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 비엔나][라이프] 나의 유럽의 겨울은 언제나 회색

2026-02-06

하루 한 잔 비엔나 #31


유럽에 살면서 겨울에 ‘파란 하늘’을 본 적이 별로 없다. 하늘은 항상 구름으로 가득 찬 회색. 그래서 그런지 겨울 시즌이 되면 몸이 더 찌뿌둥한 느낌이다. 광고에서 보는, 우루사 곰 한마리가 어깨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그런 느낌? 정작 여긴 우루사도 없는데. 틈 나는 대로 기지개도 켜 보는데 개운하지 않은 그런 느낌이다. 비엔나에 살고 있는 지인들과 자주 입버릇처럼 말한다. “흐려서 그래, 흐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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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오늘도 겨울 하늘은 뿌연 회색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도 그야말로 무채색. 최소한의 색만 내려앉은 흐린 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나타나는 겨울날이면, 평소보다 사람들이 시내에 더 붐비는 그런 느낌이다. 매일 뜨는 해지만, 해님을 볼 수 있는 날이 그만큼 드물기 때문이다. 그때 사람들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밝다. 색채가 가득하다.


하지만 흐린 날도 좋은 점은 있다. 흐린 날에 사진을 찍으면, 쨍한 여름날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담긴다. 뭐랄까, 여름날이 화창하고 생동감 가득하다면, 겨울날은 차분하고 무드가 있다고 할까? 여름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쨍쨍하고 강렬한 햇빛인데, 겨울은 소프트한 느낌으로 빛이 담긴다. 가끔 스냅을 찍는 분들이 “날이 흐린데, 괜찮을까요?” 걱정을 하시기도 한다. 그때, 오랜 촬영 경험에서 나오는 믿음으로 안심을 시켜드린다. “저는 흐린 날 촬영도 좋아해요, 이런 날이 더 뽀샤시하게 나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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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날이 흐리고 기운이 축 쳐지고 뭔가 개운하지 않을 때는 역시 커피를 마셔야 한다. 비엔나에서 마시면 다 비엔나 커피, 라고 하니 내가 내려 마시는 네스프레소도 비엔나 커피 아닌가!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네스프레소 한 알 넣어 진하게 내리면 일단 커피향이 풍기는 시점부터 바로 기분이 좋아진다.


쌀쌀하고 추운 날 시내에 있다가 즐겨 가는 카페에 들어가서 멜랑쥐, 아니면 아인슈패너를 주문하고 창 밖을 보는 재미도 있다. 추운 바깥과 따뜻한 실내의 온도 차로 창문이 뿌옇게 가려지면서, 그 사이로 보이는 무채색의 건물들이 색다른 감성에 젖게 한다. 전혜린의 수필이었던가, 어릴 때 읽었던 문장이라 가물가물하지만, 그녀는 겨울의 뮌헨을 “회색” 이라고 표현했다. 그땐 내가 그녀의 회색 계절을 직접 볼 줄 몰랐는데. 흐린 겨울 날이 되면 항상 그녀의 글이 떠오른다.


오늘도 하늘은 끝없이 흐린 회색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지금 유럽의 겨울에 있구나” 실감하게 되는 날이다.


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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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https://instagram.com/photo_by_miri_vienna
https://blog.naver.com/miri_in_vienna
https://mirivien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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