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월간 여분의 리뷰: 2022년 2월

월간 여분의 리뷰: 2022년 2월

 


1. 『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직업, 종교, 학벌, 정치관을 초월한 단 하나의 욕망, 그건 부동산 아닐까요? 조남주 작가는 연작 소설 『서영동 이야기』를 통해 ‘아파트의 가치’를 놓고 부침을 겪는 여러 군상을 스케치합니다. 동네 친목 인터넷 카페에 서영동의 부동산 가치가 평가 절하됐다고 개탄하는 ‘봄날아빠’의 글이 올라오며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봄날아빠는 누굴까? 누가 이렇게 당당하게 집값이 더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며 은근히 담합을 요구할까? 어떤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그건 봄날아빠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좀 점잖게 말할 줄 알아야 “교양 있는” 시민이라는 거죠. 그런데 정말, 우리가 ‘집’ 앞에서 태연할 수 있을까요? 작가는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과연?”이라고 되묻는 듯합니다.


아버지가 건너편 아파트 단지의 경비원으로 취업하며 혼란을 겪는 유정. 아이 영어 유치원 학부모 모임의 ‘인싸’가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걸 알게 된 은주. 집값에 도움 되는 일이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는 보미. 열심히 일궈온 자기 학원 앞 건물에 노인 요양 시설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격분하는 경화. 소설은 평범한 인물들을 하나둘 시험대에 올리며 감춰왔던 이기심을 드러내게 하기도 하고, 자신의 본모습과 마주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보미는 내심 아버지를 속물이라고 여기지만, 그런 아버지를 취재해서 커리어를 쌓으려는 인물입니다. 급기야 아버지가 남동생에게 자기가 사는 집을 물려주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폭발하지요. 분노와 서운함, 무엇보다 보미는 자신이 아버지와 똑같은 속물이 아닌가 자각하며 충격을 받습니다.


『서영동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르포처럼 보일 만큼 사실적입니다. 아파트라는 거울로 비춘 인물의 양면성을 탁월하게 드러내기도 하지요. 한편으로는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너무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 전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라도 서영동 사람들의 욕망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어떤 독자에게는 실제처럼 생생하게 읽히고, 어떤 독자에게는 소설로서의 매력은 좀 약하게 보일 수 있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 책에 실린 마지막 단편인 「이상한 나라의 엘리」가 돋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자기 아파트 한 채씩은 가진 서영동 주민들한테 주목하던 소설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에서 전혀 다른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30대 초반의 아영은 영어 강사가 꿈인, 10년째 학원을 전전하며 수업을 보조하는 아르바이트생입니다. 실력이 아닌 학력 때문이지요. 그녀는 지금 서영동 재개발 지구 다세대주택에 단기 임대로 살고 있습니다. 보증금 없는 월세라는 파격 조건이지만, 레킹 볼을 단 크레인과 굴삭기가 시동을 걸면 즉각 방을 비우고 나간다는 게 계약의 실체이고요. 소설은 부유하며 사는 아영의 눈을 통해 지금까지 독자와 얼마간 입장을 공유하던 서영동 주민들을 바라봅니다. 그러자 현실이 이상한 나라의 먼 이야기 같아집니다. 이 소설의 리얼리티도 바로 거기서 완성되고요.


손에 넣은 것을 놓치기 싫은 마음. 손에 쥔 것이 더 크길 바라는 마음.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양팔 벌려 품을 수도 없는 것에 매달리는 마음도 어딘가에선 욕심이 아닌 꿈이자 목표라 불리고요. 『서영동 이야기』는 그게 정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의 작동 방식인지 되묻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있고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제 처지가 달라졌어요. 그때도 지금도 저는 아무 생각이 없고 이런 제가 한심하고 답답하고 (…) 이제 와 부끄럽다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워요. _175p.

수시로 비슷한 냄새를 맡았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온 고층 빌딩 앞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걸어 올라가는 골목에서. 아영은 그것이 서울 냄새라는 것을 알았고, 그 냄새를 좋아하게 되었다. _218p.

아영은 기사에 나열된 30대의 사례들이 무척 낯설었다.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라 오히려 황당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끌어모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영혼은 대체 어떤 영혼일까. 나는 영혼마저도 실속이 없네. 웃음이 나왔는데 솔직히 웃기지는 않았다. _241p.



2. 『시를 읽는다』, 박완서 글‧이성표 그림



시가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머릿속이 엉클어져 긴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사방의 벽이 나를 향해 기울어지고 있다 느껴질 때.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에서 길을 잃어야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이 보이기도 하지요. 차라리 멀리 멀리 줄달음질치라고 북돋아 주는 시인도 있고요.


박완서 선생님의 문장과 이성표 작가의 그림이 어우러진 『시를 읽는다』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입니다. 책장을 몇 번이고 앞뒤로 넘겼다 펼쳤다 하는 안달은 시를 읽을 때 나오는 버릇이기도 하지요.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본래 산문의 일부였던 문장들을 행으로 나누자 생각을 누일 자리가 넓어집니다. 거기에 이성표 작가가 문장의 의미 너머에서 건져온 그림이 덮이며 하나의 세계가 완성됩니다. 시를 읽지 않는 세상에서 곰곰 시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유영하는 세계이지요.


책 속 인물들은 대체로 담담한 표정입니다. 전부 앞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는 몸짓을 하고 있어요. 그게 꼭 뭔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저 순수의 태 같기도 합니다. 어쩐지 친근하고, 출렁이던 마음도 제법 담담하게 가라앉습니다. 그 안식의 느낌이 좋아서 책장을 그렇게 여러 차례 접었다 폈다 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시를 읽는다』가 단순히 명문가의 문장을 소비한 책으로 보이지 않는 건 이성표 작가의 그림이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일 겁니다. 시가 된 산문, 물감으로 그린 시.


마지막으로 『시를 읽는다』에 수록되진 않은 원 수필의 앞 문장도 함께 옮겨 봅니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 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한마디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_박완서,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현대문학


선생님 덕분에 몇 권 안 되는 시집이나마 제 책상 위로 이사를 왔습니다.



3.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강지희, 김신회 외 지음



혼자 밥 먹는 걸 이해 못 하는 사람과 혼자 밥을 먹어야 소화가 잘 되는 사람이 있어요. 점심이 되면 둘 사이엔 깊은 강물이 흐릅니다. 종종 이 둘이 한 뗏목에 올라 노를 저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자주, 심지어 매일 벌어지기도 하지요. 강변 사람 A에게 B는 궁상맞게 혼자 먹으려 하고 분위기 싸하게 아무 말도 없어 불편한 사람입니다. 강변 사람 B에게 A는 밥이라도 편하게 먹고 싶은데 자꾸 말을 걸고 점심시간을 함께 다 쓰려고 하는 무례한 사람이고요. 서로는 그렇게 서로의 체기가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세요? 대체로 강물에 실려 이 기슭 저 기슭 떠돌아다니시겠지요?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은 열 명의 작가가 점심시간에 쓴 글, 혹은 점심에 관해 쓴 글을 모은 산문집입니다. 현직 직장인도 있고 프리랜서도 있어 점심시간을 보내는 양태가 다르고, 무엇보다 장르가 제각각이라 색깔이 확실합니다. 저자당 다섯 편씩 써서 흐름도 끊기지 않고요. 그럼에도 오롯한 한 권으로 읽히는 건 이 책의 주제 때문입니다. 일단 제목을 보세요, 저자들이 혼자 먹는 점심을 좋아하리라는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MBTI식 성격 유형으로 나누자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들에게는 두루뭉술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대체로 강변 사람 B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점심시간에 쓴 글이어야 한다’는 편집자의 미션도 통일감을 줍니다. 점심시간은 짧거든요. (“대낮보다는”) 한낮이거든요. 어쩐지 이 막간에 쓰는 에세이는 조금 산뜻하고, 에고 안으로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고, 자학도 좀 더 웃기게 하고, 밥 먹으며 누구 뒷담화하듯 불만도 거침없이 나올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책의 분위기가 그러하듯이요. 여담이지만 이 ‘여분의 책방’ 리뷰도 늦은 아침부터 점심 조금 지나서까지, 혹은 점심부터 이른 오후 정도까지 쓰는 편입니다. 그래야 너무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앉아서 나무뿌리나 긁기보단 한 권이라는 숲을 스윽 조망할 수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마음은 그렇습니다.)


위에선 글을 쓰는 사람은 강변 사람 B일지도 모르겠다고 했지만, 사실 작가뿐 아니라 이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얼마간 강변 사람 B일 것 같습니다. 저녁에는 강변 사람 A로 돌아올지 몰라도 점심시간에는 체계 유지라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 반대편 강기슭에 난파하는 거지요.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나의 한 시간을 찾고 싶다, 그런 고민을 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이 백반 한 상처럼 가슴을 든든하게 채워줄 것입니다.


자, 이제 #편집자 #책리뷰 시각에서 벗어나 한 명의 저자로서 마무리해 볼까요? 제가 이 책을 곧장 집어든 건 얼마 전 제가 완성한 원고도 혼밥, 점심 그런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혼자 점심』의 모든 글이 좋았지만, 맨 앞에 배치된 강지희 평론가의 글들은 사붓사붓 눈길 밟듯 제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읽고 나서 디자이너에게 작업 의뢰한 저의 원고를 세절기에 넣는 상상도 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뭐, 괜찮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오늘 점심으로 짱뚱어탕을 먹었더니 지금까지 든든하거든요!


점심시간에 식사 메뉴만을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점심을 거르는 건 그 사람이 나약한 의지나 낮은 자존감으로 자기 관리를 놓쳐서가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가면 그렇게 되어 버리는 상황의 문제일 때가 많다. 점심이 없던 그 날들에 내가 얼마나 자주 불안에 휩싸였는지, 얼마나 몸을 학대하듯 살아왔는지, 허겁지겁 입에 넣던 순대의 맛이 어땠는지 기억한다. _강지희, 「점심이 없던 날들」

내가 있는 이곳은, 〈체험 삶의 현장〉처럼 왁자지껄 좌충우돌 같은 뉘앙스의 말이 아니고, 일상 브이로그 같은 달콤한 포장도 아니고, 그저 직장인의 생이다. 건조한 하나의 단어가 많은 모습을 아우른다. _원도, 「다짜고짜 뭐 먹을 거냐니」

평생 돈에 쫓겨 살며 각종 직업을 전전한 스위스의 전설적인 작가 로베르트 발저도 일하는 틈틈이, 몰래 책을 읽고 몰래 소설을 썼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그건 그런 행위들이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건전함이나 올바름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체제 전복적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일탈로도 여겨지는. 그러니 우리가 욕망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_정지돈, 「길티 플레저」




글 신태진

매거진 브릭스의 에디터. 『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