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학생의 도쿄대 여행][여행] 도쿄대 학생의 도쿄대 혼고 캠퍼스 여행하기

2025-04-03

도쿄대 유학하며 도쿄대 여행하기 #2



도쿄대에서의 첫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이했다. 나름 많은 걸 배운 한 학기였다. 내 새로운 전공인 미학에 대해 겉핥기식으로 얼추 파악하게 되었고, 학교 친구들도 사귀었다. 10년 전의 일본 교환유학 시절에 비하면 이번 유학은 놀러 다닌 시간은 거의 없고, 기숙사에 틀어박혀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시험기간과 논문 제출 기한을 앞두고 공부와 논문 작성을 하는 도중, 이러다 수면 부족과 과로로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끔찍한 순간들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추억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보람차게 보냈다고 말하고 싶다. 다음 학기는 학업도 중요하겠지만 아르바이트에도 도전해 보고 더 많은 친구와 인맥을 만들 시간을 늘려볼 계획이다.


그리고, 여전히 적응 중인 도쿄대 혼고 캠퍼스 곳곳에 관해 간략한 소개를 이어가려 한다. 


:: 도서관

정확한 명칭은 ‘도쿄대학 종합도서관’으로, 도쿄대 시설 중 가장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시설이다. 도서관 건물 앞 분수에는 물이 흐르고, 물 아래로 지하 시설이 보인다. 건물 외부는 다소 평범하고 클래식한 느낌이지만 그 안에서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혼고 캠퍼스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많지만, 여기 도서관만큼은 궁궐 같다. 입구에서 학생증을 찍고 안으로 들어가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오르면 곳곳에 열람실 입구가 있고, 그 사이사이 책에 얼굴을 박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보인다. 도서관의 모든 시설은 구석구석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다. 각 층은 층고가 높아 탁 트인 분위기이며, 2층에 늘어선 기둥들은 아치형의 천장을 지지하고 있고 아치에는 여러 가지 꽃문양이 새겨져 있다. 학교의 다른 건물들에 비해서 이렇게까지 고급진 느낌이 날 수 있나 싶다. 베르사유 궁전의 매우 심플한 버전이라고 표현해도 되려나.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도서관보다는 궁전에서 공부하는 것 같은, 다소 이질적인 느낌도 든다. 개인적으로 여기에서 공부는 잘 안되는 편이다. 학교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경로가 첩첩산중이라(도보, 전철, 자전거를 이용하다 보면 편도 1시간 20분가량 걸린다) 귀가 걱정에 마음이 영 불편해서인가. 공부는 기숙사 방 안이나 근처 단골 카페에서 가장 잘 됐다. 그래도 학교 수업을 마치고 가끔씩 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졸릴 때면 도서관 건물 앞에 몇 자리 놓인 철제 테이블에서 찬 바람을 쐬며 공부를 하곤 했다. (사실 1층 구석 소파 자리에서 낮잠을 잔 적도 적지 않다.)


도쿄대 혼고캠퍼스에서 가장 메인인 야스다 강당과 강당 앞 양쪽에 자리한 문학부 건물은 생각보다 꽤 낡아서 학교 시설이 낙후된 인상을 주지만, 이 도서관만큼은 부기가 좔좔 흐른다. 이공계나 의학부 건물도 비교적 신식이고 자본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 도서관은 차원이 다르다. 만약 혼고 캠퍼스에 방문해 여기저기 여유롭게 둘러볼 예정이라면, 되도록 이 도서관도 함께 둘러봤으면 한다. 본교 학생 이외의 방문자가 도서관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사전에 신청하면 방문이 가능하다. 


웹사이트 : https://www.lib.u-tokyo.ac.jp/ja/library/general/user-guide/outside/gakugai
운영시간 : 09:00 ~ 22:30 (토, 일은 오후 7시까지)


:: 중앙식당

야스다 강당 앞의 입구를 따라 지하로 이동하면 넓은 학생식당이 펼쳐진다. 꽤 넓은 편인데도 학기 중의 점심시간에는 학생들로 바글바글해서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다(너무 당연한 얘기이려나). 물론 학교 방문자도 여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지만, 학생들로 붐비는 시간 외에 이용이 가능하다. 



이런저런 반찬을 추가하다 보면 한 끼 식사가 1,000엔 가까이 되거나 넘기도 하다 보니 식사 가격은 한국의 대학교에 비해서는 저렴하진 않다. 그리고 나는 이 식당에서 유독 직원 어머님들로부터 자주 혼난 탓인지 애용하지는 않는다. 정수기에서 텀블러로 물을 받았다고 혼나고, 정수기 옆 세면대에서 텀블러를 헹궜다가 혼나고(안 되는 거였으면 미리 써 붙여 주시면 되는데…), 음식 계산을 하고서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에 계산한 거 맞냐고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물어온 적도 있고… 그렇게 맛있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은 데다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도 많지만, 아직까진 이 식당에서 두어 번 정도만 식사를 해봤으니 다음 학기에는 더욱 다양한 메뉴에 도전해 볼까 싶다.


+ ‘아카몬 라멘’이라는 빨간 국물의 라멘이 중앙식당의 대표 메뉴라는데, 먹어본 지인들은 하나같이 추천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쯤은 먹어볼 생각이다. 


운영시간 : 11:00 ~ 19:30 (토, 일은 오후 2시까지)


:: 생협



중앙식당 입구 옆에는 ‘생협(생활협동조합)’, 즉 매점이 자리하고 있다. 매장의 3분의 2는 편의점처럼 되어 있어 도시락이나 군것질거리, 문구류 등을 판매하고, 나머지 매대는 도쿄대학의 굿즈(기념품)를 판매한다. 펜이나 지우개부터 시작해서 후드, 티셔츠, 모자, 가방, 키링 등 굿즈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도쿄대 첫 등교 날, 들뜬 마음으로 학교 굿즈를 이것저것 구입했는데, 굿즈의 가격이 대부분 높은 편이다 보니 몇 개 안 골랐는데도 14만 원대라는 가격이 나왔다. 후드집업 6천 엔대, 마스코트 인형 2천 엔대, 타월 천 엔대… 특히, 지우개 하나가 600엔인 건 대체 무슨 이유일까…!


오른쪽 아래의 흰색 지우개는 200엔, 검은색 지우개는 600엔. 600엔짜리 지우개는 둘린 종이가 진짜 금이라면 인정…


도쿄대 솜인형 굿즈들. 첫 번째 사진의 세 마리는 지금까지 모은 것들이고, 오른쪽의 개구리와 양 인형은 도쿄대 축제의 마스코트 인형이다.
워낙 인기가 많아 아직 손에 넣지 못했기에 올해 축제 기간을 노리는 중이다.


운영시간 : 11:00 ~ 18:00 (일요일 휴무, 토요일은 오후 4시까지)


:: 편의점

도쿄대학이 로손 편의점과 유착 관계라도 있는 건지, 혼고 캠퍼스 안에는 로손 편의점만 네 군데가 있고, 세븐일레븐이나 패밀리마트는 없다. 사진의 두 군데 점포는 로손 간판에 도쿄대학 마크가 달려 있지만 여기서까지 학교 굿즈를 판매하지는 않는 것 같다. 가장 자주 이용하는 생협이 문을 닫았을 때, 대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 산시로노 이케

도쿄대는 캠퍼스 한복판에 작은 숲과 연못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연못은 ‘산시로노 이케(산시로의 연못)’로 불리며, 도쿄대학을 졸업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산시로」에도 등장한다. 


 “그리고, 이 나무와 물의 느낌이 말입니다. ㅡ 별 건 아니지만 어쨌든 도쿄 한복판에 있으니 ㅡ 조용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곳에 오지 않으면 저는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도쿄는 너무 시끄러워서 말이죠…” - 나쓰메 소세키, 「산시로」



이 구절처럼 이 연못과 작은 숲은 학생과 관광객이 오가는 활기찬 캠퍼스와는 사뭇 다른 풍경과 분위기를 선사한다. 산속에 들어온 것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고, 녹음이 우거진 풍경은 여기가 과연 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대학교 캠퍼스가 맞는지 의아하게 만든다. 도쿄대학의 부지가 원래 무사 가문의 부지였기에 이곳은 정원으로 조성되었던 것이고, 연못 주변의 기다란 나무들은 학교 설립 이전부터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공부를 하러 이곳에 왔다지만, 나는 공부가 하기 싫거나 딱히 할 게 없어서 이곳에 오곤 했다. 물속에 사람 종아리만 한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걸 지켜보고, 그 위로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을 받고, 나무들 아래로 징검다리를 건너며 연못가를 산책하고 있다 보면 아무래도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박물관

:: 도쿄대학 종합박물관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다양한 고고학 관련 전시물과 여러 층으로 나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니 자연사박물관’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입장료도, 학생증도 필요 없이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다. 입구로 들어서면 역사의 흔적을 담은 유물들이 펼쳐지고, 이어서 동물 박제, 사람과 동물의 뼈, 나비 표본 등 생물과 자연에 관한 전시물이 나타난다. 생물의 표본이나 고고학 자료를 공개적으로 보관하고 있기도 하며, 시설 안에 투명한 유리로 된 랩실이 있어 연구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운영시간 : 10:00 ~ 17:00 (토, 일 휴무)


:: 건강과 의학 박물관

‘건강과 의학 박물관’은 대학병원 바로 건너편에 있다. 어디선가 이 박물관에 문신이 가득한 인간 가죽이 보존되어 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주워들은 적이 있지만, 이 박물관이 아닌 건지 아니면 『문신 살인사건』이라는 소설 속 이야기인 건지, 사람 가죽 같은 건 전시되어 있지 않았다. 이곳은 도쿄대학 의학부의 설립 역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시작으로, 오래전 사용하던 수술 도구, 해골 모형, 장기 모형, 세균 모형, 음식 모형 등 박물관 이름대로 의학과 건강에 관한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이 풍부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처럼 도쿄대에 왔다면 종합박물관과 이 박물관에 잠시라도 둘러보는 걸 추천하고 싶다. 입구 앞에는 쉼터가 정갈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바로 근처에 카페도 있다. 



운영시간 : 10:00 ~ 17:00 (수요일 휴무)


*     *     *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교에 다니는 동안 틈틈이 수집한 캠퍼스의 풍경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문학부 건물의 학과 사무실 앞 풍경. 저 검고 묵은 때는 청소로 어떻게 안 되나 보다.
그래도 이런 게 싫진 않다. 검고 묵은 때가 꼭 세월의 축적 같아서, 그만큼 이 학교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클래식한 분위기의 캠퍼스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문학부 건물


자세히는 몰라도 학교 설립에 큰 공을 세우신 분들이 분명할 듯하다.
조만간 혼고 캠퍼스 안에 있는 모든 동상을 찾아내 한 분 한 분 자세히 살펴볼 생각이다.
누가 어떤 분인지보다는 동상의 두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관찰하기 위함이 목적이지만….


학생식당에 자리가 없으면 이 고목 근처 돌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곤 했다. 


학생 선수들의 힘찬 목소리와 공 차는 소리는 캠퍼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도쿄대학 병원 건물과 건너편 약국 간판. 간판 아래로 들어서면 의학과 건강 박물관 입구가 보인다.


해가 진 후 교내 풍경. 아카몬의 바로 안쪽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찍어보았다.




글·사진 | 이스안

키덜트 매거진 《토이크라우드》  편집장. 대학에서 조각과 일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일본에서 미학을 공부중이다. 여행, 호러 장르, 키덜트 문화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호러소설집 <기요틴> <카데바> <신체 조각 미술관>, 여행서 <도쿄 모노로그> <한국 인형박물관 답사기> 등이 있다.
https://www.instagram.com/sumomo.s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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