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여행] 셩완의 고흐 스트리트, 과연 장국영과 양조위는 만났을까 #2

2025-07-15

:: 셩완의 고흐 스트리트, 과연 장국영과 양조위는 만났을까 #1 먼저 읽기


9e0cdcd7beba8.jpg고흐 스트리트에서 | ⓒ강병무


<류맹의생>에서 ‘등용 스트리트’라는 이름으로 빈민가 혹은 홍등가로 등장한 곳은 바로 셩완 지역의 고흐 스트리트(Gough Street)다. 사실 홍콩에 한두 번 가본 이들이라면, 무슨 영화인지 모르고 <류망의생> 양조위 짤을 쓴 것처럼, 분명 무심코 지나친 곳이다. 왜냐하면 여러 홍콩 가이드북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양조위 맛집’으로 소개된 카우키 누들 레스토랑(九記牛腩) 누들집과, 모 여행 프로그램에서 ‘백종원 토마토 누들’로 유명한 홍콩 대표하는 다이파이동(노천식당)인 싱흥유엔(勝香園)이 마주 보고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류맹의생> 촬영 당시 현장 사진들을 보면, 아무래도 촬영지 그 자체였기에 양조위를 비롯한 제작진이 카우키와 싱흥유엔에서 종종 식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카우키에서 양조위를 만났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지만 이런 이유로 양조위 맛집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싱흥유엔에서는 실제로 여러 장면들이 촬영되긴 했다. 


2f29a68ca8883.jpg<유성어>의 장국영 집 앞에서, 영화 장면과 대조하는 모습 | ⓒ강병무


싱흥유엔 위 계단으로 조금 올라가면 장국영의 <유성어>(1999)에서, 그가 살던 집 ‘Mee Lun House’가 있다. 철제 대문에 붉은 벽돌로 테두리가 있는 집이다.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홍콩영화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유성어>는 처음으로 장국영의 아버지(?)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아끼는 영화다. 홍콩을 덮친 금융 대란으로 큰 손해를 본 증권 매니저 이조락(장국영)은 빈털터리가 된 상황에서 우연히 버림받은 아이를 키우게 된다. 부모가 나타날 때까지 잠시 아이를 맡을 생각이었지만 어느덧 5년의 시간이 흐른다. 비록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두 사람은 친아빠와 아들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마찬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아이의 친엄마가 나타나게 된다. <유성어>는 버림받은 아이(재키 쿠건)를 우연히 발견하여 키우며 함께 살아가는 떠돌이(찰리 채플린)의 이야기인, 찰리 채플린의 1921년 영화 <키드>(The Kid)를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 실제로 <유성어>의 영어 제목도 <The Kid>다.


a29ebf79c7bc8.png영화 <유성어> 포스터


<유성어>는 장국영이 홍콩 달러로 1달러만 받고 출연한 영화로 유명한데, 장지량 감독은 당시 아시아 금융 위기의 영향으로 비관적인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홍콩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홍콩 영화시장도 불황이었기에 그는 장동조, 왕가위 감독 등 20명의 홍콩 감독들과 ‘창의연맹’을 발족하고 배우들의 개런티와 제작비를 낮추는 캠페인도 벌였다. 장국영도 이러한 취지에 공감했고, 서류상의 계약금이 필요했기에 상징적으로 1달러만 받았던 것. 이후 장지량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저예산 독립영화나 다름없는 <유성어>에 사실상 노 개런티로 출연한 장국영에게 정말 고마웠다. 그는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해준 제작자나 다름없다”며 “배우로서도 그는 이전에 해보지 못했던 하층민의 아버지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고, 홍보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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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성어> 중에서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스쳤다면 우리의 인연도 달라졌을까?” 왕가위 감독의 <2046>(2004)에서 호텔방 2046호에 머무르며,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 준다는 미래도시 2046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주선생(양조위)은 이렇게 말했다. 문득 <류맹의생>의 유문과 <유성어>의 이조락은 고흐 스트리트에서 혹시라도 스쳐 지나진 척 없을까, 싱흥유엔의 옆자리에 우연히 합석해 식사라도 한 적 없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게 됐다. <유성어>의 장국영은 아이가 아플 때 <류맹의생>의 양조위를 찾아갔겠지, 하는 생각도 물론이다. 그처럼 고흐 스트리트는 가장 껄렁한 양조위와 가장 점잖은 장국영의 영화가 마주 보고 있는 거리다. 이상 홍콩영화 과몰입자의 상상에 불과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바로 여기에 내가 홍콩을 사랑하는 이유가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이 홍콩을 두고 좁다고 얘기하지만, 영화와 함께라면 홍콩은 세상 그 어디보다 넓은 곳이다.


dd035b3cdb0a0.jpg강병무




글 | 주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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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편집장. 유튜브 무비건조. 돌아온 방구석1열 출연. 키노 씨네필 프로젝트 참여. 저서로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데뷔의 순간>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등이 있다.
https://www.instagram.com/woofordto/


사진 | 강병무
https://www.instagram.com/saram.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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