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막걸리가 익었으니 친구를 부를 수 밖에

술 특집 #2



좋은 의미로 술은 서로 간 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술자리는 좋은 마음을 나누게 해 주는 자리가 되고요. 얼마 전 저에게도 좋은 술로 마음을 나눴던 뜻 깊은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첫 사회생활을 함께했던 첫 직장의 동료들과 거의 10여 년 만에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한 달 간 합숙하며 신입사원 교육을 받기도 했고, 회사와 사회에 적응하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동기들이었지요. 제가 퇴사하면서 그 뒤로 모임을 피하게 되었고, 그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국순당


술 한 잔 막 생각나는 잔뜩 흐린 어느 날, 연락처를 더듬어가던 중 그중 한 친구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망설이며, 혹시나 세월의 낯선 막이 생겼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수화기를 들고 있었지요.


"야, 오랜만이다."


첫마디에 걱정은 사르르 녹고 아껴두었던 얘기들을 수화기에 대고 한참 쏟아냈습니다. 약속 장소를 잡고, 마음에 맞았던 동기들을 추가하여 모임 날짜를 정하였습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은 여운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짜릿하고 흥분되는 감정은 아니었습니다. 오랜 친구에게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 따뜻함, 마치 어제도 만났던 친구마냥 반가운 마음이 하루 종일 가슴에 남아 있었습니다.



요즘은 동네 마트만 가도 다양한 술들이 판매되고 있지요. 맥주, 소주는 물론 한국 전통주인 약주와 탁주에다 위스키, 와인, 사케 등등. 카테고리도 늘어나고 제품 종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다양해짐과 동시에 새로운 술 맛을 접할 때 느껴지는 희열이 무궁무진하게 늘어났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대인 거지요. 좋은 술의 정의에 대해 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술이 말 그대로 자신에게 좋은 술이라 생각합니다. 기술적으로 한 발 들어가면 어떤 재료로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에 따라 의미와 가치가 있는 술이 구분되겠지요. 다만, 어떤 술은 좋고 어떤 술을 나쁘다는 기준은 개인의 기호에 맡겨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전통주인 약주와 탁주, 그 중에서도 막걸리는 정확하게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기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술이 많이 사라졌지만, 전통주를 빚는 방법과 음용법 등은 일반 소비자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복원되고 발전되어 다양하게 유지, 생산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여러 대외적 환경으로 소주와 맥주가 대표 주종으로 자리 잡았고, 거기에 다양한 주종이 들어오며 주류시장이 변했지요. 저는 전통주를 나의(우리의) 오래된 친구로 생각합니다. 맥주, 소주, 와인, 사케, 양주 등은 그 뒤로 만난 새로운 친구들이고요. 일반적으로 사람을 사귀다 보면, 오래된 친구도 있고 새로운 친구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오래된 친구를 선호하고, 또 반대로 어떤 사람은 새로운 친구만 사귀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친구를 사귀어 나가듯 선호하는 술도 그렇게 구분되어지는 거겠지요.



자, 마침내 그날이 되었습니다. 10여년 만에 동기를 만나는 날. 30분 전부터 마음이 두근두근 거립니다. 얼마나 변했을까? 어떤 이야기들을 하게 될까 궁금해집니다. 옛 친구들을 만나기 위한 약속장소는 제가 정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전통주 전문 회사 국순당에서 직영하는 전통 주점 ‘백세주마을’에서 막걸리를 마시기로 한 것이지요. 오래된 친구들이 만나는 자리엔 오랜 친구 같은 막걸리가 제격 아니겠어요.


‘백세주마을’은 국순당 삼성동 본사 1층과 강남역, 종각역 서울에만 세 곳의 매장이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도 한 곳 있으니 혹시 생각나시면 들러보세요. 다양한 전통주가 있고, 깔끔한 안주가 있습니다. 도심 빌딩 안에 최대한 전통 양식의 인터리어를 조화시키고 있지요. 아직 전통주가 낯설고 부담스러운 분들이 전통주와의 거리를 좁혀보는 데 좋지 않을까 싶네요. 제 경험으로는 외국 바이어나 손님들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겨 주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많이 방문해주세요!)


백세주마을 삼성점 내부 ⓒ국순당


사무실에서 내려와 미리 예약해 놓은 자리에 앉아 있자니 이런저런 옛 생각이 들더군요.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동기 녀석이 보입니다. 곧이어 서둘러 퇴근한 친구들이 도착하기 시작합니다. 살은 쪄서 몸은 후덕해지고 머리숱은 좀 덜 촘촘해졌지만, 이목구비와 목소리는 예전과 똑같습니다. 만나자마자 핸드폰에 저장된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는 아버지가 된 것만 달라졌네요. 하지만 하는 짓은 예전 20대 철없던 시절과 똑같습니다. 아니, 오늘만큼은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예전의 기억들이 우릴 지배하게 놓아둔 걸지도 모릅니다.



오랜 친구들을 위해 막걸리를 이것저것 종류별로 시켜 봅니다. “야, 이 막걸리 참 맛있다.” 평소에 막걸리를 즐기지 않는다는 친구도 벌컥 벌컥 잘도 마십니다. 술도 친구들도 어색함이 없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는 술을 마시며 좋은 술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막걸리는 무르익은 친구들과 참 많이 닮았더군요. 다양한 해외의 술들의 고급화 전략에 우리 전통주가 때로는 소외되고 저평가되기도 하지만, 막걸리 한 잔은 언제든 사람 사이 경계를 풀어주고,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으로 마주앉게 합니다.


술자리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고, 10년 만에 재개되었던 우리의 이야기는 또 한 번 잠시 멈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모이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옛 친구의 가치를 다시 알게 되었으니까요.



혹시,

비가 오면 왜 막걸리와 전이 생각나는지 알고 계신가요? 1) 빗소리가 전을 기름 위에서 구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해서 전과 잘 어울리는 막걸리를 찾게 된다는 설 2) 비가 오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우울해지는데 막걸리에 들어 있는 트립토판이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동시에 페닐알라닌이 활력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라는 설 3) 조상님들이 비가 오면 농사일을 할 수가 없어서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를 즐기셨기에 그런 삶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다는 설. 확실하게 정해진 답은 없지만, 저에게는 세 번째 이유가 가장 맞는 것 같네요. 비 오는 날, 백세주마을로 막걸리 한 잔 하시러 오세요.




글/사진(1, 3-6, 8-10) 차영화

글쓴이 차영화는 국순당 마케팅본부 해외사업팀에서 막걸리를 포함한 전통주를 해외 48개국으로 수출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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