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와 함께하는 홋카이도 여행 #2 먼저 읽기
삿포로에서 차를 빌려 오타루로 넘어갔다. 오타루만의 감성이 흐린 날과 어울린다고 느꼈던 건 아마도 영화 〈윤희에게〉에서 보았던 눈 쌓인 운하가 기억에 남아서겠지.
오타루는 오르골 박물관이 메인일 줄 알았는데, 늦은 점심으로 먹었던 스시 한 접시와 우니가 그날의 행복을 채웠다. 북해도의 신선한 식재료는 입안에서 바다를 느끼게 해주었다. 제철 미식 여행이 이런 건가?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먹는 게 불편할 법도 한데, 한편으로는 음식 맛에 집중할 수 있어 속으로 여러 번 만만세를 외쳤다.
오타루 오르골당
오타루에서 먹은 스시
물론 아이와의 여행이 내내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큰 나비 날개를 어깨에 멘 일곱 살쯤 된 언니를 보고 똑같은 나비를 사 달라며 울고불고하는 바람에 상점마다 기웃거리며 비슷한 걸 찾느라 혼이 빠졌다. 결국 찾지 못해 적당히 귀여운 다른 것으로 설득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오타루 운하 거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다섯 시 무렵, 서둘러 주변 마트를 검색해 저녁에 먹을 간식과 우유를 사서 차에 탔다. 근교 지역인 니세코로 넘어가는 길은 가로등 하나 없는 산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여정이라 가끔 보이는 차들이 반가울 정도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고지대를 한 시간 넘게 달리다 보니 고라니 같은 산짐승이 나오지 않을까 등골이 서늘했다.
“우리 지금 가는 곳이 관광지가 맞는 거지? 마치 우리만 가는 것 같아.”
그는 스키장과 온천으로 알려진 지역이라 가을은 비수기라고 답한다. 합리적인 가격에 새로 생긴 쾌적한 숙소라 마음에 들 거라는 말만 믿고 그를 따랐다. 단, 산속이라 주변에 가까운 편의점도 없어 내부에서 식사를 비롯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고. 주차장에 내릴 때까지 미심쩍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본 정서의 단정함에 세련됨까지 가미된 공간이 나타나 긴장감이 확 풀렸다.
니세코 숙소의 아침
환영 인사를 하는 스태프의 인상착의도, 저녁으로 예약된 웨스턴 코스 요리도 마음에 들었다. 하나밖에 없다는 이곳 레스토랑은 밖에서 보면 산장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새어 나오는 불빛마저 아늑했다. 방으로 들어가는 길은 미로 찾기 마냥 굽이굽이 재미있다.
준비된 가운으로 갈아입고 노천탕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온천욕을 즐기자 동서양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이곳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눈을 뜨니 창밖은 온통 초록. 소록소록 잠든 아이와 드넓은 초록색 밭, 안개를 반쯤 걸치고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산. 펼쳐진 광경이 전부 그림 같았다.
니세코 숙소의 창밖 풍경
저녁을 먹었던 식당에서 아침 식사도 했다. 연속으로 만나는 스태프들이 정겨웠다. 아이를 사랑스럽게 불러줄 만큼 다정하고 친근하다. 간밤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드높은 나무와 눈이 편안해지는 풍경이 마음을 정화한다. 공기도 깨끗하다. 복식 호흡하듯 숨을 크게 들이쉬고 뱉는 우리 두 사람. 코드가 참 잘 맞는다.
숙소가 마음에 들어 더 머무르고 싶다는 아이를 달래며 마지막 코스로 떠난다. 가는 길에 루스츠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놀이공원에 들러 아이와 우당탕 뛰어놀았다. 하루 한 번은 아이와의 놀이와 아내를 위한 커피 타임을 지키고자 한 그의 충실한 마음이 느껴진다.
니세코에서 루스츠 놀이공원으로 가는 길
넓은 대지에 띄엄띄엄 놓인 놀이기구는 낡았지만 어렸을 적 추억을 소환하는 재미가 있었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빗자루를 쓸고 있는 광경도 정겹다. 놀이공원에서 서너 시간 머무는 동안 날씨는 비가 왔다가 안개가 꼈다가 해가 났다가 반복했다. 희한하게 야외 놀이 기구에 올라타면 빗방울이 떨어지고 실내로 들어가면 해가 났다. 인생이란. 녹록하지 않지.
수국이 핀 루스츠 놀이공원
도야코로 가는 길, 차에서 곤히 잠든 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고 쉬려는데 때마침 김동률의 〈출발〉이 흘러나왔다.
“잠들면 후회할 텐데, 밖을 보면서 가는 거 어때?”
나무로 둘러싼 숲길을 달리다가 핸들을 좌측으로 꺾는 순간 좌르르 펼쳐지는 풍경. 호수란다. 호수는 광활하고 아름다웠으며, 너머로 보이는 우스산과 쇼와산의 능선과 탁 트인 시야는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평온한 호수 위 윤슬의 반짝임도 위로가 되었다. 뒤에 오는 차량을 보내고 속도를 낮춰 천천히 달려준 그의 배려로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능선에 걸린 구름의 움직임과 호수의 면면을 다양하게 담을 수 있었다.
도야 호수는 일본에서 아홉 번째로 큰 호수로 둘레가 약 43km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평평한 지형에 물이 고여서 만들어진 칼데라 호수다. 호수 안에는 네 개의 섬이 있는데 도야 호수의 풍경은 홋카이도 3대 경관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도야 호수의 저녁노을
마지막 숙소는 ‘더 레이크 스위트 고노스미카’ 호텔로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신선놀음이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싶을 만큼 현실감이 사라지는 곳이다.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도야 호수에 압도당했다. 유유자적과 숙연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신비로운 곳. 드넓게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살아있음에 감사하자는 마음이 삶의 기본 태도로 재정립된다.
노천탕 객실을 배정받아 아이와 물을 받아 호수를 바라보며 서로를 껴안았던 그 시간은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연아, 너 세 살 때 엄마랑 호수가 보이는 노천탕에서 둘이 한참을 끌어안으며 물놀이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서로만 보이던 시절이 있었어.”
오래된 관광지의 구수한 온천 마을에서 맑고 선한 기운을 온전히 받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도야 호수를 바라보는 코노스미카의 로비
글/사진 이유리(그렇게 책이 된다)

성산동에서 책방 '그렇게 책이 된다'를 운영했습니다. @becoming_books
:: 아이와 함께하는 홋카이도 여행 #2 먼저 읽기
삿포로에서 차를 빌려 오타루로 넘어갔다. 오타루만의 감성이 흐린 날과 어울린다고 느꼈던 건 아마도 영화 〈윤희에게〉에서 보았던 눈 쌓인 운하가 기억에 남아서겠지.
오타루는 오르골 박물관이 메인일 줄 알았는데, 늦은 점심으로 먹었던 스시 한 접시와 우니가 그날의 행복을 채웠다. 북해도의 신선한 식재료는 입안에서 바다를 느끼게 해주었다. 제철 미식 여행이 이런 건가?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먹는 게 불편할 법도 한데, 한편으로는 음식 맛에 집중할 수 있어 속으로 여러 번 만만세를 외쳤다.
물론 아이와의 여행이 내내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큰 나비 날개를 어깨에 멘 일곱 살쯤 된 언니를 보고 똑같은 나비를 사 달라며 울고불고하는 바람에 상점마다 기웃거리며 비슷한 걸 찾느라 혼이 빠졌다. 결국 찾지 못해 적당히 귀여운 다른 것으로 설득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다섯 시 무렵, 서둘러 주변 마트를 검색해 저녁에 먹을 간식과 우유를 사서 차에 탔다. 근교 지역인 니세코로 넘어가는 길은 가로등 하나 없는 산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여정이라 가끔 보이는 차들이 반가울 정도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고지대를 한 시간 넘게 달리다 보니 고라니 같은 산짐승이 나오지 않을까 등골이 서늘했다.
“우리 지금 가는 곳이 관광지가 맞는 거지? 마치 우리만 가는 것 같아.”
그는 스키장과 온천으로 알려진 지역이라 가을은 비수기라고 답한다. 합리적인 가격에 새로 생긴 쾌적한 숙소라 마음에 들 거라는 말만 믿고 그를 따랐다. 단, 산속이라 주변에 가까운 편의점도 없어 내부에서 식사를 비롯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고. 주차장에 내릴 때까지 미심쩍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본 정서의 단정함에 세련됨까지 가미된 공간이 나타나 긴장감이 확 풀렸다.
환영 인사를 하는 스태프의 인상착의도, 저녁으로 예약된 웨스턴 코스 요리도 마음에 들었다. 하나밖에 없다는 이곳 레스토랑은 밖에서 보면 산장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새어 나오는 불빛마저 아늑했다. 방으로 들어가는 길은 미로 찾기 마냥 굽이굽이 재미있다.
준비된 가운으로 갈아입고 노천탕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온천욕을 즐기자 동서양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이곳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눈을 뜨니 창밖은 온통 초록. 소록소록 잠든 아이와 드넓은 초록색 밭, 안개를 반쯤 걸치고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산. 펼쳐진 광경이 전부 그림 같았다.
저녁을 먹었던 식당에서 아침 식사도 했다. 연속으로 만나는 스태프들이 정겨웠다. 아이를 사랑스럽게 불러줄 만큼 다정하고 친근하다. 간밤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드높은 나무와 눈이 편안해지는 풍경이 마음을 정화한다. 공기도 깨끗하다. 복식 호흡하듯 숨을 크게 들이쉬고 뱉는 우리 두 사람. 코드가 참 잘 맞는다.
숙소가 마음에 들어 더 머무르고 싶다는 아이를 달래며 마지막 코스로 떠난다. 가는 길에 루스츠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놀이공원에 들러 아이와 우당탕 뛰어놀았다. 하루 한 번은 아이와의 놀이와 아내를 위한 커피 타임을 지키고자 한 그의 충실한 마음이 느껴진다.
넓은 대지에 띄엄띄엄 놓인 놀이기구는 낡았지만 어렸을 적 추억을 소환하는 재미가 있었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빗자루를 쓸고 있는 광경도 정겹다. 놀이공원에서 서너 시간 머무는 동안 날씨는 비가 왔다가 안개가 꼈다가 해가 났다가 반복했다. 희한하게 야외 놀이 기구에 올라타면 빗방울이 떨어지고 실내로 들어가면 해가 났다. 인생이란. 녹록하지 않지.
도야코로 가는 길, 차에서 곤히 잠든 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고 쉬려는데 때마침 김동률의 〈출발〉이 흘러나왔다.
“잠들면 후회할 텐데, 밖을 보면서 가는 거 어때?”
나무로 둘러싼 숲길을 달리다가 핸들을 좌측으로 꺾는 순간 좌르르 펼쳐지는 풍경. 호수란다. 호수는 광활하고 아름다웠으며, 너머로 보이는 우스산과 쇼와산의 능선과 탁 트인 시야는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평온한 호수 위 윤슬의 반짝임도 위로가 되었다. 뒤에 오는 차량을 보내고 속도를 낮춰 천천히 달려준 그의 배려로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능선에 걸린 구름의 움직임과 호수의 면면을 다양하게 담을 수 있었다.
도야 호수는 일본에서 아홉 번째로 큰 호수로 둘레가 약 43km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평평한 지형에 물이 고여서 만들어진 칼데라 호수다. 호수 안에는 네 개의 섬이 있는데 도야 호수의 풍경은 홋카이도 3대 경관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마지막 숙소는 ‘더 레이크 스위트 고노스미카’ 호텔로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신선놀음이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싶을 만큼 현실감이 사라지는 곳이다.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도야 호수에 압도당했다. 유유자적과 숙연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신비로운 곳. 드넓게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살아있음에 감사하자는 마음이 삶의 기본 태도로 재정립된다.
노천탕 객실을 배정받아 아이와 물을 받아 호수를 바라보며 서로를 껴안았던 그 시간은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연아, 너 세 살 때 엄마랑 호수가 보이는 노천탕에서 둘이 한참을 끌어안으며 물놀이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서로만 보이던 시절이 있었어.”
오래된 관광지의 구수한 온천 마을에서 맑고 선한 기운을 온전히 받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도야 호수를 바라보는 코노스미카의 로비
글/사진 이유리(그렇게 책이 된다)
성산동에서 책방 '그렇게 책이 된다'를 운영했습니다. @becoming_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