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월간 여분의 리뷰: 2022년 4월

월간 여분의 리뷰: 2022년 4월

 

★『침몰가족』, 가노 쓰치 지음



아이가 눈을 뜨니 아빠도 아니고 삼촌도 아니고 그렇다고 옆집 아저씨도 아닌 어른이 밤새 술을 마시고 자기 책 가방을 베고 자고 있습니다. 가방을 슬쩍 꺼내 등교를 합니다. 이 집은 여러 사람이 공동생활을 하는 것은 물론 낯선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는 곳. 자주 술판이 벌어지고 토론도 벌어지는 ‘침몰하우스’입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침몰가족’이라 부르기로 하지요. 아이가 자라기에는 좋은 환경이 아니겠다고요? 하지만 아이,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인 가노 쓰치는 이야기합니다. 누구든 계속 옆에 있어 준다는, 자신을 돌봐 주는 누군가가 한둘은 꼭 있다는 사실에 안정감을 느꼈다고요.

『침몰가족』은 동명의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됐습니다. 가노 쓰치가 졸업 작품을 주제로 자신의 성장 과정을 취재했고, 그게 호평을 받아 개봉 영화로도 발전했습니다. 이 책은 영화에서 담지 못한 에피소드, 제작 과정, 본인의 삶에 관해 풀어쓴 에세이입니다.

‘침몰가족’을 시작한 건 그의 엄마 가노 호코였습니다. 아이를 낳았지만 애인과 함께 살지 않기로 한 그녀는 공동 육아 참가자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당시에도 30년이 넘은 3층 건물에 기본적으로 입주민 몇 팀이 있고, 아이를 봐주기 위해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침몰하우스를 찾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냥 갈 곳 없고 잘 곳 없어서, 외로우니까 누군가와 술도 마시고 대화도 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호코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이를 어떻게 돌봐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호코를 포함한 돌보미들은 육아 노트에 쓰치와 보낸 시간을 기록했고, 때로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대해야 하는지 토론하며 정답 없는 육아를 함께했을 뿐입니다.

저자는 침몰가족이 마을에서 아이를 다 함께 키우는 육아 공동체와는 조금 다르다고 말합니다. 간단히 분류될 수 없다고요. 사실 침몰가족은 아이보다 어른에게 주어진 대안적인 관계망이었을지 모릅니다. 당시 침몰가족에 모였던 사람들 대부분이 20대, 게다가 ‘안녕한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낙오자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생존을 도모하고 자유와 소요의 기쁨을 느끼는 공간, 인간의 다양성을 경험하고 족쇄 없는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실 저자의 삶이 완성된 곳은 침몰가족이 아니었습니다. 쓰치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모자는 본토에서 300km 떨어진 섬으로 떠납니다. 거기서는 둘이서만 함께 살지요. 처음 반 년간은 섬 아이들의 텃세에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는 쓰치이지만, 결국 그는 섬에 녹아들었고 그곳에서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으로 성장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고향은 그가 태어난 가마쿠라도 침몰가족이 있던 도쿄도 아닌, 하치조지마라는 그 섬이라고 합니다.

침몰가족은 분명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자란 쓰치나 다른 아이들은 침몰가족에서 보낸 시간이 자신의 삶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영화가 개봉하고 많은 이들이 침몰가족 같은 곳에서 자란 사람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라고 여기는 눈치였던 모양인데, 당시의 기억이 많지 않은 쓰치도, 그보다 두 살이 많아 좀 더 많은 기억을 갖고 있던 메구라는 인물도 그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라고 회상하지요. 그게 바로 침몰가족이 실험했던 육아의 방식이 성공에 가깝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쓰치든 메구든 잘 자랐습니다. 느슨한 가족, 대안 가족에서 자랐으나 그 형식을 찬양하지도, 거기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지도 않지요. 말머리에 쓰치가 쓴 문장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듯합니다. “누구라도 옆에 있어 준다면, 아이는 대체로 잘 자란다”고요. 아주 번듯한 직장이나 집, 딱히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사는 사람뿐이라도 그의 곁에는 다양한 어른들,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섬에 살 때도 괴짜지만 엄마가 있었고, 나중엔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었지요. 대학생이 되어서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기도 했고요. 가족의 형태가 중요할까요? 앞으로의 사회에서 가족의 형식이 더 흐려지고 혼합되고 변이된다고 해도 우리는 일단 아이 곁에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요, 꼭 자기 아이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어른의 영혼에게도 역시 아이라는 존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일본은 이유를 요구하는 시대다. 무슨 일이건 강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꿈이 없으면 안 된다. 목표가 없어서도 안 된다. 무언가 행동할 때 그것을 하는 이유를 요구한다. 물론 이유는 있어도 된다. 하지만 이유가 없는 사람도 있다. 침몰가족은 체계적이지도 않았고 명확한 콘셉트도 없었다. 다만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살마을 인정해주는 장소였다. 그렇게 침몰가족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모이는 곳이 되었다. _19p.


“사진을 같이 찍을 때면 우리 셋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만 엄청나게 사이가 안 좋잖아. 나는 가족이 무엇인지 잘 모르니까 사진을 한 장 찍고 그날의 가족, 또 다음 날 한 장 찍어서 그날의 가족을 갱신하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사진을 통해 가족을 알아가려고 했는지도 몰라.” _147p.


특별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특별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나의 성장 과정을 따라간 영화에서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나는 딱히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다. 가족을 다룬 영화들이 항상 그렇듯 따뜻한 가족애에 관한 이야기거나 질척이는 트라우마로 점철된 이야기인 현실에 불만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와 메구는 평범하게 자랐고, 그저 편안하게 침몰가족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라고 말한다. 이렇게 자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_219p.




글 신태진

매거진 브릭스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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