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일상]집 떠나 조금 멀리, 두 번의 교토

도쿄의 일상 #3



일본의 행정구역상 정식 명칭은 교토부(府), 794년 간무천황이 나라(奈良)에서 천도한 이래 1868년 메이지천황이 거처를 도쿄로 옮기기까지 천 년간 일본의 수도였다. 때문에 교토는 일본다운 색채가 가장 잘 보존된 도시로서 일본 사람들에게 여전히 미야코(都: 서울)로 불리며 정신적 수도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첫 문화유산 답사지 긴카쿠지


이런 연유로 교토엔 일본의 다른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찰과 문화재가 남아 있고, 그런 유산은 일본 문화의 고상함에 매료된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끊임없이 교토로 불러들이고 있다.


1년 전, 굔 짱도 7년 째 살고 있는 도쿄와는 다른 고상함에 이끌려 교토로 향하고 있었다. 교토는 한국 대구와 같은 분지 지형으로 역시 여름 더위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교토 역에 도착하자마자 한 여름 히토리타비(一人旅: 혼자여행)를 감행한 구릿빛(단순히 까무잡잡한) 피부에서 연신 습기 찬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땀도 식힐 겸 잠시 해우(解憂)를 위해 들른 화장실에 다음과 같은 암호문이 한글로 적혀 있던 것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북쪽 사람들을 겨냥했던 것일까, 남쪽 사람들의 스태미나를 오해했던 것일까, 여전한 수수께끼.


역 안 여행 안내소에서 교토시내 버스와 전철을 하루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프리티켓을 1,200엔에 구입한 후,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딱히 교토여행에 대해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오진 않았기에, 프리티켓을 살 때 같이 집어온 여행 안내서를 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사찰 위주로 둘러볼 요량이었다.


그렇게 몇 번 버스에서 내려 이름 모를 박물관 등을 둘러본 후 처음 방문한 사찰이 긴카쿠지銀閣寺, 은각사였다. 이름과는 다르게 누각에 은칠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경내엔 초록빛으로 풍성하면서도 정갈하게 정돈된 정원이 있어 제법 다채로운 인상이었다.


은각사 입구를 향하는 은각사의 담. 세간의 먼지를 정화하는 길이라 한다.


다음으로 도착한 기요미즈데라清水寺, 청수사에선 오렌지색으로 강렬하게 채색된 누각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눈이 부신 색감은 긴 비탈길을 올라가며 쌓인 피로를 조금 마비시켜 줄 정도였다. 경내를 다 둘러본 후 다시 비탈길을 내려갈 때 길 옆 가게에서 사먹은 니꾸망(肉まん: 고기찐빵)은 육즙이 풍부하고 상당히 맛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 목적지로 계획했던 킨카쿠지金閣寺, 금각사는 결국 가지 못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이상을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도착을 못해 중간에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방향음치(方向音痴: 일본에서는 한국의 길치라는 표현으로 음치 앞에 방향을 붙인 방향음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인 굔 짱의 약점이 잘 드러난 사례로 두고두고 안타까운 장면으로 남아있다.


1년하고 몇 달이 더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땅거미가 질 때까지 버스와 전철을 번갈아 타며 정원, 박물관, 사찰 등에 발도장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토에 대한 기억이 많이 희미해진 데에는 혼자여행이라는 디메리트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머릿속에 저장된 영상과 사진을 마음이 연결된 사람과 공유하지 못하고 있으니, 데이터의 파편화가 항상 신세지고 있는 7년 된 노트북의 하드디스크보다 곱절은 빠른 것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올해 다시 찾은 교토.
기억을 공유할 사람과 함께였으나, 예상보다 더 거셌던 큰비 탓에 계획했던 토롯코열차(トロッコ列車: 본래 목재운반용이었던 것을 관광용으로 개조한 열차로, 25분간 운행하는 구간의 경치가 뛰어나 교토의 대표적 관광열차로 유명하다)도 타지 못하고, 동물을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꼭 가기로 했던 교토 수족관도 가지 못했다. 다시 땅거미가 내려 깜깜해진 시각, 빗물에 흠뻑 젖은 신발로 오른 교토타워 전망대의 촉촉한 야경은 왠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좋은 느낌이 들었다.



교토타워


밖에서 부는 힘찬 바람, 건물은 출렁이고
발가락에 있는 힘 다 주어 무서움을 참고 있던 기억만은 애써 외면하며….




글/사진(2~6) 굔 짱

국문학과를 다니는 내내 일본어를 공부하다 7년 전 도쿄로 떠나 은행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일본 여자를 만나 하루빨리 도쿄 가정을 이루고 싶지만, 이유를 모르겠네, 줄곧 미팅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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