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 이어 도쿄대학교 미타카 기숙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미타카 기숙사에 살면서 여러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기숙사가 궁금한 사람이나 기숙사 생활 자체가 궁금한 사람에게 흥미로웠으면 좋겠다.
미타카 기숙사 TMI
입주자 구성 : 약 70% 일본 학생(남성 80% / 여성 20%) + 약 30% 외국 유학생
월세가 워낙 저렴하다 보니 생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지내는 기숙사로 알려져 있기도…
메인 캠퍼스인 혼고캠퍼스까지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20분 남짓, 시부야 근처의 코마바캠퍼스까지는 1시간 남짓 소요된다. 혼고캠퍼스에서 수업을 듣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침 수업을 패스한 경우가 적지 않다. 수업 시작 2시간 전에 일어나도 명백한 지각이다.
기숙사가 있는 부지는 오래전부터 도쿄대학이 소유하고 있던 곳으로, 결국 비어 있던 땅을 기숙사 시설로 활용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또, 이곳이 70년대에 지어졌다는 설도 90년대에 지어졌다는 설도 있는데 뭐가 확실한지는….
기숙사 건물동이 여러 개인 만큼 방도 600호실이 넘을 정도로 많은데, 공실률은 절반 정도라고 한다. 그 빈방들을 활용하지 않는 이유는 대체 뭘까?
기숙사 입주 시 입주 등록 & 청소 비용 등의 명목으로 6만 엔을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몇 달만 살든 5년 이상을 살든 이 비용은 동일하고, 반환되지 않는다.
석사 이상의 학생이 이 기숙사에 거주하려면 무급으로 위원회 일을 해야 한다. 이 기숙사는 원래 학부생과 유학생들을 위한 곳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나와 같은 석사연구생은 1년까지 거주 가능, 학부생은 2년까지만 거주 가능, 박사생은 5년까지 거주 가능하다.
방세 4,700엔, 기본 광열비 3,000엔대, 학생 교류비 100엔 등 월마다 총 9천 엔이 조금 안 되는 기본료가 청구된다. 매달 1만 엔 씩 기숙사 이용료를 현금으로 입금하고 있고, 여름이나 겨울에 에어컨이나 히터를 자주 틀면 월 총 사용료가 1만 엔이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날씨가 선선한 시기에는 9천 엔도 안 나갈 때가 있다.
여름에는 밖보다 방안이 더 덥고, 겨울에는 밖보다 방안이 더 춥다. 일본의 집들은 대부분 이렇다고 한다.
한두 달에 한 번씩 기숙사 학생들이 모이는 이벤트가 개최된다. 시기에 따라 신입생 환영회, 할로윈 파티, 바비큐 파티, 신년맞이 파티, 불꽃놀이, 송별회 등을 진행한다.
어느 학생이 이 기숙사에서 어머니와 1년 정도를 함께 살았다는 얘기가 있다. 이 좁은 방에서 대체 어떻게…?
밤 10시가 되면 경비원이 출입구 문을 잠근다. 그 이후에 귀가하게 되면 비밀번호를 누르면 된다.
장마 기간이 끝난 직후에는 기숙사 부지의 아스팔트 땅 모든 곳이 지렁이로 드글드글하다. 흡사 지렁이 무덤을 걷는 것 같아서 피하며 다니느라 애를 먹는다. 기숙사 곳곳에 나무나 잔디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기숙사 출입구 바로 옆에 체인을 걸어두지 않고 자전거를 세워두었다가 도둑맞은 적이 있다. 결국 경찰이 찾아주었고, 자전거는 기숙사 근처 체육관의 자전거 주차장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기숙사에서 자전거를 도둑맞는 일이 곧잘 발생한다고 하니, 일본에도 자전거도둑이 참 많은가 보다. (결국 범인은 못 잡았다.)
기숙사 월세가 워낙 저렴하니, 어떻게든 더 지내고 싶은 마음에 학교 측에 주거 연장을 호소하는 글을 보내봤지만 예상대로 반려 당했다. 나처럼 이렇게 호소문을 올린 학생들이 여럿 있다고 들었지만, 다들 거절당했다고… 학교 규칙은 역시 엄격하다.
기숙사 공용동에서는 한두 달에 한 번씩 거주 학생들을 위한 파티나 네트워킹이 개최된다.
기숙사 행사 중에서 일본 전통 놀이나 서예 체험도 했다. 왼쪽은 전통 놀이 도구인 하고이타, 오른쪽은 일본 친구들이 써준 내 이름과 ‘인형’ 한자.
기숙사 친구들과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모여서 식사 자리를 가진다.
(왼) 기숙사 부지에는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오) 부지 안에 있는 테니스장
밤의 기숙사 풍경
미타카 기숙사 주변에는 무엇이 있을까?
미타카 기숙사는 키치죠지 역과 미타카 역에서 3km가량 떨어져 있는, 좀 애매한 곳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전철역까지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이용해야 한다. 자전거가 고장난 뒤로는 날씨가 선선할 때나 시간적으로 여유로울 땐 곧잘 키치죠지 역까지 걸어 다니곤 하는데, 내 걸음이 빠른 편인데도 40분 정도 소요된다. 키치죠지는 오리배로 유명한 이노카시라 공원과 지브리 미술관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예쁜 카페나 가게가 많아 도쿄의 관광지 중 하나이자 살고 싶은 동네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도쿄 도내는 아니지만, 세타가야구 바로 옆에 위치한 지역이라 도쿄 시내에서 그리 멀다고 할 수도 없다. JR키치죠지 역에서 츄오(중앙)선 급행을 타면 신주쿠 역까지 15분, 도쿄 역까지 30분 정도가 소요되기에 교통편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기숙사는 역에서 거리가 조금 있는 만큼, 근처에는 뭐가 거의 없다. 기숙사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 것도, 편의점이 있는 것도, 마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곳들이 조금 걸어가야 있다. 그나마 편의점 두 군데는 3~400m 이내에 있긴 하다. 내가 가장 자주 다니는 동네 식당은 가스토(대중적인 패밀리 레스토랑), 쿠라즈시(회전초밥집) 이렇게 두 군데가 있는데 각각 300m, 700m 거리에 있다.
미타카 기숙사 주변 지도 | 구글지도
가장 가까운 중고물품 판매점(트레져팩토리)은 750m 거리, 맥도날드는 1.2km, 다이소는 1.3km, 돈키호테와 2nd street(중고 의류, 잡화 판매점)는 1.5km, 북오프(중고서점으로 장난감이나 피규어도 판매)는 1.8km, 이노카시라 공원 초입은 1.6km 거리. 이렇게 써 두니 주변에 이것저것 많아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지내보면 도쿄 시내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시내에서는 바로 코앞이나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편의점, 식당, 100엔샵, 카페 등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또, 기숙사 근처에 영 달갑지 않은 게 하나 있는데, 바로 높은 굴뚝이다. 종종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걸 보면 이 시설은 소각장이고 무언가를 태우고 있다는 건데, 이게 기숙사에서 불과 5~600m 거리에 있다 보니 연기를 볼 때마다 기분이 영 찝찝하다. 그래도 이 굴뚝 높이가 웬만한 타워 높이인 만큼, 이 동네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어딘가를 다녀와서 굴뚝이 보이면, 아 이제 얼추 다 왔구나 하는 것처럼….
미타카시에 위치한 천명반전주택
그러고 보니, 옆 동네(기숙사에서 2.5km 거리)에 독특한 디자인의 주택인 ‘천명반전주택’이라는 곳이 있다. 주택 디자인이 알록달록하면서 정말 독보적인데, ‘그 안에서 생활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한다. 한가한 동네에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게 좀 뜬금없긴 하지만, 워낙 독특한 디자인이다 보니 일본 내에서 나름 유명한 건물이라고 한다.
도쿄대 메지로다이 기숙사
학과 동기가 살고 있는 메지로다이 기숙사에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기숙사 또한 도쿄대 기숙사다. 이곳은 도쿄대 혼고캠퍼스와 이케부쿠로 역 사이에 위치해있다. 시설은 미타카 기숙사에 비해 신식이고 훨씬 깨끗하지만, 가장 저렴한 방이 월세+공과금이 월 8만 엔대라서 대학 기숙사 치고 비싼 편이다. (기본 월세가 5만 원대, 광열비는 실컷 써도 되는 대신 월 3만 엔 정도)
메지로다이 기숙사
방도 미타카 기숙사보다 더 좁다. 침대와 책상 말고는 물건을 둘 곳이 거의 없다. 발코니와 세면대는 있지만 방 안에 화장실과 욕실도, 씽크대도 인덕션도 없다. 여기에 살던 친구는 결국 1년도 채우지 않고 나와서 자취방을 구했다.
메지로다이 기숙사의 복도와 방
* * *
이 글을 쓰고 있는 7월의 지금, 나는 앞으로 두 달 안에 새로운 집을 구하고 이 기숙사에서 나와야 한다. 아무것도 없던 빈 방에 처음 들어오던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언제 생각해도 시간은 야속할 만큼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긴 하지만, 또 다른 공간에서 다시 새로운 일상을 보낼 기회라고 생각하며, 이 쫓겨남(?)을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 그렇게 이 미타카 기숙사는 한동안 나를 품어주었던, 내 삶 속 추억의 공간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한때 살았던 곳은 마음의 고향이 되고, 이렇게 고향이 하나씩 늘어간다.
직접 촬영한 기숙사 방 소개 영상
글·사진 | 이스안
키덜트 매거진 《토이크라우드》 편집장. 대학에서 조각과 일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일본에서 미학을 공부중이다. 여행, 호러 장르, 키덜트 문화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호러소설집 <기요틴> <카데바> <신체 조각 미술관>, 여행서 <도쿄 모노로그> <한국 인형박물관 답사기> 등이 있다. https://www.instagram.com/sumomo.suan
도쿄대 유학하며 도쿄대 여행하기 #6
지난 편에 이어 도쿄대학교 미타카 기숙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미타카 기숙사에 살면서 여러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기숙사가 궁금한 사람이나 기숙사 생활 자체가 궁금한 사람에게 흥미로웠으면 좋겠다.
미타카 기숙사 TMI
기숙사 공용동에서는 한두 달에 한 번씩 거주 학생들을 위한 파티나 네트워킹이 개최된다.
기숙사 행사 중에서 일본 전통 놀이나 서예 체험도 했다. 왼쪽은 전통 놀이 도구인 하고이타, 오른쪽은 일본 친구들이 써준 내 이름과 ‘인형’ 한자.
기숙사 친구들과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모여서 식사 자리를 가진다.
(왼) 기숙사 부지에는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오) 부지 안에 있는 테니스장
밤의 기숙사 풍경
미타카 기숙사 주변에는 무엇이 있을까?
미타카 기숙사는 키치죠지 역과 미타카 역에서 3km가량 떨어져 있는, 좀 애매한 곳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전철역까지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이용해야 한다. 자전거가 고장난 뒤로는 날씨가 선선할 때나 시간적으로 여유로울 땐 곧잘 키치죠지 역까지 걸어 다니곤 하는데, 내 걸음이 빠른 편인데도 40분 정도 소요된다. 키치죠지는 오리배로 유명한 이노카시라 공원과 지브리 미술관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예쁜 카페나 가게가 많아 도쿄의 관광지 중 하나이자 살고 싶은 동네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도쿄 도내는 아니지만, 세타가야구 바로 옆에 위치한 지역이라 도쿄 시내에서 그리 멀다고 할 수도 없다. JR키치죠지 역에서 츄오(중앙)선 급행을 타면 신주쿠 역까지 15분, 도쿄 역까지 30분 정도가 소요되기에 교통편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기숙사는 역에서 거리가 조금 있는 만큼, 근처에는 뭐가 거의 없다. 기숙사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 것도, 편의점이 있는 것도, 마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곳들이 조금 걸어가야 있다. 그나마 편의점 두 군데는 3~400m 이내에 있긴 하다. 내가 가장 자주 다니는 동네 식당은 가스토(대중적인 패밀리 레스토랑), 쿠라즈시(회전초밥집) 이렇게 두 군데가 있는데 각각 300m, 700m 거리에 있다.
가장 가까운 중고물품 판매점(트레져팩토리)은 750m 거리, 맥도날드는 1.2km, 다이소는 1.3km, 돈키호테와 2nd street(중고 의류, 잡화 판매점)는 1.5km, 북오프(중고서점으로 장난감이나 피규어도 판매)는 1.8km, 이노카시라 공원 초입은 1.6km 거리. 이렇게 써 두니 주변에 이것저것 많아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지내보면 도쿄 시내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시내에서는 바로 코앞이나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편의점, 식당, 100엔샵, 카페 등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또, 기숙사 근처에 영 달갑지 않은 게 하나 있는데, 바로 높은 굴뚝이다. 종종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걸 보면 이 시설은 소각장이고 무언가를 태우고 있다는 건데, 이게 기숙사에서 불과 5~600m 거리에 있다 보니 연기를 볼 때마다 기분이 영 찝찝하다. 그래도 이 굴뚝 높이가 웬만한 타워 높이인 만큼, 이 동네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어딘가를 다녀와서 굴뚝이 보이면, 아 이제 얼추 다 왔구나 하는 것처럼….
미타카시에 위치한 천명반전주택
그러고 보니, 옆 동네(기숙사에서 2.5km 거리)에 독특한 디자인의 주택인 ‘천명반전주택’이라는 곳이 있다. 주택 디자인이 알록달록하면서 정말 독보적인데, ‘그 안에서 생활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한다. 한가한 동네에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게 좀 뜬금없긴 하지만, 워낙 독특한 디자인이다 보니 일본 내에서 나름 유명한 건물이라고 한다.
도쿄대 메지로다이 기숙사
학과 동기가 살고 있는 메지로다이 기숙사에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기숙사 또한 도쿄대 기숙사다. 이곳은 도쿄대 혼고캠퍼스와 이케부쿠로 역 사이에 위치해있다. 시설은 미타카 기숙사에 비해 신식이고 훨씬 깨끗하지만, 가장 저렴한 방이 월세+공과금이 월 8만 엔대라서 대학 기숙사 치고 비싼 편이다. (기본 월세가 5만 원대, 광열비는 실컷 써도 되는 대신 월 3만 엔 정도)
방도 미타카 기숙사보다 더 좁다. 침대와 책상 말고는 물건을 둘 곳이 거의 없다. 발코니와 세면대는 있지만 방 안에 화장실과 욕실도, 씽크대도 인덕션도 없다. 여기에 살던 친구는 결국 1년도 채우지 않고 나와서 자취방을 구했다.
* * *
이 글을 쓰고 있는 7월의 지금, 나는 앞으로 두 달 안에 새로운 집을 구하고 이 기숙사에서 나와야 한다. 아무것도 없던 빈 방에 처음 들어오던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언제 생각해도 시간은 야속할 만큼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긴 하지만, 또 다른 공간에서 다시 새로운 일상을 보낼 기회라고 생각하며, 이 쫓겨남(?)을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 그렇게 이 미타카 기숙사는 한동안 나를 품어주었던, 내 삶 속 추억의 공간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한때 살았던 곳은 마음의 고향이 되고, 이렇게 고향이 하나씩 늘어간다.
직접 촬영한 기숙사 방 소개 영상
글·사진 | 이스안
키덜트 매거진 《토이크라우드》 편집장. 대학에서 조각과 일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일본에서 미학을 공부중이다. 여행, 호러 장르, 키덜트 문화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호러소설집 <기요틴> <카데바> <신체 조각 미술관>, 여행서 <도쿄 모노로그> <한국 인형박물관 답사기> 등이 있다.
https://www.instagram.com/sumomo.su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