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집]하라주쿠 다케시타도리 : 도쿄, 여행보다 산책

도쿄 특집호 #1




누군가 나에게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거리가 어디냐고 물을 땐 주저 없이 하라주쿠의 “다케시타도리竹下通り”라고 대답한다. 그런 적은 없지만, 만약 누군가 나에게 도쿄에서 가장 싫어하는 거리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곳 역시 하라주쿠의 “다케시타도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언제나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리지만 걷고 있으면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지는 거리. 한번 들어가면 들어간 곳으로 되돌아 나올 수 없는 거리. 주말 오후, 다케시타 거리를 걸어보게 된다면 내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비까지 와서 우산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니,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도쿄에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아무도 없는 “다케시타도리”를 걷고 싶었다.


“그게 가능해? 저기 변두리 동네라면 모를까 도쿄에서 사람 많기로 다섯 손가락에 안에 드는 다케시타를 홀로 걷겠다고?”


친구의 말에 수긍은 하였으나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 2016년의 마지막 날. 나는 그 거리를 오로지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보자는 조금은 무모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연말연시 연휴’에 따뜻한 이불속에서 늦잠을 자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아침 일찍 중앙선 열차를 탔다. 신정 연휴를 맞아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 건지 열차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덕분에 편안히 앉아서 하라주쿠까지 갈 수 있었다.



하라주쿠역에 도착한 것은 여덟 시 반이 조금 넘어서였다. 아무도 없는 다케시타 거리를 걸어 보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일까? 발걸음이 빨라졌다. 역에서 나오자 평소보다는 적었지만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다케시타 거리를 홀로 여유롭게 걷겠다는 꿈은 단숨에 깨져 버렸다. 그나마 한적한 하라주쿠역은 처음이었으니…….


하라주쿠역 다케시타 출구로 나오면 바로 정면에 다케시타 거리가 펼쳐진다. 폭 5미터, 총길이 350미터의, 좁은 골목이라 해도 좋을 하라주쿠의 메인 스트리트가 메이지도리明治通り를 만날 때까지 쭉 뻗어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오기 때문에 다케시타 거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건물 한 층 높이의 급경사를 내려가면 비로소 원색의 간판들이 아기자기하게 붙어져 있는 다케시타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된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곳은 차량이 통제되는 보행자 천국이다. 그런데 그게 말이 좋아 보행자 천국이지 이곳을 보행하고 있노라면 지옥이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된다. 그래도 이른 시각에 온 덕분에 수많은 인파에 들어가기 전부터 겁을 집어먹는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거리는 대체로 조용했다. 이 공간을 가득 매웠던 사람들의 웅성거림, 가게 앞에서 손님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호객을 하던 점원의 외침,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웃음소리, 각국의 언어가 뒤섞인 이 거리 특유의 혼란스러운 소리가 아직 시작되기 전이었다. 몇몇 사람들의 발소리만이 스펀지 위를 걷는 듯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같았다. 평소에 보이던 관광지의 면모는 사라지고 특별할 것 없는 출근길 풍경이었다. 간이 수레에 박스를 가득 싣고 가는 아저씨의 모습도 보였고, 간혹 나와 같이 사람 없는 다케시타 거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개점이 되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벌써부터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든 가게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고, 셔터에는 낙서라고 하기엔 예술미가 넘치는 형형색색의 글과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티커가 거리의 구석구석에 붙어 있었고 자판기에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가 휘갈겨져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게 앞은 주인의 취향이 잘 드러나는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지만, 그 아침의 다케시타 거리는 도쿄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거리였다.



바닷물이 모두 빠져나간 갯벌의 모습. 그것이 내가 느낀 이른 아침의 다케시타 거리였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에서는 여기저기 작은 구멍으로부터 빼꼼이 고개를 내미는 게를 만날 수도 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바다 생물과 마주치기도 한다. 아침부터 굴을 따기 위해 길을 나서는 부지런한 어촌 사람들의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 잔잔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 바쁘게 생명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사람들에 휩쓸려 그저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던 거리를 그처럼 여유 있게 천천히 둘러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많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일상적이면서도 여유로운 모습 속에 언뜻언뜻 거리 본연의 혼돈과 개성과 발랄함이(그 성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감지되는 듯도 했다.



얼마 있지 않아 이 거리는 늘 그래 왔듯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할 것이고, 거리 예술가들의 스케치북이 되어 주었던 셔터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모습을 감출 것이다. 점원들은 분주히 가게 앞에 매대를 설치하고 물건들을 진열할 것이다. 이윽고 평소와 다름없이 인파로 가득해지면 소녀들은 파르페나 레인보우 솜사탕을 들고 까르르 웃으며 거리를 활보할 것이고, 호객행위를 하는 흑인들은 영어 억양이 섞인 특유의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며 전단지를 나눠줄 것이다. 카메라를 짊어진 외국인들은 셔터를 누르느라 바쁠 것이고, 컬러풀한 메이드 복장의 하라주쿠 공주님들도 이 거리를 평소 내가 알던 그 모습을 되돌려 놓으려 자신들의 매력을 발산할 것이다.





글/사진 김성헌

1년간 도쿄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며 블로그에 일상 이야기를 올렸다. 현재는 IT 일을 하며 도쿄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공동 저서로 『일본에서 일하며 산다는 것』이 있다.


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