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교토]자발적 고독의 시간

ひとり、京都。 #1



평온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제대로 혼자이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특별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늘 그랬다.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며칠 혼자이기만 하면, 그런다고 해결될 것이란 순진한 마음도 없었으면서, 그저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일단 혼자 지내기 안전하고 편안한 곳. 휴가를 길게 낼 상황이 아니었기에 짧은 일정 맞는 가까운 곳. 헤매느라 시간과 힘을 소모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대학 때 공부했다는 이유로 그나마 말을 이어나갈 수 있는 곳, 일본으로 가기로 했다. 


그 안에서 어느 곳으로 갈지는 더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자발적 고독의 시간을 보내기에 3일은 너무 짧았다. 지금의 환경이 버거워 혼자 있고 싶었기에 되도록 한국말이 많이 들리지 않아야 했고¹ 무언가를 견디거나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내가 모르는 낯선 공간에서도 나만의 매일을 보낼 수 있어야 했다. 산책하듯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적당한 곳. 그러니까 고즈넉하면서도 일상이 가능한, 그리고 사색적인 면이 극대화된 곳. 


결론은 ‘교토’였다.



복잡한 간사이공항을 나와 노란색 의자 덮개가 씌어진 ‘아득한 봄의 향기’를 품은 하루카(はるか)² 열차를 타는 순간부터 교토는 별개의 공간으로 다가 왔다.


교토에서의 3일,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복작복작 익숙한 관계와 환경을 벗어나 낯설지만 고요해진 길 한복판에 내가 있었다. 이 낯선 곳에서 나는 평화로웠다. 한정된 에너지를 오직 나에게 쏟아 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고 신경을 쓸 타인이 하나도 없는 날들. 평상시 일어나듯 (출근하듯) 일어나 인적 없는 골목을 걸으면 발 닿는 곳마다 크고 작은 사찰과 문화재. 산책으로 이른 아침을 열었다. 


이른 아침 네네노미치(ねねの道)를 따라 기요미즈테라(淸水寺)로 간다.


운을 점치는 '오미쿠지(おみくじ)³도, 혹은, 합장조차 할 마음도 관심도 없으면서 그저 천년의 시간을 품고 있다는 그 오래됨만으로도 하루를 시작할 이유는 충분했다. 흐트러짐 없는 모래정원에 계산되어 자리 잡은 바위들, 이끼 하나도 허투루 자라지 않았을 것 같아 인위적이라 무정하다 여길지라도 빈틈없는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안의 복잡함이 절로 질서정연하게 다듬어지는 것 같았다.


일본문화유산답사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교토에 가면 매번 이렇게 사찰과 정원을 돌았다. 같은 장소인데 때마다 새로운 그림이었다. 봄에는 수양버들처럼 길게 늘어져 가지마다 황홀하게 벚꽃들이 피었고, 가을이 되면 자그마한 아기 손 같은 여리고 선명한 붉은 단풍들이 마음을 붕 뜨게 했다. 한겨울에도 파릇한 이끼들과 곧게 뻗은 대나무 숲에 설레 마음이 분주했다. 마음에 새겨지는 생생한 이미지는 계속해서 또 다른 교토에 대한 상상을 부추겼다.


카레산스이(枯山水)⁴의 대표적인 정원, 료안지(龍安寺) 


긴카쿠지(銀閣寺)


가을의 에이칸도(永観堂) 


정적이지만 그 어느 곳보다 활기차다. 마음이 일렁이다 어느새 고요해진다. 내가 원래 있던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곳만의 일상적인 산책이었다. 이때부터 줄곧 교토는 지리멸렬했던 일상을 그리고 여전히 그러할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확실한 방법이 되었다. 나만의 샛길을 발견한 것이다. 


교토에서는 혼자서 무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서로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고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조용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장소들이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다. 한번 보지 않으면 볼 수 없고 안 보면 평생 알 수 없는 그런 것들, 나에게 교토는 익숙하면서 매번 다른 풍경이다.


지금도 눈을 감고 있으면 도시 전체에 얽혀 있는 골목들과 세월의 흔적을 지키고 있는 노포들이 그려진다. 낯선 이의 시선을 거부한 듯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빼곡한 나무창틀, 그 너머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도 떠올라 밤새 그 길을 거닐고 거닌다. 나는 그 그리움에 홀려 그렇게 걷고 걷는다. 매일이 비일상적이게 유유자적한 날들이었다.


사는 동안 자발적 고독의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나는 그때마다 나만의 샛길을 거닐면서 불안을 좀 더 명료하게 그리고 무의미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아득한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하루카(はるか)에 몸을 싣는다.


여전히 은은한 시간 속, 그곳에 나를 존재하게 한다.



1) 2010년인 9년 전만해도 지금처럼 한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교토는 오사카 여행 중에 당일치기 정도로 다녀오는 곳이었다.

2)  하루카(はるか) : 간사이공항과 덴노지, 신오사카, 교토 등의 간사이 주요도시를 직결하는 JR특급열차. 사전적인 의미로는 1.遥(はる)か 아득하게 먼 모양, 아득히 2.春香(はるか) 봄의 향기

3) 오미쿠지(おみくじ) : 길흉을 점치는 제비

4) 카레산스이(枯山水): 물을 사용하지 않고 지형(地形)으로써만 산수를 표현한 정원 (돌을 주로 쓰고 모래로 물을 표현하기도 함)




글/사진 한수정

우아한 삶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관념과 현실을 분리시킨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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