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캄보디아]캄보디아에서 만난 사람들

나의 캄보디아 #4



- 아저씨로부터 배우는 배려라는 이름


프놈펜에서 일할 때, 출장길을 함께하던 운전기사 아저씨가 있었다. 벙넷(Bong Neth)이라 불리던 아저씨는 내가 만난 캄보디아 사람들 중에서도 단연 특별한 분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맡은 일을 다 해내지 못해 버둥거리곤 한다. 그럴 때 아저씨는 늘 먼저 나타나 손을 보태어 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면 금세 알아차리고 키다리아저씨처럼 나타났다. 특히 캄보디아 생활 초기에 캄보디아어에 능숙하지 않아 당황할 때가 많았는데, 아저씨는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헤아리고는 내게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런 아저씨를 보며 나는 늘 배려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나라면 저렇게까지 누군가를 배려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한동안은 아저씨의 배려가 내 눈치를 보고 하는 행동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서 온 직원이고 아저씨는 운전기사였으니 동등한 관계를 맺기란 쉽지 않았다. 얕고 거만한 생각으로 아저씨가 내게 잘 보이기 위해 그러는 거라 오해한 것이다. 


항상 고마운 아저씨(좌측). 아저씨의 동의를 얻어 사진을 올린다.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긴 후에도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아저씨의 집은 프놈펜에서 두 시간 떨어진 외곽에 있었음에도 기꺼이 나를 만나기 위해 프놈펜 시내로 나오셨다..

 

우리가 회식장소로 자주 다니던 BBQ식당을 다시 찾았다. 식당은 많이 변해 있었지만 우리는 그대로였다. 아저씨와 당시 같이 일했던 캄보디아 직원까지 언젠가의 회식 날처럼 열심히 배를 채우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내가 게 껍질과 새우 껍질을 아무 곳에나 쌓아두고 있자 아저씨가 나에게 슬그머니 빈 그릇 하나를 내미신다. 그 작은 배려라는 것이 사람을 어찌나 기분 좋게 하던지, 한동안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아저씨의 섬세한 배려는 여전했고, 색안경을 낀 채 오해하기도 했던 내 지난날이 다시금 부끄러웠다. 


일에 치여, 경쟁에 치여 사는 세상 속에서 그냥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지 않던가. 배려가 무엇인지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행동으로 묵묵히 보여주시던 아저씨의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 길 위의 아저씨


일을 마친 후 집으로 가는 길, 30분 정도 걷다 보면 큰 사거리가 하나 나온다. 그 거리에는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키는 아저씨 한 사람이 있다.

 

아저씨를 처음 마주한 건 몇 개월 전이었다. 멍하니 있던 나에게 다가와 두 손을 벌리며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이후 퇴근 길마다 그 아저씨와 마주했다. 이미 헤져버린 옷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있었고, 어느 날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온 날엔 시큼한 냄새마저 느껴졌다.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가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손을 벌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거나 나처럼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느 날은 도로 가운데에서 무언가에 열중하여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모습이기도 했고, 어느 날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인지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저씨에겐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아니, 지금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냥 마음이 아픈 분일까. 어떤 절실함이 있었는데 무너져 내려 거리의 생활을 택하게 된 걸까. 이 길 위의 세상이 살만하기에 더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일까. 반대로 세상과의 끈을 아예 놓아버리려 하는 것은 아닐까.


아저씨를 만나던 그 길


퇴근길의 익숙한 풍경 중 하나가 되어버린 듯 했지만 나의 걱정과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게다가 대부분의 길 위의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데, 이 아저씨는 늘 혼자였다.


노숙자들에게 돈을 주거나 음식을 주는 행위는 그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는 그런 행위들이 그들의 삶을 나태하게 만들 뿐 자립하는 길을 찾아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는 길 위의 사람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매번 똑같이 행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 나만의 선을 만들었다. 노동을 할 수 없는 노인들에겐 기꺼이 주머니를 여는 것이다. 아이들에겐 왜 그러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검은 세력들이 아이들과 연결되어 있어 아이들의 삶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캄보디아에는 내가 마주하는 아저씨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에서 한 차례씩 거리 위의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내몬다고 한다. 어떤 시설에 맡겨지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거리로 내몰리는 것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지 못하고 있다.

 

아주 소중한 누군가와 덜 소중한 누군가가 따로 있진 않다. 우리가 하찮게 볼 수도 있는 이 아저씨 역시 어떤 사연을 품었을 존재이다. 이제는 풍경처럼 익숙해져 버린 사람이라 왠지 그 길 위에서 다시 볼 수 없는 날에는 소식이 궁금해질 것만 같다. 부디 아저씨가 자신의 삶을 꽤 잘 살아나가기를. 자기 존재의 특별함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글/사진 Chantrea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집을 이고 다니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4년 동안의 캄보디아 생활을 뒤로 하고 지금은 제주에 삽니다.

http://blog.naver.com/rashimi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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