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4년 차 새내기 성악가의 도전기 #5
잠깐의 안일함이 부른 실수
합격통지서를 받고 학교에 등록을 하러 갔다. 반드시 이곳에 들어가겠노라고 관광객처럼 학교 앞 건물에서 사진을 찍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당당히 학생이 되다니. 그 생각만으로도 신이 났다. 심지어 체코어로 수업을 듣게 된 나는 다른 입학생들처럼 학비를 내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외국인이라 적은 금액이지만 장학금까지 받는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었다. 지난 1년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나에게 부담이 되는 일들은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학교 등록을 마치고 바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비서실에 가서 내가 지난 1년 동안 레슨을 받았던 교수님의 클래스에 넣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힘들게 체코어로 등록을 마친 나는 정신적 에너지를 다 썼는지 비서실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핑계로 ‘며칠 뒤에 다시 학교에 오면 그때 얘기자히 뭐’ 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그저 합격의 기쁨만을 만끽하면서….

학교 건물
며칠 뒤, 지난 1년간 레슨을 받은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내가 다른 교수님 클래스로 지정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곧 학교에 요청할 예정이었다고 말씀드렸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 속에서 내 말은 핑계에 불과했다. 교수님께서도 본인이 가르쳤던 학생이라고 학과장님께 부탁을 드렸지만, 이미 확정이 된 일이라 바꿀 수가 없다며 거절 당했다고 하셨다.
통화 시간은 1분을 좀 넘기는 정도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 잠깐의 안일함이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성악은 선생님이 굉장히 중요하다. 어떤 티칭을 받느냐에 따라서 ‘소리의 길’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이제 와서 선생님이 바뀐다는 것은 엄청난 도박을 하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평소에 나는 실수를 하더라도 스스로를 탓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스스로가 너무 못났다고 생각해서 눈물이 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모든 게 잠깐의 안일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내가 당황한 걸 눈치 챈 교수님은 나를 새로 맡게 된 분도 아주 좋은 분이라며 위로를 해주셨다. 다른 분이었다면 배신감을 느끼고 화를 내셨어도 당연한 상황이었는데 위로조차 너무 감사하고 죄송했다.
자책을 하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머리로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눈물과 함께 아쉬움도 털어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마음도 진정이 되었다. 평소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버릇이 있어서인지 어쩌면 더 좋은 계획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마저 생겼다. 그렇게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 개강 날을 기다렸다.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로 발탁됐으나
으리으리한 건물로 들어가 나와는 아주 다르게 생긴, 성악과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체코어로 말을 걸었다. 혹시나 실수할까 봐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연습한 문장. “여기가 성악과가 모이는 곳이 맞나요?” 그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그렇다고 답했다. 클래스 시간이 되어서 성악과가 한자리에 모였고 서로 짤막한 인사를 나누었다. 이미 나는 약간의 회화는 할 수 있었던 상태였기에 그들과 영어로 대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꿋꿋하게 다 이해하는 척을 했다. 지금은 그 연기의 도사가 됐지만, 그때는 어색한 내 반응에 다들 눈치를 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지도하시게 된 교수님은 우크라이나에서 오신 분이었지만 우크라이나어와 체코어는 비슷한 언어라서 체코어 또한 매우 잘 하셨다. 무엇보다 학생을 가르치실 때의 열정이 대단하셔서 매 레슨을 들어갈 때마다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학교생활에 조금씩 적응해나가던 어느 날, 학교에서 교내 오페라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구에게 어떤 역할을 줄지 교수님들이 회의를 거쳐 공지한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도교수님께서 내가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가 공연하는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제목만 보면 피가로가 주인공 같지만, 그의 연인 수잔나가 결혼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그린 오페라라서 수잔나가 여러 사건에 연관된 핵심 인물로 나온다. 거의 오페라 전 장면에 출연하며 특유의 발랄함과 재기를 발휘하는 캐릭터… 내가 맡게 된 역할이 바로 그 수잔나였다.
성악과 연습실 내부
우리에겐 A, B, C팀이 있었다. 그리고 A팀과 B팀은 공연 날짜가 확정이 되었지만 C팀은 확정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주인공 역할로 발탁되었다는 것에 놀랐다. 오페라 특성상 많은 인물이 출연하지 않기에 40명이 넘는 성악과 전원이 배역을 맡는 것도 아니었다. 교수님들이 보시기에 열심히 하고 잘하는 학생들을 위주로 뽑았을 텐데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동양인 여자애에게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주셨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얼떨떨한 채로 첫 리허설에 참여했다. 우리를 이끌어줄 연출감독님과의 첫 미팅이었다. 그리고 감독님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학생들에게 우리가 어떤 오페라를 할 것인지를 설명하시고, 각 캐릭터는 어떻게 연기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대화를 원하셨다. 예상은 했지만 그 미팅 내내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정말 애를 먹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체코어는 BGM일 뿐이고 나의 타들어가는 마음이 그 장면의 메인이었을지 모른다. 교과서로 시험용 공부를 막 마친 나에게는 슬랭부터 프라하 사투리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장투성이었다. 표정은 다 알아듣고 있다는 듯 결연했다. 그렇지만 그 연기가 언제까지 통하겠는가? 바로 다음 시간부터 연출가 선생님의 디렉팅을 받아 연기를 해야 하는데 이정도의 수준이라면 너무 힘든 상황이 될 게 뻔히 보였다.
그나마 C팀이라서 첫 번째로 연기를 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위안이 되었다. 어떻게든 앞서 하는 A, B팀의 수잔나들을 보고 잘 따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갑자기 누군가가 아프거나 혹은 급한 요청으로 내가 먼저 무대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주인공인데 연출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니.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나를 믿어준 교수님들께 실망을 끼쳐드릴까 봐 걱정이 앞섰다.
연습실에서 바라본 풍경
전체미팅이 끝난 후 나는 도피하듯 학교 연습실로 들어왔다. 철컥. 오래된 유럽 건물 특유의 커다란 이중 나무문이 닫히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막막함이라는 이름으로 성큼 다가왔다. 연습실에 들어와서 몇 초나 지났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울었는지 모르겠다. 잠시 잊고 있었던 회피형 걱정인형이 못 참겠다며 튀어나와 버렸다. 노을빛이던 큰 창은 어느새 내 마음과 같은 어둠의 창으로 변해갔다. 까를교를 건너 프라하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학교 앞을 꼭 지나가야 한다. 그렇게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그 길 옆에서, 한 한국인 학생은 노을빛이 어둠이 되기까지 쉬지 않고 울었다.

글·사진 | 강희

강희는 프라하 음악 예술 아카데미 성악과 최초 한국인 졸업생이다. 체코어와 고군분투하며 체코를 넘어 전세계를 정복 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sop_hee_
프라하 4년 차 새내기 성악가의 도전기 #5
잠깐의 안일함이 부른 실수
합격통지서를 받고 학교에 등록을 하러 갔다. 반드시 이곳에 들어가겠노라고 관광객처럼 학교 앞 건물에서 사진을 찍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당당히 학생이 되다니. 그 생각만으로도 신이 났다. 심지어 체코어로 수업을 듣게 된 나는 다른 입학생들처럼 학비를 내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외국인이라 적은 금액이지만 장학금까지 받는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었다. 지난 1년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나에게 부담이 되는 일들은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학교 등록을 마치고 바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비서실에 가서 내가 지난 1년 동안 레슨을 받았던 교수님의 클래스에 넣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힘들게 체코어로 등록을 마친 나는 정신적 에너지를 다 썼는지 비서실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핑계로 ‘며칠 뒤에 다시 학교에 오면 그때 얘기자히 뭐’ 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그저 합격의 기쁨만을 만끽하면서….
학교 건물
며칠 뒤, 지난 1년간 레슨을 받은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내가 다른 교수님 클래스로 지정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곧 학교에 요청할 예정이었다고 말씀드렸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 속에서 내 말은 핑계에 불과했다. 교수님께서도 본인이 가르쳤던 학생이라고 학과장님께 부탁을 드렸지만, 이미 확정이 된 일이라 바꿀 수가 없다며 거절 당했다고 하셨다.
통화 시간은 1분을 좀 넘기는 정도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 잠깐의 안일함이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성악은 선생님이 굉장히 중요하다. 어떤 티칭을 받느냐에 따라서 ‘소리의 길’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이제 와서 선생님이 바뀐다는 것은 엄청난 도박을 하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평소에 나는 실수를 하더라도 스스로를 탓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스스로가 너무 못났다고 생각해서 눈물이 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모든 게 잠깐의 안일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내가 당황한 걸 눈치 챈 교수님은 나를 새로 맡게 된 분도 아주 좋은 분이라며 위로를 해주셨다. 다른 분이었다면 배신감을 느끼고 화를 내셨어도 당연한 상황이었는데 위로조차 너무 감사하고 죄송했다.
자책을 하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머리로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눈물과 함께 아쉬움도 털어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마음도 진정이 되었다. 평소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버릇이 있어서인지 어쩌면 더 좋은 계획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마저 생겼다. 그렇게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 개강 날을 기다렸다.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로 발탁됐으나
으리으리한 건물로 들어가 나와는 아주 다르게 생긴, 성악과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체코어로 말을 걸었다. 혹시나 실수할까 봐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연습한 문장. “여기가 성악과가 모이는 곳이 맞나요?” 그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그렇다고 답했다. 클래스 시간이 되어서 성악과가 한자리에 모였고 서로 짤막한 인사를 나누었다. 이미 나는 약간의 회화는 할 수 있었던 상태였기에 그들과 영어로 대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꿋꿋하게 다 이해하는 척을 했다. 지금은 그 연기의 도사가 됐지만, 그때는 어색한 내 반응에 다들 눈치를 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지도하시게 된 교수님은 우크라이나에서 오신 분이었지만 우크라이나어와 체코어는 비슷한 언어라서 체코어 또한 매우 잘 하셨다. 무엇보다 학생을 가르치실 때의 열정이 대단하셔서 매 레슨을 들어갈 때마다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학교생활에 조금씩 적응해나가던 어느 날, 학교에서 교내 오페라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구에게 어떤 역할을 줄지 교수님들이 회의를 거쳐 공지한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도교수님께서 내가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가 공연하는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제목만 보면 피가로가 주인공 같지만, 그의 연인 수잔나가 결혼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그린 오페라라서 수잔나가 여러 사건에 연관된 핵심 인물로 나온다. 거의 오페라 전 장면에 출연하며 특유의 발랄함과 재기를 발휘하는 캐릭터… 내가 맡게 된 역할이 바로 그 수잔나였다.
우리에겐 A, B, C팀이 있었다. 그리고 A팀과 B팀은 공연 날짜가 확정이 되었지만 C팀은 확정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주인공 역할로 발탁되었다는 것에 놀랐다. 오페라 특성상 많은 인물이 출연하지 않기에 40명이 넘는 성악과 전원이 배역을 맡는 것도 아니었다. 교수님들이 보시기에 열심히 하고 잘하는 학생들을 위주로 뽑았을 텐데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동양인 여자애에게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주셨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얼떨떨한 채로 첫 리허설에 참여했다. 우리를 이끌어줄 연출감독님과의 첫 미팅이었다. 그리고 감독님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학생들에게 우리가 어떤 오페라를 할 것인지를 설명하시고, 각 캐릭터는 어떻게 연기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대화를 원하셨다. 예상은 했지만 그 미팅 내내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정말 애를 먹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체코어는 BGM일 뿐이고 나의 타들어가는 마음이 그 장면의 메인이었을지 모른다. 교과서로 시험용 공부를 막 마친 나에게는 슬랭부터 프라하 사투리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장투성이었다. 표정은 다 알아듣고 있다는 듯 결연했다. 그렇지만 그 연기가 언제까지 통하겠는가? 바로 다음 시간부터 연출가 선생님의 디렉팅을 받아 연기를 해야 하는데 이정도의 수준이라면 너무 힘든 상황이 될 게 뻔히 보였다.
그나마 C팀이라서 첫 번째로 연기를 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위안이 되었다. 어떻게든 앞서 하는 A, B팀의 수잔나들을 보고 잘 따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갑자기 누군가가 아프거나 혹은 급한 요청으로 내가 먼저 무대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주인공인데 연출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니.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나를 믿어준 교수님들께 실망을 끼쳐드릴까 봐 걱정이 앞섰다.
전체미팅이 끝난 후 나는 도피하듯 학교 연습실로 들어왔다. 철컥. 오래된 유럽 건물 특유의 커다란 이중 나무문이 닫히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막막함이라는 이름으로 성큼 다가왔다. 연습실에 들어와서 몇 초나 지났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울었는지 모르겠다. 잠시 잊고 있었던 회피형 걱정인형이 못 참겠다며 튀어나와 버렸다. 노을빛이던 큰 창은 어느새 내 마음과 같은 어둠의 창으로 변해갔다. 까를교를 건너 프라하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학교 앞을 꼭 지나가야 한다. 그렇게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그 길 옆에서, 한 한국인 학생은 노을빛이 어둠이 되기까지 쉬지 않고 울었다.
글·사진 | 강희
강희는 프라하 음악 예술 아카데미 성악과 최초 한국인 졸업생이다. 체코어와 고군분투하며 체코를 넘어 전세계를 정복 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sop_hee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