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생활의 유혹]멸치와 응급실의 상관관계

홍콩, 생활의 유혹 #3



그럴 때가 있다. 지금 이런 상황이 어떻게 꿈이 아닐 수 있는지 아무나 붙잡고 따지고 싶은 그런 때. 그때도 그랬다.


이미 해가 넘어간 저녁 시간이었고 어두웠으므로 먹구름은 보이지 않았다. 흔한 천둥 번개도 동반하지 않았기에 누구도 비가 쏟아지리라 예측하지 못했다. 갑자기 쏟아진 빗줄기는 세차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 시각 나는 고가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나는 병원에 가는 중이었다. 멀쩡하게 밥을 먹다가 멸치볶음 속의 멸치 꼬리가 아랫니와 잇몸 사이에 깊숙하게 박혔고, 그것을 다시 빼낼 수 없다는 황당한 이유로 병원에 가는 것도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예고도 없이 쏟아진 소나기를 속옷까지 흠뻑 젖도록 맞고 있으려니 실성한 듯 절로 너털웃음이 나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고가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나의 오른편은 차가 내달리는 차도였고 왼편은 천 길 낭떠러지였다. 비를 피할 수도 없고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비는 그리 오래 내리지 않았지만 그 비를 오롯이 다 맞은 몰골로 그 시각 문을 연 가장 가까운 사립병원 응급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꿈이 아닐 수 있는지 아무나 붙잡고 따지고 싶었다.



나는 수많은 좀비를 물리치고 간신히 피신한 건물이 하필 고립되고 오래된 병동이라는 호러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평화롭고 정적이 가득하던 실내에 머물던 눈동자들은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다. 창피한 마음보다 좀비들과의 사투를 끝낸 피로감이 더 컸을 게 뻔했으므로 나 역시 나에게 꽂힌 시선들을 애써 무시했다. 곧 간호사 둘이 나에게 다가왔고 예의 신규 환자를 맞이하는 평범한 절차를 밟으며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를 대기석으로 안내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화장실에서 가져온 페이퍼 타올로 물기를 대충 닦아내고 젖은 몸이 어느 정도 자연 건조되었을 때쯤, 박힌 멸치 꼬리가 잇몸의 신경을 짓누르는 통증도 점점 강도가 세졌다. 이제는 잇몸이 아니라 아래턱까지 욱신거렸다. 멸치 꼬리 따위가 이런 정도의 통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랄 지경이었다. 누군가가 잇몸에 박힌 고춧가루를 빼지 않아 잇몸에 염증이 생겼고 멀쩡하던 생니를 뽑아내기에 이르렀다는 오싹한 일화를 찾아 읽고 있으려니, 순탄치 않은 길이었지만 역시 응급실에 온 것은 현명한 처사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드디어 나를 접수시켰던 간호사 한 명이 다가왔다. 지금 이 시각에 치과 의사를 부르면 시술 내용과 무관하게 왕진비로만 우리 돈으로 이백만 원 남짓 지불해야 하고, 응급실에서 이미 근무하고 있는 당직의에게 진료를 보면 삼십만 원 정도를 진료비로 지불해야 하는데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말투만 친절할 뿐 내용은 전혀 친절하지 않은 선택지 앞에 서게 된 나에게 사실상 선택권은 없었다. 잇몸에 낀 멸치 꼬리를 빼는데 이백만 원 플러스 알파를 헌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기석의 환자들도 하나둘 빠져나가고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진료실로 들어가자 한눈에 보아도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는 의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라텍스 장갑을 신중하게 착용하고는 조심스럽게 내가 통증을 호소하는 부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혀끝이 닿는 아랫니 안쪽 잇몸에 커다란 멸치의 꼬리가 깊숙이 박혀 있었고, 그것은 거무스름하게 잇몸 밖으로 내비쳤으므로 충분히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아프다는 부위를 살펴보면서도 내가 어쩌다 이 꼴을 하고 이곳에 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일단, 의사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는 일 자체가 고역이었다. 나의 영어가 서툴기도 했거니와 ‘드라이 안초비’가 어쩌다 잇몸에 박힐 수 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하는 눈치였고, 무엇보다 버젓이 박혀 있는, 육안으로도 보이는, 제거해야 할 이물질인 멸치 꼬리조차 그는 발견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상황이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아서인지 그는 온갖 도구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모두 멸균 소독된 장비들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해 두겠다는 듯이 내 눈앞에서 모든 도구의 포장을 새로 벗기며 그것들을 전리품처럼 늘어놓았다. 치과에서 치석을 제거할 때 흔히 사용하는 도구 중 몇 가지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그의 전리품 중에 하필 그것들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도구를 소비하며 고군분투하는 그가 너무 답답한 나머지 그에게서 핀셋을 빼앗아 자가 시술을 감행했다. 어쩐지 그도 내심 반기는 눈치였다. 나는 그저 어떻게 해서든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적당한 도구가 없어서 생각보다 빼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수술용 가위로 잇몸을 약간 찢은 후에 핀셋으로 깊숙이 박혀 있던 멸치 꼬리를 뽑아냈다. 전혀 도움이 안 되던 의사는 내가 뽑아낸 거무스름한 이물질을 보며 해맑게 환호했다. 정말 뭐가 있긴 했었구나? 라는 듯이. 그는 그때서야 신뢰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병원에서 내 손으로 한 자가 시술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물질 제거에 성공했으므로 통증이 줄어들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어쩐지 여운이 남는 통증이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제거 직전까지 통증이 너무 강해서 남은 진통일 거로 생각했다. 자가 시술이었다고 해도 병원비가 할인되는 것은 아니었고, 의사 상담비와 시술, 구강 소독제 처방료와 야간 할증까지 살뜰하게 챙겨 청구된 병원비 영수증을 보자 기가 막혔다. 우리나라 같으면 비보험으로 엠아르아이 검사 정도 한 금액이 청구된 것이다.


폭풍 같은 밤을 보내고 그 이튿날이 되었다. 피곤해서 조금 늦잠을 잤다. 습관대로 일어나자마자 욕실로 가서 볼일을 본 후 칫솔을 집어 들었을 때 잇몸은 아무래도 어젯밤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듯 뻐근했고 나는 멸치 꼬리를 빼내느라 만든 상처 때문이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전혀 틀린 생각이었다. 통증의 주범은 미처 빼내지 못한 멸치 꼬리의 일부였다. 그것은 밤새 입속에서 타액에 퉁퉁 불어 부풀어 올랐고, 잇몸 밖으로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부드럽게 팽창된 그것은 힘들이지 않고도 말끔히 쑥 빠져나왔다.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했다.


그렇다. 멸치는 건어물이다. 물에 불리면 부풀어 오르는. 너무 많이 불리면 물에 풀어지기도 하는 생선 중 하나라는 사실이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꿈이라고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글 최경숙

서울에서 마케터로 활동하다가 결혼과 동시에 2011년 홍콩으로 이주했다. 여행 칼럼을 기고하거나 동화를 쓰면서 밤하늘의 달이 자신을 스토킹 한다고 믿는 다섯 살 난 딸과 함께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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