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두바이 통신원][여행] 두바이에서 미리 아랍 크리스마스!

내 맘대로 두바이 통신원 #5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부모는 일터에서,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내야 했던 우리 가족은 밤이 되면 그리웠던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자연스레 우리는 야행성 인간이 되고 말았다. 뒤늦게야 나는 아이의 성장을 위해 초저녁부터 재우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했으나 이미 늦게 잠드는 습관이 생겨버린 아이에게 일찍 자라는 말은 그저 공염불일 뿐. 하지만 그러던 아이도 일 년에 딱 며칠 동안만은 일찌감치 침대로 향한다. 그 마법은 늘 크리스마스 즈음에 일어난다.


몇 해 전, 크리스마스이브. 우리 집 꼬마는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이른 시각에 자리에 누웠다. 내가 산타 할아버지는 썰매를 타고 날아가다가 ‘잠을 자는’ 아이의 집에만 들어가 선물을 놓고 가신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래도 그게 먹혀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평소 자정이 다 되어 잠들던 아이가 일찍 눕는다고 잠이 올 리가 있나. 불 꺼진 방에 눕긴 누웠으나 말똥말똥한 눈으로 한참을 뒤척이는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삼십 분만 더 놀다 자겠느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조심스레 속삭였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들킬까 봐.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잖아…”


크리스마스 즈음 방문했던 사막 호텔



과연 우리는 두바이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을까?

깨어 있다는 사실을 산타 할아버지한테 들킬까 봐 놀고 싶은 것도 꾹 참아가며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잠을 청하던 내 아이의 귀엽고도 안타까운 날들이 떠오르는 계절이다. 어느덧 두바이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 도시로 이사를 올 때 우리의 큰 고민 중 하나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이삿짐에 넣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었다. 아랍에미리트는 거주자 중 자국민 비율이 고작 11%에 불과한 나라다. 특히 두바이는 외국인 거주자의 비율이 높고 자유로운 국제도시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깟 트리쯤 가져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가만있자, 그래도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기독교인들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를 티 나게 축하해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트리를 몇 번이나 실었다 뺐다 하는 부모 곁에서 아이도 고민이 태산이었다. 비행기까지 타고 외국으로 이사를 하는데 과연 그분이 우리의 새집을 제대로 찾아오실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거였다.


결국 우리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컨테이너에 실었다. 꼭대기에 별까지 달면 족히 2미터는 되는 큼지막한 트리였다. 두바이에서 오너먼트를 못 구하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온갖 반짝이는 것들도 꾸역꾸역 다 쓸어 담았다. 이사 과정에서 그것들이 적발되어 벌금을 물거나 버려진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과연 우리는 두바이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을까?




두바이의 크리스마스

걱정하는 일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11월로 접어들자마자 두바이의 쇼윈도들은 바로 크리스마스 의상으로 갈아입는다. 화장실 한 칸 고치는 데도 몇 달이나 걸리는 나라답지 않게 이런 일에는 또 왕서방 뺨 때리는 아라비아 상인의 기질을 십분 발휘한다. 두바이몰(Dubai Mall)이며 에미리트몰(Mall of the Emirates), 나킬몰(Nakheel Mall) 같은 시내 주요 쇼핑몰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어찌나 화려한지 윈도쇼핑만 하고 와도 이미 크리스마스를 치른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연말이 되면 두바이의 쇼핑몰은 너도나도 크리스마스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삿짐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넣을까 뺄까 고민했던 게 우스울 정도로 두바이에서는 다양한 크리스마스트리를 판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어우러지면 평소 진열되어 있던 물건들도 어쩐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이라이트는 가구나 식기,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매장들인데 탐나는 물건이 어찌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런 곳을 다녀올 때마다 내 얇은 지갑이 야속하고, 동시에 지갑이 얇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인테리어 용품 매장. 어찌나 사고 싶은 소품이 많은지 갈 때마다 고민의 늪에 빠진다.


비단 실내 쇼핑몰뿐일까? 12월에서 2월까지 겨울 시즌 동안 두바이는 평균 기온이 최저 14도, 최고 26도 정도의 쾌적한 날씨를 자랑한다. 마치 한국의 가을을 연상시키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계절이라 하겠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외부 행사가 많아지는데 여기에 크리스마스 행사가 빠지면 섭섭하다. 11월부터 실외 공간들도 크리스마스 테마로 꾸며지고, 크리스마스 마켓도 문을 연다. 눈만 없다 뿐이지, 산타 마을이 있는 핀란드의 로바니에미나 뉴욕 같은 대도시를 빼고는 크리스마스를 가장 요란하게 즐기는 곳은 두바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11월부터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문을 열어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두바이의 카페 역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뿜는다.



산타 할아버지, 제 소원은요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두바이를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것은 바로 두바이 엑스포였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이 세계적인 행사도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전구와 크리스마스트리로 한껏 꾸민 채 관람객을 맞이했다. 행사장 한편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우체통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께 보내는 엽서에 자신이 올 한 해 어떻게 살았는지, 받고 싶은 선물은 뭔지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산타가 추첨을 통해 엽서의 주인공이 적어낸 선물을 진짜로 준다고 했다.


두바이 엑스포장에 설치되어 있던 커다란 우체통. 우리 가족도 엽서에 소원을 적어 산타 할아버지께 부쳤다.


그 이야기에 마음이 동한 우리 아이도 정성스레 엽서를 썼다. 람보르기니 스포츠카를 받고 싶어요, 라고 쓴다고 해도 두바이라면 정말 스포츠카를 선물로 줄 것 같았지만, 아이는 축구화와 축구복이 받고 싶다고 적었다. 얘야, 그 정도는 엄마, 아빠도 사줄 수 있단다. 람보르기니 어떠니? 아니면 페라리라도? 잠시 재물의 노예가 되었던 엄마는 이윽고 동심을 되찾아 진지하게 엽서를 쓰고 있는 아이 곁에서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받고 싶은 선물을 조그맣게 되뇌어 보았다. 


그때 빌었던 ‘선물’이 바로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두바이에서의 겨울을 최고로 즐겁게 보내게 해 달라는 거였다. 비록 추첨 운은 없었지만, 그 마음이 정말로 산타에게 가닿았는지 우리는 그 겨울을 정말로 즐겁게 보냈다. 잊지 못할 겨울이었다.



올해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된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가득 내뿜고 있다. 한국에서 가져온 오너먼트와 두바이에서 새로 산 오너먼트를 함께 매달면서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동심으로 돌아가 소원을 빌어보았다. 산타 할아버지, 이번에도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게 한 해 잘 마무리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올해도 제 소원, 들어주실 거죠?





글/사진 이유미(여행하는가족)

“엄마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마흔 넘어 받은 질문이 고마워 눈물이 다 났습니다. 아이에게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오래 간직해온 저의 꿈을 한 자 한 자 펼쳐보려고 합니다. ‘여행하는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travellingfamil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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