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니즘 일상 속 일본문화][여행] 서울에서 떠난 특별한 런던 여행

2025-07-24

자포니즘, 일상에서 즐기는 일본 문화 여행 번외편 - 일상에서 즐긴 런던 여행



“런던이 지겨워진 사람은 삶 자체가 지겨워진 사람이다(When a man is tired of London, he is tired of life).”


한국에도 번역이 된 《라셀라스》의 작가 새뮤엘 존슨이 했던 말이다. 삶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는 도시가 런던이라는 의미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피식 웃었다. 여기 런던에 한 번도 안 가 본 나는 삶 자체를 논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직접 가 본 도시는 프랑스 파리가 유일하다. 런던의 풍경을 본 건 영화를 통해서가 전부였다. 런던도 파리처럼 개성이 있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생각은 들었다. 


언젠가 런던 여행을 다녀 온 프랑스인 동료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런던 여행에서 어디가 좋았어?”
“마담 투소 박물관.”


런던에 있는 마담 투소 박물관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밀랍 인형 박물관이다. 마담 투소는 1761년에 태어난 프랑스 여성인데, 프랑스 혁명 이후에 런던으로 이주해 자신의 이름을 딴 박물관을 열었다. 


사실 프랑스인 동료의 대답은 런던을 은근히 ‘디스’하는 짓궂은 농담에 가깝다. 그만큼 런던에는 볼 것이 없고, 그나마 볼만한 관광지가 영국 문화가 아니라 프랑스 문화의 흔적이 남은 곳이라는 의도인 것이다. 내가 만나 본 프랑스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국에 시니컬한 성향이 많았기에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런던을 돌려서 놀리는구나’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런던과 파리는 똑같이 아름다운 유럽 도시일 뿐이다. 다만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또 다른 전공인 일본학에서 세부 전공으로 파리에서 탄생해 서구권 전체로 확산된 ‘자포니즘(Japonisme)'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파리에만 가 본 것이다. 만약 자포니즘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유럽에 특별한 관심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럽은 북미와 마찬가지로 일본학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매번 새로 만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우키요에’를 필두로 한 일본 미술은 프랑스를 넘어 영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인 학자 아야코 오노는 《Japonisme In Britain(영국의 자포니즘)》라는 책에서 19세기 영국에서 활동하던 네 명의 예술가에게 미친 일본의 영향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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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코 오노의 《영국의 자포니즘》


《영국의 자포니즘》에 소개된 예술가 한 명이 미국 출신이지만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다. 런던의 밤 풍경을 그린 인상파 화가로 알려진 휘슬러 역시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았다. 휘슬러의 그림은 올해 더 현대 서울에서 열린 전시회 <인상파, 모네에서 미국으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휘슬러는 선구적으로 일본 판화의 미학을 작품에 도입한 화가다. 그의 작품을 직접 감상하며 서구의 자포니즘이 얼마나 광범위한 사조인지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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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현대 서울에서 열린 전시회 <인상파, 모네에서 미국으로>에서 만난 휘슬러.
자포니즘의 영향이 느껴지는 <장미와 은을 위한 스케치 : 도자기 나라의 공주>.


하지만 직접 런던에 갈 기회는 아직 없었다. 작년, 어느 화창한 날 전까지는.


잠실새내 쪽을 걷다가 우연히 유럽 갤러리 분위기를 풍기는 독특한 카페를 발견했다. 갤러리덴(Galleryden). 나도 모르게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은 런던이었다. 서울 속 작은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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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미니 대영박물관 기념품숍 같은 카페, 갤러리덴. 


갤러리와 키친 브런치의 결합을 표방하는 갤러리덴은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이 기념품 숍만 따로 오픈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영국 소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카페에서는 영국에서 직접 수입한 포트넘 앤 메이슨의 차도 취급하는데, 다기(茶器)도 영국 그 자체였다.


마침 영국 문학과 홍차를 좋아하는 일본인 친구가 떠올라 친구에게 보낼 선물을 골랐다. 아기자기하게 예쁜 영국풍 소품이 많아서 20분 정도는 즐거운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결국 대영박물관에서 공수된 여왕의 레이스 인형을 골랐다. 친구가 기뻐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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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itish Museum' 글자가 선명하게 인쇄된 포장 봉투에 영국제 레이스 인형이 담겼다.


대영박물관 봉투에 정성스럽게 포장된 여왕을 모시고 바깥으로 나왔다. 다시 서울이었다. 프랑스인 동료는 런던 여행에 시큰둥했지만, 나는 초단기 런던 여행을 즐겁게 마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 이 에세이는 브릭스 매거진앤트래블의 뉴스레터 도시 방학: 런던 편에서 '런던 테마 에세이 공모전'에 선정된 응모작입니다.




글·사진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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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와 일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를 활용해 다언어 일본학도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 집필진의 공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시리즈에서는 2021년부터 매년 자포니즘 연구가 타이틀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자포니즘 테마로 NHK 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 <하나카페>와 영어 방송 <Friends Around The World> 에 출연했다. 최근 역서로는 프랑스 소설 『할복』과 일본 도서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윤리경영 리더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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