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월간 여분의 리뷰: 2022년 6월

월간 여분의 리뷰: 2022년 6월



1. 『우연히, 웨스 앤더슨』, 월리 코발 지음



완벽한 대칭, 손대면 묻어날 것 같은 생생한 컬러, 배경의 규칙을 깨고 도드라지는 존재 자체의 의외성. 어떤 건물에 이 모든 면이 담겨 있다면 시간에 쫓기고 있는 와중에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익숙한 행동을 하게 되겠죠. 스마트폰(운 좋게 가지고 있다면 카메라)을 꺼내 사진을 찍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질서와 균형을 겸비하고 색에 대한 감수성이 넘치는 대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리엔 회색 콘크리트가 태반이지요. 멋을 부렸다 하더라도 30년 전 장식과 15년 전 장식과 작년에 새로 단 장식이 혼랍스럽게 엉켜 있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매일 봐서 익숙한 풍경 안에서 숨겨진 미덕을 발견해 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굳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알고 보면 전혀 진부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여기 한 권이 책이 그 갈증을 해소해 주겠다고 도전장을 내밉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유명 감독의 이름을 내건 『우연히, 웨스 앤더슨』은 사진집이자 일종의 가이드북입니다. 서점 분류상 ‘여행 가이드’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고 가이드북이라고 한 건 아닙니다. 사진은 대륙별로 나뉘어 있긴 하나 그다음부터는 어떤 규칙도 기준도 없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많은 장소가 과연 이걸 맨눈으로 보기 위해(그리고 똑같은 사진을 찍기 위해) 그 먼 길을 갈 수 있을까 망설여지게 할 만큼 너무나 멀고 생소한 곳에 있고요. 그럼에도 이 책이 가이드북인 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런 아름다움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내 주변에서, 혹은 운 좋게 잡은 다음 휴가지에서 찾고 싶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영감을 위한 가이드북이라고 할까요?



이 책은 사진집이지만, 넘기다 보면 의외로 이미지보다 텍스트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진 속 지역 혹은 건물에 관한 설명이 자그마한 고딕체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거든요. 때로는 글이 사진보다 더 흥미롭습니다. (영국 버킹엄 궁전의 시계공들!) 아시다시피 이 책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에 등장할 법한 실재 장소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물 파사드 전체를 찍은 사진이 있는가 하면, 내외부의 극히 일부만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그런데 설명은 건물과 장소, 심지어 도시에 얽힌 에피소드를 건드리고 있으니 프레임 안에 담기지 않은 부분은 상상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호기심이 일고,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매력을 갈구하게 만들지요. 글로 떠나는 여행이 실제 여행보다 더 나은 경우도 있음을 이번에도 조심스레 인정하게 되는 겁니다.


여기에 실린 건물들은 완벽한 수직과 수평의 미를 보여줍니다. 카메라 렌즈는 구조상 주변부에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보면 의식하지 못하는데 편집 프로그램에서 렌즈 교정 옵션 같은 걸 적용하면 미세하게 말려 있거나 뒤집혀 있음을 알게 되지요. 아마도 이 사진집에 참여한 수많은 사진가는 수평·수직계처럼 정확하게(실제로 그런 기구도 사용해 가며) 촬영을 하고, 그러고 나서도 피사체를 강조하기 위해 사진을 자르고 후보정으로 더 정확한 선을 구현하려 했을 겁니다. 아마 육안으로 봤어도 이렇게 완벽한 수평과 수직을 마주하진 못했을 겁니다. 대체로 건물은 밑에서 올려다보게 되니까요. 어떤 면에선 가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모든 선들은 안정감과 완벽에 관한 환상을 불어넣어 줍니다. 이상향이 어떤 곳인지 힌트를 드러내듯 말이죠.


리뷰와 함께 덧붙인 사진은 동명의 전시에서 찍어온 ‘사진의 사진’입니다.



"사랑은 완벽한 보살핌이라는 '상태'가 아닙니다. '투쟁'과 같은 적극적인 명사입니다." _피츠버그 체육회

문명을 완전히 저버릴 결심을 했다면, 항해를 시작하기 좋은 장소는 '세상 끝의 도시',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일 것이다. (…) 등대의 줄무늬가 멀리 사라지면, 당신과 다른 선원들에게 "아디오스" 하고 인사해줄 최후의 생명체는 물개·가마우지·바다사자·펭귄들일 것이다. _레 제클레뢰르 등대

나치의 야만성, 소련의 억압, 공산주의의 등한시, 전쟁의 파괴를 목격해왔음에도 이 건물이 이 가혹한 역사의 중심축들을 버티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격려가 된다. 이 도시에 아름다움을 인식할 줄 아는 공동의 능력이 존재한다는 증거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것은 국가도, 국경도, 한계도 없는 인식 능력이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기에, 그것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_BGZ BNP 은행 파리바 지점



2.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마르그리트 뒤라스



달리 선택지가 없는 호텔에서는 매일 똑같은 요리(”영구불변의 생선구이”)를 내놓습니다. 끔찍한 더위를 이기는 법은 바닷물에 들어가 해가 저무는 짧은 저녁을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보잘것없는 작은 마을을 올해도 찾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보다 나은 휴가지를 알면서도 매번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다른 술은 제쳐두고 ‘캄파리’만 들이키는 사람들. 매일 똑같은 스케쥴을 반복하며 휴가지에서 일상을 만들어 사는 사람들. 애초에 옆에 있는 친구와 배우자조차 지긋지긋해진 사람들. 여름, 무더위, 권태. 이 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들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본성은 여름에 더 잘 드러난다.” 사랑과 슬픔과 증오와 연민조차 반쯤 녹아 흐물흐물해진 고무처럼 미적지근한 파도를 기다립니다.


출판사에서 고심 끝에 붙였을 것 같은 ‘프랑스판 부부의 세계’라는 부제처럼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권태에 빠진 부부 관계를 다루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그 주제에 닿기 위해 끊임없이 치대는 다섯 친구의 대화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애정은 물론 우정의 영역에서도 이들은 서로를 못 견딜 만큼 지겨워하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저버리지도 못합니다. 심지어 억지로 끌려와 온갖 행패(?)를 부리는 가정부조차 자신의 고용주와 그 아이 곁에 붙어 있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지요. 인간의 진정한 본성이 가실지 모르는 폭염 앞에 드러나는 걸까요? 최초의 사랑과 친밀감과 헌신은 시간의 흐름과 반복 앞에 무뎌지고, 양각에서 음각으로 파고들며 양쪽을 찌르는 흉기가 될 수밖에 없는 걸까요? 인간의 선한 정신은 본디 그토록 변질되고 말 운명인 걸까요?



부부인 사라와 자크, 친구 부부인 루디와 지나, 그리고 싱글인 다이아나는 다른 휴가객 모두 인정할 만큼 똘똘 뭉쳐 다닙니다. 멋진 배를 타고 등장해 사라와 뜨거운 욕망을 주고받는 ‘장’조차 그들 무리 안으로 파고들 수 없어서인지 소설 내내 이름 대신 ‘남자’로 호명되지요. (비슷한 원리는 반대로도 작용하는지 남자가 사라를 간절히 원하며 그녀를 “사라”라고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그녀는 놀라고 맙니다. 남자가 단순한 욕망의 대상을 넘어 자기 인생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음을 깨달은 듯이요.)


그 유대감 안에서 다섯 친구는 서로에게 현실적인 면과 나이브한 면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자신의 잣대로 상대의 어리숙한 면을 공격하지만, 반대로 제 허점을 세게 얻어맞기도 합니다. 논쟁에서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장을 고수하면서도 가까운 사람에게는 이기적이고 비논리적으로 굴기도 하고요. 독자로서는 다섯 인물 누구에게도 온전히 정을 붙이기 어려운 면이 있었습니다. 아마 이들이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자신의 루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더 강력한 루틴에 갇혀가는 ‘늙어가는’ 인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처음 책 제목만 봤을 때는 ‘말들’이 words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원제목을 다시 보니 chevaux, 프랑스어로 이힝 말의 복수형이더군요. (한국어에서만 우연하게 동음이의어지만, 실제 제목의 의미가 words였어도 소설과 잘 어울렸을 것 같네요. 사족으로 ‘파에스툼의 물소들’ 혹은 ‘파에스툼 신전의 잠든 물소들’ 같은 제목이었어도 좋았을 것 같은…) 친구들이 신물 나는 생선요리와 지독한 더위를 떨치고 일어나 보러 갈 타키니아의 옛 벽화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그게 변화의 실마리가 될까요? 권태는 계속되겠지만 조금은 더 잘 유영하게 될까요? 최소한 이들이 떠날 여행이 더위 때문에 오지 않는 비만 기다리던 헛된 희망과는 사뭇 다르리라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그는 그녀가 결코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되어 버릴 남자였다. 또 다른 남자는 그녀가 결코 알지 못할 남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모든 삶을 동시에 다 살 수는 없어, 라고 루디는 말했었다. 두 남자에 대한 지식은 양립이 불가능했다. _248p.

모두 명백한 노스탤지어와 함께 망명자라도 된 듯 자기의 도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곳이 아무리 열악해도 제각각 그곳에서 보냈던 삶의 양식에 애착이 있었던 만큼, 그 삶의 양식이 최악이 아니라는 증거를 늘어놓을 준비가 돼있었다. _292p.

“어쩌면 오래된 사랑이 우리를 그렇게 악의적으로 만드는 건지도 몰라. 위대한 사랑의 황금 감옥 말이야.” (…) “그래도 넌 날 사랑해야 돼, 난 최소한 내가 악의적인 걸 알고 있으니까.” _295p.



3. 『진실한 한 끼』, 신태진 지음 



한창 『진실한 한 끼』라는 이 책을 쓰던 2020년 12월. 쓰는 모든 글이 음식으로 수렴하자 쓰는 모든 글이 진부하게 느껴졌습니다. 새 신발에 쓸리는 발꿈치 같았어요. 뭐라도 음식 이야기가 안 나오는 걸 써야겠다, 그래서 책 리뷰를 쓰기로 했습니다. ‘여분의 책방’ 계정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제가 편집한 책도 올리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세 권이었는데요, 편집자의 옷을 벗고 독자의 욕조에 누워 쓴 리뷰였지요. 하지만 이 책만큼은 올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쓴 책을 평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다가 문득 ‘여분의 책방’에 관해 주절주절 하는 자리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제가 imdb 사이트에 자주 들어가는데요, 영화의 뒷이야기를 담은 잡지식, trivia 읽는 걸 좋아해서랍니다. 이번 글은 그러니까 여분의 책방 트리비아인 것이죠.


원래 여분의 책방은 어느 회사가 언젠가 내야 할 패로 만지작거리는 일종의 ‘브랜드’입니다. 이름 그대로 자그마한 서점이 될 뻔했었죠. 이 책을 통해 흔히 ‘임프린트’라고 하는 출판 브랜드가 되기는 했지만, 현실은 어쨌든 저라는 사람의 독후감 계정입니다. 개인인지 단체인지 모호한 정체성은 타인의 작품에 관해 이러쿵저러쿵한다는 행위의 부담을 덜어줍니다. 혹시 회사가 아껴뒀던 이 카드를 어딘가에 짠하고 내기로 한다 해도, 리뷰는 다른 계정에서 계속할 생각입니다.



왜 하고많은 매체 중 인스타그램을 택했느냐 하면, 아시다시피 피드에 올라갈 수 있는 텍스트가 2,200자로 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A4로 대충 환산하면 1쪽 조금 넘는 분량인데요, 애초부터 리뷰에 인용문 세 꼭지에 태그까지 그 안에 다 욱여넣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실제 리뷰는 1쪽도 안 되는 분량, 줄거리만 요약해도 충분히 채울 밥그릇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문제는 어떤 책은 도저히 그 안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을 수가 없다는 의외의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일단 다 쓰고 글자 수를 세어 가며 뭉텅이로 쳐내는데, 고역이기는 합니다. 뭐, 개인적으로는 글쓰기 훈련이라고 봐도 좋겠네요.


동시에 품은 간사한 생각은요, 누가 인스타에서 2,200자 꽉 채운 글을 읽겠느냐는 거였습니다. 맘대로 쓸 수 있는데 아무도 읽을 일 없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역시 부담을 줄이는 포인트입니다. 졸저라고는 해도 책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짐이 될 만한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려 했던 것 같네요. 이번에도 문제는 책 리뷰 계정을 운영하며 다른 리뷰어 분들을 하나둘 알게 되며 불거졌습니다. 다른 건 안 봐도 그분의 리뷰는 전부 다 읽게 되는 분들을 만나며 이게 허투루 해선 안 될 일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결국 부담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한 주에 한 권도 올리지 못하는 요즘은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이런 부담이 즐겁기는 합니다. 앞으로도 이곳 피드에는 도무지 취향을 종잡을 수 없는 여러 분야의 책 리뷰가 천천히 올라올 겁니다. 그래도 제 침구 아래 깔린, 관심을 바라는 한 알의 콩이 등에 배겨 덧붙이자면, 저는 소설 읽기를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계정을 통해 소개하고 싶은 두 작품을 밝혀 봅니다. 하나는 아껴 읽는다고 하기도 뭣하고 방치하고 있다고 하기도 뭣한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입니다. 뭐라고 써야 할지 벌써부터 혼란스럽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릴 최종 보스 같은 작품인데요, 아직 출간이 다 되지 않은 김희영 교수 번역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저는 완독까지 네 권, 혹은 다섯 권 남았는데요(「되찾은 시간」은 몇 권으로 나올까요?) 마저 읽고, 처음부터 한 번 더 읽고, 여기에 리뷰를 써 보고 싶네요. 가능할까요? 항상 이 길고 긴 소설을 다 읽으면 잃어버린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기는 하답니다. 그때까지는 쭉 이곳에서 읽고 쓰면서 독서를 좋아하는 여러분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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