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반달살기에서 일본 한달살기로 (3)
가장 애정하는 도시, 후쿠오카로
부산에서 대마도로 올 때 탔던 배와 달리, 대마도에서 이키섬을 거쳐 후쿠오카로 향하는 배는 크기가 꽤 컸고 이름은 ‘키즈나(인연)’였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는 이름이 알파벳과 숫자로만 이루어진 딱딱한 편명이 대부분이지만 배 이름은 왠지 의미가 깊어 보이거나 예쁜 것들이 많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서 인연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몸체에 올라타고, 기름 냄새를 맡으며 점점 멀어져가는 대마도를 바라보았다. 유독 숙소 고양이 하루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따분하긴 했어도 느긋하게 보냈던 대마도에서의 시간들이 점차 기억 속의 서랍 칸에 쌓여 가고 있었다. 대마도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고,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망망대해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아, 바로 이게 배를 타는 낭만이지!
바다를 충분히 구경하고 선내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등석은 카펫이 깔린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었다. 아예 누워서 가라고 베개도 여러 개 수납되어 있고, 카운터에서 50엔을 지불하면 담요를 빌릴 수 있다. 일등석은 방 안에 여러 개의 베개와 담요가 깔려있을 뿐 누워서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베개를 베고 패딩을 덮고서 자리에 누우니 둥실둥실 흔들리는 움직임에 잠이 솔솔 왔다.
배 안에서 바라본 풍경(왼쪽)과 2등석 야외석 및 실내석(오른쪽)
배가 이키섬에 경유한 것도 모른 채 잠에 푹 빠졌던 나는 곧 후쿠오카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에 눈을 떴다. 배는 하카타항에 접근하고 있었고, 빨강과 초록으로 선명하게 빛나는 하카타 포트 타워가 나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대마도와는 확실히 다른, 반가운 도심 풍경도 펼쳐졌다.
도쿄에서의 교환 유학을 마친 직후, 다시 교환 학생이 되어 후쿠오카로 넘어갔을 때, 대도시 도쿄에 비해 후쿠오카가 시골처럼 느껴져 우울증과 향수병이 심하게 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 후쿠오카도 역시 도시는 도시다. 높고 네모난 건물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고, 밤에도 수많은 간판과 가로등 불빛으로 빛나는 풍경이 그동안 대마도에서 얼마나 그리웠던지.
하카타 포트 타워
어떤 곳은 굉장히 번화하면서도 또 어떤 곳은 적당히 시골 같기도 한 후쿠오카는 시내에서 바다와 공항이 매우 인접하고, 도쿄와 오사카처럼 있을 건 다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 나에게는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 2013년 초 첫 방문을 계기로 후쿠오카를 애정하기 시작해 2015년 한 학기 동안 보냈던 교환 유학 생활은 내 30여 년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뒤돌아보면 아련하게 느껴지는 의미 있는 시절로 남아 있다. 3년간의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년 후쿠오카를 오갔다. 2022년 가을에는 5주를 지냈고, 2023년 초여름에도 다녀왔다. 이번이 반년 만의 방문. 도쿄와 오사카도 적지 않게 가긴 했지만, 유독 친근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후쿠오카다.
행복했던 후쿠오카 유학시절(2015년)
후쿠오카 시내의 대표적인 장소
후쿠오카 시내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심이 되는 곳들을 모아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다자이후를 제외하고는 서로 가까이 밀집해 있어 도보 이동도 가능하다. 지하철 1일권(640엔)을 활용하는 것도 추천.

텐진역: 후쿠오카의 중심지. 전철역, 버스터미널, 백화점, 복합 쇼핑몰, 마트, 호텔, 사옥, 신사 등 모든 것이 텐진에 빽빽하게 모여 있다. 후쿠오카를 여행할 때 가장 많이 가게 되는 곳.
하카타역: 후쿠오카 교통의 요충지. 버스 터미널과 신칸센, JR 전철이 이어지며 백화점, 호텔, 사옥 등 높은 건물이 밀집되어 있다.
캐널시티: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복합 쇼핑몰로, 팽이 같은 독특한 건물 디자인과 분수 쇼가 특징이다. 하카타역과 나카스카와바타역 사이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아 외국인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나카스카와바타: 후쿠오카 최대 환락가와 다양한 문화생활이 어우러진 곳. 돈키호테와 쿠라즈시(회전 초밥집), 아시아미술관, 가와바타 상점가 등이 있다.
하카타 포트 타워: 하카타항에 위치한 송신탑이자 오후 5시까지 운영하는 무료 전망대. 나카스카와바타역에서 도보 약 10분 거리.
오호리 공원: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공원으로, 넓은 호수가 공원의 중심이자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다. 공원 안에는 후쿠오카시 미술관이, 바로 옆에 붙은 마이즈루 공원에는 후쿠오카 성터가 있다.
모모치 해변: 시내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인공 해변. 돔구장과 마크이즈 쇼핑몰, 힐튼호텔, 후쿠오카 타워가 해변에 순서대로 늘어서 있다.
후쿠오카 타워: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타워로, 송신탑과 전망대 역할을 한다. 날카롭고 곧은 외관이 주사기 모양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자이후: 시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전통적인 도시. 이곳의 명소로는 학문의 신을 모시는 다자이후 텐만구와 전통적인 인테리어의 스타벅스가 있다.
이상한 숙소 직원
도착한 숙소의 프런트 앞 소파에 남자 직원이 앉아있는 걸 보니 여태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상 시간보다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하며 직원과 시선을 맞추는데, 그는 풀린 눈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나에게 “술 좋아해? 술 먹으러 안 갈래?” 하고 다짜고짜 반말로 물었다. 당황스러웠던 나는 매일 맥주 두 캔씩 먹고 잠든 대마도에서의 기억을 뒤로 하고 술을 아예 못 먹는다고 정중하게 거절했고, 텐진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짐만 놓고 숙소에서 다시 나왔다. 지금까지 여러 숙소를 다녔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대마도 숙소 사장님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오호리 공원과 무척 가깝고 후쿠오카 시내 중심인 텐진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편리한 위치에 있어 굳이 숙소를 옮길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씻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직원이 방으로 들어와 내 팔을 잡아당기며 나와보라고 하더니 칫솔을 내밀었다. 히라가나로 써 둔 내 이름을 보고 내 것이 맞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찾아준 건 고맙지만 다짜고짜 팔을 잡아당기는 건 또 뭔지, 이해할 수 없는 직원이었다.
그 다음 날도 잠을 자다 새벽에 잠깐 일어나 꾸벅꾸벅 졸면서 화장실로 가고 있던 나를 그 직원이 발견하고 따라붙으면서 계속 “스안짱 괜찮아? 무슨 문제 있어?” 하고 물었다. 처음 보자마자 반말로 술 마시러 가자고 하질 않나, 갑자기 방으로 들어와서 팔을 잡아당기질 않나, 화장실 가는 것도 방해하질 않나…… 불쾌한 일의 연속이었다.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서 그제야 숙소 리뷰를 살펴보니 직원의 태도와 시설 청결도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숙소가 특정될 수 있으니 밝히긴 어렵지만…. 가격만 보고 냉큼 예약한 게 후회가 되었다.
일본의 헌팅, ‘난파’로 만난 여행 메이트
후쿠오카에서의 4일 차 일정을 마무리하기 직전, 텐진에서 홀로 걸어가고 있는데 낯선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걸어 왔다. 길거리 헌팅을 일본어로 ‘난파’라고 하는데, 바로 그 난파였다. 경계심이 심해 매번 무시해 왔지만, 이렇게 난파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이번에는 한번 들어나 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행 에세이를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해프닝도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그래서 대뜸 “그럼 맥주 한 잔 사 주시면 따라가 볼게요!” 하고 말했다. 한 공간에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 많은 시내 한복판에 있으면 해코지당할 걱정은 덜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어느 술집에 자리를 잡았고, 서로에 관해 묻고 답했다. 그의 이름은 ‘쇼타(가명)’였고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았다. 전형적인 표준어를 구사하는 쇼타는 도쿄에서 나고 자랐지만 3년 전부터 일 때문에 후쿠오카로 이사 왔다고 했다. 그는 가죽 패션과 힙합을 좋아하며, 일본 역사 덕후기도 했다. 그리고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도쿄에서 인쇄소를 하고 계신다기에,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나로선 꽤 신기했다. 하지만 쇼타는 인쇄소를 이어받을 생각은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확실히 나와 비슷한(?)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였다.

오이타의 인형마을, 마메다마치로
다음 날 쇼타와 나는 텐진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오이타의 히타시에 있는 마메다마치로 가는 버스 티켓을 끊었다(버스 요금은 2천 엔 가량). 전날 그곳에 있는 인형박물관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마메다마치는 규슈의 교토라고 불리는 곳으로, 텐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쇼타는 자리에 앉자마자 금방 잠에 들었다. 나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히타에 도착해보니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꽤 보였다. 높은 건물도 없고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는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돌길 양옆으로 전통 음식이나 전통 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마을 곳곳을 둘러보다가 ‘히나인형박물관’으로 입장했다. ‘히나마츠리’는 매년 3월 3일에 어린 여자아이의 행복을 기원하며 왕과 왕비, 그리고 신하들의 인형을 계단 모양의 장식대에 장식하는 전통 행사이다. ‘히나인형’은 그 인형들을 일컫는다. 박물관에는 기대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밖에서 본 것보다 규모도 컸는데, 구석구석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입장료 300엔이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행히 역사를 좋아하는 쇼타도 이 박물관이 꽤 흥미로웠다고 한다.
히나인형박물관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히나인형박물관 바로 근처에 위치한 ‘게타 자료관 & 종이인형박물관’. 들어서자마자 2층까지 닿는 거대한 게타(나막신)가 보였다. 건물 바깥부터 다양한 게타와 일본 전통 공예품을 판매하고 있었고, 2층에는 일본 전통 종이로 만든 인형과 작은 신사도 있었다. 쇼타는 신사가 보일 때마다 꼭 동전을 넣고 박수를 두 번 친 다음 기도를 올렸다. 2층 박물관 입장료는 단돈 100엔이었고, 직접 전시실 불을 켰다 껐다 해야 했지만 나도 쇼타도 꽤 만족스럽게 관람했다.
게타 자료관 & 종이인형박물관
마메다마치는 인형의 마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곳곳에서 일본 전통 인형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형 마니아인 나에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작년 후쿠오카 한 달 살기 때 이곳 히타에 오지 못했던 게 퍽 아쉬웠는데 이번에 그 한을 풀었다. 쇼타도 이런 흥미로운 전통을 가진 마을이 있는 줄 몰랐다며, 오길 정말 잘 했다고 말했다. 술 저장고와 양조장까지 둘러보고 마메다마치 관광을 다 마친 우리는 히타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우동집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히타에는 곳곳에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히타역 앞에는 등장인물 캐릭터 동상이 놓여 있었는데, 이곳 히타가 원작자의 고향이라고 한다. 우리는 히타역 앞에서 서로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었고, 텐진으로 가는 오후 7시 마지막 버스에 올라타 나란히 숙면을 취했다. 원래는 히타에 혼자 오고 싶었지만, 정말 혼자 왔다면 꽤 쓸쓸할 뻔했다. 그리고 쇼타가 옆에서 끊임없이 일본 역사 이야기를 들려줘서 이런저런 정보를 알 수 있었고 일본어 듣기 공부도 아주 많이 됐다…….

해 질 녘의 히타 시내 풍경
텐진 버스 터미널로 돌아온 우리는 쇼타의 단골 식당에서 야식과 맥주를 먹으며 마지막 일정을 보냈다. 이날도 쇼타는 숙소 앞까지 나를 바래다주었고, 오늘 정말 즐거웠다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날 밤, 잘 준비를 하고 몸을 뉘었는데 쇼타의 말소리가 끊임없이 머릿속에 울려서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새해 첫날, 후쿠오카에서 도쿄로
일주일 동안 후쿠오카에서 머무르며 여러 친구들과도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었고, 금세 친해진 쇼타와도 저녁마다 한 잔씩 하거나 산책을 했다. 도쿄로 떠나기 전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기도 해서 술집에 자리를 잡고 조촐한 망년회를 했다.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고, 자정이 되자마자 “아케마시테 오메데토(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외치며 새해맞이 건배를 했다. 술집을 나온 다음 찾아간 오호리 공원 안 스미요시 신사에서 쇼타는 하츠모우데(새해에 신사나 절에서 참배하는 것)를 했다. 나는 참배는 하지 않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새해 첫날인 만큼 신사에는 새벽에도 참배하러 온 사람들과 이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야타이(포장마차)로 북적였다.
스미요시 신사
이제 후쿠오카를 떠나 도쿄로 갈 시간이 다가왔다. 이번에도 쇼타는 숙소 앞까지 바래다주었고, 그동안 늘어난 짐을 맡아줄 것을 쇼타에게 부탁했기에 도쿄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인 다음, 첫차를 타고 후쿠오카공항으로 이동했다. 이 정도면 그리 나쁘지 않은 연말연시야,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꾸벅꾸벅 졸면서…….
글·사진 | 이스안

키덜트 매거진 《토이크라우드》 편집장. 대학에서 조각과 일본학을 공부했으며 여행, 호러 장르, 키덜트 문화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호러소설집 <기요틴> <카데바> <신체 조각 미술관>, 여행서 <도쿄 모노로그> <한국 인형박물관 답사기> 등이 있다.
https://www.instagram.com/toyphilbooks_suan
대마도 반달살기에서 일본 한달살기로 (3)
가장 애정하는 도시, 후쿠오카로
부산에서 대마도로 올 때 탔던 배와 달리, 대마도에서 이키섬을 거쳐 후쿠오카로 향하는 배는 크기가 꽤 컸고 이름은 ‘키즈나(인연)’였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는 이름이 알파벳과 숫자로만 이루어진 딱딱한 편명이 대부분이지만 배 이름은 왠지 의미가 깊어 보이거나 예쁜 것들이 많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서 인연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몸체에 올라타고, 기름 냄새를 맡으며 점점 멀어져가는 대마도를 바라보았다. 유독 숙소 고양이 하루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따분하긴 했어도 느긋하게 보냈던 대마도에서의 시간들이 점차 기억 속의 서랍 칸에 쌓여 가고 있었다. 대마도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고,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망망대해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아, 바로 이게 배를 타는 낭만이지!
바다를 충분히 구경하고 선내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등석은 카펫이 깔린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었다. 아예 누워서 가라고 베개도 여러 개 수납되어 있고, 카운터에서 50엔을 지불하면 담요를 빌릴 수 있다. 일등석은 방 안에 여러 개의 베개와 담요가 깔려있을 뿐 누워서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베개를 베고 패딩을 덮고서 자리에 누우니 둥실둥실 흔들리는 움직임에 잠이 솔솔 왔다.
배가 이키섬에 경유한 것도 모른 채 잠에 푹 빠졌던 나는 곧 후쿠오카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에 눈을 떴다. 배는 하카타항에 접근하고 있었고, 빨강과 초록으로 선명하게 빛나는 하카타 포트 타워가 나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대마도와는 확실히 다른, 반가운 도심 풍경도 펼쳐졌다.
도쿄에서의 교환 유학을 마친 직후, 다시 교환 학생이 되어 후쿠오카로 넘어갔을 때, 대도시 도쿄에 비해 후쿠오카가 시골처럼 느껴져 우울증과 향수병이 심하게 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 후쿠오카도 역시 도시는 도시다. 높고 네모난 건물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고, 밤에도 수많은 간판과 가로등 불빛으로 빛나는 풍경이 그동안 대마도에서 얼마나 그리웠던지.
어떤 곳은 굉장히 번화하면서도 또 어떤 곳은 적당히 시골 같기도 한 후쿠오카는 시내에서 바다와 공항이 매우 인접하고, 도쿄와 오사카처럼 있을 건 다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 나에게는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 2013년 초 첫 방문을 계기로 후쿠오카를 애정하기 시작해 2015년 한 학기 동안 보냈던 교환 유학 생활은 내 30여 년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뒤돌아보면 아련하게 느껴지는 의미 있는 시절로 남아 있다. 3년간의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년 후쿠오카를 오갔다. 2022년 가을에는 5주를 지냈고, 2023년 초여름에도 다녀왔다. 이번이 반년 만의 방문. 도쿄와 오사카도 적지 않게 가긴 했지만, 유독 친근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후쿠오카다.
후쿠오카 시내의 대표적인 장소
후쿠오카 시내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심이 되는 곳들을 모아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다자이후를 제외하고는 서로 가까이 밀집해 있어 도보 이동도 가능하다. 지하철 1일권(640엔)을 활용하는 것도 추천.
이상한 숙소 직원
도착한 숙소의 프런트 앞 소파에 남자 직원이 앉아있는 걸 보니 여태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상 시간보다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하며 직원과 시선을 맞추는데, 그는 풀린 눈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나에게 “술 좋아해? 술 먹으러 안 갈래?” 하고 다짜고짜 반말로 물었다. 당황스러웠던 나는 매일 맥주 두 캔씩 먹고 잠든 대마도에서의 기억을 뒤로 하고 술을 아예 못 먹는다고 정중하게 거절했고, 텐진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짐만 놓고 숙소에서 다시 나왔다. 지금까지 여러 숙소를 다녔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대마도 숙소 사장님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오호리 공원과 무척 가깝고 후쿠오카 시내 중심인 텐진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편리한 위치에 있어 굳이 숙소를 옮길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씻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직원이 방으로 들어와 내 팔을 잡아당기며 나와보라고 하더니 칫솔을 내밀었다. 히라가나로 써 둔 내 이름을 보고 내 것이 맞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찾아준 건 고맙지만 다짜고짜 팔을 잡아당기는 건 또 뭔지, 이해할 수 없는 직원이었다.
그 다음 날도 잠을 자다 새벽에 잠깐 일어나 꾸벅꾸벅 졸면서 화장실로 가고 있던 나를 그 직원이 발견하고 따라붙으면서 계속 “스안짱 괜찮아? 무슨 문제 있어?” 하고 물었다. 처음 보자마자 반말로 술 마시러 가자고 하질 않나, 갑자기 방으로 들어와서 팔을 잡아당기질 않나, 화장실 가는 것도 방해하질 않나…… 불쾌한 일의 연속이었다.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서 그제야 숙소 리뷰를 살펴보니 직원의 태도와 시설 청결도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숙소가 특정될 수 있으니 밝히긴 어렵지만…. 가격만 보고 냉큼 예약한 게 후회가 되었다.
일본의 헌팅, ‘난파’로 만난 여행 메이트
후쿠오카에서의 4일 차 일정을 마무리하기 직전, 텐진에서 홀로 걸어가고 있는데 낯선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걸어 왔다. 길거리 헌팅을 일본어로 ‘난파’라고 하는데, 바로 그 난파였다. 경계심이 심해 매번 무시해 왔지만, 이렇게 난파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이번에는 한번 들어나 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행 에세이를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해프닝도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그래서 대뜸 “그럼 맥주 한 잔 사 주시면 따라가 볼게요!” 하고 말했다. 한 공간에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 많은 시내 한복판에 있으면 해코지당할 걱정은 덜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어느 술집에 자리를 잡았고, 서로에 관해 묻고 답했다. 그의 이름은 ‘쇼타(가명)’였고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았다. 전형적인 표준어를 구사하는 쇼타는 도쿄에서 나고 자랐지만 3년 전부터 일 때문에 후쿠오카로 이사 왔다고 했다. 그는 가죽 패션과 힙합을 좋아하며, 일본 역사 덕후기도 했다. 그리고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도쿄에서 인쇄소를 하고 계신다기에,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나로선 꽤 신기했다. 하지만 쇼타는 인쇄소를 이어받을 생각은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확실히 나와 비슷한(?)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였다.
오이타의 인형마을, 마메다마치로
다음 날 쇼타와 나는 텐진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오이타의 히타시에 있는 마메다마치로 가는 버스 티켓을 끊었다(버스 요금은 2천 엔 가량). 전날 그곳에 있는 인형박물관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마메다마치는 규슈의 교토라고 불리는 곳으로, 텐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쇼타는 자리에 앉자마자 금방 잠에 들었다. 나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히타에 도착해보니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꽤 보였다. 높은 건물도 없고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는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돌길 양옆으로 전통 음식이나 전통 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마을 곳곳을 둘러보다가 ‘히나인형박물관’으로 입장했다. ‘히나마츠리’는 매년 3월 3일에 어린 여자아이의 행복을 기원하며 왕과 왕비, 그리고 신하들의 인형을 계단 모양의 장식대에 장식하는 전통 행사이다. ‘히나인형’은 그 인형들을 일컫는다. 박물관에는 기대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밖에서 본 것보다 규모도 컸는데, 구석구석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입장료 300엔이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행히 역사를 좋아하는 쇼타도 이 박물관이 꽤 흥미로웠다고 한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히나인형박물관 바로 근처에 위치한 ‘게타 자료관 & 종이인형박물관’. 들어서자마자 2층까지 닿는 거대한 게타(나막신)가 보였다. 건물 바깥부터 다양한 게타와 일본 전통 공예품을 판매하고 있었고, 2층에는 일본 전통 종이로 만든 인형과 작은 신사도 있었다. 쇼타는 신사가 보일 때마다 꼭 동전을 넣고 박수를 두 번 친 다음 기도를 올렸다. 2층 박물관 입장료는 단돈 100엔이었고, 직접 전시실 불을 켰다 껐다 해야 했지만 나도 쇼타도 꽤 만족스럽게 관람했다.
마메다마치는 인형의 마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곳곳에서 일본 전통 인형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형 마니아인 나에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작년 후쿠오카 한 달 살기 때 이곳 히타에 오지 못했던 게 퍽 아쉬웠는데 이번에 그 한을 풀었다. 쇼타도 이런 흥미로운 전통을 가진 마을이 있는 줄 몰랐다며, 오길 정말 잘 했다고 말했다. 술 저장고와 양조장까지 둘러보고 마메다마치 관광을 다 마친 우리는 히타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우동집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히타에는 곳곳에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히타역 앞에는 등장인물 캐릭터 동상이 놓여 있었는데, 이곳 히타가 원작자의 고향이라고 한다. 우리는 히타역 앞에서 서로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었고, 텐진으로 가는 오후 7시 마지막 버스에 올라타 나란히 숙면을 취했다. 원래는 히타에 혼자 오고 싶었지만, 정말 혼자 왔다면 꽤 쓸쓸할 뻔했다. 그리고 쇼타가 옆에서 끊임없이 일본 역사 이야기를 들려줘서 이런저런 정보를 알 수 있었고 일본어 듣기 공부도 아주 많이 됐다…….
해 질 녘의 히타 시내 풍경
텐진 버스 터미널로 돌아온 우리는 쇼타의 단골 식당에서 야식과 맥주를 먹으며 마지막 일정을 보냈다. 이날도 쇼타는 숙소 앞까지 나를 바래다주었고, 오늘 정말 즐거웠다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날 밤, 잘 준비를 하고 몸을 뉘었는데 쇼타의 말소리가 끊임없이 머릿속에 울려서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새해 첫날, 후쿠오카에서 도쿄로
일주일 동안 후쿠오카에서 머무르며 여러 친구들과도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었고, 금세 친해진 쇼타와도 저녁마다 한 잔씩 하거나 산책을 했다. 도쿄로 떠나기 전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기도 해서 술집에 자리를 잡고 조촐한 망년회를 했다.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고, 자정이 되자마자 “아케마시테 오메데토(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외치며 새해맞이 건배를 했다. 술집을 나온 다음 찾아간 오호리 공원 안 스미요시 신사에서 쇼타는 하츠모우데(새해에 신사나 절에서 참배하는 것)를 했다. 나는 참배는 하지 않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새해 첫날인 만큼 신사에는 새벽에도 참배하러 온 사람들과 이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야타이(포장마차)로 북적였다.
이제 후쿠오카를 떠나 도쿄로 갈 시간이 다가왔다. 이번에도 쇼타는 숙소 앞까지 바래다주었고, 그동안 늘어난 짐을 맡아줄 것을 쇼타에게 부탁했기에 도쿄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인 다음, 첫차를 타고 후쿠오카공항으로 이동했다. 이 정도면 그리 나쁘지 않은 연말연시야,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꾸벅꾸벅 졸면서…….
글·사진 | 이스안
키덜트 매거진 《토이크라우드》 편집장. 대학에서 조각과 일본학을 공부했으며 여행, 호러 장르, 키덜트 문화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호러소설집 <기요틴> <카데바> <신체 조각 미술관>, 여행서 <도쿄 모노로그> <한국 인형박물관 답사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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