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학생의 도쿄대 여행][여행] 시부야 근처에 이런 곳이? 도쿄대 코마바 캠퍼스 투어

2025-05-23

도쿄대 유학하며 도쿄대 여행하기 #3



한국 대학교에서는 12월부터 2월까지의 방학을 통상 겨울방학(冬休み, 후유야스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보다 개강이 한 달씩 늦은 일본은 조금 다르다. 12월 말부터 1월 초, 2주 정도의 짧은 방학을 겨울방학이라고 하며, 1월 중순부터 3월까지의 방학은 봄방학(春休み, 하루야스미)이라고 한다. 


봄방학을 맞이하고 한동안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다, 3월 중순이 지나 도쿄로 돌아왔다. 일본의 대학교는 대부분 4월 둘째 주부터 새 학기가 시작되기에 4월 초에 일본에 들어왔어도 됐지만, 얼른 일본에서 사회생활도 하고 싶은 마음에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예정보다 빨리 입국했다.


학교에 소속되고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서로 의지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3월 24일은 그 중 한 명의 석사학위수여식이 있는 날이었다. 바로 며칠 전이 이 친구의 생일이기도 했고, 석사졸업 동시에 박사과정 진학도 축하할 겸 기숙사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네 명이 모여 도쿄대학 코마바 캠퍼스에서 축하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날씨가 흐려 조금 아쉬웠지만 비는 안 내려서 다행이었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 세 명은 코마바 캠퍼스로 통학하고 있지만, 나는 주로 혼고 캠퍼스에만 다니고 있기에 이 캠퍼스에 자주 오진 않는다. 기숙사에서는 코마바 캠퍼스가 혼고 캠퍼스보다 훨씬 더 가까워 가끔 시험 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오기는 했었다.



캠퍼스 탐방에 앞서 학교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1877년에 혼고 캠퍼스가 설립되고 그 다음 해인 1878년에 코마바 캠퍼스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코마바 캠퍼스 자리는 원래 쇼군 가문의 수렵장이었다가 메이지 시대부터 농학교가 들어섰다. 당시 농학교 건물은 모두 사라졌다. 제일고등학교도 이곳 코마바 캠퍼스로 이전해 와 전후 도쿄대학 소속으로 편입됐다.


곧고 기다란 나무로 가득한 코마바 캠퍼스. 종합박물관 앞에 자리한 나무는 정말 거대해서 얼마나 아득한 세월을 보내왔을지 가늠도 안 될 정도였다.


코마바 캠퍼스 탐방


게이오 이노카시라선 고마바토다이마에 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오면 바로 도쿄대학 코마바 캠퍼스의 정문이 보인다. 도쿄의 대표 번화가인 시부야에서 걸어서 15분 정도라 접근성이 좋다. 하지만 캠퍼스 안에 들어오면 왠지 도시 외곽에 위치한 캠퍼스의 차분한 느낌이 들고, 학교 주변에는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어 고요하다. 여기가 정말 시부야 근처가 맞나 싶을 정도다. 


코마바 캠퍼스 안내도


정문으로 들어서면 혼고 캠퍼스의 심볼인 야스다 강당과 비슷한 시계탑 건물이 보인다. 이 캠퍼스 또한 도쿄대라는 걸 증명하는 느낌이다. 코마다 캠퍼스는 학부 1~2학년생들이 세부 전공을 정하기 전에 다니게 되는 곳이며, 전공을 정한 후인 3~4학년이 되면 혼고캠퍼스에 다니게 된다. 그래서인지 코마바 캠퍼스 곳곳에는 신입생들을 맞이하기 위한 수많은 동아리 홍보 입간판들이 세워져 있었다.


코마바 캠퍼스 곳곳에 늘어서 있는 수많은 입간판들. 학생들의 어설프면서도 귀여운 그림 솜씨와 유머감각이 돋보인다. 


웃음이 피식 나올 만큼 어설프면서도 귀여운 입간판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중에도 동아리 홍보뿐만 아니라 정치나 학교에 대한 불만, 학생운동 구호 등 목소리를 높이는 입간판도 적지 않게 보였다. 학생들의 어떠어떠한 권리를 보장하라, 중국인 유학생을 차별하지 말라 등 다양한 외침들이 글자의 붓자국마다 꾹꾹 담겨 있었다. ‘있잖아, 알고 있니? 도쿄대생 5명 중 1명이 유급한대’ 라고 쓰여 있는 입간판은 어느 모임에서 만든 건지 궁금했다. 어떤 학생들이 만들었던 간에, 유급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한 목적일까...? 


캠퍼스 면적은 혼고 캠퍼스보다는 작게 느껴졌지만, 혼고 캠퍼스가 워낙 넓은 편이기에 이곳도 작게 느껴지진 않았다. 또, 여느 대학 캠퍼스처럼 신식 건물과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건물들이 혼재해 있었고, 곳곳이 공원처럼 되어 있어 반려견을 데리고 캠퍼스 안을 산책하는 동네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위)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신식 건물, (아래) 학생식당과 카페&레스토랑이 있는 건물


학생식당(위)과 학교 매점(우) 풍경. 매점 한쪽에 학교 굿즈 매대가 있다.


학생이나 교원이 심리상담을 받거나, 유학생들의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가 있는 건물.


교회 같은 강의실이 있던 건물. 학교 종합박물관 건물과 외관이 쌍둥이처럼 똑같다. 


혼고 캠퍼스의 ‘산시로노 이케’만큼 멋지고 고즈넉하게 조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코마바 캠퍼스에도 연못이 있긴 있다.
연못 건너편에는 주택가가 보인다.  연못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 두 마리도 보인다.


왼쪽이 도서관 건물이고, 건너편에는 캠퍼스 안에 있던 기술사 건물의 흔적 일부가 남아 있다.


도서관 내부


학교 종합박물관. 혼고캠퍼스의 박물관보다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PC를 사용할 수 있는 정보교육실 건물. 정문으로 향하는 길.


캠퍼스 후문 근처에 예쁜 꽃밭이 있었다.


코마바 캠퍼스 안에는 여러 개의 운동장이나 경기장이 있고, 그 개수가 혼고 캠퍼스보다 더 많다.


코마바 캠퍼스의 축제 – 코마바사이


매년 11월에 열리는 학교 축제 ‘코마바사이(駒場祭)’는 1년 중 캠퍼스가 가장 북적이는 날로, 인기 가수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인파가 몰린다. 내가 다니는 캠퍼스는 아니어도, 우리학교 축제인 만큼 직접 즐겨보고 싶었기에 축제 기간 중 중국인 동기 친구와 함께 코마바 캠퍼스로 향했다. 


캠퍼스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K-POP 음악소리에 이끌려 얼른 달려가 보니, K-POP 댄스 동아리 학생들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럽고 빛나 보였던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도쿄대학 한복판에서 한국 노래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고 있으니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젊은 활기로 가득 찬 코마바 축제 풍경


오랜만에 즐기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는 학생들의 젊음과 청춘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캠퍼스의 거리마다 다양한 음식과 간식거리를 판매하는 점포가 셀 수 없을 만큼 늘어서 있었고, 어딜 가나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학생들은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우렁찬 목소리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하나쯤은 사먹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타코야끼를, 친구는 삼겹살 꼬치를 골랐다. 


삼겹살 꼬치와 타코야끼


또, 교실마다 학생 밴드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고, (아마도) 천문학과에서는 직접 플라네타리움을 제작해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었지만 긴 대기 줄을 보고 결국 포기해야 했다. 정말 어딜 가나 사람으로 북적였다.


도쿄대학 마스코트 솜인형을 종류별로 모으고 있는 만큼 코마바 축제의 마스코트인 ‘코마케로’ 개구리 인형도 구하려 했지만 이미 모두 팔리고 없었다. 이렇게나 인기가 많을 줄이야. 아쉬운 마음에 매년 5월 혼고 캠퍼스에서 열리는 5월 축제(五月祭, 고가쯔사이)에서는 반드시 양 마스코트 인형을 손에 넣겠다고 다짐했다.


학생들의 공연, 아쉽게 손에 넣지 못한 마스코트


또 다른 캠퍼스 – 코마바2캠퍼스


코마바 캠퍼스 바로 근처에 또 다른 도쿄대학의 캠퍼스가 있다. 주로 이공계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다니는 캠퍼스로, 코마바2캠퍼스라고 불린다. 코마바 캠퍼스의 후문 중 한곳으로 나와 주택가의 골목을 조금 걸어가면 이 캠퍼스로 이어진다. 


코마바2캠퍼스 풍경


여느 캠퍼스와 마찬가지로 정문도 있고, 그 생김새는 조금 다르지만 정문 건너편에 도쿄대의 상징인 시계탑도 보인다. 이곳은 코마바 캠퍼스보다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어엿한 대학교 캠퍼스 느낌이 났다. 조금 더 외곽 지역이나 지방 캠퍼스 느낌도 나서 코마바 캠퍼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이곳에서도 졸업복을 입고 가족들과 사진을 찍는 졸업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서로 거리가 인접한 만큼, 이 캠퍼스에 다니는 학생들도 더 큰 규모의 식당이나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코마바 캠퍼스에 자주 드나든다고 한다. 하지만 코마바 1캠의 학생은 특별한 목적이 없는 이상 이곳에 오는 일이 드물기에 아무래도 한산한 편이다. 


코마바2캠퍼스 후문 초입에 위치한 기숙사 건물


시부야에서의 축하 파티


축하와 기념촬영, 캠퍼스 구경을 마친 후 친구들과 시부야로 향했다. 멋진 졸업복을 입은 친구가 부러우면서도 자랑스러워서 일부로 졸업복은 벗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시부야의 사이제리야(대중적이고 저렴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와인잔을 부딪혔다.


“석사학위 수여랑, 박사과정 진학이랑, 생일 축하해!”


오늘 석사학위를 수여받은 99년생 친구는 삼수를 해서 도쿄대에 들어온 악바리다. 이공계이면서 종종 갑작스럽게 유창하게 성악을 부르고, 은근히 그림도 잘 그린다. 또, 일본의 연예인이나 MZ 세대의 신조어를 거의 모르는 조금 독특한 친구이기도 하다. 이 친구는 이대로 열심히만 한다면, 그리고 운이 따라준다면 4년 안에 조교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의 졸업복을 빌려입고 신난 나. 나도 과연 이 옷을 입을 날이 올까?(참고로 이 졸업복은 대여비가 한화로 20만 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도쿄대 박사과정을 잠시 쉬고, 올 가을부터 뉴욕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다고 한다. 다른 한 명도 박사과정 졸업까지 열심히 노력중이다. 올해 친구 한 명은 미국으로 떠나야 하고,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기숙사에서 나와야 한다. 우리 네 명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기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진달까. 


저녁의 정문 풍경과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한 고마바토다이마에 역


그러고 보니 나를 제외하고 친구 세 명 모두 이제 박사과정이다. 아직도 갈 길이 먼 나는 내 코가 석자지만, 어느새 가족 같은 사이가 된 내 친구들의 앞날에 행운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


오늘은 괜히 나까지 무척 신나는 날이었다.


친구들과 시부야 길거리 한복판에서




글·사진 | 이스안

키덜트 매거진 《토이크라우드》  편집장. 대학에서 조각과 일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일본에서 미학을 공부중이다. 여행, 호러 장르, 키덜트 문화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호러소설집 <기요틴> <카데바> <신체 조각 미술관>, 여행서 <도쿄 모노로그> <한국 인형박물관 답사기> 등이 있다.
https://www.instagram.com/sumomo.s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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