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하기 좋은 계절, 가을

단편 기획 기사


머리까지 바다에 담가 본 지 얼마나 됐어요?


2020년 가을. 양양의 서퍼들이 모여 밴드를 만들었다. 한동훈 밴드, 처음이자 마지막 싱글 제목은 〈Sunset Coast〉.


비 그리고 바람
큰 바다
넘치는 파도
자유라는 바람
거짓 속에 담긴 자유로운 소리


다른 멤버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한동훈이란 사람이 음원을 보내왔다. 이 노래를 설명할 만한 글을 부탁한다며. 그가 들려준 말을 그대로 정리해 보냈고, 예상대로 그는 자기 의사를 잘 반영한 글이라 만족해했다. 한동훈 밴드의 데뷔 무대이자 은퇴 무대였던 2020년 10월 30일 〈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송이 끝나자 출연료를 매우 공정하게 배분하겠으니 밴드 수익금을 받으러 오라고 했다. 양양으로, 직접.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1년 가을. 이미 내 배당금은 사라졌으니 멋진 모자를 선물하겠다며 그가 내게 양양으로 오라 했다. 양양이라. 낙산사, 하조대, 또 뭐가 있을까? 신문 기사를 찾아보니, 나만 몰랐나, 바야흐로 서핑의 시대였다. 2019년 1,380만, 2020년 1,500만 명 관광객 방문. 양양의 관광객 증가율 전국 1위, 이 시대 국내 최고 여행지.


음악, 미술, 영화계 종사자들이 주말 휴식으로 서핑 보드에 몸을 싣다 아예 삶의 근거지를 옮기기도 했다. 홍대, 합정, 서울 생활에 지친 젊은 상인들이 하나둘 죽도, 인구 해변에 터를 잡으며 카페, 펍, 식당, 서핑 숍들이 동해 바다에 전에 없는 풍경을 만들어 냈다. 그러자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흔적 남기기에 동참하고자 경쟁적으로 몰려들었다. 자연스러운 일일까, 악순환일까? 부동산 수익을 좇아 양양에 오피스, 호텔, 콘도, 개인 투자 붐이 인다는 소식도 있었다.


ⓒWSB FARM


그래서 양양으로 갔더니


양양 인구 해변이 내다보이는 WSB FARM 사무실. 편의점 커피를 건네는 서퍼 한동훈, 아니 한동훈 대표하고 해야 하나? 어려서는 스케이트보드, 철들어선 스노보드를 탔다고 한다. 그러다가 사계절 ‘판때기’에 오를 수 있는 바다에 눈을 돌려 필리핀,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대만, 발리 해변을 전전했다. 그의 팔 한쪽엔 ‘파도타기’라는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WSB FARM 사무실


양양에 자리를 잡은 건 30대 중반이 되던 무렵,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외국 서퍼들이 ‘지금 막’ 발굴해 낸 서핑 불모지, 양양. 그는 이곳에서 서퍼들이 공유하는 매체 ‘WSB FARM Surf Magazine’을 만들었다.


국내외 서핑 포인트를 소개하고 서퍼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처음 배우는 사람들을 위한 서핑 가이드 콘텐츠도 담았다. 2016년부터는 서핑 플랫폼 앱을 개발, 해변에 웹캠을 달아 실시간으로 파도 상태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WSB FARM 한동훈 대표


“서핑은 전적으로 바다 컨디션에 달려 있어요. 현지 상황을 알아야 내가 언제 어디서 서핑을 할 수 있을지 계획할 수 있거든요. 그렇다 해도 파도라는 게 자연 그 자체라 막상 도착해서도 그 파도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래서 이 웹캠을 이용해서 파도 상태가 좋은 인근 해변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한 거지요.”


바다에 설치해 놓은 수많은 웹캠마다 파도가 일렁인다. 양양 인구, 죽도, 남애, 고성, 속초, 강릉, 울산, 포항, 부산, 고흥, 제주, 심지어 발리까지. 현지 날씨에 파도 크기, 바람, 물때, 수온을 알려준다. 오늘, 제주 중문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서울에 있건, 대전에 있건, 제주에 있건, 파도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이 플랫폼을 손에 쥔다.


ⓒWSB FARM


“파도가 그렇듯, 장비 역시도 남들의 기준에 맞춰선 안 되죠. 나에게 맞는 장비를 선택하게 해 주고 싶었는데, 그래서 요즘 앱에서 직접 서핑 상품을 팔기 시작했어요. 중고 거래도 열어 놓았고요. 단순히 상품을 사고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모든 게 서핑이라는 스포츠 안에서 하나로 엮이는 과정이에요.”


“이제라도 서핑을 배울 수 있을까요?”


“머리까지 바다에 담가 본 지 얼마나 됐어요?”


배우고 익히는 거야 당연하지만, 서핑은 그저 바다에 들어가 머리를 담그고, 일어나 파도를 기다리고, 올라타는 일이라고 한다. 올라타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내게 맞는 파도가 아니라면. 


“바다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모양, 크기의 파도를 보내주지 않아요. 오늘의 나, 내 상태에 맞는 파도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거예요. 누가 어떤 파도에 올라타건 나랑은 상관없어요. 서핑을 하면 알게 될 거예요. 나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나 자신이라는 걸. 저 역시 종일 한 번도 못 타는 날도 있어요. 한두 번 타는 날이 대부분이고요.”


ⓒLINE.D



양양의 서핑하기 좋은 계절은 가을


“이제 가을인데, 그럼 내년 여름에나 시작해야겠지요?”


“대부분 서핑의 계절이 여름이라고 알고 있지만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요. 가령 남쪽 스웰(너울, 개개의 파도가 아닌 바다에 생성되고 밀려오는 파도 전체의 경향을 이름)을 받는 제주의 경우, 여름 6, 7, 8월에 서핑하기 좋은 파도가 일어나요. 하지만 여기 양양이나 고성 같은 동해안은 가을이 서핑하기 가장 좋은 계절입니다.”


해수욕 관광객이 폭증하는 7, 8월에는 서퍼들이 파도를 타기 어렵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 해수욕 구간과 해양 레저 구간으로 나뉘게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좁은 공간에 몰려 있어 서로 부딪히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한다.


“해수욕 시즌이 지나고 가을철로 접어들면 호수처럼 잔잔하던 바다에 타기 좋은 파도가 자주 들어와요. 여름철에 수온이 달궈져 있어서 실제로는 여름보다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데이터로 봐도 수온은 기온보다 약 한 달 정도 늦게 변하거든요. 그렇더라도 웨트수트(Wetsuit)라는 걸 입어요. 이것도 두께와 재질별로 다양하죠. 9월은 여름 수온을 머금고 있어 2mm이하 두께의 수트나 스프링 수트(Spring suit)로 서핑하기 좋아요. 10월부터 11월 중순까지는 3/2mm나 4/3mm 두께의 웨트수트가 적합하고요.”


ⓒDaria Shevtsova


3/2mm, 4/3mm는 부위별로 두께가 다르다는 뜻이다. 3/2mm의 경우 움직임이 많은 어깨와 팔은 2mm, 움직임이 적은 다리와 가슴 등은 3mm 두께라는 것. 


“무슨 말인지 몰라도 돼요. 사람마다 추위를 타는 정도가 다르니까 권장사항 정도고, 어쨌든 가을은 물론 겨울에도 서핑은 계속됩니다.”


ⓒWSB FRAM


내 손안에 바다. 그의 말대로 WSB FARM을 열면 바다가, 파도가 내 손 안에 있다. 그걸 잡을지 못 잡을지는 내가 머리를 바다에 담가봐야 안다. 바다에 머리를 담글 것인지, 멀리서 바라만 볼 것인지, 마음이 지지부진하다.


바다에 머리를 적시는 일은 다음 만남으로 미뤄두었다. 그런데 그 만남이 앞당겨지게 됐다. ‘멋진 모자’를 받는 일을, 사실 주는 일도, 모두 깜빡 넘기고 말았다.




글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 『도쿄적 일상』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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