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 비엔나 #35
첫 번째 병원 일기
오랫동안 유럽에 살면서 아쉬운 것 한 가지는, 병원 한 번 가기 쉽지 않다는 것. 최근에도 거의 한 달을 꼬박 앓는 사태가 발생했다. 출근과 육아, 스냅 촬영까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한동안 몸이 잘 버텨왔다 싶었다. 그러다가 정말 거짓말같이, 평일에는 어찌저찌 버틸 만하다가 회사를 쉬는 공휴일과 주말만 되면 끙끙 앓아 눕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래도 아파도 회사는 가야 한다는 K-직장인의 유전자가 나도 모르게 빛을 발한 것 같다.
몸살 기운이 훅 올라오고 기침이 떨어지지 않는 증상이 계속돼서 결국 병원에 다녀왔다. 열은 없고 전염성은 아니어서 다행. 오스트리아에서 병원에 가려면 꼭 예약을 해야 하는데, 아픈 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 갑자기 어느 순간 확 밀려오는 게 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플 때 전화를 하면 2주 뒤에 오세요, 4주 뒤에 진료 가능합니다, 등등 상상도 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온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예약을 받지 않고 대기로만 진료를 보게 해 주는 병원이 있어 그곳을 애용하게 됐다. 가정 주치의(Hausarzt)로도 등록을 해 뒀기 때문에 그나마 아프면 그 병원을 찾는 편이 확실하다. 일찌감치 병가를 내고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춰 ‘오픈런’을 했다. 오픈 시간은 8시.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건만, 벌써 내 앞에 4명이 줄을 서 있있었다.
오픈런하는 병원
다행히 대기가 길진 않았다. 오픈런까지 감행한 노력이 무색하리만큼 진료는 금방이다. 청진기로 소리를 듣고, 아- 입을 벌려 목을 확인하고, 의사가 처방전을 내려준다. 병원 아래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타 왔다. 한국이었다면 주사 하나 콕 놔줬을 텐데, 일단 약부터 털어 넣어본다. 약도 한국에서 받는 그런 조제 약이 아니라 입안에서 녹여 먹는 트로키제다.
처방 받은 약
회사도 회사지만, 집에서 엄마 껌딱지가 되는 아들에게 혹시나 옮을까 봐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외에 효과 좋다는 기침 시럽도 따로 사서 마셨다. 면역력이 떨어졌나 싶어 수시로 비타민도 먹어주고, 한국에서 가져온 환약도 얼굴 찌푸려가며 먹었다. 물도 많이 마셨다. 매일같이 마시던 커피는 잠시 끊었다. 그렇게 온갖 노력을 하며 앓은 게 거진 한 달이다.
면역력을 위한 노력
병가를 낼 때, 의사가 충분히 쉬라는 의미에서 진단서에 며칠 더 써 줄까 물었지만, 한참 회사 업무가 바쁠 시기라 나의 병가는 이틀로 마무리했다. 아마 그래서 회복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그것보다 옛날에는 비타민 좀 먹고 나면 툭툭 털고 금방 나아졌는데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거짓말 좀 보태 남편은 무슨 한 주먹의 비타민 약들을 매일 복용하는 중이다. 그렇게라도 면역력은 미리미리 챙겨야지. 그렇게 몸이 좀 낫나 싶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아예 입원하는 일이 생기고 말 줄이야.
내가 담석이라고?
전조는 몇 년 전 한국에서 종합 검진을 받았을 때 왔다. 담석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는데,간간히 위경령 정도 느껴지는 통증이 왔다가고는 해서 그 뒤로 따로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그랬는데 이번에 아주 제대로 된 통증이 와서 응급 입원을 했다.
오랜만의 플레이데이트(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놀 수 있도록 부모들이 주선해 주는 약속이나 모임) 날. 지인들, 아이들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고 걷는데 속이 살살 아픈 거다. 약간 체했나, 아니면 위경련인가, 요 근래 위경련이 잦은 편이라 약 먹으면 낫겠거니 했는데 웬걸. 케른트너 거리를 걷는 내내 콕콕 찌르는 통증으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플레이데이트를 다음으로 미루고 남편을 호출하여 서둘러 귀가, 약을 먹었는데도 쉽게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 내내 욱신욱신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다시 병가를 내고 병원에 갔다.

물론 이번에도 오픈런을 해야 하는 병원에 방문했다. 꼭꼭 쑤시는 명치를 끌어안고 1시간 정도 기다렸다. 담석 때문인지 몰라 피검사와 소변 검사, 그리고 초음파 검사까지 며칠에 걸쳐 진행했다. (한국에선 이 모든 게 하루에 끝나겠지.) 결과는? 간 수치가 오른 것으로 보아 담석이 담관을 막았을 수도 있단다. 게다가 황달까지 왔다! 결과를 들으러 꾀죄죄한 몰골로 도착한 병원에서 의사는 “당장!!” 건너편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가야 한다며 진단서를 써 줬고, 그렇게 꼬질꼬질하게 간 병원에서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매일매일 피를 얼마나 뽑았는지 모른다. 원래 혈관이 잘 보이지 않는 체질이라 채혈을 할 때마다 팔에 피멍이 불그레죽죽 들었다. 하루 4번씩 맞는 항생제와 진통제 링거들로 오른팔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샤워도 하고 싶고 머리도 너무너무 감고 싶었다.
링겔, 또 링겔
입원을 하고 바로 담석을 깨는 시술을 했고, 다행히 시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간 검사를 위해 생전 처음 MRI(오스트리아에서는 MRT 라고 했다)도 찍었다. 걱정했던 간 문제는 다행히 큰 일은 아니었지만, 일주일 꼬박 병원 빵(병원 밥이 아니다. 병원 빵이다)을 먹었다. 아이를 낳으러 입원했을 때에도 점심을 제외한 아침 저녁은 빵 조각이었는데, 이번에도… 입원 내내 불닭볶음면 먹방만 실컷 보았다. 맵찔이라 불닭은 먹지도 못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불닭볶음면 한 그릇도 먹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었다.
파스타가 나오면 너무 반갑다
일주일 입원 후 퇴원을 했고, 퇴원하자마자 바로 일상에 복귀했다. 아, 회사 생활도 꿀맛이었다. 일을 한다는 게 이렇게 달콤할 줄이야. 주변에서는 “그동안 몸을 혹사했으니 이왕 입원한 것 푹 쉬어라” 걱정 어린 조언을 해주었지만, 매일 아침 채혈한다고 주사를 꽂다가 팔에 피멍이 잔뜩 들고, 밤마다 허벅지에 혈전 주사를 맞는 것보다는 출근이 낫다.
문제는 담석 치료가 아직 진행 중이라 한 번 더 수술이 남았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다음 입원 일기가 두려워진다. 병원 가기 어려운 유럽이라지만 아무튼 시스템은 돌아가고 있고 치료에 들어가면 확실히 치료를 받는다. 그래도 몸이 아프면 서럽고 불편한 건 확실하니, 평소에 건강 관리를 잘하긴 해야겠다.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instagram.com/photo_by_miri_vienna
blog.naver.com/miri_in_vienna
mirivienna.com
하루 한 잔 비엔나 #35
첫 번째 병원 일기
오랫동안 유럽에 살면서 아쉬운 것 한 가지는, 병원 한 번 가기 쉽지 않다는 것. 최근에도 거의 한 달을 꼬박 앓는 사태가 발생했다. 출근과 육아, 스냅 촬영까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한동안 몸이 잘 버텨왔다 싶었다. 그러다가 정말 거짓말같이, 평일에는 어찌저찌 버틸 만하다가 회사를 쉬는 공휴일과 주말만 되면 끙끙 앓아 눕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래도 아파도 회사는 가야 한다는 K-직장인의 유전자가 나도 모르게 빛을 발한 것 같다.
몸살 기운이 훅 올라오고 기침이 떨어지지 않는 증상이 계속돼서 결국 병원에 다녀왔다. 열은 없고 전염성은 아니어서 다행. 오스트리아에서 병원에 가려면 꼭 예약을 해야 하는데, 아픈 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 갑자기 어느 순간 확 밀려오는 게 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플 때 전화를 하면 2주 뒤에 오세요, 4주 뒤에 진료 가능합니다, 등등 상상도 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온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예약을 받지 않고 대기로만 진료를 보게 해 주는 병원이 있어 그곳을 애용하게 됐다. 가정 주치의(Hausarzt)로도 등록을 해 뒀기 때문에 그나마 아프면 그 병원을 찾는 편이 확실하다. 일찌감치 병가를 내고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춰 ‘오픈런’을 했다. 오픈 시간은 8시.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건만, 벌써 내 앞에 4명이 줄을 서 있있었다.
다행히 대기가 길진 않았다. 오픈런까지 감행한 노력이 무색하리만큼 진료는 금방이다. 청진기로 소리를 듣고, 아- 입을 벌려 목을 확인하고, 의사가 처방전을 내려준다. 병원 아래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타 왔다. 한국이었다면 주사 하나 콕 놔줬을 텐데, 일단 약부터 털어 넣어본다. 약도 한국에서 받는 그런 조제 약이 아니라 입안에서 녹여 먹는 트로키제다.
회사도 회사지만, 집에서 엄마 껌딱지가 되는 아들에게 혹시나 옮을까 봐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외에 효과 좋다는 기침 시럽도 따로 사서 마셨다. 면역력이 떨어졌나 싶어 수시로 비타민도 먹어주고, 한국에서 가져온 환약도 얼굴 찌푸려가며 먹었다. 물도 많이 마셨다. 매일같이 마시던 커피는 잠시 끊었다. 그렇게 온갖 노력을 하며 앓은 게 거진 한 달이다.
면역력을 위한 노력
병가를 낼 때, 의사가 충분히 쉬라는 의미에서 진단서에 며칠 더 써 줄까 물었지만, 한참 회사 업무가 바쁠 시기라 나의 병가는 이틀로 마무리했다. 아마 그래서 회복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그것보다 옛날에는 비타민 좀 먹고 나면 툭툭 털고 금방 나아졌는데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거짓말 좀 보태 남편은 무슨 한 주먹의 비타민 약들을 매일 복용하는 중이다. 그렇게라도 면역력은 미리미리 챙겨야지. 그렇게 몸이 좀 낫나 싶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아예 입원하는 일이 생기고 말 줄이야.
내가 담석이라고?
전조는 몇 년 전 한국에서 종합 검진을 받았을 때 왔다. 담석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는데,간간히 위경령 정도 느껴지는 통증이 왔다가고는 해서 그 뒤로 따로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그랬는데 이번에 아주 제대로 된 통증이 와서 응급 입원을 했다.
오랜만의 플레이데이트(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놀 수 있도록 부모들이 주선해 주는 약속이나 모임) 날. 지인들, 아이들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고 걷는데 속이 살살 아픈 거다. 약간 체했나, 아니면 위경련인가, 요 근래 위경련이 잦은 편이라 약 먹으면 낫겠거니 했는데 웬걸. 케른트너 거리를 걷는 내내 콕콕 찌르는 통증으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플레이데이트를 다음으로 미루고 남편을 호출하여 서둘러 귀가, 약을 먹었는데도 쉽게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 내내 욱신욱신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다시 병가를 내고 병원에 갔다.
물론 이번에도 오픈런을 해야 하는 병원에 방문했다. 꼭꼭 쑤시는 명치를 끌어안고 1시간 정도 기다렸다. 담석 때문인지 몰라 피검사와 소변 검사, 그리고 초음파 검사까지 며칠에 걸쳐 진행했다. (한국에선 이 모든 게 하루에 끝나겠지.) 결과는? 간 수치가 오른 것으로 보아 담석이 담관을 막았을 수도 있단다. 게다가 황달까지 왔다! 결과를 들으러 꾀죄죄한 몰골로 도착한 병원에서 의사는 “당장!!” 건너편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가야 한다며 진단서를 써 줬고, 그렇게 꼬질꼬질하게 간 병원에서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매일매일 피를 얼마나 뽑았는지 모른다. 원래 혈관이 잘 보이지 않는 체질이라 채혈을 할 때마다 팔에 피멍이 불그레죽죽 들었다. 하루 4번씩 맞는 항생제와 진통제 링거들로 오른팔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샤워도 하고 싶고 머리도 너무너무 감고 싶었다.
입원을 하고 바로 담석을 깨는 시술을 했고, 다행히 시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간 검사를 위해 생전 처음 MRI(오스트리아에서는 MRT 라고 했다)도 찍었다. 걱정했던 간 문제는 다행히 큰 일은 아니었지만, 일주일 꼬박 병원 빵(병원 밥이 아니다. 병원 빵이다)을 먹었다. 아이를 낳으러 입원했을 때에도 점심을 제외한 아침 저녁은 빵 조각이었는데, 이번에도… 입원 내내 불닭볶음면 먹방만 실컷 보았다. 맵찔이라 불닭은 먹지도 못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불닭볶음면 한 그릇도 먹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었다.
일주일 입원 후 퇴원을 했고, 퇴원하자마자 바로 일상에 복귀했다. 아, 회사 생활도 꿀맛이었다. 일을 한다는 게 이렇게 달콤할 줄이야. 주변에서는 “그동안 몸을 혹사했으니 이왕 입원한 것 푹 쉬어라” 걱정 어린 조언을 해주었지만, 매일 아침 채혈한다고 주사를 꽂다가 팔에 피멍이 잔뜩 들고, 밤마다 허벅지에 혈전 주사를 맞는 것보다는 출근이 낫다.
문제는 담석 치료가 아직 진행 중이라 한 번 더 수술이 남았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다음 입원 일기가 두려워진다. 병원 가기 어려운 유럽이라지만 아무튼 시스템은 돌아가고 있고 치료에 들어가면 확실히 치료를 받는다. 그래도 몸이 아프면 서럽고 불편한 건 확실하니, 평소에 건강 관리를 잘하긴 해야겠다.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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