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니즘 일상 속 일본문화][여행] 우키요에를 사랑했던 고흐와 함께 서울과 도쿄 여행을

2025-03-24

자포니즘, 일상에서 즐기는 일본 문화 여행 #2



“고흐는 일본에 가 본 적이 없지만 모든 곳에서 일본을 보았다.”


2018년 3월 26일 자 <뉴욕타임스> 온라인판에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사 제목이다. “Van Gogh Never Visited Japan, but He Saw It Everywhere.”


같이 일했던 편집자님들 중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의 팬이 유독 많았다. 고흐의 극적인 인생과 따뜻한 느낌의 화풍이 마음에 울림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고흐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번역을 하다가 우연히 본 일본풍 가득한 한 점의 그림 때문이었다. 나를 자포니즘 연구가의 길로 처음 이끌어 준 운명의 그림 <탕기 영감의 초상>이었다. 


고흐, <탕기 영감의 초상> | 출처: 로댕 미술관Musée Rodin 홈페이지


그림 속 주인공은 파리 몽마르트 클로젤 거리에서 화방을 운영하던 쥘리앵 프랑수아 탕기(1825년~1894년)다. 그림 속에서 탕기 영감은 우키요에로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화방에서 우키요에를 취급한 적은 없었다. 


탕기 영감은 고흐 등 젊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따뜻한 후원자이자 할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탕기 영감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고흐가 미술 재료를 구입하러 오면 돈 대신 그림을 받아주었다. 고흐는 그림 속에서 탕기 영감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을 수집하던 우키요에로 표현했다.


고흐는 알아주는 우키요에 ‘덕후’였다. 우키요에를 수집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키요에를 철저히 연구했다. 그리고 자화상과 초상화를 그릴 때 자신만의 색채와 붓 터치로 우키요에 작품을 배경으로 그려 넣을 때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우키요에가 배경을 가득 메운 <탕기 영감의 초상>은 고흐의 우키요에 사랑을 온전히 보여준 작품이다.


고흐는 우키요에 작가 중에서도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작품을 특히 흠모해 히로시게의 우키요에를 유화로 모사하곤 했다. <탕기 영감의 초상>에도 히로시게의 우키요에를 모사한 흔적이 있다. 후지산 그림과 벚꽃이 핀 봄 풍경 그림은 각각 히로시게의 <후지36경 사가미강(富士三十六景さがみ川)>과 <53차 명소도회 45 이시야쿠시(五十三次名所図会 四十五 石薬師)>다. 


한국인과 일본인 집필진이 참여한 공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3』(2023)에 「『국화와 칼』, 외부인의 눈으로 본 일본 문화론의 출발점」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일본 문화론을 다룬 출판물 표지에 흔히 우키요에가 선호되는 현상을 논한 적이 있다. 외부인의 눈에 우키요에는 일본 문화의 상징처럼 느껴지고는 한다. 고흐 역시 우키요에를 통해 일본 문화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였고, 나는 그게 우리의 공통점으로 여겨져 고흐가 마치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친구라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즐기면 된다. 만일 고흐가 21세기로 날아와 우키요에 전시회를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으로만 남기지 않고 ‘서울과 도쿄에서 고흐와 히로시게의 만남’이라는 여행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명지대학교 우키요에전 


2023년 9월, 고흐의 자화상이 표지를 수놓은 책을 챙겨 명지대학교로 향했다. <일본 우키요에(浮世絵)에 그려진 사계(四季)>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로시게의 우키요에도 전시된다고 했다. 고흐와 함께 히로시게의 우키요에를 비롯해 다양하고 많은 우키요에 작품을 감상했다. 


명지대학교 우키요에 전시회장 밖에서 직접 체험해 본 우키요에는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우키요에를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직접 체험해 본 우키요에는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였다. 갑자기 고흐가 빙의한 것일까? 신나게 우키요에 체험에 몰두한 내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옆에 있던 여성이 “우키요에를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라며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일본인이었다. 가방 안에 있는 고흐가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면서 일본인 여성과 고흐와 우키요에, 자포니즘에 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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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3월 16일. 고흐는 프랑스의 도시 아를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내 이런 글을 썼다. “마치 일본에 있는 기분이야(I feel I’m in Japan).” 고흐는 아를의 풍경을 보면서 우키요에 속 일본의 풍경을 떠올렸던 것이다.


<뉴욕타임스> 기사의 제목처럼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고흐였지만, 정작 살아생전에 일본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도쿄 여행을 떠날 때마다 고흐의 자화상이 그려진 책을 들고 가기로 했다. 고흐에게 일본 여행을 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도쿄는 우키요에가 탄생한 도시이자 여전히 우키요에를 감상할 수 있는 도시이니까.


고흐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찾아간 곳은 하라주쿠 근처에 있는 ‘오오타 기념 미술관’이었다.


2023년 6월에 NHK 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 <하나카페>의 홈페이지에 실린 사진.
우키요에, 국화, 사무라이의 칼은 서구권에서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자포니즘 감성의 일본 미학이다. 고흐도 좋아할 만한 대표적인 일본풍이기도 하다.


1980년에 문을 연 오오타 기념 미술관은 우키요에 전문 미술관이다. 일본인 관람객도 많지만, 고흐처럼 자포니즘 감성을 좋아하는 서구권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실제로 오오타 기념 미술관에서는 일본어 못지않게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우키요에 전문 미술관으로 유명한 도쿄의 ‘오오타 기념 미술관’. 2024년 10월 5일부터 12월 8일까지 열린 <히로시게 블루> 전시회


자화상 속에 있는 고흐에게 오오타 기념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 <히로시게 블루>의 포스터를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잠시나마 고흐의 눈으로 히로시게의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했다. 히로시게는 ‘베를린 블루’라고 불린 청색 물감을 능숙하게 사용해 꽃과 새 등 자연 풍경을 생생하게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고흐는 아를의 파란 하늘에서 히로시게 블루로 대표되는 우키요에를 떠올리며 일본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고흐처럼 우키요에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오오타 기념 미술관에서는 매년 다양한 기획전이 열린다. 예를 들어 2024년 4월부터 7월까지는 부채를 위한 우키요에전이 열리기도 했다. 부채는 에도 토박이들의 필수품으로, 또 다른 우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구니요시는 고양이, 배우, 미인 등을 소재로 부채 우키요에를 다양하게 그렸다. 


그 이전에는 한국에서 열린 <다색조선>으로 한국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프랑스인 우키요에 화가 폴 자쿨레(1896년~1960년)의 전시회도 열렸다. 파리에서 태어난 자쿨레는 세 살 때 아버지가 일본 도쿄 외국어대학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해 평생 일본에서 살았다.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을 그린 폴 자쿨레의 우키요에전 팜플렛과 엽서


자쿨레는 열 살 때 우키요에를 알게 되어 수집과 모사를 했다. 고흐와 통하는 점이 많은 화가다. 다만 자쿨레는 독특하게도 일본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사람들도 그렸다. 


이처럼 우키요에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오오타 기념 미술관만 한 곳이 없다. 입장료는 성인 관람객은 1,000엔, 고등학생과 대학생 관람객은 700엔, 중학생(15세) 이하는 무료¹다. 


오오타 기념 미술관, 부채 우키요에전


오오타 기념 미술관, 폴 자쿨레의 우키요에전 


미술관을 나서자 회색빛 하늘에 비가 약간 내리고 있었다. 살짝 내리는 도쿄의 빗줄기 속에서 히로시게의 우키요에 속에서 내리던 소나기가 떠올랐다. NHK 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 <하나카페> 스튜디오로 가기 위해 시부야 거리를 걸었다. 만약 고흐가 21세기에 부활한다면 시부야의 풍경을 어떻게 묘사할까 궁금해졌다.


아를의 태양처럼 빛나는 황금 보자기와 우키요에, <탕기 영감의 초상>에 둘러싸인 우키요에 여행의 동반자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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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오타 기념 미술관(太田記念美術館) 홈페이지: https://www.ukiyoe-ota-muse.jp/




글·사진 | 이주영

프랑스어와 일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를 활용해 다언어 일본학도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 집필진의 공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시리즈에서는 2021년부터 매년 자포니즘 연구가 타이틀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자포니즘 테마로 NHK 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 <하나카페>와 영어 방송 <Friends Around The World> 에 출연했다. 최근 역서로는 프랑스 소설 『할복』, 일본 도서『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윤리경영 리더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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