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교토]비 내리는 정원

ひとり、京都。 #3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에 계획했던 고베 일정 대신 정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갈등도 고민도 비에 대한 원망도 없었다. 


벚꽃이 만발할 때도, 단풍이 절정일 때도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푸른 신록에도 비 내리는 정원은 비 때문에 가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정원 안에 비를 담아 바라보기 좋은 무린안無隣庵¹으로 간다. 


무린안, 이웃이 없는 암자. 


한적한 골목, 안이 보이지 않는 담장을 따라 입구에 들어선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자세를 낮춰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을 지나자 마치 비밀의 숲인 듯 생각지도 못한 풍경에 이르렀다.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정원은 저 멀리 동쪽 산²을 품은 거대하고 농도 짙은 초록의 세상이었다.



작은 돌다리와 징검다리들을 건너며 작은 폭포에서 떨어진 물들이 굵은 비를 만나 정원의 이곳저곳을 경쾌하게 흐르는 그 흐름을 따라 걷는다. 비와코³에서 이어진 물줄기는 정원을 거쳐 지금 이곳이 아닌 또 다른 어딘가를 향해 흐르고 있다. 빗방울은 가지마다 방울방울 영글었고 오랜 시간 흙을 덮고 있는 이끼들은 그 어떤 카펫보다 곱고 포근하다. 


내리는 비에 말갛게 씻긴 자갈길을 걸으며 빗소리에 자박자박 소리를 더해 본다. 


투명우산을 쓴 덕에 마치 비에 둘러싸인 채 초록의 싱그러움 속을 걷다 보니 바깥세상과 단절된 이질적인 존재로 거듭난 느낌이다. 일상의 자잘한 근심이 씻겨 내려간다. ‘이웃이 없는 암자’ 무린안, 그 뜻이 와 닿는다. 



입장료를 지불할 때 미리 주문한 말차와 와가시⁴를 받아 곁에 두고 마루에 앉아 한참 비를 바라본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의 소리는 작은 정원을 너른 공간으로 숲 깊숙이까지 들여다보는 듯 깊은 공간감을 더한다. 


‘어차피 흐르는 시간은 가만히 있어도 움직이는 무빙워크와 같다면 굳이 그 위에서 더 빨리 가겠다고 걷지 않겠다는 뜻이다.’
- 김교석, <아무튼, 계속>


혼자 떠나고자 했던 처음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욕심을 내서 관광할 목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왕이라는 마음에 전날 기상청 날씨를 확인하고 당일 아침 뉴스를 살펴보기 바빴다. 365일 수많은 방문객들로 번잡스러운 곳이 교토였고, 그렇기에 더욱이 일부러 한적한 곳을 찾아다니려 마음이 급해지는 곳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퉁이를 돌면 어느새 생각지도 못한 풍경과 마주하곤 했다. 고즈넉한 강변, 한적한 골목,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숨겨진 정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앉아 보고 있노라니 본래 순수한 감정이 되살아난다. 그 안을 머무는 상념조차 그렇게 흘러간다. 



별개의 세상인 듯 고요한 정원에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인물⁵과 가슴 아픈 역사의 한 순간⁶을 마주한 것은 반갑지 않은 일임에 분명했다. 역사는 그렇게 흐르고 그 또한 잊지 않고자 간직한 채 이곳을 나선다. ‘무린안’ 그 자체로 적막하다.  



1) 무린안(無隣庵): 1895년에 지어진 메이지 시대의 정치가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별장. 물을 중심으로 조성된 큰 연못에 작은 섬, 다리, 돌 등을 배치하고 그 주변에 산책로를 도는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정원으로 이는 무로마치시대의 선(禪)정원, 에도시대의 다이묘정원에서 보이는 방식이다.

2) 히가시야마(東山): 동쪽 산

3) 비와코(琵琶湖): 비와호. 일본 시가현 중앙부에 있는 일본 최대의 호수.

4) 와가시(和菓子): 화과자. 일본과자

5)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 메이지 시대의 정치가. 일본 의회제도 체제 아래 최초의 총리. 1894년 청일전쟁 때 조선에 주둔하는 제1사령관, 1898년 원수가 되었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군국주의, 국가주의의 대표적인 인물

6) 무린안 회의: 1903년 무린안 내 서양관에서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 히로부미 등이 모여 러일전쟁을 결정. 




글/사진 한수정

우아한 삶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관념과 현실을 분리시킨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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