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지구를 되돌아보는 여행, 교토 #4
교토를 떠나
일본 여행을 떠나기 전이었다. 친구가 일본에 살고 있는 Y를 소개했다. 평소였다면 머뭇거렸겠지만 만나 보면 나도 좋아할 사람이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일정을 정하려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Y는 하루 동안 집에 머물다 가라며 선뜻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민폐를 끼칠까 망설이다가 낯선 사람의 집에 초대받는 일이 흔치 않기에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을 Y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교토에서 맞이하는 다섯 번째 아침. 분주한 교토의 공기를 뒤로하고 오사카 근처 니시쿠조역에 있는 Y의 집으로 향했다. 두유를 마시며 기차에 올랐다. 풍경에 빠져 방향을 잘못 찾아 헤맸지만 무사히 Y를 만났다.
오래된 집으로의 초대
Y는 빨간 안경을 끼고 있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약간의 어색함은 있었지만 천천히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20분쯤 걸었을까. Y의 집에 도착했다. 2층 높이의 오래된 건물이었다. 집 앞의 식물들이 나를 먼저 반겼다. 어두운 집 안으로 들어서자 곳곳에 걸려 있는 말린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은 타인의 세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처럼 만난 지 채 20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살짝 긴장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Y는 집 구석구석을 소개했다. 내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은 새것이나 깔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인데, Y의 집이 그랬다. 몇 번이나 집이 너무 예쁘다고 말하며 전시회에 놀러 온 사람처럼 사진을 찍었다. 대대손손 살아온 오래된 집에 여러 사람의 흔적이 묻어 있는 물건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꽃, 따뜻한 조명이 Y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듯했다.



Y의 집
특별한 하루
짐을 풀고 야생초 말린 차를 마셨다. 구수하고, 뭉근한 달큰함이 배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 Y는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책보자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곰손이기는 하지만 나를 위해 고양이가 그려진 귀여운 천을 준비한 Y를 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다. 책보자기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Y의 머릿속에 있는 도안을 따라 천천히 해 나갔다. 미싱으로 해야 할 부분은 Y가 도와주었고, 나머지는 더듬더듬 내 속도대로 바느질했다. 중학교 이후 처음 해보는 바느질은 속도도 느리고, 어깨도 아플 만큼 어려웠다. 하지만 책보자기를 완성하고 보니 모양이나 실용적인 면 모두 만족스러웠다.

책 보자기
점심을 먹고, 책보자기를 만들었을 뿐인데 금세 어둑한 저녁이 되어 있었다. Y와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시장에 갔다. 기일인 Y의 아버지에게 드릴 스시를 사고, 생선 지리 거리를 샀다. 함께 저녁상을 준비하고, 가벼운 반주와 저녁을 즐기며 우리의 수다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이야기는 막힘이 없었다. 서로 좋아하는 음악, 책, 영화, 살아온 이야기까지. 심지어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 놓기도 했다. 스스럼없었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대화였다. 한동안 인간관계에 지쳐 있었는데 나이나 출신을 떠나 오랜만에 타인을 알아가는 즐거움에 흠뻑 취한 시간이었다.

함께 만들어 먹었던 저녁
다음 날 아침, Y는 일찍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우메보시를 곁들인 죽을 먹고, 공항으로 나섰다. Y는 공항으로 가는 내게 직접 구운 빵과 야생초 차를 챙겨 주며 역까지 함께 나와 배웅했다. 그리고 Y는 내게 여행을 와서 집에만 머물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산책도 못 했다며 미안해했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어떤 날보다도 꽉 찬 의미 있는 하루였다. 그리고 첫 만남부터 떠날 때까지의 따뜻한 환대를 잊지 못할 것 같았다.
Y가 준비해준 아침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는 여전히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게다가 Y 덕분에 잊고 지내던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던 구멍 난 양말을 꺼내 실로 꿰매고, 손수건에 귀여운 자수를 놓아 보기도 했다. Y와의 특별한 하루는 경험 그 자체로 조금 메말랐던 삶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는 사이지만 타인의 삶이 내게도 깊게 스며든 기분이랄까. 처음 만나는 낯선 사이였지만 지금은 오래 기억할 특별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글/사진 황주(chantrea)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집을 이고 다니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제주에 삽니다.
http://blog.naver.com/rashimi87
나와 지구를 되돌아보는 여행, 교토 #4
교토를 떠나
일본 여행을 떠나기 전이었다. 친구가 일본에 살고 있는 Y를 소개했다. 평소였다면 머뭇거렸겠지만 만나 보면 나도 좋아할 사람이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일정을 정하려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Y는 하루 동안 집에 머물다 가라며 선뜻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민폐를 끼칠까 망설이다가 낯선 사람의 집에 초대받는 일이 흔치 않기에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을 Y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교토에서 맞이하는 다섯 번째 아침. 분주한 교토의 공기를 뒤로하고 오사카 근처 니시쿠조역에 있는 Y의 집으로 향했다. 두유를 마시며 기차에 올랐다. 풍경에 빠져 방향을 잘못 찾아 헤맸지만 무사히 Y를 만났다.
오래된 집으로의 초대
Y는 빨간 안경을 끼고 있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약간의 어색함은 있었지만 천천히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20분쯤 걸었을까. Y의 집에 도착했다. 2층 높이의 오래된 건물이었다. 집 앞의 식물들이 나를 먼저 반겼다. 어두운 집 안으로 들어서자 곳곳에 걸려 있는 말린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은 타인의 세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처럼 만난 지 채 20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살짝 긴장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Y는 집 구석구석을 소개했다. 내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은 새것이나 깔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인데, Y의 집이 그랬다. 몇 번이나 집이 너무 예쁘다고 말하며 전시회에 놀러 온 사람처럼 사진을 찍었다. 대대손손 살아온 오래된 집에 여러 사람의 흔적이 묻어 있는 물건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꽃, 따뜻한 조명이 Y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듯했다.
Y의 집
특별한 하루
짐을 풀고 야생초 말린 차를 마셨다. 구수하고, 뭉근한 달큰함이 배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 Y는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책보자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곰손이기는 하지만 나를 위해 고양이가 그려진 귀여운 천을 준비한 Y를 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다. 책보자기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Y의 머릿속에 있는 도안을 따라 천천히 해 나갔다. 미싱으로 해야 할 부분은 Y가 도와주었고, 나머지는 더듬더듬 내 속도대로 바느질했다. 중학교 이후 처음 해보는 바느질은 속도도 느리고, 어깨도 아플 만큼 어려웠다. 하지만 책보자기를 완성하고 보니 모양이나 실용적인 면 모두 만족스러웠다.
점심을 먹고, 책보자기를 만들었을 뿐인데 금세 어둑한 저녁이 되어 있었다. Y와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시장에 갔다. 기일인 Y의 아버지에게 드릴 스시를 사고, 생선 지리 거리를 샀다. 함께 저녁상을 준비하고, 가벼운 반주와 저녁을 즐기며 우리의 수다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이야기는 막힘이 없었다. 서로 좋아하는 음악, 책, 영화, 살아온 이야기까지. 심지어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 놓기도 했다. 스스럼없었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대화였다. 한동안 인간관계에 지쳐 있었는데 나이나 출신을 떠나 오랜만에 타인을 알아가는 즐거움에 흠뻑 취한 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Y는 일찍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우메보시를 곁들인 죽을 먹고, 공항으로 나섰다. Y는 공항으로 가는 내게 직접 구운 빵과 야생초 차를 챙겨 주며 역까지 함께 나와 배웅했다. 그리고 Y는 내게 여행을 와서 집에만 머물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산책도 못 했다며 미안해했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어떤 날보다도 꽉 찬 의미 있는 하루였다. 그리고 첫 만남부터 떠날 때까지의 따뜻한 환대를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는 여전히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게다가 Y 덕분에 잊고 지내던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던 구멍 난 양말을 꺼내 실로 꿰매고, 손수건에 귀여운 자수를 놓아 보기도 했다. Y와의 특별한 하루는 경험 그 자체로 조금 메말랐던 삶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는 사이지만 타인의 삶이 내게도 깊게 스며든 기분이랄까. 처음 만나는 낯선 사이였지만 지금은 오래 기억할 특별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글/사진 황주(chantrea)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집을 이고 다니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제주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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