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니즘, 일상에서 즐기는 일본 문화 여행 #4
2024년 10월의 도쿄.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은 모네의 정원이 되었다. 여기저기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빛나는 그림들은 모네가 정원사 화가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2024년 10월 5일부터 2025년 2월 11일까지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열린 <만년의 모네>전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의 모네전. 미술관을 정원으로 만들어 준 그림 식물들
모네에게는 미술과 정원 사이에 경계가 없다. 모네의 그림은 ‘그리다’보다는 ‘가꾸다’라는 동사가 더 잘 어울린다. 실제로 모네는 뛰어난 화가이기 이전에 훌륭한 정원사였다.
나는 작은 선인장 하나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인간이지만, 일본학도이자 자포니즘 연구가 입장에서 모네의 정원이 유독 끌린다. 그 이유는 모네의 정원에는 ‘일본식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식 정원과 우키요에 컬렉션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미니 지베르니’, 『인상파 모네 : 꽃의 정원, 물의 정원』
『인상파 모네 : 꽃의 정원, 물의 정원』을 펼치면 내가 처음으로 모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그림인 일본식 다리가 놓인 연작이 눈앞에 나타난다. 모네의 <수련>은 우키요에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일본식 다리처럼 일본풍이 주제가 등장하고 연작이라는 점에서 우키요에와 통하며, 구도와 원근법도 우키요에의 스타일이다. 모네의 <수련>은 고흐의 <탕기 영감의 초상>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미술 기법으로 재해석된 우키요에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인상파 모네 : 꽃의 정원, 물의 정원』에는 모네가 수집한 우키요에 컬렉션이 소개되어 있다. 지베르니 모네의 집 안에 있는 식당 벽은 우키요에로만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모네 자신의 그림도, 다른 화가의 그림도 없다. 오직 우키요에만 있다.
나 역시 우키요에를 엽서와 팜플렛 형태로 수집하고 있다. 우키요에 앞에서 나와 모네는 일본이라는 타국의 예술에 똑같이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는 외국인이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모네가 역시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우키요에 수집품 일부. 이 중에서 모네가 수집한 우키요에와 겹치는 것도 있다.
나와 모네의 우키요에 수집품 중에서 겹치는 것은 세 작품이다.
먼저, 히로시게의 《명소에도백경(名所江戸百景)》 연작 중 하나인 <아사쿠사의 논과 도리노마치 제례(浅草田圃酉の町詣)>다. 유녀의 방에 있는 고양이가 창가에서 저 멀리 신사의 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림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모네는 우키요에로만 장식한 식당 벽면 아래에 노란색 장식장을 설치했고 그 위에 도기로 만들어진 하얀색 고양이 인형을 핑크색 쿠션 위에 살포시 얹어 놓았다.
<아사쿠사의 논과 도리노마치 제례(浅草田圃酉の町詣)>
그 다음으로 겹치는 우키요에는 히로시게의 또 다른 《명소에도백경(名所江戸百景)》에 속하는 <후카가와 스사키 십만평(名所江戸百景 深川洲崎十万坪)>이다.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커다란 매의 시선에서 바라 본 에도의 습지 후카가와의 겨울 풍경을 그린 것이다.
<후카가와 스사키 십만평(名所江戸百景 深川洲崎十万坪)>
마지막으로 겹치는 우키요에는 너무나 유명한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神奈川沖浪裏)>.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神奈川沖浪裏)>
이렇게 모네, 나아가 인상파 화가들을 있게 한 우키요에는 일본에서는 에도시대(1603년~1867년)에 유행했다. 19세기의 모네 그림이 21세기의 도쿄에서 전시되었으니 모네는 타임머신을 타고 에도의 미래 거리를 걸은 셈이다.
* * *
일본은 외국인들에게 어떤 이미지의 일본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 할까? 여러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내가 선택한 대답은 ‘에도 시대’다. 그건 일본의 주요 관문 중 하나인 도쿄 하네다 공항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네다 공항의 출국장에는 오늘의 도쿄가 만든 어제의 에도 거리가 있다. 도쿄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갈 때 왜 아쉽지 않고 즐거운가 했더니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의 눈과 머리로 하네다 공항의 에도 거리를 걸을 생각 때문이었다. 어느 나라든 공항은 외국인들에게 자국이 내세우고 싶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공간인 것이다.
하네다 공항 안에서 걸을 수 있는 에도 거리. 인상파 화가들이 부활했다면 여기서 생생한 영감을 받아 새로운 명작을 그려냈을 것 같다.
2025년 새해를 맞아 방영된 NHK 대하드라마 <베라보 ~츠타쥬 영화의 꿈 이야기(べらぼう~蔦重栄華乃夢噺)>도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에도 시대에 활약한 출판계의 왕 ‘츠타야 주자부로’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당시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의 삽화 책과 우키요에 목판화를 제작한 장본인이다. 동시에 2025년 1월부터 NHK 스페셜이 <신자포니즘>을 조명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던 셈이다. <신자포니즘>에서 다뤄진 망가는 우키요에의 역사와도 관련 있는 일본 문화다
NHK와 하네다 공항이 ‘에도’를 내세우고 일본의 기념품 가게에서 우키요에가 프린트 된 굿즈를 꼭 판매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이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판매하고 싶은 ‘일본스러움’은 에도에 있다.

순간 하네다 공항이 아니라 아사쿠사에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에도 시대 풍경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에도관과 에도 거리, 그리고 최첨단 비행기와 항공 및 보안 기술이 공존하는 21세기 하네다 공항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외국인들에게도 매력적인 관광지로 보이는 일본의 축소판이다. 만약 모네, 고흐, 모네, 로트레크, 고갱 등의 인상파 화가들이 하네다 공항에 왔다면 에도 분위기 물씬 풍기는 우키요에와 그 굿즈 앞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 것 같다.

우키요에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풍경이 하네다 공항 안에 있었다. 모네도 다른 인상파 화가들처럼 여기에 서 있었다면 스케치를 펼쳤을 것 같다.
에도 거리를 눈과 다리에 충분히 각인했다면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 형태로 ‘에도’를 구입하는 것도 좋겠다.


하네다 공항의 기념품점은 ‘에도’를 적극 내세운다. 이곳에선 부채를 팔기도 하는데 모네가 반가워했을 코너다.
모네라면 부채를 파는 코너에 맨 먼저 멈춰서서 아내 카미유에게 선물할 부채를 골랐을 것 같다. 모네의 일본 취미(자포니즘)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라 자포네즈(La Japonaise)>는 프랑스어로 ‘일본 여인’이라는 뜻이다. 이 그림은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1876년에 모네가 그린 이 그림에서 아내 카미유는 기모노 차림에 일본의 쥘부채를 들고 포즈를 취한다. 카미유 뒤에 있는 벽은 우키요에가 그려진 둥글부채들로 장식되어 있다.
모네가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유명한 그림 <라 자포네즈>
모네의 마음을 대신해 일본의 쥘 부채와 우키요에 엽서를 구입한다. 역시 여행의 즐거움은 보고 사는 것에 있으니까. 하네다 공항의 ‘에도’ 기념품점은 21세기판 파리 만국박람회나 다름없다.
우키요에가 프린트된 의상을 판매하는 가게
글·사진 | 이주영

프랑스어와 일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를 활용해 다언어 일본학도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 집필진의 공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시리즈에서는 2021년부터 매년 자포니즘 연구가 타이틀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자포니즘 테마로 NHK 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 <하나카페>와 영어 방송 <Friends Around The World> 에 출연했다. 최근 역서로는 프랑스 소설 『할복』과 일본 도서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윤리경영 리더십』이 있다.
자포니즘, 일상에서 즐기는 일본 문화 여행 #4
2024년 10월의 도쿄.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은 모네의 정원이 되었다. 여기저기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빛나는 그림들은 모네가 정원사 화가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2024년 10월 5일부터 2025년 2월 11일까지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열린 <만년의 모네>전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의 모네전. 미술관을 정원으로 만들어 준 그림 식물들
모네에게는 미술과 정원 사이에 경계가 없다. 모네의 그림은 ‘그리다’보다는 ‘가꾸다’라는 동사가 더 잘 어울린다. 실제로 모네는 뛰어난 화가이기 이전에 훌륭한 정원사였다.
나는 작은 선인장 하나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인간이지만, 일본학도이자 자포니즘 연구가 입장에서 모네의 정원이 유독 끌린다. 그 이유는 모네의 정원에는 ‘일본식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식 정원과 우키요에 컬렉션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미니 지베르니’, 『인상파 모네 : 꽃의 정원, 물의 정원』
『인상파 모네 : 꽃의 정원, 물의 정원』을 펼치면 내가 처음으로 모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그림인 일본식 다리가 놓인 연작이 눈앞에 나타난다. 모네의 <수련>은 우키요에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일본식 다리처럼 일본풍이 주제가 등장하고 연작이라는 점에서 우키요에와 통하며, 구도와 원근법도 우키요에의 스타일이다. 모네의 <수련>은 고흐의 <탕기 영감의 초상>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미술 기법으로 재해석된 우키요에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인상파 모네 : 꽃의 정원, 물의 정원』에는 모네가 수집한 우키요에 컬렉션이 소개되어 있다. 지베르니 모네의 집 안에 있는 식당 벽은 우키요에로만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모네 자신의 그림도, 다른 화가의 그림도 없다. 오직 우키요에만 있다.
나 역시 우키요에를 엽서와 팜플렛 형태로 수집하고 있다. 우키요에 앞에서 나와 모네는 일본이라는 타국의 예술에 똑같이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는 외국인이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모네가 역시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우키요에 수집품 일부. 이 중에서 모네가 수집한 우키요에와 겹치는 것도 있다.
나와 모네의 우키요에 수집품 중에서 겹치는 것은 세 작품이다.
먼저, 히로시게의 《명소에도백경(名所江戸百景)》 연작 중 하나인 <아사쿠사의 논과 도리노마치 제례(浅草田圃酉の町詣)>다. 유녀의 방에 있는 고양이가 창가에서 저 멀리 신사의 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림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모네는 우키요에로만 장식한 식당 벽면 아래에 노란색 장식장을 설치했고 그 위에 도기로 만들어진 하얀색 고양이 인형을 핑크색 쿠션 위에 살포시 얹어 놓았다.
그 다음으로 겹치는 우키요에는 히로시게의 또 다른 《명소에도백경(名所江戸百景)》에 속하는 <후카가와 스사키 십만평(名所江戸百景 深川洲崎十万坪)>이다.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커다란 매의 시선에서 바라 본 에도의 습지 후카가와의 겨울 풍경을 그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겹치는 우키요에는 너무나 유명한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神奈川沖浪裏)>.
이렇게 모네, 나아가 인상파 화가들을 있게 한 우키요에는 일본에서는 에도시대(1603년~1867년)에 유행했다. 19세기의 모네 그림이 21세기의 도쿄에서 전시되었으니 모네는 타임머신을 타고 에도의 미래 거리를 걸은 셈이다.
* * *
일본은 외국인들에게 어떤 이미지의 일본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 할까? 여러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내가 선택한 대답은 ‘에도 시대’다. 그건 일본의 주요 관문 중 하나인 도쿄 하네다 공항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네다 공항의 출국장에는 오늘의 도쿄가 만든 어제의 에도 거리가 있다. 도쿄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갈 때 왜 아쉽지 않고 즐거운가 했더니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의 눈과 머리로 하네다 공항의 에도 거리를 걸을 생각 때문이었다. 어느 나라든 공항은 외국인들에게 자국이 내세우고 싶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공간인 것이다.
2025년 새해를 맞아 방영된 NHK 대하드라마 <베라보 ~츠타쥬 영화의 꿈 이야기(べらぼう~蔦重栄華乃夢噺)>도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에도 시대에 활약한 출판계의 왕 ‘츠타야 주자부로’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당시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의 삽화 책과 우키요에 목판화를 제작한 장본인이다. 동시에 2025년 1월부터 NHK 스페셜이 <신자포니즘>을 조명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던 셈이다. <신자포니즘>에서 다뤄진 망가는 우키요에의 역사와도 관련 있는 일본 문화다
NHK와 하네다 공항이 ‘에도’를 내세우고 일본의 기념품 가게에서 우키요에가 프린트 된 굿즈를 꼭 판매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이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판매하고 싶은 ‘일본스러움’은 에도에 있다.
순간 하네다 공항이 아니라 아사쿠사에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에도 시대 풍경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에도관과 에도 거리, 그리고 최첨단 비행기와 항공 및 보안 기술이 공존하는 21세기 하네다 공항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외국인들에게도 매력적인 관광지로 보이는 일본의 축소판이다. 만약 모네, 고흐, 모네, 로트레크, 고갱 등의 인상파 화가들이 하네다 공항에 왔다면 에도 분위기 물씬 풍기는 우키요에와 그 굿즈 앞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 것 같다.
우키요에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풍경이 하네다 공항 안에 있었다. 모네도 다른 인상파 화가들처럼 여기에 서 있었다면 스케치를 펼쳤을 것 같다.
에도 거리를 눈과 다리에 충분히 각인했다면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 형태로 ‘에도’를 구입하는 것도 좋겠다.
하네다 공항의 기념품점은 ‘에도’를 적극 내세운다. 이곳에선 부채를 팔기도 하는데 모네가 반가워했을 코너다.
모네라면 부채를 파는 코너에 맨 먼저 멈춰서서 아내 카미유에게 선물할 부채를 골랐을 것 같다. 모네의 일본 취미(자포니즘)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라 자포네즈(La Japonaise)>는 프랑스어로 ‘일본 여인’이라는 뜻이다. 이 그림은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1876년에 모네가 그린 이 그림에서 아내 카미유는 기모노 차림에 일본의 쥘부채를 들고 포즈를 취한다. 카미유 뒤에 있는 벽은 우키요에가 그려진 둥글부채들로 장식되어 있다.
모네의 마음을 대신해 일본의 쥘 부채와 우키요에 엽서를 구입한다. 역시 여행의 즐거움은 보고 사는 것에 있으니까. 하네다 공항의 ‘에도’ 기념품점은 21세기판 파리 만국박람회나 다름없다.
글·사진 | 이주영
프랑스어와 일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를 활용해 다언어 일본학도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 집필진의 공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시리즈에서는 2021년부터 매년 자포니즘 연구가 타이틀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자포니즘 테마로 NHK 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 <하나카페>와 영어 방송 <Friends Around The World> 에 출연했다. 최근 역서로는 프랑스 소설 『할복』과 일본 도서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윤리경영 리더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