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다 쏟아내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감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체코어 시험을 준비할 때의 독기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 한국에서 성악의 길을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했을 때의 뼈저린 결심을 다시금 되뇌었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절대 포기하지 말자.'
이 오페라는 나에게 첫 오페라였다. 한국에서도 합창단 단원으로 오페라 무대에 선 경험은 있었지만, 오페라 주인공을 연기할 수 있던 기회는 없었다. 나는 석사 1년차와 2년차 때 모두 수잔나를 연기했는데 그날 미팅 이후로 2년간 단 한 번도 리허설에 빠지지 않았다. 학기 내내 거의 매일 리허설이 있었고 후반에는 오후부터 저녁 늦은 시각까지 진행되었기에 체력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리허설이 있는 날은 두 팀이 돌아가며 연습을 했다. 그래서 스케줄에 따라 내가 꼭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날도 있었지만 그럴 때도 참여해서 무대 뒤에서 동작을 따라 했다. 한 번도 연출가 선생님 앞에서 해보지 않은 장면이 있었는데, 수잔나가 원치 않는 상황 속에 끌려가며 '이게 뭐지?' 하는 부분이었다. 그 감정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조금은 코믹한 표정이 나왔다. 그 때 연출가 선생님이 연기적인 센스가 있다고 이례적으로 칭찬을 해주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나는 더욱 열정에 불타 매일 재밌게 연기를 했다. 마침 나를 지도해주신 교수님께서도 이 역할을 50번 이상 하셨던 베테랑이셨다. 이렇게 여러 도움으로 서서히 캐릭터를 구축해 나갈 수 있었다.
노을로 물들어가는 프라하 전경
공연 날짜가 잡히면서 C팀에도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졌다. 대망의 마지막 리허설이 끝난 후, 연출가 선생님께서 각 캐릭터별로 모든 학생들에게 마지막 조언을 해주셨다. 그런데 분량이 가장 많은 수잔나에 대한 언급은 끝까지 없으셨다. 혹시 잊으셨을까 싶어서 다른 학생들이 나간 후 연출가 선생님께 나에 대한 조언은 없으신지 여쭤봤다. 갑자기 그분의 눈이 예쁜 손녀딸을 보듯 빛났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한테 해줄 조언은 아무것도 없어. 아주 사소한 것들은 네가 무대에서 알아서 잘 해나갈 거라고 믿어."
이 두 문장은 지난 시간 동안 학교에서 힘들게 버티고 부딪치며 살아왔던 나의 모든 시간을 보상해주었다. 그날은 도망칠 곳이 필요 없었다. 그저 마음 속에 기쁨의 통곡(?)만 있을 뿐이었다. 그간 표현은 안 하셨지만 나를 믿고 계셨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학교 앞 정거장에서 트램을 기다리는데 유독 밤하늘이 아름답게 보였다. 위로의 밤이었다.
드디어 수잔나로
첫 공연 당일, 내 주먹보다 두꺼운 오페라 악보를 무대 뒤 피아노에 올려두고 챙겨야 할 소품을 하나씩 정리했다. 찢어지기 직전의 휘황찬란한 악보를 보며 생각했다.
'잘할 거야.'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 끝나고 신혼살림을 꾸려가는 피가로와 수잔나의 2중창으로 본격적인 오페라가 시작된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굉장히 현명한 수잔나는 약혼자를 놀려주기 위해 능청스러운 연기도 마다 않는다. '지체 말고 어서 오세요' 정도로 해석되는 그녀의 아리아 <Deh vieni, non tardar>는 오페라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이 상황이 콩쿨이었다면 그 곡에만 집중하느라 오히려 힘이 들어갔을 텐데 이날은 이야기 흐름 속의 일부분이어서 그랬는지 큰 부담 없이 노래를 마쳤다. 내 장면이 끝나면 바로 무대 뒤로 빠지는 연출이었기에 다음 장면에 나와야 할 캐릭터들이 무대 뒤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박수갈채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 무대 뒤로 들어가자 친구들은 나에게 “브라바!”를 외쳐주었고 한 친구는 박수가 언제 끝나는 거냐고 능청스럽게 물어보며 나의 기를 살려주었다. 그 날 2시간의 오페라 중 가장 긴 박수를 받은 장면이었다.
수잔나 출연 장면들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작품답게 유쾌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커튼콜이 이어지고 조역들부터 차례로 나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피가로 역할을 한 친구와 손을 잡고 무대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 가장 큰 환호성이 피가로와 수잔나에게 쏟아졌다.
나는 무대 위에서 유일하게 다른 얼굴을 가진 존재였다. 까만 눈동자와 까만 머리카락, 가장 작은 키에 상대적으로 눈도 작고 코도 낮았다. 스페인 소녀 수잔나가 그려지는 얼굴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 앞에서 박수를 쳐주는 관객들은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듯 보였다. '우리의' 수잔나와 피가로에게 박수를 보낼 뿐이었다.
커튼콜 장면
내 인생 첫 오페라, 그것도 가장 노동 강도가 높은 소프라노 역할 중 하나로 꼽히는 수잔나라니. 이정도면 스스로 칭찬해줄 만도 하다고 생각 할 때 즈음 무대 뒤로 교수님들이 올라오셨다. 그리고 갑자기 학과장님이 내 체코 이름인 엘리슈까(Eliška)를 부르시며 다가오셨다.
"Eliško! To bylo báječné!" (엘리슈까, 정말 환상적이었어!)
특히 (위에 언급한) 두 번째 아리아에서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흥분이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지휘과 교수님도 나의 수잔나가 매우 맘에 든다며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가셨다. 모든 상황이 꿈만 같았다. 체코라는 낯선 나라에 와서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기도 전에 맞닥뜨린 시련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를 배려해주며 용기를 북돋아준 선생님들과 친구들. 또 나에게 큰 호응을 보내 준 많은 관객들. 마치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이 공연 덕분에 나중에 지휘과 교수님께서 이 오페라로 공연이나 마스터클래스를 하실 때는 늘 나를 초대가수로 불러 주셨다. 그리고 그 인연이 계속되어 다른 공연으로도 이어지며 졸업 후엔 오케스트라와 함께 체코 지방 극장에서 순회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학교 전체에 눈도장을 제대로 찍는 사건이 된 것이다.
지휘과 교수님의 오페라 갈라 콘서트에서 함께
그때 찍은 영상을 지금도 가끔씩 본다. 처음 볼 땐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만 눈에 띈다. 두 번째 볼 때는 나만 열심히 해서가 아닌 모두의 노력과 땀으로 맺어진 결실이었다는 걸 실감한다. 세 번째 볼 땐 이렇게 큰 관심을 받게 된 건 내 실력이 아닌 먼 타국에서 온 아이의 노력을 알아봐 준 사람들의 열린 마음 덕분이란 걸 깨닫게 된다.
사랑스럽게 첫 장면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숨어있는 게 들킬까 봐 구석에서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숨을 몰아내쉬는 장면, 능청스럽게 다른 이와 사랑에 빠진 걸 피가로 앞에서 연기하던 그 눈빛, 그리고 그렇게 똑똑하던 수잔나가 보여주는 질투어린 평범한 한 여자의 모습. 이 모든 순간을 연기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그녀는 시련이 닥칠 때마다 재치 있고 명랑하게 그녀다운 해법을 내놓는다. 나와 학교 생활을 함께 한 수잔나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고마워, 수잔나!
나의 치열했던 체코 생활의 1막은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P.S.
힘들 때마다 학교 뒤편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프라하 전경을 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봄을 알리는 벚꽃을 보며 언젠가 나에게도 봄이 올까 생각하곤 했었다.
프라하 4년 차 새내기 성악가의 도전기 #6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눈물을 다 쏟아내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감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체코어 시험을 준비할 때의 독기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 한국에서 성악의 길을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했을 때의 뼈저린 결심을 다시금 되뇌었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절대 포기하지 말자.'
이 오페라는 나에게 첫 오페라였다. 한국에서도 합창단 단원으로 오페라 무대에 선 경험은 있었지만, 오페라 주인공을 연기할 수 있던 기회는 없었다. 나는 석사 1년차와 2년차 때 모두 수잔나를 연기했는데 그날 미팅 이후로 2년간 단 한 번도 리허설에 빠지지 않았다. 학기 내내 거의 매일 리허설이 있었고 후반에는 오후부터 저녁 늦은 시각까지 진행되었기에 체력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리허설이 있는 날은 두 팀이 돌아가며 연습을 했다. 그래서 스케줄에 따라 내가 꼭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날도 있었지만 그럴 때도 참여해서 무대 뒤에서 동작을 따라 했다. 한 번도 연출가 선생님 앞에서 해보지 않은 장면이 있었는데, 수잔나가 원치 않는 상황 속에 끌려가며 '이게 뭐지?' 하는 부분이었다. 그 감정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조금은 코믹한 표정이 나왔다. 그 때 연출가 선생님이 연기적인 센스가 있다고 이례적으로 칭찬을 해주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나는 더욱 열정에 불타 매일 재밌게 연기를 했다. 마침 나를 지도해주신 교수님께서도 이 역할을 50번 이상 하셨던 베테랑이셨다. 이렇게 여러 도움으로 서서히 캐릭터를 구축해 나갈 수 있었다.
공연 날짜가 잡히면서 C팀에도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졌다. 대망의 마지막 리허설이 끝난 후, 연출가 선생님께서 각 캐릭터별로 모든 학생들에게 마지막 조언을 해주셨다. 그런데 분량이 가장 많은 수잔나에 대한 언급은 끝까지 없으셨다. 혹시 잊으셨을까 싶어서 다른 학생들이 나간 후 연출가 선생님께 나에 대한 조언은 없으신지 여쭤봤다. 갑자기 그분의 눈이 예쁜 손녀딸을 보듯 빛났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한테 해줄 조언은 아무것도 없어. 아주 사소한 것들은 네가 무대에서 알아서 잘 해나갈 거라고 믿어."
이 두 문장은 지난 시간 동안 학교에서 힘들게 버티고 부딪치며 살아왔던 나의 모든 시간을 보상해주었다. 그날은 도망칠 곳이 필요 없었다. 그저 마음 속에 기쁨의 통곡(?)만 있을 뿐이었다. 그간 표현은 안 하셨지만 나를 믿고 계셨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학교 앞 정거장에서 트램을 기다리는데 유독 밤하늘이 아름답게 보였다. 위로의 밤이었다.
드디어 수잔나로
첫 공연 당일, 내 주먹보다 두꺼운 오페라 악보를 무대 뒤 피아노에 올려두고 챙겨야 할 소품을 하나씩 정리했다. 찢어지기 직전의 휘황찬란한 악보를 보며 생각했다.
'잘할 거야.'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 끝나고 신혼살림을 꾸려가는 피가로와 수잔나의 2중창으로 본격적인 오페라가 시작된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굉장히 현명한 수잔나는 약혼자를 놀려주기 위해 능청스러운 연기도 마다 않는다. '지체 말고 어서 오세요' 정도로 해석되는 그녀의 아리아 <Deh vieni, non tardar>는 오페라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이 상황이 콩쿨이었다면 그 곡에만 집중하느라 오히려 힘이 들어갔을 텐데 이날은 이야기 흐름 속의 일부분이어서 그랬는지 큰 부담 없이 노래를 마쳤다. 내 장면이 끝나면 바로 무대 뒤로 빠지는 연출이었기에 다음 장면에 나와야 할 캐릭터들이 무대 뒤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박수갈채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 무대 뒤로 들어가자 친구들은 나에게 “브라바!”를 외쳐주었고 한 친구는 박수가 언제 끝나는 거냐고 능청스럽게 물어보며 나의 기를 살려주었다. 그 날 2시간의 오페라 중 가장 긴 박수를 받은 장면이었다.
수잔나 출연 장면들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작품답게 유쾌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커튼콜이 이어지고 조역들부터 차례로 나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피가로 역할을 한 친구와 손을 잡고 무대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 가장 큰 환호성이 피가로와 수잔나에게 쏟아졌다.
나는 무대 위에서 유일하게 다른 얼굴을 가진 존재였다. 까만 눈동자와 까만 머리카락, 가장 작은 키에 상대적으로 눈도 작고 코도 낮았다. 스페인 소녀 수잔나가 그려지는 얼굴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 앞에서 박수를 쳐주는 관객들은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듯 보였다. '우리의' 수잔나와 피가로에게 박수를 보낼 뿐이었다.
커튼콜 장면
내 인생 첫 오페라, 그것도 가장 노동 강도가 높은 소프라노 역할 중 하나로 꼽히는 수잔나라니. 이정도면 스스로 칭찬해줄 만도 하다고 생각 할 때 즈음 무대 뒤로 교수님들이 올라오셨다. 그리고 갑자기 학과장님이 내 체코 이름인 엘리슈까(Eliška)를 부르시며 다가오셨다.
"Eliško! To bylo báječné!"
(엘리슈까, 정말 환상적이었어!)
특히 (위에 언급한) 두 번째 아리아에서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흥분이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지휘과 교수님도 나의 수잔나가 매우 맘에 든다며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가셨다. 모든 상황이 꿈만 같았다. 체코라는 낯선 나라에 와서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기도 전에 맞닥뜨린 시련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를 배려해주며 용기를 북돋아준 선생님들과 친구들. 또 나에게 큰 호응을 보내 준 많은 관객들. 마치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이 공연 덕분에 나중에 지휘과 교수님께서 이 오페라로 공연이나 마스터클래스를 하실 때는 늘 나를 초대가수로 불러 주셨다. 그리고 그 인연이 계속되어 다른 공연으로도 이어지며 졸업 후엔 오케스트라와 함께 체코 지방 극장에서 순회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학교 전체에 눈도장을 제대로 찍는 사건이 된 것이다.
지휘과 교수님의 오페라 갈라 콘서트에서 함께
그때 찍은 영상을 지금도 가끔씩 본다. 처음 볼 땐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만 눈에 띈다. 두 번째 볼 때는 나만 열심히 해서가 아닌 모두의 노력과 땀으로 맺어진 결실이었다는 걸 실감한다. 세 번째 볼 땐 이렇게 큰 관심을 받게 된 건 내 실력이 아닌 먼 타국에서 온 아이의 노력을 알아봐 준 사람들의 열린 마음 덕분이란 걸 깨닫게 된다.
사랑스럽게 첫 장면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숨어있는 게 들킬까 봐 구석에서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숨을 몰아내쉬는 장면, 능청스럽게 다른 이와 사랑에 빠진 걸 피가로 앞에서 연기하던 그 눈빛, 그리고 그렇게 똑똑하던 수잔나가 보여주는 질투어린 평범한 한 여자의 모습. 이 모든 순간을 연기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그녀는 시련이 닥칠 때마다 재치 있고 명랑하게 그녀다운 해법을 내놓는다. 나와 학교 생활을 함께 한 수잔나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고마워, 수잔나!
나의 치열했던 체코 생활의 1막은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P.S.
힘들 때마다 학교 뒤편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프라하 전경을 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봄을 알리는 벚꽃을 보며 언젠가 나에게도 봄이 올까 생각하곤 했었다.
나에게도 올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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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옐로위크(Yelloweek)>
글·사진 | 강희
강희는 프라하 음악 예술 아카데미 성악과 최초 한국인 졸업생이다. 체코어와 고군분투하며 체코를 넘어 전세계를 정복 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sop_hee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