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새해 만두

단편 기획기사



一. 戰勝以喪禮處之 전쟁에 이겨도 마무리는 장례로 하라


서기 225년, 유비가 죽고 아들 유선이 촉나라 왕위에 오른 지 3년째 되던 해. 남만의 왕 맹획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촉나라의 국경을 넘어왔다. 남만은 촉의 수도와 멀리 떨어져 있고 산세가 험준하여, 이를 방패삼아 줄곧 촉에 복속되기를 거부해 왔다. 승상 제갈공명은 조자룡과 위연을 대장으로 세우고, 몸소 50만 대군 이끌어 전장에 나섰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신묘한 계책으로 맹획을 사로잡았다.


‘산이 궁벽하고 길이 좁아 실수로 잡혔을 뿐이다. 군마를 정비하여 재차 자웅을 겨뤄보고 싶다.’ 맹획은 실수로 한 번 진 것일 뿐 다시 겨룬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명은 맹획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한 다음 자기 영채로 돌려보냈다. 장수들이 깜짝 놀라 어찌하여 괴수를 돌려보내는 것이냐 물었다.


“내가 맹획을 잡는 일은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는 것만큼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맹획이 진심으로 항복한 뒤여야만 남만이 평정될 수 있습니다.”


공명은 남만의 토성을 허물고, 그들이 숨어들어간 동굴을 파헤치고, 남만의 자랑 코끼리 부대를 무찌르며 네 달 동안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아 일곱 번 놓아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생포에 이르러서야 맹획은 더 이상 맞서는 것이 무의미하다며 진심으로 감복하였다.


제갈공명의 초상


공명이 군사를 물러 촉으로 돌아가려고 노수濾水 강가에 이르렀을 때, 홀연 일진광풍이 일고 검은 구름이 사방을 뒤덮었다. 맹획이 이를 보고 노수의 미친 물귀신이 재앙을 일으킨 것이니 마흔아홉 개의 사람 머리와 검은 소, 흰 양을 잡아 제를 지내야만 물결이 잦아들 것이라 하였다.


“내 이번 대사를 치르며 귀중한 목숨을 무수히 허비한 대죄를 지었기로 감히 제 명에 죽기조차 단념하였는데, 어찌 다시 군병의 목숨을 쉬이 여기란 말인가.”


공명은 사람들에게 밀가루 반죽에 소와 양의 고기를 가득 채워 둥글게 빚게 한 음식을 제상에 올리고 경건히 절하며 목 놓아 통곡했다. 오래 전 노자 『도덕경』에 이르길 전쟁에서 이겼더라도 사람이 죽은 것은 슬픈 일이니 마무리는 장례로 치르라 하였다. 제사를 마치자 물결이 잦아들고, 공명의 군사들은 무사히 노수 건너편에 닿았다. 본디 공명이 만든 사람 머리는 남만인의 머리라, 사람들이 일컬어 만두蠻頭라 하였으나, 후에 蠻(오랑캐 만)과 음이 같은 饅(만두 만)자를 써서 만두饅頭가 되었다.




二. 交在子時, 해가 바뀌어 만두를 빚다


“첫날은…, 보통 일찍 일어나지. 둘째 날도 일찍 일어나고. 셋째 날은…, 늦게 일어날 걸.”


음력 설 전날, 나는 대만 타이중 시내 말보로의 집에서 그의 식구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처음 계획은 말보로가 경영하는 오래된 태양 빵집에서 그와 차를 마시고 헤어지는 것이었다. 한국에 가져갈 기념품은 그가 알아서 챙겨주겠지, 내심 바라기도 하면서. 태양빵집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2층 건물이다. 2층엔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있고 계단과 벽에는 빵 박물관인지 전시관인지, 아무튼 몇 가지 볼거리들을 가져다 놓았다. 점원이 홍차와 이런 저런 빵들을 내왔다. 그는 가족들과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이제 빵 같은 건 질려서인지 손을 대지 않았다. 나도 빵은 거의 그대로 두고 찻주전자만 급하게 비웠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만나자마자 격하게 포옹을 하고 난 뒤론 떠듬떠듬 안부나 묻다가, 전시물과 말보로 사이로 눈길만 왔다갔다. 이윽고 그가 호텔로 데려다 주겠다며 계단을 내려갔다. 호텔로 가는 10여 분 동안 그는 두 개비의 말보로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는 영 석연찮다는 듯, 고개를 힘차게 젓고는 이대로 헤어지면 안 되겠으니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리고는 다시 그의 집에 닿기까지 30여 분 동안 다섯 개비의 말보로 담배를 피웠다.


3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말버’라 소개했다. 주변 사람들도 그를 말버라 불렀다. 나는 그러려니, 그게 이름인 줄 알았다. 그는 20대부터 격심하게 피워댄 말보로 담배를 꺼냈고, 대학 때부터 별명이 ‘말보로’라고 했다. 지금은 그의 본명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고도 했다.  


6시 정도 됐을까, 말보로의 남동생들이 창고에서 커다란 테이블을 꺼내와 식탁보를 씌웠다. 식탁보의 무늬는 그들의 아내들이 내 온 요리들로 금세 잊혀졌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저녁은 늘 이만큼 성대하다고, 차린 음식이 많다 보니 새해는 늘 과식으로 시작한다고,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면, 다른 음식은 다 먹어도 생선 요리만큼은 절대로 다 먹어선 안 된다고 했다.  


“대만 말로 물고기 魚[yu]의 발음은 무언가를 ‘남겨두다’의 餘[yu]와 비슷하거든. 年年有餘[nian nian yo yu], 올해 내가 가진 부와 복을 다음 해를 위해 남겨둔다는 의미야.”



식사를 마치고 대강 거실에 둘러앉았을 땐 중화 사람들에 포위돼 고군분투하느니만치 아무리 시끌벅적하더라도 넋이 나가지 말자 의지를 다졌지만, 대만 사람들은 원래 이런 건가, 말도, 대화도 조용조용. 중국어를 쓴다는 이유로 괜한 오해를 받으며 살아갈 운명이구나, 취하지 않게 내 몸단속이나 잘하자 생각했다.


말보로의 할머니가 자녀들에게 빨간 봉투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봉투 안에는 자녀들이 한 살 더 먹는 일을 축하하는 덕담과 약간의 돈이 들어 있다고 했다. 봉투를 받은 자녀들은 할머니의 건강과 재운을 빌어드렸다. 돈도 덕담도 주고받지 못한 채 고량주에 취해 버린 내게도 어느덧 교재자시交在子時, 자시(23시~1시)가 지나 새해가 밝는 시간이 오고 말았다. 자시가 된다는 말의 발음이 만두를 뜻하는 교자餃子의 발음과 같아, 자연스럽게 새해가 되어 만두를 빚는다는 의미로 연결된다.


“이렇게 먹었으니 새해 아침은 주로 채식이야. 오늘 음식이 굉장히 기름졌지? 믿기 어렵겠지만, 대만에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종교적인 이유로 그런 사람들이 많고, 채식까지는 아니지만 채소 위주로 먹는 사람도 많아. 열 명에 한 명? 채식인구가 그 정도는 될 거야.”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채식이 마음가짐을 순수하고 정갈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첫날 첫 끼는 채식 위주로 한다고 했다. 새해 아침 먹는 채소에는 몇 가지 좋은 의미가 있는데, 친차이芹菜(미나리)에는 일을 열심히 한다는 의미가 있고, 대만 고산지대에서 재배하는 길쭉한 채소인 창니엔차이長年菜(장년채)에는 오래 산다는 의미가 있다.




三. 水則載舟 水則覆舟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이 일로 나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


황하 강둑 위에 세워진 관우 사당에 앉은 한 남자가 이제 곧 자신이 저지르게 될 일을 미리 참회하고 있었다. 중국 허난성 북부를 점령한 일본군이 서쪽 전선의 공세를 높여가자 총통 장제스는 농민 3000만을 버리라는 지령을 내려 보냈다. 인구 3000만의 허난성은 국민당 군량미공출의 깊은 샘이라 이곳을 빼앗기는 건 단지 땅만 빼앗기는 게 아니었다.


“농민이 죽은 땅은 중국의 땅이지만, 군인이 죽은 땅은 적군의 땅이다.”


1938년 6월 9일 장제스의 참모 슝셴위熊先煜는 황하를 막고 있던 화위안커우花园口 마을의 제방을 터트렸다. 일본군 전부를 수장시킬 순 없더라도 진격을 늦출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터진 제방을 숨 가쁘게 깎아내리며 황톳물이 농지와 마을을 덮쳤다. 400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황하의 흐름 따라 89만 명이 죽고, 1250만 명이 이재민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은 재앙이라 말할 수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나 둘 세간을 내다팔며 보리 수확 철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것만이 희망의 전부였다. 하지만 희망을 계절과 간발의 차이로 메뚜기 떼가 먼저 도착했다. 메뚜기 구름이 지나간 곳엔 헐벗은 폐허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건 수초와 풀뿌리, 나무껍질밖에 남지 않았다.



장에서 파는 만두 한 개라도 손에 넣은 사람은 기뻐할 겨를 없이 냅다 줄행랑을 놓았다. 달리는 게 힘겨워지면 만두 여기저기에 침을 뱉었다. 쫓아오던 사람들은 만두를 포기한 대신 욕을 하거나 주먹을 날렸다. 만두를 훔치거나 구걸하거나 추격하는 사람들 바로 곁에는 벌써 숨이 끊겨 체념의 세계로 접어 든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하루 평균 4000명이 굶어 죽었지만 장제스가 내린 조치는 “기근으로 사람이 죽어간다는 낭설을 유포하는 자는 적군에 동조하는 세력.”이라는 협박이 전부였다. 장제스는 재난이 일어났다고 믿지 않았다. 군량미 공출은 계속되었다. 곡물 징수 할당량을 채우려는 정부 관리들의 횡포도 날로 악착스러워졌다.


“만두만 준다면 마누라인들 시집 못 보내겠나.”


자식을 팔아 밀을 샀다. 팔려간 자식은 어쨌거나 굶어죽을 일만은 면한 셈이라 그대로도 나쁠 게 없었다. 아내를 파는 남자들도 있었다. 처자식과 맞바꾼 밀로 반죽을 한 남편들은 만두소 대신 이젠 쓸모없어진 살충제를 넣고 위장이 미어지도록 생애 마지막 만찬을 우겨넣었다.


1944년 4월, 국민당군 40만은 허난의 산악지대에서 5만의 일본군에 몰살을 당했다. 일본군도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국민당군의 무기를 탈취하고 전선을 이끈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중국 농민들이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군자주야君者舟也 서인자수야庶人者水也 수즉재수水則載舟 수즉복주水則覆舟. 임금이 배라면 우리 같은 농사꾼은 물이다. 배를 띄우는 건 의당 물이니까. 하지만 배를 뒤집는 것도 물이다.



四. 好吃不過餃子 아무리 맛있어도 교자만 못하더라.


말보로 집을 나서는 내 손엔 태양빵 선물 상자 두 개와 새해 아침 말보로 가족들이 먹을 거라는 교자餃子 한 봉지와 고량주 한 병이 들려 있었다. 호텔방 테이블에 아직 뜨끈한 교자를 펼쳐 놓고 고량주를 꺼냈다. 돼지고기와 여러 가지 채소가 든 한국의 고기만두 비슷한 만두였다. 고량주에는 장제스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영회영수永懷領袖, 영수님을 오래오래 기억한고 씌어 있었다.


학살과 계엄의 우울증에 허덕이던 대만 현대사를 거쳐 오는 동안 별 탈 없이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을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의 복이었다. 길거리 흔한 음식이지만 명절과 잔치에는 반드시 만두가 올라와야 하는 것도, 가족이 둘러 앉아 만두를 빚으며 복을 비는 것도 역시 그 자체로 감사해야 할 복이었다. 그래서 만두를 빚으며 생김생김마다 염원을 불어 넣었다. 이 만두엔 이런 소원, 저 만두에 저런 복.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호흘불과교자好吃不過餃子,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많아도 만두만한 게 없다.


1년쯤 지났을까, 단수이淡水 해변 레스토랑에서 말보로와 맥주를 마시다 문득 설 전날 남겨둔 생선 생각이 났다. 그럼 그 도미는 언제 먹는 거예요?


“설 저녁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매년 생선을 먹을 수 있는 풍족한 가정이라는 의미인 거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많아도 같이 먹어줄 가족 한 사람쯤 있어야 할 것 같다. 세밑 저녁의 생각이다.





글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 『도쿄적 일상』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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