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니즘 일상 속 일본문화][문화] 술과 자포니즘의 상관관계, 마시는 술에서 감상하고 연구하는 술로

2026-07-27


자포니즘, 일상에서 즐기는 일본 문화 여행 #9



‘노자’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고양이 두 마리 그림을 보는 순간, 일본어 ‘사케(酒)’가 떠올랐다. 한국이나 영어권에서 흔히 ‘사케(Sake)’라고 부르는 일본어 단어는 원래 술 전체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사케’라고 하면 맥주, 소주, 와인, 위스키를 막론한 모든 술을 가리킨다. 우리가 '사케'라고 부르는, 쌀로 빚은 일본 전통술은 ‘니혼슈(日本酒)’라고 특정해서 부른다. 


첫 만남에서 ‘사케’를 떠올리게 한 주인공은 ‘자포니즘 테마’로 인연을 맺은 <브릭스 매거진>에서 출간된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이다. ‘사케’의 종류 중에서도 니혼슈와 맥주를 떠올렸다.  


b29e694310d83.jpg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만난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


<브릭스 매거진>의 대표이기도 한 이주호 저자는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의 프로필에 소개되었듯이 고양이 밥을 주고 맥주를 마시는 생활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고양이와 맥주. 또 다른 에세이『도쿄적 일상』의 제목과 어울리는 일본 감성이 가득한 생활이다.    


조금 긴 니혼슈 이야기

나의 감각으로 고양이는 니혼슈(일본술)다. 라쿠텐 일본 홈페이지에는 강렬한 고양이 일러스트의 니혼슈 세트가 올라와 있다. 그 이름도 '三猫子'. 귀여운 고양이 셋이 니혼슈로 변신한 것 같다. 고양이 애호가를 위한 니혼슈,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선물로 받으면 기뻐할 니혼슈다. 고양이는 일본의 다색 목판화 우키요에는 물론, 일본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캐릭터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니혼슈와 고양이의 결합은 그래서 지극히 자연스럽고, 두 고양이를 돌보며 저녁마다 맥주를 마시는 삶을 이야기하는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를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사케를 떠올렸던 것이다. 


966ba99c02da6.jpg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고양이 일러스트가 있는 니혼슈 세트「三猫子」 | 이미지 출처: 라쿠텐 홈페이지


재미있는 우연인지는 몰라도 고양이 노자가 큰 존재감을 뽐내는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에 언급되는 노자의 <도덕경>도 나의 감각으로는 니혼슈다. 「上善如水」.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 ‘상선약수(上善若水)’ 철학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 네 글자 한자 조합을 일본어로 읽으면 ‘죠젠 미즈노 고토시(じょうぜんみずのごとし)’다. ‘최고로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1855년 니가타현에서 탄생한 ‘시라타키주조(白瀧酒造)’가 내놓은 니혼슈 브랜드로, 니가타현은 물이 맑고 쌀 맛이 좋기로 유명해 니혼슈의 고장이라 불린다. 시라타키주조의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크리스탈감이 풍부한 오리지널 병이 주는 고급스러움을 자랑하는 ‘죠젠 미즈노 고토시’는 상쾌한 타입, 고급 타입, 가을 한정 부드러운 숙성 타입, 각각 개성 있는 맛을 비교해 마시며 즐기실 수 있는 니혼슈라고 한다. 


5d09f4ce5a8a9.jpg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철학에서 영감을 받은 니혼슈 세트 「上善如水」 | 이미지 출처: 시라타키주조 공식 홈페이지


니가타현에서 나온 니혼슈 중에서 재미있는 니혼슈가 있다. 한국의 일본풍 술집에서 많이 팔아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데 정작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모른다는 반응이 많이 나오는 니혼슈,  ‘がんばれ父ちゃん’. 한국에서 ‘간바레 오또상’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종이팩 포장 니혼슈이다. 최근에 동네 편의점에서 ‘간바레 오또상’이 온도에 따라 색이 바뀌는 변온잔 두 개와 함께 푸른 톤의 선물용 세트로 나온 곳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구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지갑을 열게 됐으니, ‘간바레 오또상’의 자매품 ‘がんばれ母ちゃん’, ‘간바레 오까상’이 나온 것이다. 역시 종이팩 포장이고 전용 도쿠리 하나와 전용 잔 두 개로 구성된 핑크 톤의 세트다. 내가 아는 일본인들은  ‘간바레 오또상’도 한국에서 처음 알았는데, ‘간바레 오까상’은 완전 처음이라는 반응이다. 


‘아빠, 힘내세요’, ‘엄마, 힘내세요’는 가족을 위해 일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응원하는 문구에 뭉클해지는 한국인의 감성을 잘 건드린다. 한국에서 일본 술은 부드럽게 넘어간다는 장점이 부각되는데, 여기에 ‘간바레 오또상’과 ‘간바레 오까상’처럼 가족 정서를 자극하는 이름이 붙었으니 퇴근길 한 잔으로 피로를 달래려는 한국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하다. 


a9db10c82362f.jpg

고양이와 노자의 <도덕경>으로 니혼슈를 생각나게 한 종이책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 그리고 종이팩 형태의 니혼슈 ‘간바레 오또상’은 묘하게 잘 어울리는 것 같다. 


53f1204ebbb13.jpg

‘간바레 오까상(がんばれ母ちゃん)’ 세트는 오사카에서 온 중년 여성 캐릭터 ‘오사카 아줌마(大阪おばちゃん)’를 위한 니혼슈 같다.
왠지 고단해 보이는 오사카 아줌마에게 이 니혼슈 세트를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 “간바레 오바상(がんばれおばちゃん)!” 중년인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얼마 전 편의점에 갔더니 이번에는 ‘간바레 오또상’과 ‘간바레 오까상’ 세트가 나란히 놓여 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일본에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 니혼슈라지만 무슨 상관인가. 한국에 사는 누군가에게 유쾌한 응원과 기분을 선사해 주는 니혼슈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니혼슈에 그려진 일러스트는 곧 자포니즘 갤러리

팩 형태의 니혼슈는 한국에서 일본술을 편히 마시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동네 마트에도 다양한 종류가 들어와 있다. ‘간바레 오또상’과 ‘간바레 오까상’처럼 일본 감성이 가득한 일러스트로가 그려진 팩 형태의 니혼슈가 진열된 코너는 나에게 그 자체로 작은 일본 미술관이 된다. 술을 즐기는 법은 다양하다. 마시기도 하고, 그저 라벨을 감상하기도 하고. 


7675ff54ae29e.jpg

스모 선수가 그려진 팩 형태의 니혼슈 


파란색 바탕의 ‘Japanese Sake Sumo’ 팩을 장식하는 귀여운 스모 선수를 보면 자연스럽게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에밀 졸라의 초상>에 그려진 스모 선수 테마의 우키요에(스모에, 相撲絵)가 떠오른다. 이 우키요에는 2대 우타가와 구니아키(二代目歌川国明)가 스모 선수 ‘오나루토 나다에몬’을 그린 <大鳴門灘右エ門>이라는 작품이다. 스모 선수가 그려진 우키요에가 등장하는 마네의 <에밀 졸라의 초상>은 파란색 표지의 공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2』의 ‘자포니즘, 일본 문화가 있는 서양 미술’에서 소개한 바 있다. NHK 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 <하나카페>에도 소개된 단행본이다.


e604fe851ae1a.jpg우타가와 구니아키의 <大鳴門灘右エ門>


마네의 예시가 잘 보여주는 19세기 ‘서양 미술의 일본 붐’인 자포니즘 현상, 그리고 작년 NHK가 방송 100주년을 맞아 전시, 도서, 방송으로 집중 조명한 신자포니즘 현상(서구에서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본 문화가 수용되어 일상 속에 공존 및 활용되는 현상)에서 출발점이 되는 것이 우키요에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친숙한 일본 문화를 대표하는 ‘망가(일본 만화)’만 해도 우키요에와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있다. 


bc0f7c3611e6d.jpg‘자포니즘, 일본 문화가 있는 서양 미술’ 글이 실린『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2』가 소개된 NHK <하나카페> | 이미지 출처: NHK 하나카페 홈페이지


70c4012f0dd6c.jpg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2』의 ‘자포니즘, 일본 문화가 있는 서양 미술’에 소개한 마네의 <에밀 졸라의 초상>


올해 NHK <하나카페>에 소개된 신간 공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6』에서도 언급한 우키요에 <호쿠사이 망가>는 ‘망가’라는 표현을 탄생시킨 작품이다. 책에서 도쿄의 우키요에 전문 미술관 오타 기념미술관(太田記念美術館)의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여 소개하기도 했지만, 19세기 유럽으로 수출된 일본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완충재(칸막이 판)로 사용된 <호쿠사이 망가> 사본을 우연히 발견한 프랑스의 판화가 펠릭스 브라크몽이 동료들에게 우키요에의 매력을 전하며 프랑스에서 자포니즘이 탄생하게 된다.


499ea916c4e49.jpg

2026년 NHK <하나카페>에 소개된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6』. 해외와 공존하는 우키요에와 일본 인형의 자포니즘을 소개하고 왔다. | 이미지 출처: NHK 하나카페 홈페이지


다시 동네 마트의 팩 니혼슈 코너. 이번에는 기모노 여인들이 그려진 우키요에를 생각나게 하는 니혼슈를 구입했다. 예전에 도쿄 아사쿠사바시 역에서 열렸던 무료 미니 전시회에서 받았던 영감을 집에서 재현하기 위해서였다. 그 전시회에서 나의 눈을 끌었던 것이 우키요에 속 기모노 여인들과 기모노 여인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오야마 인형들을 연결시킨 코너였던 것이다. 


a884b041d74d3.jpg

니혼슈를 장식한 우키요에 스타일의 기모노 여인 일러스트가 기모노 여인 모습의 오야마 인형과 만나는 방 안은 순식간에 작은 이자카야가 되었다. 


8b82fcced1219.jpg

급기야 기모노 여인과 스모 선수가 있는 우키요에 엽서들까지 진열해 방 안을 미니 우키요에 미술관으로도 만들었다. 


맥주로부터 흐르는 자포니즘

일본 술 하면 니혼슈도 좋지만, 여름은 역시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덥고 습한 여름 한낮을 통과해 온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냉장고 안에 넣어 둔 시원한 맥주캔을 떠올리지 않을까. 게다가 한국 사람들만의 특권이라면, 김치냉장고에 넣어 둔 맥주만큼 맛있는 온도가 없다.


하지만 내가 맥주캔을 가지러 가는 곳은 냉장고가 아니다. 일본 소품을 보관해 놓은 미니 장식장, 그것도 빈 맥주캔 두 개. 동네 편의점에서 구입했던 일본 감성 물씬 풍기는 맥주캔이다. 자포니즘 콘텐츠를 만드는 데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더위를 잊는다. 


기모노 입은 여인 모습을 한 오야마 인형 옆에 ‘프리미엄 에비스’ 빈 맥주캔과 ‘삿포로 겨울 이야기’ 빈 맥주캔을 나란히 놓는다. 오야마 인형은 니혼슈 옆에서 포즈를 취하랴, 일본 맥주 옆에서 포즈를 취하랴 바쁘다. ‘삿포로 겨울 이야기’ 위에 내리는 흰 눈이 체온을 낮춰 주는 것 같다. 


e7f6ec29e7ff7.jpg

우키요에 초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기모노 여인의 축소판인 오야마 인형과 일본 맥주 캔들이 함께 하니 방 안은 현대식 미니 이자카야가 되었다. 


사케의 자포니즘 연구를 도와주는 오야마 인형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했다. 애쓰는 오야마 인형의 존재에 푸근한 미소를 보내며 ‘간바레!(힘내!)’라고 외치는 아저씨가 있다. 술 잘 마실 것 같은 어부 아저씨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평범한 아저씨가 아니다. ‘프리미엄 에비스’의 금색 캔을 장식하는 에비스 신. 바구니, 낚싯대, 도미와 함께 그려진 에비스 신은 복스러운 얼굴이 증명하듯, 칠복신의 하나로 ‘어업의 신’이자 ‘장사의 신’이다. 맥주캔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일본 문화를 알아가는 교재가 된다. 


물이 니혼슈와 맥주의 맛을 결정하는 기본이듯이, 일본 문화의 이해도 자포니즘과 신자포니즘을 활용하는 연구의 기본이다.


글이 마무리 되어가는 단계에서 살짝 고백하자면, 나에게 술은 마시는 음료보다는 요리에 사용하는 재료이자 자포니즘 연구 소재로 더 자주 쓰인다. 미니 잔에 담긴 니혼슈 한 잔 혹은 작은 맥주컵에 담긴 맥주 한 잔이 나의 하루 주량이다. 게다가 그 한 잔을 몸에서 완전히 비워 내려면 12시간에서 24시간이 필요하다. 


대신, NHK 출판의 신자포니즘 테마 도서『世界はなぜ日本カルチャーに熱狂するのか』(세계는 왜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가)에서 영감을 받아 ‘서구는 왜 우키요에에 열광하는가’, ‘한국은 왜 일본 맥주와 니혼슈에 끌리는가’, ‘한국은 왜 이자카야에 매료되는가’ 등의 연구 주제를 머릿속에 굴리며 ‘신자포니즘 술’이라면 아무리 마셔도 쓰러지지 않을 거라 자신한다. 


c5d9bee16c8d1.jpg

NHK에서 출판된 신자포니즘 테마의 단행본 『世界はなぜ日本カルチャーに熱狂するのか』(세계는 왜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가)는
일본 문화와 공존하는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신자포니즘 연구에 항상 새로운 영감을 준다. 




글·사진 | 이주영

4fea5ace26068.jpg

프랑스어와 일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를 활용해 다언어 일본학도 번역가와 출판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 집필진의 공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시리즈와 시사일본연구소 칼럼에 자포니즘 연구가 타이틀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일본 문화와 공존하는 일상을 사는 외국인 입장에서 살펴보는 자포니즘 테마로 NHK 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 <하나카페>와 영어 방송 <Friends Around The World> 에 출연했다. 프랑스 소설 『할복』, NHK 일본 도서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윤리경영 리더십』,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 『도쿄의 아침』(공역, 전자책)을 번역했다.  



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