도 그 덧없는 비련미가 돋보이는 벚꽃의 계절이 오면 일본 전국이 들썩거린다.


하지만 벚꽃보다 더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벚꽃처럼 잎보다 먼저 꽃이 피어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벚꽃보다 알록달록 다양하고 선명한 색채로 화려함을 더하는 매화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교토의 봄은 매화와 함께 시작된다. 


기타노텐만구 입구 도리이. 매화원 공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학문의 신을 모시는 기타노텐만구는 경내에 산재하는 매화나무로 봄마다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다. 다양하게 피어난 매화는 선명하고 고운 색깔로 신사의 표정을 바꿔놓는다. 


기타노텐만구 본전. 본전 오른편에 헤이안 시대에 심어졌다고 알려진 매화나무가 있다.


웅장한 국보 본전 앞에도, 거대한 사쿠라몬과 산코몬 앞에도, 화려한 보물전 앞에도, 소원을 이뤄주는 신물 소 조각상에도 매화가 드리운다. 가는 곳마다 매화가 반겨주는 넓은 신사가 보다 아기자기한 색채를 띠고 참배객들을 맞이한다. 수령이 오래된 커다란 매화나무와 일본 전통 신사의 조화는 각별하다. 하늘하늘 아련함이 느껴지는 벚꽃과는 달리 힘 있고 다부지고 옹골찬 매화가 신사 건물과 어우러지며 쌀쌀한 날씨 속에서 열심히 봄을 알린다.


산코몬과 어우러지는 흰 매화와 붉은 매화


보물전 앞의 매화


경내에는 50종류에 이르는 매화나무 약 1,500그루가 식재되어 있는 매화원 ‘꽃의 정원(花の庭)’이 자리하고 있다. 본래 기타노텐만구의 꽃의 정원은 에도시대 때 묘만지(妙滿寺)의 ‘눈의 정원(雪の庭)’, 기요미즈데라(清水寺)의 ‘달의 정원(月の庭)’과 함께 ‘설월화 삼정원(雪月花の三庭苑)’으로 불렸던 곳이었으나 메이지 시대 때 폐사되었다. 그것을 2020년에 재건했다. 매화원 자체는 그 이전부터도 존재했지만, 얼마 안 남은 사료를 독자적으로 해석해 리뉴얼한 후 새로운 꽃의 정원으로 지정하였고, ‘설월화 삼정원’이 재탄생하게 되었다.


매화원 전경


일찍 피는 종류의 매화는 12월 중순부터 봉오리를 맺기 시작해 1월에 꽃을 피우고, 종류에 따라 차례차례 피어나기 시작해 늦게는 3월 말까지 매화를 즐길 수가 있는데, 매화가 절정에 이르는 2월 상순부터 3월 중순까지 공개되는 꽃의 정원은 특별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가장 절정기라고 할 수 있는 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는 주말마다 저녁 시간에 라이트업 행사도 진행한다. 


매화원의 홍매화


입장료를 내고 꽃의 정원으로 입장하면 일단 그 아름다운 꽃의 향연에 절로 감탄사가 뿜어져 나온다. 두근두근 들뜨는 마음으로 매화나무 사이사이를 엮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그야말로 황홀경에 빠져든다. 나뭇가지마다 피어난 붉고 흰 꽃잎이 파란 하늘에 컬러풀한 점을 찍어 놓고, 눈은 화려한 청홍백의 색 조합에 즐거워진다. 어디선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달달한 매화향이 향긋하게 코를 간질인다. 수만 송이 매화가 흐드러진 매화원의 봄기운이 아직 남은 추위를 몰아내려 애를 쓴다.


매화원의 흰 매화


정원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꽃의 정원을 광각으로 즐길 수 있다.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아 봉오리가 많은 나무들의 살짝 허전해 보이는 색채가 아쉬웠지만, 봄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바라보니 나름의 맛이 느껴진다. 


일본의 전통미가 뿜어져 나오는 신사 건물과 매화의 조화는 벚꽃과는 또 다른 풍취로 다가온다. 높은 채도에서 조금 더 힘이 느껴지고, 조금 더 화려해 보인다. 올망졸망 단단해 보이는 꽃봉오리도 귀엽고, 동글동글 앙증맞은 꽃잎도 사랑스럽다.



선명한 진분홍의 홍매화, 가련함이 느껴지는 분홍 매화, 탄탄함이 느껴지는 흰 매화, 모두 각자의 매력을 뽐낸다.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봉오리와 활짝 핀 꽃의 모습이 마치 추운 겨울 동안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힘을 내 몸을 펼친 다람쥐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약동하는 봄의 기운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꽃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밤의 라이트업을 위한 촛대


한참을 둘러보다 다원에 앉아 제공된 매화차를 마신다. 향긋한 차와 함께 즐기는 매화의 정취도 각별하다. 다원에서 판매하는 당고를 우물거리며 지그시 매화원을 바라본다. 


다원에서 마신 매화 녹차와 당고


다원에서 바라본 매화원


카메라에 꽃을 담으려 분주한 사람들,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정원을 거니는 노부부, 단체 셀카로 추억을 남기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봄의 전령을 즐기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 옷차림은 두껍지만, 마음은 피어나는 매화마냥 활기차고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다시 일어서 한 바퀴를 더 돌아본다.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끼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매화의 아름다움이 흐려지진 않는다. 칙칙해진 하늘을 자신의 색으로 환하게 밝히기라도 하려는 듯 당당하게 고개를 든 매화의 자태가 더욱 선명해 보인다.


겹 매화와 분홍 매화


꽃의 정원을 나와 기타노텐만구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며 다시금 매화의 정취에 취해 본다. 아직 추위가 느껴지는 2월 말의 어느 날, 연약해 보이지만 겨울을 뚫고 강인하게 피어난 매화에 삶의 용기를 얻는다.


신물인 소 조각상에 드리운 매화




글·사진 박소현

16년차 일본 만화 번역가. 18년차 일본 여행 초보자. 28년차 기혼자. 일본어를 읽는 데 지치면 일본어를 말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게 삶의 낙인 고양이 집사. 그저 설렁설렁 일본을 산책하는 게 좋다.
『걸스 인 도쿄』 『도서 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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