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니즘, 일상에서 즐기는 일본 문화 여행 #7-1
작년 여름 한국에도 개봉되어 화제를 모았던 일본 영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를 소개하는 어느 국내 기사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나의 주력 수집품이자 자포니즘 테마로 자주 다루는 어린 아이 모습의 일본 전통인형 이치마쓰 인형(市松人形)이 누워 있는 사진이 있었다. 영화에도 일본 인형들이 등장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결심했다. 긴키 지방인 오사카와 와카야마에 가자! 그리고 오사카 가을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오사카는 미식의 도시다. 실제로 오사카는 ‘쿠이타오레(食い倒れ, 식도락에 재산을 탕진한다)’와 ‘천하의 부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인기 많은 일본 음식 ‘타코야키’도 오사카에서 탄생했다. 방송 100주년을 맞아 NHK가 스페셜 방송 시리즈로 제작한 <신자포니즘(新ジャポニズム)>에서 브라질의 테마키, 미국의 스시 오마카세,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자카야 등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며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공존하는 일본의 식문화 편을 본 후, 한국의 타코야키도 신자포니즘 차원에서 연구하고 있다.
일본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들에게 관광지 홍대입구 일대를 가이드하며 통역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일본인 여고생들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AK플라자에 큰 관심을 보였다. AK플라자는 홍대에 ‘홍키하바라(홍대+아키하바라)’라는 별명을 안겨준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일본인 여고생들이 AK플라자 안에서 걸음을 멈춘 곳은 대왕 타코야키를 파는 가게 앞이었다. 내가 홍대입구에서 자주 찾는 가게이기도 했다.
“와~이렇게 크고 화려한 타코야키는 일본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일본인 여고생들은 한국식으로 다채롭게 변신한 타코야키가 신기하다는 듯 외쳤다.

홍대입구 AK플라자에서 일본인 여고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대왕 타코야키. 오사카의 미식을 대표하는 타코야키는 한국에서도 인기다.
도톤보리는 오사카에서 첫손에 꼽히는 번화가이다. 도톤보리 강변에만 물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 가득 수많은 일본인과 외국인들이 ‘인파’를 이루고 있었다. 나도 인간 파도에 합류하여 물결 사이를 헤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피에로 복장을 한 도톤보리의 유명한 인형 ‘쿠이타오레 타로(くいだおれ太郎)’가 있는 간판이었다. 쿠이타오레 타로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쿠이타오레의 도시 오사카에 잘 왔어요! 참, 지갑을 조심해요, 여긴 타코야키 맛집이 즐비하니까요.” 오사카를 대표하는 인형인 쿠이타오레 타로는 1950년에 당시 최신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진 전동 인형이다.

도톤보리의 유명 인사이자 오사카 명물 인형 '쿠이타오레 타로'가 웃고 있는 간판. 피에로 복장을 한 인형으로 1950년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전동 인형이다.
쿠이타오레 타로의 농담 섞인 경고처럼 도톤보리는 타코야키 맛집이 즐비했다. 오사카에 도착한 첫날, 도톤보리 근처에서 저녁 식사로 선택한 메뉴는 단연 타코야키였다. 한국에서 먹는 타코야키도 맛있지만, 오사카에서 먹는 타코야키는 ‘역시 본토의 맛’이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반죽, 알차게 들어가 있는 문어 조각의 식감, 진한 소스 맛이 중독을 부르는 조화를 이루었다.

도톤보리에서 먹은 타코야키. 서울로 돌아가기 전, 오사카에서 마지막으로 머문 날에 마지막 점심 식사로 선택한 메뉴도 타코야키일 정도로 못 말리는 '타코야키 덕후'다.
숙소를 도톤보리 근처로 정한 이유는 타코야키 맛집 말고도 또 있었다. 일본의 전통인형극이 상영되는 국립 분라쿠 극장이 가까이에 있었다. 오사카는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볼거리도 많은 도시다. 에도시대부터 지금까지 연극과 예능의 메카로 통하는 도톤보리답게 가부키를 모티브로 한 화려한 간판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분라쿠와 가부키는 역사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구권에 자포니즘을 일으킨 다색 목판화 우키요에의 소재로 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부키를 모티브로 한 간판. 가부키는 에도시대에 탄생한 대표적인 팝컬쳐다.
도톤보리 강변을 걸으며 우키요에 속 인형극을 생각했다. 닝교조루리(人形浄瑠璃). 에도 시대에 도톤보리 강변에서 피어난 문화였다. 닝교조루리는 인형을 뜻하는 일본어 닝교(人形)와 ‘반주에 맞춰 읊는 이야기’를 뜻하는 일본어 조루리(浄瑠璃)가 합해진 단어다. 현재 닝교조루리를 대표하는 명사로 사용되는 분라쿠(文楽)는 원래 오사카에 있는 닝교조루리 공연 전문 극장을 가리켰다. 도톤보리의 쿠이타오레 타로 인형을 탄생시킨 기술은 분라쿠 인형에서 나온 것이다. 국립 분라쿠 극장에 간판에서 본 쿠이타오레 타로 인형이 전시되어 있는 이유다.
분라쿠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자포니즘이 탄생한 프랑스를 통해서였다. 정확히는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1960년대 일본을 여행한 후에 집필한 저서 『기호의 제국』(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을 통해서였다. 분라쿠 인형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아 일본어의 주어를 재해석하는 내용은 일본의 미의식에 끌려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외국인 입장이던 나에게 나름 영감을 주었다.

오사카 국립 분라쿠 극장 내부(왼쪽)와 쿠이타오레 타로 인형(오른쪽)

오사카 국립 분라쿠 극장에 붙어 있던 가부키 영화 <국보>의 포스터
국립 분라쿠 극장에서 가부키를 테마로 한 영화 <국보(国宝)>의 포스터를 보았을 때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해 온 닝교조루리와 가부키는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일도 많았다. 같은 작품을 인형이 연기하면 닝교조루리가 되고, 인형처럼 분장하고 움직이는 인간이 연기하면 가부키가 되었다. 영화 <국보>에 나오는 <소네자키 신주(曽根崎心中)>가 대표적이다. 동반자살로 사랑을 완성한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소네자키 신주>는 분라쿠가 원조다. 내가 <소네자키 신주>를 공연으로 처음 접한 것은 분라쿠가 등장하는 DVD를 통해서였다.

일상에서 서울과 오사카를 연결해주는 오브제 :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 영화 <국보>의 원작 소설, 분라쿠 <소네자키 신주>가 등장하는 DVD,
오사카 지도, 오사카의 캐릭터 인형 '오사카 오바짱(오사카 아줌마)'.
글·사진 | 이주영

프랑스어와 일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를 활용해 다언어 일본학도 번역가와 출판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 집필진의 공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시리즈와 시사일본연구소에 자포니즘 연구가 타이틀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자포니즘 테마로 NHK 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 <하나카페>와 영어 방송 <Friends Around The World> 에 출연했다. 신권 1만엔 지폐의 시부사와 에이이치와 미일인형교류가 일으킨 미국문학의 자포니즘을 논문과 특강에서 다루었고 NHK 출판사의 도서『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윤리경영 리더십』을 번역했다.
자포니즘, 일상에서 즐기는 일본 문화 여행 #7-1
작년 여름 한국에도 개봉되어 화제를 모았던 일본 영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를 소개하는 어느 국내 기사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나의 주력 수집품이자 자포니즘 테마로 자주 다루는 어린 아이 모습의 일본 전통인형 이치마쓰 인형(市松人形)이 누워 있는 사진이 있었다. 영화에도 일본 인형들이 등장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결심했다. 긴키 지방인 오사카와 와카야마에 가자! 그리고 오사카 가을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오사카는 미식의 도시다. 실제로 오사카는 ‘쿠이타오레(食い倒れ, 식도락에 재산을 탕진한다)’와 ‘천하의 부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인기 많은 일본 음식 ‘타코야키’도 오사카에서 탄생했다. 방송 100주년을 맞아 NHK가 스페셜 방송 시리즈로 제작한 <신자포니즘(新ジャポニズム)>에서 브라질의 테마키, 미국의 스시 오마카세,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자카야 등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며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공존하는 일본의 식문화 편을 본 후, 한국의 타코야키도 신자포니즘 차원에서 연구하고 있다.
일본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들에게 관광지 홍대입구 일대를 가이드하며 통역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일본인 여고생들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AK플라자에 큰 관심을 보였다. AK플라자는 홍대에 ‘홍키하바라(홍대+아키하바라)’라는 별명을 안겨준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일본인 여고생들이 AK플라자 안에서 걸음을 멈춘 곳은 대왕 타코야키를 파는 가게 앞이었다. 내가 홍대입구에서 자주 찾는 가게이기도 했다.
“와~이렇게 크고 화려한 타코야키는 일본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일본인 여고생들은 한국식으로 다채롭게 변신한 타코야키가 신기하다는 듯 외쳤다.
홍대입구 AK플라자에서 일본인 여고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대왕 타코야키. 오사카의 미식을 대표하는 타코야키는 한국에서도 인기다.
도톤보리는 오사카에서 첫손에 꼽히는 번화가이다. 도톤보리 강변에만 물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 가득 수많은 일본인과 외국인들이 ‘인파’를 이루고 있었다. 나도 인간 파도에 합류하여 물결 사이를 헤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피에로 복장을 한 도톤보리의 유명한 인형 ‘쿠이타오레 타로(くいだおれ太郎)’가 있는 간판이었다. 쿠이타오레 타로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쿠이타오레의 도시 오사카에 잘 왔어요! 참, 지갑을 조심해요, 여긴 타코야키 맛집이 즐비하니까요.” 오사카를 대표하는 인형인 쿠이타오레 타로는 1950년에 당시 최신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진 전동 인형이다.
도톤보리의 유명 인사이자 오사카 명물 인형 '쿠이타오레 타로'가 웃고 있는 간판. 피에로 복장을 한 인형으로 1950년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전동 인형이다.
쿠이타오레 타로의 농담 섞인 경고처럼 도톤보리는 타코야키 맛집이 즐비했다. 오사카에 도착한 첫날, 도톤보리 근처에서 저녁 식사로 선택한 메뉴는 단연 타코야키였다. 한국에서 먹는 타코야키도 맛있지만, 오사카에서 먹는 타코야키는 ‘역시 본토의 맛’이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반죽, 알차게 들어가 있는 문어 조각의 식감, 진한 소스 맛이 중독을 부르는 조화를 이루었다.
도톤보리에서 먹은 타코야키. 서울로 돌아가기 전, 오사카에서 마지막으로 머문 날에 마지막 점심 식사로 선택한 메뉴도 타코야키일 정도로 못 말리는 '타코야키 덕후'다.
숙소를 도톤보리 근처로 정한 이유는 타코야키 맛집 말고도 또 있었다. 일본의 전통인형극이 상영되는 국립 분라쿠 극장이 가까이에 있었다. 오사카는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볼거리도 많은 도시다. 에도시대부터 지금까지 연극과 예능의 메카로 통하는 도톤보리답게 가부키를 모티브로 한 화려한 간판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분라쿠와 가부키는 역사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구권에 자포니즘을 일으킨 다색 목판화 우키요에의 소재로 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부키를 모티브로 한 간판. 가부키는 에도시대에 탄생한 대표적인 팝컬쳐다.
도톤보리 강변을 걸으며 우키요에 속 인형극을 생각했다. 닝교조루리(人形浄瑠璃). 에도 시대에 도톤보리 강변에서 피어난 문화였다. 닝교조루리는 인형을 뜻하는 일본어 닝교(人形)와 ‘반주에 맞춰 읊는 이야기’를 뜻하는 일본어 조루리(浄瑠璃)가 합해진 단어다. 현재 닝교조루리를 대표하는 명사로 사용되는 분라쿠(文楽)는 원래 오사카에 있는 닝교조루리 공연 전문 극장을 가리켰다. 도톤보리의 쿠이타오레 타로 인형을 탄생시킨 기술은 분라쿠 인형에서 나온 것이다. 국립 분라쿠 극장에 간판에서 본 쿠이타오레 타로 인형이 전시되어 있는 이유다.
분라쿠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자포니즘이 탄생한 프랑스를 통해서였다. 정확히는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1960년대 일본을 여행한 후에 집필한 저서 『기호의 제국』(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을 통해서였다. 분라쿠 인형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아 일본어의 주어를 재해석하는 내용은 일본의 미의식에 끌려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외국인 입장이던 나에게 나름 영감을 주었다.
오사카 국립 분라쿠 극장 내부(왼쪽)와 쿠이타오레 타로 인형(오른쪽)
오사카 국립 분라쿠 극장에 붙어 있던 가부키 영화 <국보>의 포스터
국립 분라쿠 극장에서 가부키를 테마로 한 영화 <국보(国宝)>의 포스터를 보았을 때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해 온 닝교조루리와 가부키는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일도 많았다. 같은 작품을 인형이 연기하면 닝교조루리가 되고, 인형처럼 분장하고 움직이는 인간이 연기하면 가부키가 되었다. 영화 <국보>에 나오는 <소네자키 신주(曽根崎心中)>가 대표적이다. 동반자살로 사랑을 완성한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소네자키 신주>는 분라쿠가 원조다. 내가 <소네자키 신주>를 공연으로 처음 접한 것은 분라쿠가 등장하는 DVD를 통해서였다.
일상에서 서울과 오사카를 연결해주는 오브제 :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 영화 <국보>의 원작 소설, 분라쿠 <소네자키 신주>가 등장하는 DVD,
오사카 지도, 오사카의 캐릭터 인형 '오사카 오바짱(오사카 아줌마)'.
글·사진 | 이주영
프랑스어와 일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를 활용해 다언어 일본학도 번역가와 출판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 집필진의 공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시리즈와 시사일본연구소에 자포니즘 연구가 타이틀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자포니즘 테마로 NHK 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 <하나카페>와 영어 방송 <Friends Around The World> 에 출연했다. 신권 1만엔 지폐의 시부사와 에이이치와 미일인형교류가 일으킨 미국문학의 자포니즘을 논문과 특강에서 다루었고 NHK 출판사의 도서『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윤리경영 리더십』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