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걷고 쉬며 보낸 22일간의 일본 여행 #4
시코쿠 순례길은 서기 800년경 일본 불교 진언종을 창시한 고보 대사(구카이)가 수행한 곳을 따라가는 사원 순례길이다. 시코쿠 섬을 일주하여 시작점으로 돌아오면 그 거리가 1,200km에 이른다. 도보로는 45일, 하루 30~40km를 걸어야 하는 대장정이다. 시코쿠는 산지가 대부분인데다가 절도 주로 산에 있기 때문에 평지를 걷는 것보다 훨씬 고된 길이다. 종교적 수행의 목적뿐 아니라, 삶의 시련을 통과하거나 어떤 큰 결심이 필요할 때 이 순례길을 걷는다고 한다. 특히 퇴직 후 인생 후반전을 앞두고 심기일전을 위해 시코쿠 순례길로 떠나는 것이 많은 일본 중년 남성들의 로망이라 한다. 순례 성수기는 봄, 가을인 3~5월, 10~11월이라, 우리가 갔던 2월은 순례자(‘오헨로상’이라고 한다)가 별로 없었는데, 그중 다수는 역시 50대 이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시코쿠 순례의 기원이 되는 고보대사
보통 오헨로는 절 번호를 따라 순서대로 따라가는데,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절 납찰소가 문을 닫는 오후 5시까지 하루 3~4곳 혹은 5~6곳의 절을 다니기도 한다. 제대로 다니려면 순례 기간 동안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오헨로는 삿갓, 흰옷, 지팡이 등의 오헨로 복장을 갖추어 다니며(최소한 흰옷은 입는다), 지역 사람들은 이들을 길에서 만나면 시주의 의미로 작은 선물을 주거나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복장이 표식이 되기 때문에, 우리처럼 평범한 여행객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에게는 오헨로상에게 보내는 환대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불교 신자도 아닌 데다가 자기 수양보다는 ‘순례가 뭔가요? 먹고 놀자!’에 관심이 있는데, 굳이 이 순례길을 걸은 이유는 시코쿠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몇 군데 절만 구경하고 도심에서 며칠씩 잘 쉬고 놀면서 우리 스타일로 느리게 여행했다.

시코쿠 순례 45번 절 이와야지에서
처음 간 곳은 마쓰야마 근교 구마코겐(구마고원)에 있는 44번 절 다이호지와 45번 절 이와야지였다. 고원의 산길을 걸어야 하는 코스로, 500~1,000년 된 신령한 나무들과 큰 구멍이 뻥뻥 뚫린 기묘한 돌산을 만날 수 있다. 다이호지는 절 입구에 100년에 한 번씩 교체하는 커다란 짚신이 걸려 있어 독특했고, 절 경내는 아기자기하니 예뻤다. 가이드 맵에 따르면, 일단 절에 도착해 문 앞에서 절을 하고, 절 안에 들어가 입과 손을 씻고, 종을 친 다음, 납찰을 하고, 독경을 외고, 납경장에 도장을 받은 후, 절 밖으로 나와 다시 절을 하라고 되어 있다. 절하고, 입과 손을 씻고, 아, 그다음 뭐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른 순례자들이 하는 걸 보니 마니차를 돌리기도 하고 염주를 돌리면서 독경을 외기도 하고 종도 치고 뭔가 더 복잡해 보였다. 어차피 우리는 불자도 아니니까 절, 손 씻기 정도로만 순례 의식을 대신했다. 그래, 이 정도만 해도 부처님은 자비로우시니까 이해하실 거야.



44번 절 다이호지.
44번에서 45번 절로 넘어가는 길은 완전히 등산로라 꽤 힘들었다. 시코쿠 순례길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은 절 근처뿐이고 중간 지점에는 거의 안내 표시가 없었다. 순례길 전반적으로 그런 것 같다. 일본인들이야 더 자세한 자료를 검색하며 순례길을 따라가겠지만, 우리에게 아이폰 지도, 구글맵스, 맵스미 외에 믿을 것은 순례길 안내판뿐인데 안내판이나 리본이 거의 없다니.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다시 나오기를 반복했다. 한번은 맵스미 지도를 따라가다가 산등성이 위에서 어떤 오헨로상 아저씨가 우릴 부르기에(아마도 “이쪽 길이야!”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대답을 하려고 파파고 번역기를 돌리는 사이 아저씨는 그 간절한 “조또마떼”를 기다리지 못하고 산속으로 홀연히 사라지셨다. 맵스미 지도는 순례길이 아닌 등산로를 안내한 것인데, 코로나 대유행으로 등산을 다니는 사람이 없다 보니 길의 흔적은 있으나 가시덤불이 마구 자라나고 대나무 삼나무가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그걸 헤쳐 가느라 여기저기 찔리고 남편은 옷이 찢어지기까지 했다.
제대로 식겁하고 나와 간신히 45번 절에 이르니 이제부터는 어마 무시한 계단이 산 중턱까지 이어졌다. 돌산 높은 벼랑에 세워진 이와야지는 신기하고 멋있었으며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서 고생을 한 보람이 있었다. 이날 절 두 군데를 돌고 완전히 탈진해버렸다. 거의 넋이 나가 입이 자꾸만 헤벌쭉 벌어졌다. 순례자들은 납경을 마친 후 이어서 바로 다음 절로 향하던데 그들의 체력과 정신력이 경이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하루 서너 개의 절을 순례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시코구 순례길을 다 돈다면 정말 득도하겠구나 싶었다.



45번 절 이와야지에서
* * *
마쓰야마 근교 52번 절 다이묘지와 53번 절 엔묘지를 갔던 날은 마침 비가 왔다. 배낭을 앞뒤로 다 메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길에 들렀기 때문에 20kg 정도의 배낭 무게를 견디며 빗속을 걷는 게 쉽지 않았다. 발과 어깨가 욱신거렸고 비를 맞아 온몸이 으슬으슬했다. 예전엔 이보다 더 무거운 배낭으로도 더 멀고 험준한 길을 다녔었는데. 코로나 기간 집에 갇혀 있었더니 체력이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번 여행은 그것을 실감한 시간이었다. 그나마 이 두 절은 평지 마을에 붙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엔묘지에서는 관광버스로 순례길을 다니고 있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시코쿠 순례길 단체여행 상품은 없는 듯하고, 불교 신자 중 개인적으로 순례를 하는 사람들은 더러 있는 것 같다.




52번 절 다이묘지와 53번 절 엔묘지. 마니차를 돌리는 순례자도 보았다.
순례 이후 근처 어촌마을 호조의 시골 료칸 ‘FUJIYA'에서 2박 3일간 묵었다. 식당을 겸하는 료칸으로, 무려 1850년대에 시작해 7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곳이다. 시골 료칸이라고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80년대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고풍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료칸에 도착하자 카운터에서 우릴 맞이한 사람은 료칸 주인 할머니였다. 샤워캡을 머리에 쓰고 일본식 앞치마를 두르고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키가 아주 작고 대략 백 살쯤 되어 보이는 신비로운 할머니였다. 사실 일을 하시기엔 너무 노령이지 않나 싶었는데, 체크인과 체크아웃, 목욕탕 이용, 요리와 서빙까지, 료칸의 모든 일을 손수 하셨다. 식사 시간에 노인에게 대접을 받으려니 마음이 불편해서 우리가 그릇을 놓으려고 했으나 단호하게 “떽!” 하는 제스쳐를 보여주셨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 각자 할 말을 하고 멍하니 쳐다보는 일이 많기는 했지만, 할머니의 눈빛에서 평생 료칸 일을 해온 내공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닷가 마을 호조의 풍경과 료칸 후지야
한번은 손님마다 이용 시간을 정해놓고 들어가는 1~2인용 작은 목욕탕에 막 들어가려는 찰나 갑자기 할머니가 목욕탕에 들어오셨다. 우리는 당황해서 벌거벗은 채 어정쩡하게 몸을 가리고 섰는데, 할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고 일본어로 뭐라 한참 설명을 하셨다. “미즈”와 “홋또”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는 걸 보니 어느 샤워기에서는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는 설명을 하시는 거 같았다. 할 말 하고 쌩 나가는 할머니를 보며 “하긴 료칸 마스타는 사람 벗은 것 따위 아무렇지도 않겠지” 싶어 한참 웃었다. 마쓰야마 일대에서 유명한 음식은 도미찜밥인데, 이 료칸에서 도미 요리는 찜밥뿐 아니라 종류별로 실컷 먹었다. 음식이 다 맛있어서 가업이 7대째 이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료칸에서의 식사
글/사진 허유미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춤과 관련된 수업과 글쓰기를 함께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춤들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 『춤추는 세계』가 있다.
먹고 걷고 쉬며 보낸 22일간의 일본 여행 #4
시코쿠 순례길은 서기 800년경 일본 불교 진언종을 창시한 고보 대사(구카이)가 수행한 곳을 따라가는 사원 순례길이다. 시코쿠 섬을 일주하여 시작점으로 돌아오면 그 거리가 1,200km에 이른다. 도보로는 45일, 하루 30~40km를 걸어야 하는 대장정이다. 시코쿠는 산지가 대부분인데다가 절도 주로 산에 있기 때문에 평지를 걷는 것보다 훨씬 고된 길이다. 종교적 수행의 목적뿐 아니라, 삶의 시련을 통과하거나 어떤 큰 결심이 필요할 때 이 순례길을 걷는다고 한다. 특히 퇴직 후 인생 후반전을 앞두고 심기일전을 위해 시코쿠 순례길로 떠나는 것이 많은 일본 중년 남성들의 로망이라 한다. 순례 성수기는 봄, 가을인 3~5월, 10~11월이라, 우리가 갔던 2월은 순례자(‘오헨로상’이라고 한다)가 별로 없었는데, 그중 다수는 역시 50대 이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시코쿠 순례의 기원이 되는 고보대사
보통 오헨로는 절 번호를 따라 순서대로 따라가는데,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절 납찰소가 문을 닫는 오후 5시까지 하루 3~4곳 혹은 5~6곳의 절을 다니기도 한다. 제대로 다니려면 순례 기간 동안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오헨로는 삿갓, 흰옷, 지팡이 등의 오헨로 복장을 갖추어 다니며(최소한 흰옷은 입는다), 지역 사람들은 이들을 길에서 만나면 시주의 의미로 작은 선물을 주거나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복장이 표식이 되기 때문에, 우리처럼 평범한 여행객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에게는 오헨로상에게 보내는 환대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불교 신자도 아닌 데다가 자기 수양보다는 ‘순례가 뭔가요? 먹고 놀자!’에 관심이 있는데, 굳이 이 순례길을 걸은 이유는 시코쿠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몇 군데 절만 구경하고 도심에서 며칠씩 잘 쉬고 놀면서 우리 스타일로 느리게 여행했다.
시코쿠 순례 45번 절 이와야지에서
처음 간 곳은 마쓰야마 근교 구마코겐(구마고원)에 있는 44번 절 다이호지와 45번 절 이와야지였다. 고원의 산길을 걸어야 하는 코스로, 500~1,000년 된 신령한 나무들과 큰 구멍이 뻥뻥 뚫린 기묘한 돌산을 만날 수 있다. 다이호지는 절 입구에 100년에 한 번씩 교체하는 커다란 짚신이 걸려 있어 독특했고, 절 경내는 아기자기하니 예뻤다. 가이드 맵에 따르면, 일단 절에 도착해 문 앞에서 절을 하고, 절 안에 들어가 입과 손을 씻고, 종을 친 다음, 납찰을 하고, 독경을 외고, 납경장에 도장을 받은 후, 절 밖으로 나와 다시 절을 하라고 되어 있다. 절하고, 입과 손을 씻고, 아, 그다음 뭐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른 순례자들이 하는 걸 보니 마니차를 돌리기도 하고 염주를 돌리면서 독경을 외기도 하고 종도 치고 뭔가 더 복잡해 보였다. 어차피 우리는 불자도 아니니까 절, 손 씻기 정도로만 순례 의식을 대신했다. 그래, 이 정도만 해도 부처님은 자비로우시니까 이해하실 거야.
44번 절 다이호지.
44번에서 45번 절로 넘어가는 길은 완전히 등산로라 꽤 힘들었다. 시코쿠 순례길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은 절 근처뿐이고 중간 지점에는 거의 안내 표시가 없었다. 순례길 전반적으로 그런 것 같다. 일본인들이야 더 자세한 자료를 검색하며 순례길을 따라가겠지만, 우리에게 아이폰 지도, 구글맵스, 맵스미 외에 믿을 것은 순례길 안내판뿐인데 안내판이나 리본이 거의 없다니.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다시 나오기를 반복했다. 한번은 맵스미 지도를 따라가다가 산등성이 위에서 어떤 오헨로상 아저씨가 우릴 부르기에(아마도 “이쪽 길이야!”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대답을 하려고 파파고 번역기를 돌리는 사이 아저씨는 그 간절한 “조또마떼”를 기다리지 못하고 산속으로 홀연히 사라지셨다. 맵스미 지도는 순례길이 아닌 등산로를 안내한 것인데, 코로나 대유행으로 등산을 다니는 사람이 없다 보니 길의 흔적은 있으나 가시덤불이 마구 자라나고 대나무 삼나무가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그걸 헤쳐 가느라 여기저기 찔리고 남편은 옷이 찢어지기까지 했다.
제대로 식겁하고 나와 간신히 45번 절에 이르니 이제부터는 어마 무시한 계단이 산 중턱까지 이어졌다. 돌산 높은 벼랑에 세워진 이와야지는 신기하고 멋있었으며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서 고생을 한 보람이 있었다. 이날 절 두 군데를 돌고 완전히 탈진해버렸다. 거의 넋이 나가 입이 자꾸만 헤벌쭉 벌어졌다. 순례자들은 납경을 마친 후 이어서 바로 다음 절로 향하던데 그들의 체력과 정신력이 경이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하루 서너 개의 절을 순례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시코구 순례길을 다 돈다면 정말 득도하겠구나 싶었다.
* * *
마쓰야마 근교 52번 절 다이묘지와 53번 절 엔묘지를 갔던 날은 마침 비가 왔다. 배낭을 앞뒤로 다 메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길에 들렀기 때문에 20kg 정도의 배낭 무게를 견디며 빗속을 걷는 게 쉽지 않았다. 발과 어깨가 욱신거렸고 비를 맞아 온몸이 으슬으슬했다. 예전엔 이보다 더 무거운 배낭으로도 더 멀고 험준한 길을 다녔었는데. 코로나 기간 집에 갇혀 있었더니 체력이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번 여행은 그것을 실감한 시간이었다. 그나마 이 두 절은 평지 마을에 붙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엔묘지에서는 관광버스로 순례길을 다니고 있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시코쿠 순례길 단체여행 상품은 없는 듯하고, 불교 신자 중 개인적으로 순례를 하는 사람들은 더러 있는 것 같다.
52번 절 다이묘지와 53번 절 엔묘지. 마니차를 돌리는 순례자도 보았다.
순례 이후 근처 어촌마을 호조의 시골 료칸 ‘FUJIYA'에서 2박 3일간 묵었다. 식당을 겸하는 료칸으로, 무려 1850년대에 시작해 7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곳이다. 시골 료칸이라고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80년대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고풍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료칸에 도착하자 카운터에서 우릴 맞이한 사람은 료칸 주인 할머니였다. 샤워캡을 머리에 쓰고 일본식 앞치마를 두르고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키가 아주 작고 대략 백 살쯤 되어 보이는 신비로운 할머니였다. 사실 일을 하시기엔 너무 노령이지 않나 싶었는데, 체크인과 체크아웃, 목욕탕 이용, 요리와 서빙까지, 료칸의 모든 일을 손수 하셨다. 식사 시간에 노인에게 대접을 받으려니 마음이 불편해서 우리가 그릇을 놓으려고 했으나 단호하게 “떽!” 하는 제스쳐를 보여주셨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 각자 할 말을 하고 멍하니 쳐다보는 일이 많기는 했지만, 할머니의 눈빛에서 평생 료칸 일을 해온 내공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한번은 손님마다 이용 시간을 정해놓고 들어가는 1~2인용 작은 목욕탕에 막 들어가려는 찰나 갑자기 할머니가 목욕탕에 들어오셨다. 우리는 당황해서 벌거벗은 채 어정쩡하게 몸을 가리고 섰는데, 할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고 일본어로 뭐라 한참 설명을 하셨다. “미즈”와 “홋또”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는 걸 보니 어느 샤워기에서는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는 설명을 하시는 거 같았다. 할 말 하고 쌩 나가는 할머니를 보며 “하긴 료칸 마스타는 사람 벗은 것 따위 아무렇지도 않겠지” 싶어 한참 웃었다. 마쓰야마 일대에서 유명한 음식은 도미찜밥인데, 이 료칸에서 도미 요리는 찜밥뿐 아니라 종류별로 실컷 먹었다. 음식이 다 맛있어서 가업이 7대째 이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료칸에서의 식사
글/사진 허유미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춤과 관련된 수업과 글쓰기를 함께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춤들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 『춤추는 세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