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니즘, 일상에서 즐기는 일본 문화 여행 #10
‘버블 경제시기’로 불리는 1980년대의 일본. 여름, 후키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열한 살 소녀다. 아빠는 말기 암으로 입원 중이고 엄마는 일이 바빠서 집에 늦게 들어오는데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는 눈치다. 학교에서도 특별히 친한 친구가 없다. 어느 날, 후키는 평소처럼 아빠를 문명하러 병원에 갔다가 병원 로비에서 서양 회화의 모사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노인과 잠깐 이야기를 나눈다. 후키는 명화 모사품을 한 점 사서 아버지의 병실에 걸어두었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자신의 방에 걸어둔다.
올해 개봉한 일본 ‧ 프랑스의 합작 영화 <르누아르>에 나오는 장면이다.

올해 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본 일본 ‧ 프랑스의 합작 영화 <르누아르>.
영화의 엔딩 장면이기도 한 포스터의 장면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그림을 오마주한 것처럼 밝고 유쾌하다.
일본, 르누아르를 만나다. 르누아르, 일본을 만나다.
영화 속에서 후키가 선택한 모사품의 명화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인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그림 「이렌 캉 당베르 양의 초상」(Le Portrait d'Irène Cahen d’Anvers)이다.

영화 <르누아르>에서 후키가 아빠의 병실과 자신의 방에 걸어 둔 모사품은 르누아르의 대표작에 속하는 「이렌 캉 당베르 양의 초상」이다.
1880년 작품으로 르누아르가 은행가 루이 카엥 당베르의 의뢰로 그의 장녀를 그린 초상화다. 초상화 속 소녀는 천진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진다. 영화 <르누아르>의 소녀 후키에게서도 느껴지던 분위기다.
<르누아르>를 연출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1976년생이다. 감독의 인터뷰 자료를 찾아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감독은 어린 시절의 경험을 영화 <르누아르>의 모티브로 삼기도 했는데, 1980년대 일본에서는 인터넷도 없었고 해외가 멀게 느껴져서 서구 문화를 향한 동경이 지금보다 훨씬 강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소녀 후키가 원어민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는 교실에 다니는 장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당시 일본에서는 르누아르 같은 인상파 그림 모사품을 집에 걸어두던 집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 <르누아르>를 본 일본인 관객들의 리뷰도 찾아서 읽었는데, 감독의 말처럼 1980년대 일본은 서양 명화 모사품이 인기가 있어 신문 광고나 통신 판매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가 일본이 서양 명화를 포함해 서구 문화를 동경하던 시기였다면, 19세기는 서구가 일본 문화를 동경하던 시기였다. 1867년 프랑스는 제2회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일본 붐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일본이 만국박람회에 공식 출품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일본 전통 판화 ‘우키요에’, 일본 도자기, 일본 전통 종이 ‘와시’, 일본의 칠기 공예품, 무사 인형 등 일본 감성이 가득한 예술품과 공예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은 우키요에를 중심으로 일본의 미술과 공예품을 작품 창작에 도입하고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프랑스 파리에서 ‘자포니즘’이 탄생했다. 자포니즘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과 북미로 확대되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좀 있는 집들에는 일본 취향이 핫한 트렌드였다.
르누아르도 프랑스와 유럽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유행하던 우키요에와 일본 공예품에 관심을 가졌다. 원래 르누아르는 도자기 그림을 그리던 화공이었으나 산업혁명과 기계화의 영향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자 화가로 전향했다. 화가가 된 르누아르는 일본 문화에서 받은 영감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재해석했다. 자포니즘 요소가 직접 나타난 르누아르의 대표작으로 「일본 개, 타마」, 「부채를 든 소녀」, 「책 읽는 모네 부인」이 있다. 특히 「부채를 든 소녀」와 「책 읽는 모네 부인」는 ‘우치와(団扇)’로 불리는 일본식 둥근 부채가 효과적으로 활용된 작품이다. 일본 공예품에 대한 르누아르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일본 개, 타마」(1875). 아시아 미술 수집가이자 은행가 친구 앙리 체르누스키가 일본에서 데려 온 강아지 ‘타마’를 그린 작품이다.

「부채를 든 소녀」(1881)

「책 읽는 모네 부인」(1872)
전시 <인상주의를 넘어>와 <우리들의 르누아르>
일본인 직장인에게 시사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찾게 되는 광화문. 지난 달, 수업이 끝나고 세종문화회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던 전시회 <인상주의를 넘어>(5월 28일~8월 23일)를 보기 위해서였다.
핑크빛 포스터는 화사한 르누아르의 그림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포스터를 장식한 그림은 르누아르의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이었다.

올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전시회 <인상주의를 넘어> 포스터
듣던 대로 티켓을 구입한 후에도 긴 줄을 서고 나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인상주의를 넘어>는 르누아르를 비롯해 드가, 고흐, 마티스 등 자포니즘의 영향을 크게 받은 화가들과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회였다. 르누아르, 드가, 고흐, 마티스 등은 상상이나 했을까? 훗날 21세기에 일본 옆에 있는 나라 한국에서 자신들의 그림이 살아생전에 좋아했던 우키요에와 함께 전시될 것이라고 말이다. 르누아르, 드가, 고흐, 마티스의 영혼들이 이러한 풍경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인상주의를 넘어>에는 르누아르, 드가, 고흐, 마티스가 매력을 느낀 우키요에도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었다.
전시된 우키요에 작품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명소의 찻집 8경’ 연작 중 하나인 「거울」, 안도 히로시게의 「가메이도의 매화정원」.

<인상주의를 넘어> 전시회에서 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가 서울과 도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올해 봄에 도쿄 시부야의 NHK 방송국에서 한국어 국제라디오 방송 <하나카페>에 출연해 소개한 우키요에가
한일 공저 신간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6』의 표지에도 나온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NHK 하나카페 홈페이지
르누아르의 영혼이 담긴 그림들은 올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느라 바쁘다.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은 구마모토 현립 미술관을 시작으로 시즈오카, 오이타, 도쿄, 오카야마 등 일본 5곳의 미술관에서 특별전 <우리들의 르누아르>(わたしたちのルノワール)가 개최되기 때문이다. 르누아르가 일본에 전해져 ‘우리들의 르누아르’로 친근한 화가가 되기까지 그 여정을 따라가는 전시회다. 이와 함께 르누아르와 동시대에 활동한 인상파 화가들과 르누아르에게 영향을 받은 일본 화가들의 작품도 전시된다.

일본의 르누아르 전시회 <우리들의 르누아르>의 포스터 | (이미지 출처 : 일본에서 열리는 <우리들의 르누아르>전 공식 홈페이지
인상파 화가들 가운데서도 르누아르는 유난히 빛과 색채가 넘쳐나는 표현을 구사한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들의 르누아르>전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밝고 행복한 분위기로 가득한 르누아르의 작품은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는 설명이 있다.
르누아르는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하다”며 그림 안에서까지 고통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나름의 예술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잿빛 일상 대신 행복과 인생의 기쁨을 화폭에 담았던 것이다.
앞서 소개한 영화 <르누아르> 속 주인공 소녀 후키가 암 투병 중인 아버지의 병실에 르누아르의 모사품 「이렌 캉 당베르 양의 초상」을 걸어놓는 장면은 칙칙한 일상을 잠시나마 밝은 순간으로 바꾸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르누아르의 그림은 보고만 있어도 화사하고 예쁘니까.
근심 없고 아름다운 세상을 담은 그림
후키의 1980년대 여름과 나의 2026년 여름이 병실과 르누아르의 그림으로 연결되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지난 달, 암환자가 되어 버린 아버지가 입원하신 병실을 지키면서 나는 작업을 위해 가져 온 노트북을 펼치고 르누아르의 그림 「양산을 쓴 리즈」를 보곤 했다. 정확히는 모교의 일본어 번역연구회를 통해 번역을 맡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소설 『리즈』의 전자책 표지로 선택한 르누아르의 「양산을 쓴 리즈」였다.

올해 번역출간한 전자책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소설 『리즈』.
소설 내용에 맞춰 르누아르의 그림 「양산을 쓴 리즈」를 표지 그림으로 선택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화사해지는 그림.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한 다자이 오사무가 르누아르의 그림 「양산을 쓴 리즈」를 모티브로 한 단편소설이다. 무늬만 서양화가인 주인공 스기노 군이 동경하며 그리고 싶어 한 그림이기도 하다. 스기노 군이 르누아르의 그림에 집착한 이유도 그리 밝지 않은 일상을 찬란한 작품으로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반영된 결과는 아닐까?
나 역시 아버지가 입원하신 병실의 상주 보호자 공간이나 병원 휴게실에서 잠시 쉴 때마다 노트북을 열어 다자이 오사무의 『리즈』 번역서 표지 그림인 르누아르의 「양산을 쓴 리즈」를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회색에 가까운 병실 분위기를 잠시나마 화창한 분위기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햇빛이 쨍쨍한 어느 날 아침에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 입구 주변을 산책하면서 양산을 펼쳤다. 그 순간, 르누아르의 그림 「양산을 든 리즈」, 그리고 그림 세상에서만이라도 행복과 기쁨을 추구했던 르누아르가 매료된 우키요에의 철학이 떠올랐다.
우키요에(浮世絵). 일본어로 원래 ‘근심 많고 덧없는 이 세상’을 뜻하는 ‘우키요(浮世)’와 ‘그림’을 의미하는 ‘에(絵)’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다. 이후 에도 시대에 ‘우키요’는 ‘인간 세상’, ‘속세’, ‘향락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표현이 되었다. ‘어차피 괴롭고 덧없는 세상이라면 즐겁게 살다가 가자’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바뀐 셈이다. 이러한 낙관적인 분위기를 담은 풍속화가 에도 시대 서민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은 ‘우키요에’다.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도 불리는 르누아르와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는 그림 ‘우키요에’는 잘 어울린다. 왜 르누아르가 우키요에에 호감을 품었는지 납득이 된다.

아끼는 우키요에 지갑. 우키요에 작품은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비드로를 부는 여인」(ビードロを吹く娘)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아버지와 산책하면서 양산과 함께 우키요에 그림이 있는 지갑을 든 나는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졌다. 회색빛 현실을 다채로운 화사함으로 바꿔주는 것이야말로 르누아르의 그림과 우키요에의 마법이 아닐까?
‘현실의 날씨가 흐림이라면, 그림이라도 날씨는 맑음이어야 한다’, ‘어차피 근심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 안에서라도 즐거움을 찾아보자.’ 르누아르의 미술 철학과 우키요에의 철학을 나의 표현으로 바꿔봤다. 르누아르와 자포니즘에게 얻은 지혜였다. 산책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글·사진 | 이주영
프랑스어와 일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를 활용해 다언어 일본학도 번역가와 출판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 집필진의 공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시리즈와 시사일본연구소 칼럼에 자포니즘 연구가 타이틀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일본 문화와 공존하는 일상을 사는 외국인 입장에서 본 자포니즘 테마로 NHK 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 <하나카페>와 영어 방송 <Friends Around The World> 에 출연했다. 프랑스 소설 『할복』, NHK 일본 도서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윤리경영 리더십』을 번역했다. 공역으로 참여한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 『도쿄의 아침』(전자책)에서는 르누아르의 그림을 소재로 한『리즈』를 번역했다.
자포니즘, 일상에서 즐기는 일본 문화 여행 #10
‘버블 경제시기’로 불리는 1980년대의 일본. 여름, 후키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열한 살 소녀다. 아빠는 말기 암으로 입원 중이고 엄마는 일이 바빠서 집에 늦게 들어오는데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는 눈치다. 학교에서도 특별히 친한 친구가 없다. 어느 날, 후키는 평소처럼 아빠를 문명하러 병원에 갔다가 병원 로비에서 서양 회화의 모사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노인과 잠깐 이야기를 나눈다. 후키는 명화 모사품을 한 점 사서 아버지의 병실에 걸어두었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자신의 방에 걸어둔다.
올해 개봉한 일본 ‧ 프랑스의 합작 영화 <르누아르>에 나오는 장면이다.
올해 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본 일본 ‧ 프랑스의 합작 영화 <르누아르>.
영화의 엔딩 장면이기도 한 포스터의 장면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그림을 오마주한 것처럼 밝고 유쾌하다.
일본, 르누아르를 만나다. 르누아르, 일본을 만나다.
영화 속에서 후키가 선택한 모사품의 명화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인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그림 「이렌 캉 당베르 양의 초상」(Le Portrait d'Irène Cahen d’Anvers)이다.
영화 <르누아르>에서 후키가 아빠의 병실과 자신의 방에 걸어 둔 모사품은 르누아르의 대표작에 속하는 「이렌 캉 당베르 양의 초상」이다.
1880년 작품으로 르누아르가 은행가 루이 카엥 당베르의 의뢰로 그의 장녀를 그린 초상화다. 초상화 속 소녀는 천진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진다. 영화 <르누아르>의 소녀 후키에게서도 느껴지던 분위기다.
<르누아르>를 연출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1976년생이다. 감독의 인터뷰 자료를 찾아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감독은 어린 시절의 경험을 영화 <르누아르>의 모티브로 삼기도 했는데, 1980년대 일본에서는 인터넷도 없었고 해외가 멀게 느껴져서 서구 문화를 향한 동경이 지금보다 훨씬 강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소녀 후키가 원어민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는 교실에 다니는 장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당시 일본에서는 르누아르 같은 인상파 그림 모사품을 집에 걸어두던 집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 <르누아르>를 본 일본인 관객들의 리뷰도 찾아서 읽었는데, 감독의 말처럼 1980년대 일본은 서양 명화 모사품이 인기가 있어 신문 광고나 통신 판매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가 일본이 서양 명화를 포함해 서구 문화를 동경하던 시기였다면, 19세기는 서구가 일본 문화를 동경하던 시기였다. 1867년 프랑스는 제2회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일본 붐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일본이 만국박람회에 공식 출품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일본 전통 판화 ‘우키요에’, 일본 도자기, 일본 전통 종이 ‘와시’, 일본의 칠기 공예품, 무사 인형 등 일본 감성이 가득한 예술품과 공예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은 우키요에를 중심으로 일본의 미술과 공예품을 작품 창작에 도입하고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프랑스 파리에서 ‘자포니즘’이 탄생했다. 자포니즘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과 북미로 확대되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좀 있는 집들에는 일본 취향이 핫한 트렌드였다.
르누아르도 프랑스와 유럽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유행하던 우키요에와 일본 공예품에 관심을 가졌다. 원래 르누아르는 도자기 그림을 그리던 화공이었으나 산업혁명과 기계화의 영향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자 화가로 전향했다. 화가가 된 르누아르는 일본 문화에서 받은 영감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재해석했다. 자포니즘 요소가 직접 나타난 르누아르의 대표작으로 「일본 개, 타마」, 「부채를 든 소녀」, 「책 읽는 모네 부인」이 있다. 특히 「부채를 든 소녀」와 「책 읽는 모네 부인」는 ‘우치와(団扇)’로 불리는 일본식 둥근 부채가 효과적으로 활용된 작품이다. 일본 공예품에 대한 르누아르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일본 개, 타마」(1875). 아시아 미술 수집가이자 은행가 친구 앙리 체르누스키가 일본에서 데려 온 강아지 ‘타마’를 그린 작품이다.
「부채를 든 소녀」(1881)
「책 읽는 모네 부인」(1872)
전시 <인상주의를 넘어>와 <우리들의 르누아르>
일본인 직장인에게 시사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찾게 되는 광화문. 지난 달, 수업이 끝나고 세종문화회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던 전시회 <인상주의를 넘어>(5월 28일~8월 23일)를 보기 위해서였다.
핑크빛 포스터는 화사한 르누아르의 그림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포스터를 장식한 그림은 르누아르의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이었다.
올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전시회 <인상주의를 넘어> 포스터
듣던 대로 티켓을 구입한 후에도 긴 줄을 서고 나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인상주의를 넘어>는 르누아르를 비롯해 드가, 고흐, 마티스 등 자포니즘의 영향을 크게 받은 화가들과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회였다. 르누아르, 드가, 고흐, 마티스 등은 상상이나 했을까? 훗날 21세기에 일본 옆에 있는 나라 한국에서 자신들의 그림이 살아생전에 좋아했던 우키요에와 함께 전시될 것이라고 말이다. 르누아르, 드가, 고흐, 마티스의 영혼들이 이러한 풍경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전시된 우키요에 작품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명소의 찻집 8경’ 연작 중 하나인 「거울」, 안도 히로시게의 「가메이도의 매화정원」.
<인상주의를 넘어> 전시회에서 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가 서울과 도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올해 봄에 도쿄 시부야의 NHK 방송국에서 한국어 국제라디오 방송 <하나카페>에 출연해 소개한 우키요에가
한일 공저 신간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6』의 표지에도 나온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NHK 하나카페 홈페이지
르누아르의 영혼이 담긴 그림들은 올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느라 바쁘다.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은 구마모토 현립 미술관을 시작으로 시즈오카, 오이타, 도쿄, 오카야마 등 일본 5곳의 미술관에서 특별전 <우리들의 르누아르>(わたしたちのルノワール)가 개최되기 때문이다. 르누아르가 일본에 전해져 ‘우리들의 르누아르’로 친근한 화가가 되기까지 그 여정을 따라가는 전시회다. 이와 함께 르누아르와 동시대에 활동한 인상파 화가들과 르누아르에게 영향을 받은 일본 화가들의 작품도 전시된다.
일본의 르누아르 전시회 <우리들의 르누아르>의 포스터 | (이미지 출처 : 일본에서 열리는 <우리들의 르누아르>전 공식 홈페이지
인상파 화가들 가운데서도 르누아르는 유난히 빛과 색채가 넘쳐나는 표현을 구사한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들의 르누아르>전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밝고 행복한 분위기로 가득한 르누아르의 작품은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는 설명이 있다.
르누아르는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하다”며 그림 안에서까지 고통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나름의 예술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잿빛 일상 대신 행복과 인생의 기쁨을 화폭에 담았던 것이다.
앞서 소개한 영화 <르누아르> 속 주인공 소녀 후키가 암 투병 중인 아버지의 병실에 르누아르의 모사품 「이렌 캉 당베르 양의 초상」을 걸어놓는 장면은 칙칙한 일상을 잠시나마 밝은 순간으로 바꾸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르누아르의 그림은 보고만 있어도 화사하고 예쁘니까.
근심 없고 아름다운 세상을 담은 그림
후키의 1980년대 여름과 나의 2026년 여름이 병실과 르누아르의 그림으로 연결되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지난 달, 암환자가 되어 버린 아버지가 입원하신 병실을 지키면서 나는 작업을 위해 가져 온 노트북을 펼치고 르누아르의 그림 「양산을 쓴 리즈」를 보곤 했다. 정확히는 모교의 일본어 번역연구회를 통해 번역을 맡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소설 『리즈』의 전자책 표지로 선택한 르누아르의 「양산을 쓴 리즈」였다.
올해 번역출간한 전자책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소설 『리즈』.
소설 내용에 맞춰 르누아르의 그림 「양산을 쓴 리즈」를 표지 그림으로 선택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화사해지는 그림.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한 다자이 오사무가 르누아르의 그림 「양산을 쓴 리즈」를 모티브로 한 단편소설이다. 무늬만 서양화가인 주인공 스기노 군이 동경하며 그리고 싶어 한 그림이기도 하다. 스기노 군이 르누아르의 그림에 집착한 이유도 그리 밝지 않은 일상을 찬란한 작품으로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반영된 결과는 아닐까?
나 역시 아버지가 입원하신 병실의 상주 보호자 공간이나 병원 휴게실에서 잠시 쉴 때마다 노트북을 열어 다자이 오사무의 『리즈』 번역서 표지 그림인 르누아르의 「양산을 쓴 리즈」를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회색에 가까운 병실 분위기를 잠시나마 화창한 분위기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햇빛이 쨍쨍한 어느 날 아침에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 입구 주변을 산책하면서 양산을 펼쳤다. 그 순간, 르누아르의 그림 「양산을 든 리즈」, 그리고 그림 세상에서만이라도 행복과 기쁨을 추구했던 르누아르가 매료된 우키요에의 철학이 떠올랐다.
우키요에(浮世絵). 일본어로 원래 ‘근심 많고 덧없는 이 세상’을 뜻하는 ‘우키요(浮世)’와 ‘그림’을 의미하는 ‘에(絵)’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다. 이후 에도 시대에 ‘우키요’는 ‘인간 세상’, ‘속세’, ‘향락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표현이 되었다. ‘어차피 괴롭고 덧없는 세상이라면 즐겁게 살다가 가자’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바뀐 셈이다. 이러한 낙관적인 분위기를 담은 풍속화가 에도 시대 서민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은 ‘우키요에’다.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도 불리는 르누아르와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는 그림 ‘우키요에’는 잘 어울린다. 왜 르누아르가 우키요에에 호감을 품었는지 납득이 된다.
아끼는 우키요에 지갑. 우키요에 작품은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비드로를 부는 여인」(ビードロを吹く娘)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아버지와 산책하면서 양산과 함께 우키요에 그림이 있는 지갑을 든 나는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졌다. 회색빛 현실을 다채로운 화사함으로 바꿔주는 것이야말로 르누아르의 그림과 우키요에의 마법이 아닐까?
‘현실의 날씨가 흐림이라면, 그림이라도 날씨는 맑음이어야 한다’, ‘어차피 근심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 안에서라도 즐거움을 찾아보자.’ 르누아르의 미술 철학과 우키요에의 철학을 나의 표현으로 바꿔봤다. 르누아르와 자포니즘에게 얻은 지혜였다. 산책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글·사진 | 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