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집]도쿄타워와 스카이트리 : 누구나 봄날을 그리워하고 추억한다

도쿄 특집호 #2



도쿄로 여행을 오면 항상 하마마쓰초浜松町 지역에 묵고는 했다. 하네다 공항에서 이어지는 모노레일의 종착역인지라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도쿄타워東京タワー를 눈앞에 두게 되었는데 꽤나 근사한 경험이었다. 정말 내가 도쿄에 와 있다는 실감이 확 든다고 해야 할까?


도쿄에 살면서는 반대로 스카이트리スカイツリー를 매일 보게 되었다. 도쿄의 대표적인 시타마치下町¹로 알려진 야네센谷根千²이 우리 동네가 되었기 때문이다. 난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키치조지吉祥寺³에 사는 사람 열도 부럽지 않을 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여행 다니면서 내가 도쿄에서 산다면 반드시 이곳에서 살리라 다짐했을 정도로 애정이 있었던 곳이다.


우리 동네 어디서든 스카이트리가 보였다. 그래서 이 구름색의 높은 탑을 눈에 담는 것이 자연스레 일상이 되었고, 어느 때부턴가는 하늘에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느 순간 보지 않으면 어딘가 허전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스카이트리를 보고 있으면 어느 시절 행복했던 일, 힘들었던 일, 지난날들이 만개한 벚꽃 같은 추억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이 저려올 때도 있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도쿄타워”가 그런 존재겠지만. 조조지増上寺⁴ 앞 벤치에 앉아 편의점에서 산 커피를 쭉쭉 들이켜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도쿄타워가 소중한 거겠지? 하고.


도쿄의 영원한 랜드마크 도쿄타워


쇼와昭和시대(1926-1989)에 세워진 도쿄타워와 헤이세이平成시대(1989-2019)에 세워진 스카이트리. 이 두 탑은 본래 전파 수신을 위한 전파 탑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2년 스카이트리가 본격적으로 개방되면서 많은 말들이 오갔다. 도쿄타워가 센파이(先輩:선배)라는 우스갯소리부터 해서 시타마치 지역엔 최신식 스카이트리가, 야마노테山の手 지역엔 반세기나 된 도쿄타워가, 스카이트리 근처엔 최신식의 쇼핑센터 소라마치ソラマチ가, 도쿄타워 근처엔 오래된 절 조조지가. 대지진으로 도쿄타워는 윗부분이 좀 휘어졌는데 스카이트리는 멀쩡하다는 말도 있었고, 그밖에도 완공된 시대의 이야기부터 총 높이까지, 두 탑은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로 비교 대상이 되고 있다. 


봄날의 스카이트리


쇼와시대는 1926년부터 1989년까지 히로히토 천황 시대를 뜻하지만, 보통은 2차 대전 종전 후부터 버블경제가 무너지기 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40년대까지 전쟁에서 승승장구했던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며 패전의 대가를 치른다. 그 후 50, 60년대는 다시 일어서 보자 으쌰으쌰! 하는 시기로, 이때 도쿄타워가 건립되고 올림픽도 개최되었다. 70년대부터 80년까지는 뭐 그야말로 황금 전성기였다.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미국 다음가는 경제 대국이 되었다. 자동차, 컬러텔레비전, 해외여행과 같은 사치가 일반화되면서 가장 호화롭고 부유했던 시기를 누렸다. 그러다 80년대 말, 슬슬 안 좋은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거품경제가 폭락했고, 동시에 헤이세이 시대로 접어들었다.


“쇼와”하면 아직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다. 도쿄에서 한 계절을 보냈을 무렵, 친구와 신주쿠의 오모이데요코초思い出横丁를 찾은 적이 있었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신주쿠는 참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아니, 도쿄라는 도시 자체가 그렇다. 언젠가 도쿄는 감정 없는 차가운 도시, 혹은 서울과 비슷한데…,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그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가게들이 다 비슷비슷해 보여 맥주만 먹을 수 있음 되지 않겠냐며 아무 곳에나 들어가 카운터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가 아사히 한 병을 비웠을 때쯤 옆에서 혼자 술을 드시던 중년 아저씨가 적당히 벌게진 얼굴을 하고는 말을 건넸다.


“여기 쇼와 분위기 나죠? 도쿄에는 이런 곳이 꽤 많아요, 다행스럽게도.”


몇 분간 대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 첫마디가 한동안 왜 그렇게 기억에 남았는지……. 그분의 표정과 말투에 어떤 감정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게 나에게 와 닿았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신주쿠 오모이데요코초


내년 초에 “헤이세이平成시대”도 막을 내린다. 다음 연호는 무엇이 될 것인지에 관해 일본에서는 관심이 뜨겁다. 거기에다 이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아무로 나미에安室奈美恵가 은퇴 선언을 함으로써 어딘가 더 의미부여가 되어 버린 듯하다. 아쉬움과 빨리 이 시대가 가 버렸으면 하는 묘한 느낌을 어렴풋이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인들에게 그다지 반가운 시대는 아니었으니. 시작부터 버블경제의 폭락으로 고스란히 물려받은 소위 “잃어버린 10년”을 견뎌 오며 이지메, 살인, 사이비종교,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와 같은 사회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고, 자살률은 매년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1995년의 고베 한신 지역의 대지진과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쳐질 정도의 끔찍한 기억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이 세대들은 이런 시련들을 이겨내야 하고 다음 세대에게는 물려주지 말자는 시대적 사명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 주었던 것이 바로 그리운 쇼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우에노上野나 간다神田, 아사가야阿佐ヶ谷의 어느 선술집 “이랏샤이마세”가 아닌 “오카에리お帰り⁵”라는 말로 반겨주는 마스터⁶의 정겨운 목소리, 언뜻 허름한 듯해도 오랜 세월 가게 구석구석 마음을 쓴 흔적이 배어 있는 - 에서 기울이는 술 한 잔이었다. 그리고 퇴근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련하고도 따뜻한 빛을 발하며 꿋꿋이 서 있는 도쿄타워. 패전 후 그 절망적인 황무지를 비옥한 땅으로 일궈 내기까지의 노력과 수고, 각오.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행복하고 화려하고 찬란했던 그 시절. 이런 기억들이 모두 한 데 섞여 깃들어 있는 대표적인 쇼와의 산물이 도쿄타워다. 이런 의미에서, 그렇기 때문에, 스카이트리는 높이로는 한참 넘어섰을지 몰라도 그 숭고한 존재감에 있어서는 도쿄타워를 넘어설 수 없는 것 같다.


쇼와 느낌 - 밤의 아사쿠사


최근 일본에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도쿄의 심볼이 아직도 도쿄타워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무려 93.6%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 블로거는 스카이트리는 주로 데이트하러 가지만 혼자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을 풀고 싶을 때는 도쿄타워를 찾는다고 했다. 간혹 스카이트리는 어떻게 해도 정이 안 간다며 도쿄타워에 대한 애정이 심하게 넘치시는 동네 할아버지도 만나지만, 이 두 탑의 이야기는 대부분 “도쿄타워는 쇼와의 기억이 남아 있는 상징물로서 앞으로도 도쿄의 발전을 지켜봐 줄 것이며, 이제부터는 스카이트리와 함께 번영하길 바란다.”는 식으로 아름다운 종결을 맺는다.


JR야마노테센 하마마쓰초역 북쪽 출구로 나오면 도쿄타워가 주황빛을 내뿜으며 반겨준다. 여전하다. 그래 역시 도쿄는 도쿄타워지! 오늘은 매일 보던 스카이트리 대신 간만에 조조지를 지나 타워까지 걷고 싶어졌다. 밤에 오면 간혹 조조지의 깜깜한 구석 벤치 어디선가 키스를 나누는 커플이 보이기도 한다. 불빛 하나 없는 이 큰 절과 대조적으로 바로 옆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도쿄타워 밑이라 아무래도 그 로맨틱한 분위기에 취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랏샤이마세”하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 가득한 좁은 가게로 들어섰다. 본격적인 산책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자주 가던 라멘집에 들러 따뜻한 라멘 한 그릇 호로록 먹어야겠다.


조조지와 도쿄타워



1) 에도시대 때는 도쿄를 크게 봉건영주와 무사들이 살았던 야마노테山の手지역과 서민, 예술가, 상인 등이 살았던 시타마치下町지역으로 구분했다.

2) 야나카谷中/네즈根津/센다기千駄木를 줄여 부르는 말. 이곳은 지금까지도 옛 서민가의 정취가 짙게 남아 있다.

3) 도쿄도 23구의 외곽지역에 있는 번화가 가운데 하나로 행정구역 상 무사시노시武蔵野市에 속한다. 매년 도쿄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동네 1위로 꼽히고 있다.

4) 1393년에 세워진 사찰. 도쿄를 대표하는 큰 절 중 하나로, 도쿠가와 가문의 위패를 보존하고 있다. 도쿄타워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5) ‘잘 다녀왔어?(어서와)’라는 의미다. 오래된 이자카야에서는 단골손님에게 "오카에리"라는 표현을 쓴다. "이랏샤이마세"보다 격식 없고 친근한 표현이다.

6) 일본에서는 가게 주인을 ‘마스터’로 부르곤 한다. 주로 단골들이 쓰는 표현이지만 대체적으로 혼자 가게를 꾸려나가는 주인 겸 주방장을 칭하는 말이다.




글/사진 정인혜

‘앞으로의 삶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 라는 생각에 돌연, 평소 동경하던 도시인 도쿄에의 유학길에 올랐다. 여행하며, 산책하며, 사진 찍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다.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37mid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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