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의 책방: 리뷰]월간 여분의 리뷰: 2021년 11월

월간 여분의 리뷰: 2021년 11월



1. 『마더 나이트』, 커트 보니것



당신은 스파이입니다. 미국 태생이지만 독일에서 일자리를 잡은 부모를 따라 독일로 왔지요. 나치즘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던 시기, 한 미국인이 당신을 찾아옵니다. 나치의 심장 한가운데서 활약하는 미국의 스파이가 되라고요. 낭만적이면서도 권선징악에 충실한 작품을 써 온 작가이자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었던 당신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당신은 나치당원이 되어 나치즘을 선전하고 유대인과 유색 인종을 인류의 주적이라고 세뇌하는 라디오 방송을 합니다. 얼마나 훌륭한 홍보부원이었는지 당신의 부모와 아내조차도 당신이 미국 스파이라는 사실을 끝내 모를 정도였지요. 물론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될까요?

하워드 W. 캠벨 2세는 뉴욕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 숨어 살고 있습니다. 그가 전시에 라디오 방송을 하며 보낸 암호가 연합군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목숨을 걸고 활약한 전쟁 영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식적으로 미국의 스파이였음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되리라는 걸 알고도 스파이가 되겠다고 동의한 인물이었습니다! 아직도 전쟁 중에 ‘나치의 하워드’가 얼마나 악랄하고 창의적인 선전부장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스라엘에서는 그를 전범으로 주목하여 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불합리한 상황은 하워드에게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는 전쟁 중에 독일인이었던 아내를 잃었고, 그때 이미 그를 구성하던 세계의 대부분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완벽히 종적을 감췄다고 여겨졌던 그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백인우월주의자들과 반유대주의자들이 ‘나치의 하워드’를 추종하기 위해 찾아오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되돌아오지요. 한편 전쟁 중 그를 증오했던 미국의 참전 군인들도 그를 협박하며 죽이려 합니다.

커트 보니것의 소설 『마더 나이트』는 반전反戰 소설이자 정체성에 관한 소설입니다. 흥미로운 건 그런 작품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반면, 하워드는 정반대라는 점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반유대주의를 비롯해 인종 차별, 파시즘을 혐오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나치로서 저지른 전쟁 범죄’를 인정합니다. 자기 안에 진심으로 나치즘을 찬양하고 유대인들을 학살하라고 부추긴 자아가 있었음을 그는 압니다. 작중에서 유일하게 하워드의 정체를 스스로 밝혀낸 장인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장인은 원래 하워드가 첩자임이 밝혀져서 죽는 꼴을 보고 싶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생각을 바꿉니다. 자신도 나치당원으로서 하워드의 선전이 나치 독일의 행태가 ‘미친 짓’이 아니었다는 거짓 확신을 주었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하워드는 정말 뛰어난 스파이였던 것이죠. (나치당원 시절의 하워드는 이후 보니것의 소설 『제5도살장』에서도 잠깐 등장합니다.)

하워드는 대의를 위해 수백만 명을 학살하는 데 동조했고, 그것이 범죄였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는 하워드처럼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차별과 탄압, 살인과 전쟁을 불사하는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하워드와 달리 자기가 하는 짓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일이라 믿으며 진실을 외면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커트 보니것은 하워드라는 인물을 통해 여전히 양산되고 있는 그런 어리석은 자들을, 어리석은 우리들을 풍자하고 거침없이 비난합니다.


“난 어떤 것도 국경을 기준으로 생각하질 못해. 국경이라는 가상의 선은 나에게 엘프나 픽시 요정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거든. 난 국경이 인간의 영혼에 정말로 중요한 어떤 것의 끝이나 시작을 표시한다고 믿지 않아. 선과 악, 쾌락과 고통은 마음 내키는 대로 경계를 넘나들지.” _180p.

나는 내 사고기계의 톱니를 일부러 망가뜨린 적은 없다.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나는 이 사실을 외면해도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_288p.

“순수한 악을 물리치겠다고 전쟁을 일삼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꼴이 된다. 싸움을 벌일 이유는 많다. 하지만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전지전능한 하느님도 자기와 함께 적을 증오한다고 상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_319~320p. 



2. 『고양이 요람』, 커트 보니것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사흘 후 나가사키에 두 번째 폭탄까지 떨어지자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두 개의 폭탄이 최후의 최후까지 전쟁 의지를 다지던 일본을 무너트리고 종전을 앞당긴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8월 6일이 인류가 처음으로 핵무기를 같은 종에게 사용한 날이라는 사실 역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런 사건이 역사책에 다시 기록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보장하지도 못하고요.

커트 보니것은 소설 『고양이 요람』에서 같은 의심을 합니다. 그는 우선 과학자들에게 주목하지요. 어떤 도덕적, 윤리적 준거도 없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는 데만 혈안이 된 이들이 세상을 파멸시킬 수 있다고 보니것은 말합니다. 실제로 그의 형은 과학자였고, 본인도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그런 실례를 가까이서 접했다고 합니다. 냉전이 한창인 가운데 미국과 소련 모두 서로를 굴복시킬 군비 성장에 열을 올린 시기이기도 했으니까요.

소설은 화자인 존이 8월 6일 그날 미국의 주요 인사들은 무엇을 했는지 다루는 책을 쓰려 했다고 밝히며 시작됩니다. 책 제목은 ‘세상이 끝난 날’이었죠. 작중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필릭스 호니커 박사가 존의 책에 꼭 등장해야 할 인물이었습니다. 존은 죽은 필릭스 박사 대신 그의 자식들과 옛 연구실 동료들을 찾아다닙니다. 그 과정에서 필릭스 박사가 죽기 직전에 원자폭탄 이상으로 가공할 물질을 구상(실은 발명)했으며, 실종됐다고 알려진 둘째 아들이 ‘샌로렌조’라는 중남미의 작은 나라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히, 아니 예정되어 있던 대로, 존은 샌로렌조에 가게 됩니다.

새삼 ‘풍자’라는 말을 쓰기가 무안할 만큼 이 소설은 당시의 미국과 과학계, 보너스로 종교까지 전방위적으로 ‘깝니다.’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정부, 기업, 종교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에게 강렬한 악의는 없습니다. 아무도 영화 속 악당처럼 “이 세상을 멸망시킬 거야!”라고 외치지 않지요. 그저 무심하거나, 무지하거나,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거나, 선의를 나쁜 방식으로 표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얼마간 그러 듯이요. 보니것은 그런 안일한 자세가 영 못마땅했던 것 같습니다. 큰 사건 없이 조금 어리둥절하게 전개되던 이야기가 후반에 갑작스레 뒤집히며 엄청난 파국으로 끝나거든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농담처럼요.

이 소설을 읽는 분 중에는 무엇보다 작중 샌로렌조의 종교인 ‘보코논교’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도 같네요. 성경을 비꼬거나 새로 쓰는 건 물론, 대체로 우스꽝스럽다가 때로는 그럴싸한 아포리즘으로 남기도 하는 보코논교의 교리들은 이 소설을 읽는 재미가 될 수도, 내용 이해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보코논’이란 인물이 창시함과 동시에 금지시킨(!) 이 종교는 스스로 모든 교리가 거짓이라고 밝히지만 사람들은 그 교리를 믿습니다. 애국심, 신앙, 이데올로기, 과학과 기술에 대한 확신 전부 ‘보코논교’가 될 수 있다고 넌지시 경고하는 이 책은 출간 당시 얻었던 평판 그대로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안티테제인 것 같습니다.


“보코논교도들은 무엇을 신성시하나요?” 잠시 후에 내가 물었다. (…)
“사람. 그게 전부예요. 오직 사람.” 프랭크가 말했다. _253p.

“만약 우리가 샌로렌조의 죽은 아이들 백 명에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고자 한다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모든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사악함을 경멸하는 것이 이날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전쟁을 기념하려면, 아마도 우리는 옷을 벗어던지고 온몸에 파란 칠을 한 다음 하루종일 네발로 기어다니며 돼지처럼 꿀꿀대야 할 겁니다.” _301p.

애통하게도 현실은 거짓말을 필요로 하지만, 애통하게도 현실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_336p. 


3.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 허유미 지음



춤, 잘 추시나요? 어렸을 적, 어른들 앞에서 유행하는 춤을 따라 추는 친척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던 기억이 나네요. 다들 웃고 손뼉 치고 즐거워하는 중에 뒤에서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었는데요, 그때부터 저는 몸치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들었는지 상상으로 들었는지 “너는 저런 것도 못하니?” 그런 놀림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다가 어른이 되고 클럽에서 밤새 노는 날이 생기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댄서의 몸짓을 따라할 수 없는 건 인정. 하지만 나 역시 음악을 몸으로 즐길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긴 것입니다.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에 따르면 저는 여러 춤의 여러 분화 중에서도 ‘레이브 문화’에 빠져 있던 셈이더군요. 책에선 레이브 문화도 멋지게 설명해 주었는데, 그건 인용문에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클럽에서 춤추기를 좋아했다고 해서 제가 춤과 가까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은 그런 저 같은 사람에게 세상의 춤을 소개합니다. 안무가인 저자의 의도에 따르면 춤의 세계로 가는 ‘대중 입문서’인 것이죠. 발레, 현대 무용, 전통춤, 왈츠나 탱고 같은 사교춤, 접촉즉흥이라는 신기한 춤까지 이 책은 그 역사와 몸짓의 원리를 다채롭게 보여줍니다. 시쳇말로 춤에 관해서 ‘1도 모르는’ 제가 이 책의 편집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텍스트를 읽으며 저절로 춤을 배워갔기 때문입니다. 이론에 한한 것이긴 하지만요.

푸코와 들뢰즈까지 등장하기는 하지만, 춤에 문외한인 사람도 읽기 어렵지 않다는 게 이 책의 장점입니다. 사실 직접 발레를 하거나 탈춤을 출 일은 없기 때문에 춤이 어떻게 인간의 사상적 변화‧발전에 영향을 받고 다시 영향을 주는지 알아가는 지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재미였습니다. 춤은 인간이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언어이고, 언어는 결국 사고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춤으로 드러나는 건 당연한 일인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자 클럽에서 힙합이나 EDM에 맞춰 춤을 추며 무엇을 말하고자 했나 돌이켜보게 되더군요. 사실 듣고 심취하고 움직이느라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그 어두운 스테이지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돌의 칼군무에 관심이 없고 발레를 극장에서 직접 본 적도 없지만, 춤을 추는 게 즐겁다는 것은 압니다. 괜히 우리말에 ‘춤바람’이라는 단어가 있는 게 아니겠지요. 춤바람의 중독성을 아는 데는 내성적이냐 외향적이냐 하는 성격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혼자이든 둘이든 여럿이든 즐길 수 있는 춤의 종류는 수없이 많으니까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몸은 움직입니다. 드넓은 춤의 세계에서 어떤 몸짓을 해 볼까 마음 먹으셨다면, 이 책이 친절한 길잡이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전거나 수영을 익혀 두면 시간이 지나도 몸이 기억하는 것처럼, ‘몸이 새겨진 움직임’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몸에 반복적으로 쌓인 감각을 바탕으로, 그와 관련하여 세계와 관계 맺는 것이다. 그래서 몸 도식, 몸 구조화라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무대 위 춤추는 몸은 그와 관련된 몸틀을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전문 무용수는 일상에서도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남다른 존재감이 느껴진다. _39p.

자아와 타자 혹은 세계가 혼연일체 되어 존재의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에로티즘의 욕구는 예술에 대한 욕구와 닿아 있다. 예술은 대체로 먹고사는 것과는 상관없는 에너지의 소진이지만, 삶을 고양된 차원, 예술로 만들고 싶은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기도 하다. _224p.

파편화, 해체, 분산, 불연속성, 표면화, 깊이 없음, 의미 없음, 하이퍼리얼리티, 덧없음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이라면 레이브는 이런 삶 속에서 계속적이고 독립적으로 자기를 쇄신하는 무정부주의적인 춤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인종, 문화, 젠더, 계급이 사라지고,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음악에 몸을 맡긴 탈주체적인 개인들이 비슷한 듯 다르게 움직인다. 익명성, 비개인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집단성이나 획일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_259p.




글 신태진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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