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온천, 대나무의 벳푸 #2



어느덧, 4월이 5월이 그리고 6월이 가고 있다.


탁자에 꽂아놓았던 청보리가 누렇게 말라가고 슈퍼에서 사온 보라색 수국이 그 자리를 대신할 정도의 시간이다. 아파트 5층의 소박한 풍경은 그렇게 아무도 모를 듯이 바뀌고 있지만 남편 G와 내가 각각 겪은 생활의 변화는 작지 않다.


보리가 익고 모내기가 시작되는 사이 손엔 관절염이 생겼다.


4월부터 나는 벳푸죽공예훈련센터에, G는 벳푸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오이타시의 조리사전문학교에 입학했다. 둘 다 고용보험이 적용되어 2년간 매달 실업급여를 받아가며 무료로 직업훈련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두 학교의 분위기가 극과 극이다. 내가 다니는 곳은 현립이고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데다 매년 열두 명만 뽑기 때문에 선생님이며 학생들이 열성으로 똘똘 뭉쳐있다. 그러나 G의 학교는 올해부터 고용보험이 적용된 사립으로 그 전까지는 대개 지역고등학교를 졸업한 십대 아이들이 대부분인 곳이었다. 전후戰後 세워져 70여년의 역사가 있는 전통 있는 학교지만 규슈사람들은 큰 뜻을 품으면 대도시 후쿠오카나 도쿄에서 배워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점점 분위기가 흐려졌다고 한다. 지금도 고용보험 혜택으로 들어온 일반인 네 명을 제외하고는 여드름 풀풀 난 열 아홉 살 들이다.


우린 아무려면 어때, 열심히 해보자했다. ‘열심히’는 한국인이건 일본인이건 어렸을 때부터 부단히 들어온 말일 텐데 나이 서른 넘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의 느낌은 조금 다른 듯하다. 체력적으로 힘을 내서 돌진한다기보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천천히 밧줄을 잡아당기는, 아무쪼록 이번만큼은 끊어지지 않게 해주시길 하는 신중한 마음이 담긴다. 인생에는 생각보다 세세한 소용돌이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고 돌고 돌아 무언가의 장인이 되기 위한 길목에 섰을 땐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의 밧줄을 움켜쥐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봐도 가끔은 잘 모르겠는 필사적인 필기


그러나 역시 학교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언어의 벽도 있지만 선생님이 시범을 보일 때 새끼손가락 하나라도 동작을 기억하고 똑같이 따라하는 눈썰미가 필요하다. 죽공예뿐 아니라 모든 기술이 그러할 터인데,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아듣는 건 고사하고 하나를 열 번 알려줘도 잘 모르겠는 것투성이다.


대나무 공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엮어서 작품을 만들 때 쓰는 대를 가공하는 것이다. 대를 일정한 간격으로 쪼개어 두께를 두세 번에 걸쳐 나누고 기구를 사용하여 넓이와 두께를 일정히 한 후 각을 깎는 것이 일련의 과정이다. 정확하고 빨리 엮는 것이 죽공예의 대표적인 기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으나 아무리 복잡한 엮기라도 두세 시간에 걸쳐 연습하면 일반인도 충분히 가능하다한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에선 '대만들기 3년'이라는 말이 있다. 그 대만들기 과정에서 칼을 가는 훈련을 하는 건 물론, 대장장이가 칼을 만드는 공정이며 사용되는 철의 성분까지 공부한다.


나는 이 칼을 다루는 부분에서부터 좌절감을 느꼈다. 대장장이에게서 칼을 사면 일단 앞뒤 면을 일정히 갈고 나서 사용하는데, 이게 딱 떨어지는 방법이 없다고나 할까. 운이 좋으면 짧은 시간에 갈려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며칠 동안 계속 갈아도 답이 안 나올 수 있다한다. 장인들은 쓰지 않지만 그럴 때 인공 돌 위에 갈기도 하는데 역시 성공할 확률도, 실패할 확률도 높다. 한 번 갈면 끝나는 것도 아니요, 매일매일 갈고 닦아가며 평생을 관리해야한다. 그 수업을 들었을 때, 깊고 어두운 구멍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근본적인 것은 자신의 감각에 좌우된다는 것. 수치로 낼 수 없는 미묘함을 손이 알고 조율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 점에 전통공예의 미학이 있지만, 과연 나는 그 프로의 지점에 닿을 수 있을까. 이 마이너의 세계에서 무언가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좁은 길에 들어섰으나 걸어도 걸어도 도착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4월, 그리고 5월은 닳아가는 마음속의 동아줄을 다잡아보고 당겨보면서 매일 밤 G앞에서 울고 탄식하는 날들로 지나갔다.


우등생 G


금손 G


G는 반면 우등생의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 날 배운 레시피를 깨끗한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노트는 동급생들 사이에 정평이 나 앞 다투어 서로들 빌려가려한다.


"G 정도면 내년에 규슈 요리경연대회에 나가보는 게 어때."


선생님에게서 이 말을 듣고 정말 나가 볼 기세이다. 7년 동안 디자인을 공부하고, 도예를 전공한 G에겐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이 누워서 떡먹기처럼 보인다. 어떤 문제가 나와도 수학은 언제나 만점을 맞던(지금은 산부인과 의사가 된) 고등학교 때 룸메이트가 생각난다. 손기술의 벽안에서 헤매고 있는 나에게 G의 여유로움이 얄밉게도 위대해 보인다.


위가 육방형 바구니, 아래가 '四海波(사해파도)'라는 이름의 바구니. G가 말한 맛은 무슨 맛일까.


우여곡절 끝에 제 1과제작인 "육방형 바구니"가 완성되었다. 만든 개수도 반에서 제일 적고 완성도도 무척이나 떨어지지만 온몸을 짜서 거둔 보리 한줌처럼 두 손에 모아 쥐고 집에 가져왔다.


"오, 생각보다 '맛'이 있잖아!"


G가 보자마자 내뱉은 말이다. 일본어로 개성을 '맛'이라 표현하곤 하는데 어쨌든 만들기에 급급했던 내가 그 맛을 의도적으로 낸 것은 아니고 얼떨결에 나온 것이라 하겠다. 어쨌든 그 바구니엔 스트레스해소용 단맛 과자를 넣어두기로 했다.


내일부터 다시 한 주가 시작한다. 수업 중에 좌절해가면서 수없이 의지했던 마음의 밧줄을 다잡을 때이다. 미지의 '맛'을 향하여, 어쨌든 뚜벅뚜벅 걸어가 볼 참이다.




글/사진 윤민영

한국에서의 별명은 차쿠리. 일본에선 미-짱. 규슈 오이타현의 벳푸에서 바다가 환히 보이는 아파트에 산다. 대나무가방을 들고 대나무공예를 배우러 다닌다. 대나무가 있는 마당에서 댓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벗삼아 슥슥 작업하면서 늙어가고 싶다. 조선 시대 장인들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인생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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