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여행] 다양함을 찾아, 일본 서점 여행

단편 기획기사



서점 근무 16년째.

나의 서점 생활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책, 새로운 서점.

입사 후 몇 년 동안은 새로운 책을 찾아다녔고, 중반 이후부터는 우리 서점엔 없는 새로운 모습의 서점을 찾기 위해 서점 여행에 빠졌다. 그렇게 국내 서점을 섭렵했을 즈음 저가항공 시장이 열렸다. 나는 새로움을 찾을 만한 곳으로 출판 강국 일본에 눈을 돌렸다. 나의 일본 서점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참고로 나는 일본어 히라가나조차 다 외우지 못한다.)


일본 서점에 가기 전 무엇부터 시작할까?

나는 먼저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관련 사이트와 서점, 책 관련 사이트를 살핀다. 북샵러버, 하코니와, 코토비 등 관련 사이트에 새로운 정보가 뜨면 야후 재팬을 통해 상세히 검색하고, 구글 지도에 표시도 해놓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발견한 서점 수만 해도 몇 십 군데다.


도쿄에 비해 오사카의 서점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과 교토에는 전통적인 작은 서점이 많고 대형 서점의 영향이 적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서점 수가 많은 도쿄를 탐방하게 됐다. 자, 그럼 이제 그 많은 도쿄의 서점 중 깊은 인상을 준 몇 곳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마루노우치 리딩 스타일



나리타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도쿄역. 도쿄역 주변은 의외로 숨겨진 서점이 많아서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중 도쿄역 옆에 있는 KITTE 건물(옛 우정국)의 ‘마루노우치 리딩 스타일’은 현재 국내 서점의 트렌드이기도 한 책과 문구, 카페를 조합해 놓은 대표적인 서점이다. 이들만의 독특한 기획 코너인 ‘Reading Style Project’는 다른 서점과 연합해서 운영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획 작품으로는 같은 날에 태어난 유명인의 책을 모은 ‘생일문고’, 증상을 보고 지금 자신에게 딱 맞는 처방책을 선택하는 ‘비브리오 테라피’ 등이 있다. 일본에서도 아주 유명한 기획이다.


전체적으로 쇼핑몰 같은 건물 속에서 여유로운 쇼핑이 가능한 곳이다.



2. HMV & BOOKS



두 번째로 소개할 서점은 독특한 대형서점인 ‘HMV & BOOKS’이다.

HMV는 원래 시부야 거리에서 성업하던 음반 가게였다. 몇 년 전 사라진 이곳이 책과 음반을 콜라보한 매장으로 돌아온 것이 바로 ‘HMV & BOOKS’다.



15년 전, 시부야 거리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에 이끌려 들어갔던 HMV는 나에게도 추억의 장소다. 그러니 일본 현지인들에게는 이들의 귀한이 얼마나 더한 반가움으로 다가왔을까. 이곳은 북코디네이터이자 맥주 파는 서점으로 유명한 ‘B&B“의 대표 우치누마 신타로씨의 기획이 들어간 곳이다. 음반(DVD), 문구류 등이 책과 함께하는 복합 매장이며, 미로와 같은 동선, 낮은 천정, 그리고 어두운 조명이 서점으로서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독특한 콘셉트의 코너, 라이프스타일에 중점을 둔 생활용품 등 곳곳을 알차게 꾸며놓기도 했다.


또한 각 층별 이벤트 공간은 200여 명의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미디어 역할을 한다. TV나 인터넷 매체에 익숙한 이들에게 오프라인에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놀잇거리를 선사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3. ROUTE BOOKS



마지막으로 소개할 서점은 도쿄 시민의 쉼터 우에노 공원 반대편, 작은 뒷골목에 위치한 ‘ROUTE BOOKS’. 가장 최근에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올 초, 10여 년을 빈 상태로 있던 건물에 들어선 곳으로 원래는 작은 건축회사의 업무 공간이다. 버려진 공간과 물건의 재활용에 목적을 둔 듯 각종 식물과 재활용 가구들로 실내를 꾸몄고, 공방은 물론 서점까지 만들게 되었다. 4층에 위치한 서점은 들어서는 순간 푸르름과 올드함, 포근함을 안겨준다. 서툰 영어로 주문을 하고 어디서 왔냐, 서점에 자주 오냐,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센스 있게도 한국 노래까지 틀어준다.


감동과 편안함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의 서점상을 보여주는 이곳은, 같이 간 동료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근 우리나라 독립서점들이 방향을 잘못 잡은 거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꼭 멋진 공간에 깔끔하게 차려진 커피숍과 같은 공간만이 필요한 걸까? 이들은 주업인 공방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바로 서점이라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오래된 가구와 식물, 책. 이곳은 나에게도 도쿄의 새로운 인연이 될 듯싶다.



대한민국의 많은 동네 서점이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는 비단 대한민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일본도 같은 현상을 겪고 있다. 지난 15년간 8,000여 개의 서점이 사라졌고,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와중에 지금 소개한 세 곳의 서점처럼 라이프스타일에 중점을 두고서 수많은 책 속에서 꼭 전하고 싶은 책을 선별하는 큐레이션 능력을 갖춘, 고객들에게 새로운 발견의 즐거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서점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리도 다양한 독립 서점이 생기고 있는 요즘, 확실한 키워드를 잡고 알찬 도서 선택과 함께 독자들에게 새로운 발견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서점이 더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해 본다. 나 또한 그런 새로운 서점을 소개하기 위해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해보려 한다.




글/사진 정영진

안산에 있는 대동서적에 16년째 근무하며 늘 새로운 서점을 찾아 헤매는 서점 중독자이다. 특히나 우리와 비슷한 성향의 일본 서점에 빠져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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