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HongKong]홍콩 출장 전야

Project HongKong #1



아버지는 홍콩으로 출장을 간다고 하셨다. 홍콩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때였고, 홍콩의 행정 건물 앞에 아직 영국 국기가 펄럭이던 때이기도 했다. 3x5 사이즈로 인화된 사진 속에서 아버지는 어지러운 간판 아래에서 동료들과 포즈를 취하고 계셨다. 훗날 내가 홍콩에 갔을 때도 그리 변하지 않은 주룽 반도 어딘가의 혼잡한 거리였다. 한 번은 선물을 사다 주신 적도 있다. 출장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념품은 아니었다. 다 펼치면 내 눈 사이보다 멀고 다 좁히면 내 눈 사이보다 가까웠던 쌍안경이었다. 나는 어중간한 각도로 심을 펼치고 눈을 대면 약간 어지럼증이 느껴지는 렌즈 너머로 좁은 방안을 탐색하곤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그걸로 확대해 보기도 했다. 주변에 너무 가까운 것투성이라 집안은 물론 동네 골목에서도 그다지 쓸 일 없는 물건이 되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젠가 동물원에 갔을 때 들고 간 것만 잘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게 홍콩은, 홍콩할매귀신이 그곳의 이미지를 완전히 망쳐버려 아버지에게 절대 그녀를 마주치면 안 된다고 말하기 전까지, 쌍안경 같은 신기한 물건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도시로 정의되었다.



처음 홍콩에 가서 몽콕 역 입구로 올라왔을 때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더럽고 낡고 무지막지하게 높으며 에어컨 실외기가 흘린 땀이 쉴 새 없이 떨어지는 고층 빌딩과 그 빌딩의 촘촘한 창문 수보다 두 배 정도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에워쌌다. 자동차 경적 소리, 엔진 소리,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보행 신호등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매장 스피커의 음악 소리, 이명처럼 울리는 정체 모를 진동 소리, 걸을 때마다 캐리어가 턱 위로 튀어 올랐다 떨어지는 소리…. 거기에 9월의 후텁지근한 공기까지 겹쳐 나는 국어 시간에 들었던 '공감각적'이란 말을 시어에만 쓸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몰입은 금방이었다. 덥고 시끄럽고 더럽고 번잡한 거리를 좋아하게 될 줄도 몰랐다. 시간이 갈수록 적응이 되긴 했지만, 그건 다행스럽다기보단 아쉬운 일이었다.



아쉬워서 자꾸 홍콩을 찾았다. 주룽 반도 일대와 홍콩섬 북부와 남부가 극단적으로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그래서 그리 넓지 않은 땅덩어리에 모여있기에 어색할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홍콩의 첫인상, 내게로 쏟아질 것 같은 빌딩과 폭풍 전야의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는 인파는 홍콩에 대한 아주 견고한 이미지를 만들어버렸다. 그 이미지를 닮아서 그럴까, 내가 홍콩을 여행하던 방식도 그렇게 질서정연하진 않았다. 딱히 가야만 한다는 곳은 없었고, 매일 술이나 마셨으며,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 본 적도 없었다. 홍콩엔 별로 볼 게 없다고 하는 대다수의 의견과 달리 홍콩에 세 번을 갔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널려있다. 예컨대 이거 하나만큼은 꼭 타야지 하며 마음먹고 찾아다녔던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를 나는 여태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 엄청난 길이의 구조물을 놓치기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러다가 세 번째 홍콩 여행이 끝날 즈음, 불현듯 아버지가 출장을 다니던 도시가 바로 여기였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흐른 후 아들이 같은 곳에서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아마 아버지의 일정과 나의 일정은 전혀 닮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출장이었고, 지금은 여행 비슷한 일탈이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답을 확신하면서도) 궁금해 졌다. 아버지도 처음으로 홍콩에 도착했을 때,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거나 쓸려오는 듯하여 짐짓 숭고하기까지 한 혼란을 즐기셨을까?



매거진의 첫 기획 기사를 쓰기 위해 홍콩에 간다. 출장이니까 이건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일이다. 여행으로 갈 땐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일정이라는 것을 짰고, 무엇을 취재하고 무엇을 느끼며 되도록 무엇을 써야겠다는 가이드라인도 잡았다. 출장에서 하는 일은 대부분 여행으로 갔을 땐 해보지 않은 일들이다. 여섯 시간짜리 트레킹 코스를 알아보았고, 괜찮은 서점을 지도에 저장해 두었으며, 옛 인쇄소 거리와 삼수이포의 시장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터뷰이에게 나는 무엇을 물어야 하나 고민도 했고, 홍콩이라는 곳에서 전당포와 갤러리가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싶어졌다. 지금껏 홍콩 입국심사대에서 무슨 일로 왔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설사 묻는다 하더라도 내가 할 대답은 "관광하러 왔는데요."에 지나지 않겠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목적과 목표라는 것이 생겼다. 홍콩에 그런 걸 가지고 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다.


아버지는 냉담한 구매자들을 만나기 위해 홍콩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들은 양복을 입는 사람들이 아니었을 것이고, 아버지의 미션은 대체로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다. 20년이 흐른 후 아들이 같은 곳을 배회하며 같은 처지에 놓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곳의 건물들은 여전히 나에게 덤벼들 테고 사람들은 격한 성조로 이야기하며 내게로 덮쳐왔다가 빠른 걸음으로 멀어질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홍콩할매귀신을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정리하는 사이 뉴스 링크가 날아왔다. 22호 태풍 하이마가 필리핀을 거쳐 홍콩으로 진격하고 있으며, 심지어 수퍼 태풍이라는 기사였다. 그래, 그런 거지, 뭐.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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