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기 좋은 날 #3



여행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일상을 벗어난 어느 공간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설렌다. 여행은 떠나기 전이 제일 설렌다고들 말한다. 함께 떠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설렘은 배가 되고,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의 날씨예보가 완벽하면 그 전날은 잠을 이룰 수 없게 된다. 몇 달 전, 나의 밤이 그러했다.


아침 6시, 밤새 거의 감지 못한 무거운 눈꺼풀을 안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6시 반까지 교토역에서 집합해, 특급 전철을 타고 두 번 환승. 도합 세 시간에 걸쳐 우리가 갈 곳은 미에 현三重県의 이세伊勢였다. 그 날은, 몇 달 전부터 계획해 온 동아리 동기여행의 날이었다.


카메라를 꼭 끌어안은 채 고개를 떨구고 반쯤 졸다가, 어느 순간 정신이 맑아져 동기들과 반쯤 이야기를 나누다가 10시쯤이 되어 이세伊勢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오자, 3월의 쾌청한 하늘과 함께 가이드를 자처하며 하루 먼저 이세에 와있던 와카바가 우리를 반겼다.


“지금부터 이세 신궁伊勢神宮에 갈 거야.”


와카바는 정말 가이드처럼, 이세 신궁은 일본에서 가장 큰 신궁이며,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신궁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외궁과 내궁으로 나뉜 이세 신궁 중, 먼저 역에서 곧바로 보이는 외궁으로 향했다. 도보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었지만, 길거리에서 벌써 먹을거리에 한눈이 팔려 도착하는데 까지는 꽤 시간이 걸려버렸다. 해가 머리 위에서 쨍하니 비칠 즈음 도착한 이세 신궁은 정말 자연, 그 자체였다. 간만에 만나는 나무들의 초록 내음과 빽빽한 숲의 피톤치드에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걷자, 신에게 기도하는 곳이 저 멀리 보였다. 크리스천인 나를 제외하고, 동기들은 기도를 하러 그곳을 향했다. 나는 멀리서 기도하는 동기들의 뒷모습을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다들 무엇을 기도하고 있을까. 우리가 더욱 사이좋은 동기들이 되게 해 달라고 누군가 기도하고 있을까.



"모두와 함께여서 즐거웠다"



“너희 동기들은 사이 안 좋아?”


선배들에게 질릴 정도로 들은 말이었다. 매일같이 함께 술을 마시러 가는 윗 선배들이나,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친분을 과시하는 한 기수 후배들에 비해 우리 동기들은 굉장히 서먹한 관계였다. 딱히 이렇다 할 이유도, 저렇다 할 핑계도 없이 어느 샌가 우리 동기들은 그저 그런 관계가 되어 있었다.


“私たちも仲良くなれますよ!(우리도 사이좋아질 수 있어요!)”


배에게 의기양양하게 내뱉은 말을 계기로, 나는 동기여행을 기획했다. 와카바는 자신이 가장 추천하는 여행지로 모두를 데려가고 싶다고 했고, 모두 동의했다. 그렇게 모인 동기들은, 눈을 꼭 감고 간절히 무언가를 기도하고 있었다.



외궁에서 버스로 10분, 내궁으로 향했다. 버스는 꽤 한적했지만 열댓 명 쯤 되는 우리가 올라탄 순간 만원버스가 되어버렸다. 나는 손잡이를 꼭 끌어안고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용하고, 이름 모를 나무들이 정갈하게 늘어선 푸른 동네였다. 어쩐지 가만히 풍경만 바라보자니 마음이 벅차올라, 괜스레 옆에 서있던 유토에게 시덥 잖은 말을 걸었다. 내 교통카드 예쁘지? 유토는 어디서 샀는지 반문했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궁 앞에는 온갖 음식점, 기념품점 등 관광거리가 늘어서 있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지만, 갓길로 조금만 빠지자 교토보다도 한적하고 고즈넉한 거리가 드러났다. 갓길을 따라 조금 걷자, 여유롭게 흐르는 강가가 있었다.



우리는 강가를 걸었다. 강을 따라 끝없이 늘어진 벚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예년보다 빠르게 만개한 벚꽃을 보느라 다들 여념이 없었다. 동기들과 같이 맞는 세 번째 봄, 3학년의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동안 봄을 따라 걷던 우리는 한적한 공원을 발견해 잠시 벤치에 둘러앉았다. 새하얀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잡담을 하다가,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선배들이 우리 사이 안 좋다더라. 누군가가 장난조로 던진 말에, 우리는 앞으로의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에도 같이 놀러가자.”

“기온마츠리祇園祭도 같이 가고 싶어.”

“우리 집에서 파티도 하자.”


봄에 어울리는, 굉장히 소박하고 즐거운 상상들이었다.



이런저런 소망과 상상을 나누던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기 새가 벚꽃 먹고 있어! 이름 모를 작은 새가 맛있게도 꽃을 먹고 있었다. 다들 그 광경을 보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슬슬 배가 고프다며 입을 모아 길거리 음식을 찾아 나섰다. 와카바가 추천하는 해산물덮밥을 먹고, 누군가는 아이스크림을, 누군가는 어묵을, 누군가는 낮술을 즐기며 이세의 우리는 순수하게 웃었다.


하늘이 푸른빛을 약간 잃어갈 즈음, 우리는 역으로 돌아갔다. 짧고 즐겁던 여행이 끝날 시간이었다. 역전에서, 우리는 지나가던 학생들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이세시역’이라는 간판이 잘 보이는,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고, 우리는 교토로 돌아가는 특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우리는 ‘서로를 한자 한 글자로 표현하자’라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하루동안 가이드를 해 준 와카바는 ‘곧을 직直’, 온화한 성격의 유토는 ‘평온할 온穩’ 등등.  


“나는 무슨 한자 같아?”


나의 물음에, 동시에 몇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맑을 청晴!”

“즐거울 락樂.”

“빛날 휘輝!”


긍정적이고, 예쁜 한자들에 나는 기쁘게 웃었고, 동기들은 그 중 ‘즐거울 락樂’이 가장 어울린다며 나에게 덧붙여주었다. 길게만 느껴지던 세 시간의 열차는 어느새 교토역에 도착했고, 다음 모임에서 만나, 아쉽게 인사를 나눈 우리는 각자의 집을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SNS에 업로드하며 짧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모두와 함께여서, 楽しかった(즐거웠다).’




글/사진 정예은

교토 도시샤대학교 문학부 3학년. 하루 일과중 시 쓰는 시간과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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