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월간 여분의 리뷰: 2022년 7월

월간 여분의 리뷰: 2022년 7월

 


1. 『모데라토 칸타빌레』, 마르그리트 뒤라스 



몇 년 동안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복잡한 악보가 읽히고 손가락이 어찌어찌 그걸 따라가게 되는 연습의 성과는 성취감을 안겨 주었지요. 그런데 한 가지, 꽤 오래 지나고 나서도 알쏭달쏭한 게 있었습니다. 알레그로, 포르테, 돌체… 바로 악보에 쓰인 연주 지시어였습니다. 템포나 강약, 분위기를 지시하는 음악 용어들의 뜻은 알아도 도대체 그걸 연주에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는 모르겠더라고요. 빠르게는 무엇을 기준으로 얼마만큼 빠른 것일까? ‘달콤한dolce’ 연주는 어떤 연주인 걸까? 치는 내 마음도 달콤해져야 하는 걸까? 그저 악보를 따라 정량적이고 기계적으로 건반을 두드렸을 뿐이지 음악을 ‘연주’하지는 못했던 한계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지시어들의 모호함이, 사실 그 단어들을 내심 좋아하게 만들었습니다.


연주법이자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모데라토 칸타빌레’ 역시 모호한 세계를 펼쳐냅니다. 매주 금요일 안 데바레드 부인은 아이에게 피아노 레슨을 시키기 위해 도시 정반대편 부둣가로 향합니다. 그러던 어느 저녁, 맞은편 카페에서 길고 긴 비명소리가 들려오지요.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여성, 살인범인 남성은 그가 저지른 범죄와는 별개로 아무리 봐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죽은 여자의 시체를 끌어안고 그녀를 떠나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안 부인은 이 살인이 광기 어린 사랑의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가 사랑을 위해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 게 아닐까? 얼핏 죽은 여인의 얼굴을 본 안 부인의 말에 따르면, 죽은 여자는 죽고 나서도 기쁘게 웃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아노 선생과 아이의 끈질긴 실랑이와 살인 사건이 교차하는 불안한 도입부가 지나가면 소설은 ‘모데라토 칸타빌레’로 흘러갑니다. 그러니까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요. 이 노래는 흥얼거림이고, 가사도 멜로디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한낱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사건이 벌어진 카페에서 쇼뱅이라는 청년을 만난 안 부인은 그와 포도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눕니다. 급기야 레슨이 없는 날에도 아이를 데리고 찾아와 어느 연인이 어쩌다 죽음으로써 사랑을 완성하려 했는지 이야기하지요. 물론 두 사람 다 진상은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뿐입니다.


부유한 제철소 사장의 부인인 안과 젊은 노동자 쇼뱅은 점점 밀회를 나누는 연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고백도, 아슬아슬한 접촉도 거의 없습니다. 안은 끊임없이 쇼뱅도 알지 못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고, 쇼뱅은 한때 자신이 일했던 제철소의 안주인을 유심히 관찰해 왔음을 밝히며 그녀를 연모해 왔다는 인상을 주지요.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아귀가 잘 맞지 않습니다. 그저 떨어지는 해와 그들이 마주 앉은 테이블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주변 손님들은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프레스토로 밀려들어 왔다 사라질 따름입니다. 두 사람이 정말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됐을까요? 아니면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사랑’이라는 공통의 이상향을 상대방한테서 찾고 있을 뿐인 걸까요?



작품 해설에 잘 나와 있듯 뒤라스가 의도한 간접적이고 추상적이면서 은밀한 이런 표현 방식은 아이가 치는 소나티네처럼 (곡보다는 훨씬 울적한 빛깔의) 심미적인 즐거움을 줍니다. 한편으로 후반부 만찬 장면은 절제되었으나 도저히 숨길 수는 없는 강렬한 감정으로 너울거리고요. 안 부인은 모든 욕망을 거세하고 오로지 식욕과 과시욕만 남은 부류에서 빠져나와 죽음처럼 강렬한 사랑을 꿈꾸었습니다. 그녀와 쇼뱅의 마지막 대화는 그녀의 시도가 실패했음을, 혹은 끝끝내 성공했음을 동시에 암시합니다. 결국 안과 쇼뱅이 불운한 연인에 관한 퍼즐을 맞춰 나가는 내내 우리도 그들의 감정을 더듬거리고 있었습니다. 악보 위 지시어의 모호한 속삭임을 듣기 위해서는 어쨌든 연주자가 되어야 하듯, 이 소설의 섬세한 속삭임을 듣기 위하여 기꺼이 독자가 되어 볼 일입니다.


“밤이면, 나중에 가서는 시도 때도 없이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긴 침묵 때문이었겠죠. 날이 가면 갈수록 그 어떤 것으로도 극복할 수 없게 된 침묵 말입니다.” _53p.

그 여자는 소나티네에 귀 기울였다. 아이가 빚어내는 음악이 세월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그녀에게로 오고 있었다. 그걸 들으면서 기절할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었다. _72p.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쇼뱅이 말했다.
”그대로 되었어요.” 안 데바레드가 말했다. _112p.



2. 『여름의 흐름』, 마루야마 겐지 지음



낯설고 비틀린 세계. 마루야마 겐지의 중·단편 모음집 『여름의 흐름』은 그곳으로 열린 문입니다. 표제작인 「여름의 흐름」부터 우리는 죄수에게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간수의 입장이 됩니다. 화자는 잔인한 범죄자도 일단은 ‘인간’임을 인정합니다. 그 말인즉 자신은 한 인간의 목숨을 앗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사형을 집행한 교도관에게 주어지는 하루의 ‘특별 휴가’는 오랫동안 미뤄왔던, 바다에 놀러 가자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화자는 베테랑 간수입니다. 최소한의 말로 감정을 표현한다기보다는 최소한의 표현 속에 감정을 구겨 넣으며 무덤덤하게 자기 임무를 해내고 있지요. 그런데 한 신입 간수가 집행을 거부하고 교도관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는 막 집행을 마치고 돌아온 화자를 “길 한복판에서 뱀을 만난 것 같은 얼굴”로 바라보지요. 그때 화자는 의문이 듭니다. 나는 이 일이 잘 어울리는 인간인가? 나처럼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인간이 따로 있는가? 그렇다면 나 같은 인간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 것인가? 문장은 숨 막히게 더운 여름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책의 첫 중편부터 내내 서늘합니다. 이것이 처음으로 만난 마루야마 겐지의 세계였습니다.



모두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중·단편들은 상상 혹은 환상에서 전개의 동력을 얻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물들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동시에 육체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이기 때문에 상상, 아니면 회상으로라도 도망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때 마루야마 겐지는 많은 문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기괴한 방식으로 기울어진 사면에 올려둡니다. 인물들은 타인에게 무심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 관심이 쏠려 있어 이기적인 면과 자기 파괴적인 면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특정 문학 군에 도사린 비틀리고 기괴하고 찜찜한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결말이 어떻든 인간을 혐오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은 흩뿌려진 비틀림, 기괴함 속에서도 시선의 방향이 달랐습니다. 특히 「여름의 흐름」이나 「좁은 방의 영혼」, 「바다」 같은 작품은 모순적이고 무력한 존재로서의 인간, 그 서글픈 운명을 잘 포착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놀랄 만큼 또렷하게 그림이 떠오르는 묘사들이 이 책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소리라고는 가끔 다리를 바꿔 꼬는 간수의 구두 소리뿐이었다. 이렇게 고요할 때면 나는 모든 방에 있던 죄수가 갑자기 증발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_「여름의 흐름」 중

나는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의 경계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확인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매일 아침 실패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잠이 깨고 나서 몇 분 지난 뒤였다. 잠들기 전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간들은 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_「좁은 방의 영혼」 중

아랫도리에 힘이 없기 때문에 달 표면을 걷는 우주비행사처럼 어색하다. 직장에서는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되는 걸음걸이다. 금방 일할 의욕을 의심받게 된다. 아내나 유키 앞에서도 마찬가지로 삼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것은 나뿐이다. 즉,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자유다. _「바다」 중




글/사진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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