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으로 가는 길목]유럽에서 '먹고산다'는 것

동으로 가는 길목 #8



“좀 먹고살자!”

“먹고살기 힘드네.”

“그냥 먹고는 살아요.”


흔히들 쉽게 내뱉는 말이지만 정말로 먹는 것 하나만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물론 아니다. 아마도 일 년에 한두 번의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각종 모임, 취미생활 그리고 때가 되면 교체되는 스마트폰까지도 “먹고산다”는 네 글자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삶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하면서 말이다.


내 나라에서 모국어로 생활한다고 해서 이 “먹고사는 문제”가 간단하진 않을 것이다. 경쟁도 치열하고 내가 쉽게 먹고살게 주변에서 좀처럼 가만히 놔두지를 않을 테니. 그런데 하물며 말도 통하지 않고, 생긴 것도 다른, 게다가 태어나면서부터 그동안 경험해 왔던 모든 것들과 전혀 다른 일상이 펼쳐지는 유럽에서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까…….


정말 쉽지 않다. 잘 관리된 커리어나 기술이 있어도 쉽지 않은데, 누구나 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은 일을 해 왔던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냥 막막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곳 유럽 아니 동유럽에도 나와 같은 수 만 명의 “일반” 한국인들이 “먹고살고” 있다.


유럽에 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거주증. 흔히 말하는 비자다. 비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취업이건 사업이건 유럽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서류로 증명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유럽 비자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은 지금 유럽에서 “먹고살고”는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게 정말 쉽지 않다.


다행히 이곳 동유럽에는 한국 대기업의 생산 공장들이 10여 년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는 터라, 처음 시작은 말 통하는 한국기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준비를 해 갈 수 있다.


슬로바키아 북부지역 Zilina에 위치한 KIA 자동차 생산법인


중부지역 Galanta에 위치한 삼성전자 TV 생산법인


슬로바키아만 해도 삼성전자 TV 생산법인과 이보다 규모가 훨씬 큰 기아자동차 생산법인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플랜트가 들어서게 되면 이에 따른 1,2,3차 협력업체와 한국인 호텔 등을 포함한 각종 서비스 관련 비즈니스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슬로바키아와 국경이 닿아 있는 헝가리, 체코, 폴란드를 확장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현대자동차, 한국타이어, 넥센타이어, SK배터리, SDI 배터리, LG전자, 삼성전자 가전사업부, 삼성전자 TV사업부 등의 국내 대기업이 모두 생산법인을 운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1. J 씨의 경우 (슬로바키아)

그가 처음 슬로바키아 땅에 발을 디딘 것은 민박집에서 총무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슬로바키아에는 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 공장이 확장이 되면서 한국 본사에서 출장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말도 안 통하고 서비스도 불만족스러운 현지 호텔보다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민박집을 선호하기 마련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만사 다 그러하듯 그 역시 사장과의 트러블이 생겼고, 퇴사와 함께 비자문제까지 겹치게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인생 최대의 고비였을 것이다. 주변 흐름을 차분하게 분석한 J 씨는 한국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정규직이 아닌 용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즉시 인력 파견 비즈니스를 하는 슬로바키아 회사를 찾아다녔고, 결국 뜻이 맞는 파트너를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A라는 한국 회사에서는 500명의 전체 노동자 중에 200명은 정규직이고 나머지 300명은 해고가 쉬운 비정규직으로 운용한다고 쳤을 때, 이 300명을 공급해 주는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이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A공장의 한국인 매니저를 상대로 영업을 하고, 인력공급과 서류 작업은 슬로바키아 파트너가 담당하면서 계속 사업을 키워 나갈 수 있었다. 현재는 웬만한 중소기업 이상의 매출을 유지하며 시내에 호텔까지 경영하고 있고, 슬로바키아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생애 가장 어려운 시기를 영화처럼 딛고 일어선 J 씨의 호텔 레스토랑. 이제는 슬로바키아와 유럽을 넘어 중국, 인도까지도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2. C 씨의 경우 (폴란드)

여러 해 전이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처음 보는 전화번호라 아마 협력업체에서 무언가를 물어 보려나 보다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예상 밖으로 내 나이 또래 한국 남자 목소리였다. 그는 다짜고짜 나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뭐라고? 한국에서 슬로바키아까지 나를 만나러 왔다고?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었겠지만, 퇴근 시간까지 기다린 그와 회사 근처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담배연기 때문인지, 그의 모습은 무척 초라하고 초췌해 보였다.


그는 한국에서 건설회사에 다녔었지만, 밝힐 수 없는(굳이 밝히기를 꺼려하는) 문제로 퇴사를 하고 실직 상태가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인터넷 카페에서 내가 쓴 글들을 읽게 되었고 유럽, 특히 동유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요?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죠?”

“그냥……, 저, 만약……, 최 선생님이 지금의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게 알고 싶었어요.”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우선 어디든지 소속을 하나 만드시는 게 좋을 듯해요. 어학원도 좋고, 봉사활동 단체도 좋고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조용히 찾아다니면서 차분하게 신뢰감을 쌓으세요. 종교 모임, 스포츠 모임 뭐 아무 거나 본인이 관심 가는 곳에 성실하게 참여하세요.”

“거기서 직업을 찾는다고 이야기하면 될까요?”

“이곳에 모여 있는 한국인들은 자동차, TV 생산에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인데, 체코, 폴란드, 헝가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다양한 회사에서 다양한 직업군들이 얽히고설켜 있어요. 누군가는 퇴사를 하고, 그래서 어느 회사에서인가는 반드시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C 씨는 교회와 축구 모임에 꾸준히 참석했다. 원래 진중한 스타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로부터 짧은 시간에 신뢰감을 쌓을 수 있었고, 드디어 축구 모임에서 슬로바키아 질리나에 본사를 둔 자동차 부품공장의 폴란드 지사에서 급하게 한국인을 구한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공장의 경우도 당장 인원 충원이 필요한 시점에서 한국에 연락을 하고, 화상 인터뷰 진행하고, 내부 결정을 기다리고 할 여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시차도 있어서 연락이 쉽지 않았다. C 씨는 바로 다음날 폴란드로 넘어가서 인터뷰를 요청했고, 과거 건설회사 경력이 도움이 되어 바로 그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다. 비자, 주택, 차량까지 모두를 지원받고 세금도 회사에서 지불해 주는 세후 급여 조건이었다.


C 씨는 무사히 취업이 되어 유럽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제조공정 관리자로서 폴란드 여성 작업자들과 함께 일한다.


먹고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건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아닌 외국, 그것도 보수적이고 외국인 차별이 심한 유럽에서는 그 고민의 무게가 더더욱 가중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유럽 여러 나라에 한국 기업들이 퍼져 있다는 점이다. 먹고살면서 경험을 쌓고 또 다른 기회와 길을 쉬지 않고 모색해 나간다. 의미 있는 유럽 생활, 아니 생활 자체가 쉽지 않지만 그 수밖에 더 있겠나, 이 가을 갑자기 생각이 무거워진다.




글 최동섭

슬로바키아 14년차로 삼성전자 슬로바키아 법인에서 9년 근무 후 독립했다. 현재 슬로바키아에서 CDS Korea라는 기계설비무역 및 여행코디네이터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동유럽/일본/한국에 자신만의 놀이터를 하나씩 만드는 게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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