ひとり、京都。 #4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핸드폰을 켜고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게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아닌 미세먼지 수치이던 2019년. 이제는 마스크를 벗고 길을 걷던 기억마저 가뭇하지만, 그날 하루 기온이나 비 예고보다 당장의 미세먼지 농도를 알려주는 이모티콘 상태에 더 관심을 쏟았다. 지금 내가 확진자 수치를 무력하게, 무심하게 바라보듯, 미세먼지 앞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스크는 최소한의 방어적 표현일 뿐, 그저 오늘 하루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뿐이다.



간사이공항 행 오전 비행기를 타고 하루카를 이용해 교토역에 내리면 점심 즈음이었다. 공항, 비행기, 기차.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내내 폐쇄된 곳에서 하루의 반을 보내고 나면 남은 반나절만큼은 조금 더 여유롭고 한적하게 보내고픈 마음이었다. 우지宇治까지는 교토역에서 JR선을 이용한다. 우지는 사이타마, 시즈오카와 함께 일본의 3대 녹차 산지로 불리며 약 800년¹의 깊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450년 된 노포부터 우지차를 현대화한 다양한 상점과 찻집이 곳곳에 즐비하다.


이미 때를 놓친 점심, 배고픔은 한계를 넘은 상태지만 저녁을 위해 가볍고 깔끔하게 즐기기로 한다. 우지차 가루를 넣어 면을 반죽한 맛차 소바, 그 맛차를 사치스럽게 사용한 디저트로 입 안 가득 풍미를 더해 보면, 차가 주는 다양한 즐거움에 긴 이동과 배고픔으로 흐릿해졌던 감각이 어느새 세심하게 일깨워진다.



한껏 맑아진 몸과 마음으로 비와코 호수에서 흘러나온 우지강을 따라 교토 시내와는 조금 다른 한가한 분위기의 소소한 골목을 걷고 있으면, 골목 여기저기 차향이 솔솔 새어 나온다. 특히, 일본 동전 10엔에 새겨진 ‘뵤도인平等院²’으로 향하는 길에는 차를 판매하는 상점들과 찻집들이 늘어서 있어 그 향이 더욱 짙다.



뵤도인은 1052년 창건되어 헤이안 시대 예술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불교 사찰이다. 귀족의 별장으로 지어진 후 불교가 쇠퇴하는 시기, 극락으로의 염원을 담아 재건되어 다른 사찰과는 다른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매표소에서 뵤도인 입장권과 함께 아미타여래좌상阿彌陀如來坐像이 있는 봉황당 입장권도 별도로 구입한다. 봉황당 참관은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인원으로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서만 가능하다.


보수공사³ 이전 2012년 2월의 뵤도인


입장 시간을 기다리며 봉황당 주변을 거닐다 때에 맞춰 신발을 벗고 경내로 들어선다. 금박 옷을 입은 아미타여래좌상의 거대한 규모와 내부 천장까지 이어진 화려함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52구의 운중공양보살상雲中供養菩薩像의 섬세함. 극락이다. 특히 구름 위에서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면서 아미타여래를 보호하는 듯한, 운중雲中상에서 오랜 세월 공들여 조각하며 극락세계를 향해 기도했을 인간의 간절한 모습이 그려진다. 아미타여래좌상의 바래진 금빛으로 시간의 흐름을 가늠해 본다. 시간은 한껏 치장된 막을 서서히 벗겨내 원래의 본질적 모습을 드러내 준다. 그 덕에 화려함 너머에 있는 인자한 얼굴을 마주한다. 그러면 어느새 봉황당 뒤로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다.


보수공사 이전 2010년 11월의 뵤도인 


교토로 돌아가기 전, 오래된 찻집에서 따뜻한 센차를 주문한다. 오로지 차를 마실 때의 경험과 찻잎 자체에만 집중해 본다. 맛차를 이용한 낮의 디저트가 마치 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감각을 깨운 맛이었다면 지금은 불필요한 모든 것을 다 걷어내고 차의 본질만 남겨둔 맛이다. 오늘 하루 떠남, 그리고 도착으로 일어난 감흥과 더불어 분주했던 몸과 마음이 부드럽게 다독여진다. 


나카무라 토키치中村藤吉 본점


어두워진 거리, 상점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지만 그 자리엔 여전히 차향이 맴돈다. 온 감각으로 느끼는 진한 초록이 주는 여유는 맑고 투명한 푸른 밤하늘에 뒤섞여 공기 중을 떠돈다. 


미세먼지 수치로 시작하던 하루, 차 한 잔 우려내고 창문 밖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일상적인 분위기 너머 고요한 풍경과 쌉싸름함이 주는 신선함을 들이 쉬던 날들. 교토에서 사온 차를 꺼낸다. 나카무라 토키치中村藤吉의 맛차抹茶 가루와 잇포도一保堂의 센차煎茶 잎을 두고 고민하다 바짝 움츠린 마른 찻잎에 물을 주기로 한다. 물에 닿은 찻잎은 서서히 초록빛과 향으로 퍼지면 이제 막 봄이 오려는 하늘에 그 기운을 띄운다. 수색과 향기는 밝고 맛은 신선하고 순하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차 한 잔에 오래 전 그날 교토의 맛이 담겨 있다.


교토의 맛이다. 




______

1) 우지차의 기원은 13세기 초, 고잔지의 묘에가 스님이 에사이 선사로부터 차 씨를 받아, 차 생육에 적합한 우지에 차원을 마련한 것에 있다. 우지시 홈페이지 우지차의 역사 발췌
2) 뵤도인平等院은 1052년 당대 최고 권력자인 후지와라 요리미치가 그의 아버지 후지와라 미치나가에게 물려받은 별장을 개축한 절이다. 봉황이 날개를 좌우로 크게 펼친 모습으로 보이는 봉황당은 일본 동전 10엔에, 지붕 위 봉황은 일본 지폐 만엔에 새겨져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3) 2012년 가을부터 약 2년에 걸쳐 보수공사를 진행. 2014년 4월 1일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재개장.
4) 1854년에 창업한 교토 우지에 본점을 두고 있는 일본 차 전문점.
5) 햇빛을 차단해 키운 찻잎을 손으로 따서 찐 후, 말린 다음 갈아서 가루로 만든 차.
6) 1717년에 창업한 교토 데라마치 거리에 본점을 두고 있는 일본 차 전문점.
7) 찻잎을 따서 바로 증기로 찐 다음, 뜨거운 바람으로 말리면서 손으로 비벼 가늘고 길게 만든 차로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차.




글/사진 한수정

우아한 삶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관념과 현실을 분리시킨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vov_sj/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